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87화 (287/634)

287.

[툼! 스톤! 파일! 드라이버!!]

[이 업계를 모욕하고 떠나려는 자에게 걸맞은 비참한 최후입니다!]

[데드맨이 돌아왔습니다!!]

해설자들의 거센 외침.

카메라가 백스테이지로 퇴장하는 테이커와 링 위에 쓰러진 신의 모습을 번갈아 비추며 방송이 끝났다.

지긋지긋한 프로파간다였다.

회사를 나가는 선수의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전통적인 업계의 관행.

회사에서는 다른 선수들을 띄워주고 가는 거라며 포장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회사 내에서 브랜드 이동을 할 때나 적용되는 거고.

회사를 나가는 선수에 대해서 바트 맥센은 정말 너저분하다 싶을 정도의 강한 뒤끝을 보여주었다.

지금처럼.

“이런 편협한 세그먼트로 이득을 보는 선수가 과연 있을까 모르겠군.”

러셀 하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호텔 방.

신의 마지막이라는 소식에 텔레비전을 켠 그는 어처구니없는 각본을 보고는 이 회사에 분노를 느꼈다.

앞뒤도 안 맞고.

개연성도 없고.

그야말로 최악 그 자체.

물론, 급하게 회사를 나가게 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고는 쳐도.

저럴 바에야 그냥 멋지게 제 갈 길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팬들 또한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

러셀은 옆자리에 앉아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던 시나를 돌아보았다.

신의 마지막.

그 소식을 들은 ‘챔피언’은 한동안 생각이 많아 보이는 모습이었고.

덕분에 오늘 각본을 보고는 꽤나 할 말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반대로 말이 없었다.

“시나?”

“응? 아, 미안. 뭐라고 했어?”

“신의 마지막이잖아.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싶어서.”

그런 질문에 시나는 이어 지금 상황을 아주 명확하게 요약했다.

“락커룸이 넓어지겠네.”

“…….”

그 말이 맞았다.

지금까지 두 사람은 동기로 랙다운에서 자신만의 시대를 개척해가고 있는 신을 계속 의식하고 있었다.

그가 계속 옆에 있는 듯했다.

어디에서나 소식이 들려왔고.

화제의 중심에 서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그렇게 매번 팬들을 즐겁게 하면서 두 사람과 다른 길을 걸어갔다.

정석적인 선과 악.

그런 대립을 하고 있는 시나나 러셀과는 달리, 그 경계가 모호하고 치열한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현실의 자신을 깊게 투영한.

그렇기에 두 사람은 언제나 신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회사의 락커룸에서 그의 짐이 빠졌다.

“바트도 참 사람이 못됐어. 기왕 나가는 거, 굳이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박살 낼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그건 그래. 하지만…… 신이 이대로 과연 가만히 있을까?”

“뭐?”

“신이 오늘 각본으로 자기 이미지가 망가질 거란 걸 몰랐을 리가 없잖아.”

“그건 그렇지.”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신은 어떤 안 좋은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그걸 모조리 간파하고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꿔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째서 저 굴욕 각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걸까?

“설마 뭐 또 꿍꿍이가 있나.”

“아니, 근데 방송이 끝난 시점에서 뭐 어떻게 할 수가…….”

두 사람은 불안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그건 현실이 되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J.H.라는 닉네임의 유저가 올린 영상 하나가 큰 화제가 되며 북미에 퍼져나갔다.

준호는 아니다.

준 하우디 호의 약자지.

내 아이디는 맞는데.

어쨌거나.

[사랑해! 나중에 보자고!!]

위클리 쇼에 그런 뒷사정이 있음을 알게 된 북미가 발칵 뒤집혔다.

갑작스러운 상호 계약 종료.

그것까지는 어떻게 대응책을 마련했지만, 쇼가 끝난 이후 촬영 영상이 나돌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WWF는 언론의 집중 공세를 받으며 회장님의 주름살이 열 개쯤 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정확히 해두자.

이건 바로 앞으로 도래할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해서 실감하지 못하는 바트 맥센의 실책이었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는 랙다운의 전문가들은 모두 내 편이었던 거고.

그리하여 나는 깔끔하게 북미에 내 존재감을 남긴 채 회사를 나왔다.

시간은 지났고.

2007년 7월.

슬슬 언론에 내 다음 행보에 대한 찌라시가 나돌기 시작했고, 티파니는 거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나름대로 잘 버텨줬네요.”

확실히 그랬다.

ACW와 달리, 우리는 신생 단체의 프로젝트 자체를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ACW의 출범 계획을 ‘프로젝트 A’라 명명하고, 사람들을 모으면서도 그 내용을 철저하게 숨겼다.

심지어 영입할 당사자들에게도.

그럼에도 영상제작, 무대제작, 촬영 인력을 모집하는 거대한 로직을 보자면 어떻게든 프로레슬링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기는 했지만.

WWF는 당시 거만했고, 우리가 꽉 잡고 있는데 어떻게 새로 프로레슬링 단체가 나오겠느냐며 비웃었다.

그리고 뒤통수를 맞았지.

그렇게 말하자 티파니가 웃었다.

“우리는 정반대죠.”

“완전히 정반대지.”

나도 동의했다.

우리는 ACW와 반대로, 원래의 GCW 크루를 끌고 오면서 그들과 계속해서 단체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 하나가 GCW 크루나 선수들에게 접촉해 상황을 캐내면 바로 정보가 공개됐겠지만.

믿음직한 동료들은 그 사실을 끝까지 철저하게 숨겼고, 덕분에 지금까지 버텨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숨긴 건 단 하나.

GCW의 매매.

그 정확한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언론에 퍼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ACW의 출범 계획 또한 숨겨지고 있는 절묘한 상황이었다.

팬들, 아니, 정확히 말해. 미국의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는 상황이었다.

스눕-덕과 스칼렛 요한나, 제임스 관 같은 외부에서 사귄 친구들마저 내게 궁금해서 물어볼 정도.

하지만 우리는 크루 멤버들을 생각해 계속해서 입을 다물었다.

“절묘한 때가 있을 거예요.”

“그때가 돼서 빵 터뜨리면 분명히 언론에서 큰 주목을 하겠지.”

“일단 정보를 감추기 위해서 다른 찌라시들도 같이 뿌려뒀어요.”

“잘했어.”

그렇게 되면 진실은 감춰진다.

“그나저나, 출범 계획을 굳이 내년 1월로 잡은 이유가 있을까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야.”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하나는 전 세계에서 모인 선수들의 스타일을 맞출 필요가 있어서.”

“경기 스타일이라던가?”

“그래. 거기다 기존 단체와는 다른, 우리만의 색깔을 정해야겠지.”

“WWF는 알고 있고, ACW의 스타일을 좀 볼 필요가 있다는 거군요.”

“그런 셈이지.”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정확히 티파니에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존재했다.

9월에 출범하게 되는 ACW는 이후 약 1년간 ‘평범한 시기’를 겪는다.

과거의 프로레슬링을 재현하고자 하는 취지는 좋지만, 처음부터 너무 과거로 돌아간 것이었다.

거기에는 우리들의 큰 형님, 캡틴 로건의 입김이 진하게 작용했고.

예상과 다른 결과에 내부에서 혼란기를 겪는 사이, 우리들의 단체를 출범시키고자 하는 계획이었다.

물론 존 마이클스의 미복귀와 같은, 전생과 다른 변수가 많이 생겨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일단은 준비를 철저하게 하면서 기다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첫 번째 이유와 비슷한데.”

“아, ACW의 출범에 밀려서 화제성을 빼앗기고 싶지 않단 건가요?”

“바로 맞췄어. 대단한데?”

“그럼요. 누구한테 배웠는데요.”

감탄을 금치 못하는 날 보며 기쁘게 웃던 티파니가 이어서 설명을 덧붙였다.

“확실히, 같은 단체라고 하더라도 출범 시기가 비슷하면 저희가 먹힐 위험성 역시도 존재하니까요.”

“아니, 그건 반대야.”

“음……?”

“난 지금 모인 선수들과 크루, 당신을 믿어. 우리는 분명 같이 출범한다면 ACW를 짓밟을 수 있을 거야.”

“상대가 캡틴 로건인데도?”

“틀딱인데 뭐.”

그 상징성은 어마어마했고, 실제로도 죽을 때까지 프로레슬링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서 남았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만큼 감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난 나의 감을 믿었다.

동시에 우리를 믿었다.

“이렇게 되면 위험성은…… 아버지가 저희를 고소하거나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하는 것 정도겠네요.”

“GCW를 판 것 때문에?”

“그렇겠죠.”

“뭐 자기가 멍청한 것을.”

“……제 아버지인데.”

“어, 그러게.”

가끔 잊는단 말이지.

내가 순간 당황해 있자니 킥킥 웃으며 다가온 티파니가 손을 뻗었다.

“슬슬 가죠.”

“……죄, 죄송합니다.”

“오늘 밤 사죄하세요.”

“아니, 뭘로요.”

“알면서.”

“알았어. 오늘은 다섯 번 해줄게.”

“와, 정말?!”

“그래. 오튼도 그렇고, 왜 둘 다 프로레슬링 게임에 환장하는지.”

“그, 그러면 우리 킹스 럼블 매치도 해요! 나란히 1, 2번으로!”

“예, 예.”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튼과 달리 티파니는 항상 직접 커스터마이징한 ‘티파니 맥센’ 캐릭터를 사용해서 게임에 임했는데.

능력치가 무려 100이었다.

최신 버전에서 가장 강력한 장의사 테이커도 그냥 바닥에 꽂는다.

툼스톤을 훔쳐 써서.

“이거, 우리 새 단체도 만들어야겠지?”

“아, 물론 알아보고 있어요. 애들 코 묻은 돈 뺏어 먹는 데는 또 게임만 한 게 없죠. 훗훗훗.”

“…….”

왜 장인어른이 보일까.

어쨌거나.

사무실에서 나와, 복도를 걸어서 이동한 우리는 곧이어 고릴라 포지션을 지나 링 안으로 들어섰다.

라스베이거스의 트럼프 아레나.

5,000명 규모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실내 경기장.

로널드 트럼프가 도시 미관을 위해서 세운 곳이었다.

트럼프라는 이름 덕인지 라스베이거스의 이미지와 잘 맞는 듯했다.

철컥-!

무대 조명이 들어왔고, 링 주변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랙다운과 마찬가지였다.

선수들은 바리게이트 안쪽.

직원들은 바깥쪽.

티파니는 자연스럽게 바리게이트 바깥으로 나갔고, 나는 심호흡을 하며 그대로 천천히 링으로 올라갔다.

마이크를 쥘 필요는 없었다.

다들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나는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일종의 궐기식인 셈이었다.

“전부 모인 거겠죠? 안 온 사람 있으면 손 한 번 들어볼래요?”

쌔앵.

제기랄, 개그가 안 먹혔군.

특히 링 아래의 사모아 고 선생은 노골적으로 눈썹을 찡그릴 정도다.

키는 평범했지만, 사모안 특유의 두터운 체형과 카리스마 있는 외모, 마이크워크까지 모든 부분이 완전체.

단 하나, 젊은 시절 몸을 크게 혹사해 늙어서 계속 부상을 당했다는 점만 빼면 환상적인 레슬러였다.

지금 당장 WWF의 메인 이벤터로서도 충분히 통용될 만한 남자였다.

문제는 바트가 뚱땡이를 싫어해서 절대로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지만.

여기 모인 이들 모두가 그랬다.

이런저런 이유로 바트의 눈 밖에 난 비운의 선수들.

“크루 분들은 전에 왜 당신들을 스카웃하는지 대부분 설명 드렸고.”

싱긋 웃은 나는 링 아래에서 침묵하고 있는 선수들을 내려다보았다.

남성 로스터 열세 명, 여성 로스터 일곱 명을 합쳐서 총원 스무 명.

GCW 쪽에서 나를 믿고 넘어온 세 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향후 큰 스타가 될 재목을 갖춘 선수들이었다.

또한 현재까지 인디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베테랑들의 숫자가 많았다.

TV 방송에서 화제가 된 적은 없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능력을 키워온 선수들.

그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터다.

“자기가 왜 뽑혔는지 모르시겠죠?”

노골적인 도발.

하지만 나는 씨익 웃었다.

“사실 그렇잖습니까? 여러분 대부분이 WWF의 눈을 통해서 보기에는 결격 사유가 있는 선수들이죠.”

모두가 눈을 부라렸다.

그때, 누군가 관객석 쪽에서 손을 흔들어 힐끗 본 나는 바쿠와 티파니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만해!’

‘무슨 짓이야!’

‘초면부터 사기를 조질 셈이야!!’

그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사모아 고!”

“…….”

“WWF에서는 평범한 체격의 과체중 선수를 믿고 사용하지 않죠.”

고가 나를 죽일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선수들의 단점을 이야기해나가기 시작했다.

“AK 스타일스! 카리스마가 없잖아! 쟈니 에이스! 마이크워크가 구려!”

선수들뿐이겠는가.

“바쿠는 정치 수완이 좋지 못했고, 베이다는 협조성도 없고 엔터테이너로서의 능력은 그야말로 최악이죠!”

“……지금 싸우자고 불렀나?”

“뭐, 계속 들어보시죠. 그리고 이 단점은 여러분들이 가진 가장 큰 단점을 말하는 거지. 그것밖에 단점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베이다의 반박에 나는 낄낄 웃으며 계속해서 단점을 말해나갔다.

“나탈리! 인디에서 좀 굴러본 생초짜가 프로에서 적응할 수 있겠어?!”

“거, 적당히 좀 하시죠?”

그렇게 말한 것은 드러난 상체를 문신으로 도배한 검은 머리칼의 사나이였다.

원래는 현 시점에서 버닝콩에 있어야 하는데, 무슨 일인지 계속 인디 활동을 하고 있어서 데려왔다.

나는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

역시 가장 처음으로 반항의 의사를 내비친 것은 바로 저놈이었다.

전신 타투에, 프로레슬러라 보기에는 근육이 부족한 말라깽이.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레슬링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온 남자.

C.M. 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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