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
쿠웅-!
쾅!
복도에서부터 요란하게 이어지는 소리에 티파니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시작한 거겠지.
그 소리에 맞춰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고,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평균 연령 52세의 세 사람.
업계에서 전설이었던 그들은 창피한지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을 시작한 첫날부터 싸움을 벌였으니 말이다.
베이다의 일방적인 시비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거기 말려들어서 같이 싸운 것 또한 무척이나 큰 죄였다.
“일단, 나중에 세 분 다 시말서 써서 할리한테 제출하도록 하세요.”
“그, 그래.”
“……또 해고인가.”
우수에 젖은 베이다의 눈빛.
무시하고, 훈련장으로 돌아갔다.
선수들이 링 주변에 모여 있는 가운데, 위에서는 한창 신과 사모아 고의 레슬링이 벌어지고 있었다.
“호오.”
그 모습을 보자 시무룩하던 프로듀서 세 사람의 얼굴 또한 밝아졌다.
멋진 합이었다.
티파니도 미소를 지었다.
사모아 고는 특유의 거대한 풍채와는 어울리지 않게 사기적인 운동 능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문제는 그 몸집을 상대방이 받아줘야 하는 만큼 경기 양상에서 아찔한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는 건데.
신은 유연하고 힘 있게 그 공격들을 받아주며 레슬링을 이어나갔다.
코너에 몰린 신.
따라서 달려온 고가 몸으로 부딪치고는 그대로 거만하게 돌아섰다.
디테일이 빛났다.
비틀거리며 코너에 서있는 신.
별거 아니라는 듯 코웃음을 치며 걸어 나오던 고가 몸을 돌렸다.
140kg의 거체가 날아올랐다.
엔지그리.
쩌억-!
뒤로 돌며, 동시에 날아올라 상대방의 측두부에 킥을 날리는 기술.
“역시 경기는 저렇게 해야지.”
베이다가 껄껄 웃었다.
그리고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간 고가 숨을 몰아쉬며 신을 향해서 뛰어올랐다.
콰앙-!
티파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이 완벽한 기술 구사력을 가지고 받아줘서 망정이지, 그 무게를 받아내는 건 부담스러워 보였다.
일반적인 헤비급 체중인 90~120kg을 넘어선 슈퍼 헤비급인 고인데.
물론, 그로 인해서 프로레슬링답다 싶은 극적인 장면이 나왔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그렉도 거기에 동의했다.
“너무 위험해.”
“앙? 어디가?”
베이다가 휙 돌아보았다.
“코어 근육이 완벽하게 잡혀 있는 신이라서 받아낸 거지. 일반적인 선수라면 부상을 입을지도 몰라.”
거기다 그걸 피하려고 어설프게 받았다가는 고가 부상을 입는다.
“뭐, 그래도. 멋지잖아?”
“……굳이 저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멋지게 보일 방법은 많아. 거기다 벌써 숨을 헐떡거리는 걸 보라고.”
반대로 신은 조금도 숨을 몰아쉬지 않고 계속 고를 상대하고 있었다.
“신보다 50kg을 더 버티고 계속 몸을 움직이니 빨리 지치는 거겠죠.”
“그게 뭐 어때서 그래?”
“부상의 위험성이 높아지잖아요.”
“근성으로 버티는 거지.”
“일본 스타일이군.”
그렉이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거기에 순간 발끈한 베이다가 돌아보았고 티파니가 그 둘을 말렸다.
“연봉 깎이고 싶으면 계속하세요.”
그 말에 베이다는 신사가 되었다.
모의 경기는 계속되었다.
티파니와 일행이 돌아온 걸 알아차린 신은 고를 아래로 내려 보냈다.
그리고 계속 훈련을 진행했다.
“아무나 올라와봐!”
그 말에 위로 올라간 것은.
리키타였다.
특유의 붉은 머리를 길게 기른 그녀가 이어 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리키타는 과거 레이 미스테리우스를 보고 프로레슬러가 되려고 했다.
그리하여 98년, 멕시코로 건너가 그곳 특유의 레슬링 스타일인 ‘루차 리브레’를 배우고 돌아왔다.
말하자면 여성 루차 리브레 레슬러인 루차도라라고 할 수 있었다.
테크니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짬을 먹은 만큼 자기 할 일은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선수였다.
까다로운 그렉도 인정할 정도였다.
“깔끔하군.”
허리케인라나.
신의 위에 올라탄 그녀는 가볍게 웃고는 공격을 계속 이어나갔다.
티파니와 프로듀서들은 그렇게 선수들의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AK 스타일스.
쟈니 에이스.
나탈리 네이드하트.
역시 신이 말한 대로였다.
장단점이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단점이 큰 선수도.
장점이 큰 선수도 있다.
하지만 개중에서 단 한 사람만큼은 모든 능력치가 완벽을 이뤘다.
바로 신이었다.
“저 자식이 제일 괴물이군.”
“그야 당연한 거지. 날 은퇴시킨 인물이니까 저 정도는 해줘야 마땅해.”
그렉이 미소를 지었다.
심지어 한 시간 내내 모의 경기 스타일로 스무 명을 모조리 상대하면서도 숨을 헐떡이는 게 고작이었다.
이 배의 선장다운 실력이었다.
* * *
“육각형을 그려봅시다.”
이후의 회의.
샤워를 마치고 나와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기다리고 있던 멤버들 앞에서 그런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이전에 그렉 하트는 선수의 능력치를 외모, 기술, 언변으로 나눴다.
“맞는 말이지만 너무 포괄적이에요. 사모아 고 같은 경우도 외모 자체는 10점 만점에 가깝잖아요?”
“하긴, 위압적인 악역 보스의 역할을 맡기에 그만한 선수가 없지.”
“거기다 사모안이고.”
동의하는 그렉과 바쿠.
고는 사모안 특유의 박력 있는 외모로 챔피언이 될 재목처럼 느껴졌다.
강해 보인다는 말이었다.
그가 체중을 빼야 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운동 능력을 보호하기 위해.
하지만 반대로, 랜스 오튼처럼 다른 방향으로 10점 만점의 외모 역시도 존재했다.
“마초적이고 잘생겼죠. 몸매도 1년 내내 잘 유지를 하는 편이고요.”
같은 10점.
하지만 그 이유는 상반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좀 더 세분화된 평가 테이블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외모, 언변, 기술.
이걸 나눠서.
외모는, 카리스마와 스타일.
언변은, 마이크워크와 기믹.
기술은, 무브와 링 사이콜로지.
이렇게 여섯 개로 나눈다.
“흥미로운 구분이군.”
“사실 좀 과한가 싶기는 한데요.”
내가 어색하게 웃자니 이야기를 경청하던 그렉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선수들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겠지.”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의 동의가 든든하게 느껴졌다.
다들 선수 출신인 만큼 내가 하는 말에 대해서 이해를 하는 듯했다.
티파니는 아니었지만.
“설명해줘요.”
항의하듯 손을 드는 그녀.
그 앞에서 설명을 시작했다.
“카리스마는 그 선수가 얼마나 강해 보이는가에 초점을 뒀다면 스타일은 남성으로서의 매력인 거지.”
여성 선수는 여성으로서의 매력.
같은 남자라도 어깨가 떡 벌어지고 복근이 꽉 잡힌 남성 레슬러가 쩐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그를 위해서 벗고 있는 거니까.
마이크워크는 언변과 연기력.
기믹은 프로레슬러로서의 정체성.
무브는 기술의 개수와 구사력.
“……정도로 요약이 가능하겠지.”
사실, 여기에서 더 세분화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너무 많아져서 괜히 복잡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여기에 폴 헤이건 선생과 그쪽 팀장들 몇 명까지 합쳐서 일단 선수들을 좀 평가해볼까 하거든요.”
나는 육각형에 각각 조금 전 이야기했던 목록을 하나씩 그려 넣었다.
“점수제로는 하지 말죠. 점수에 대해서는 서로 생각이 다를 테니.”
나, 티파니, 바쿠, 그렉, 베이다.
할리, 헤이건, 그쪽 팀장 셋.
총 열 명의 OX 평가가 총합 점수로 합산이 되는 것으로. 각 선수의 한 항목씩 점수가 정해진다.
티파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업계인 열 사람의 평가라면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겠죠. 훈련 내용을 짜는데도 도움이 될 테고요.”
“재미있겠는데.”
“다들 동의하는 거죠?”
내 물음에 자리에 있던 네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평가가 진행되었다.
* * *
2007년 7월 19일.
각 팀장들의 평가가 완성되었다.
모두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역시나 다들 볼 줄 아는군.’
이것을 통해서, 나는 각 팀장들의 실력 또한 함께 평가한 것이다.
물론, 모두 같은 평가는 아니었다.
각자 스타일이 있다.
베이다는 호쾌하고 파괴적인 스타일의 선수들을 좀 더 높게 쳐주었고.
그렉은 테크니션 레슬러들을 더 카리스마 있다고 좋은 평가를 내렸다.
바쿠와 할리는 좀 올드한 평가를.
그나마 헤이건이 날 잘 따라오기는 했지만, 이쪽도 자신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팀장들도 그런 식이고.
나와 가장 엇비슷한 평가를 내린 것은 바로 티파니 맥센이었다.
확실히 프로모터로서 뛰어난 자질을 보유하고 있는 맥센 패밀리답다.
내 옆에 같이 있으며 계속 트렌드를 쫓아온 덕분인 거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이 자료는 내가 다른 팀장들을 통제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물론, 내 직위는 어디까지나 ‘선수’기는 했지만, GCW 때도 그랬고 지금 역시도 각본과 운영에 개입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야 분명 내가 생각하는 만큼 쇼에 흥행이 이루어질 테니까.
‘바트 맥센을 꺾을 정도로.’
동시에 ACW를 이용해서.
그리고 슬슬 시작할 때였다.
훈련장.
한창 선수들이 합을 맞추고 있는 가운데,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것은 바로 ‘사모아 고’였다.
훈련도 가장 열심히 하는 그는 땀으로 범벅이 된 상황이었다.
“무슨 일이지?”
“다이어트는 잘 되나 싶어서.”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같은 나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좀 더 말을 편하게 하고 있지만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기는 했다.
“꾸준히 하고 있어.”
“어제 돌아갈 때 어디 들르지 않았어? 24시간 햄버거 샵이라던가.”
“감시도 하는 건가.”
“아니, 사실 떠본 건데.”
나는 다시 한 번 웃었다.
사모안 킬링 트레인.
사모아 고.
그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카리스마 10
스타일 2
마이크워크 7
기믹 5
무브 6
링 사이콜로지 8
전반적으로 고른 육각형.
솔직히 말해, 다이어트만 한다면 그에게 더 조언해줄 것은 없었다. 고는 그 정도로 완성된 선수였다.
분명히 남들이 와, 할 정도의 근육질처럼 보이진 않지만, 그건 그거대로 개성이 되어주어서 좋았다.
특히나 저 강한 인상 덕에 카리스마가 모두 ‘있다.’가 나왔다.
아, 여기서 확실히 해둬야 하는 게 그렉의 평가와 내 평가는 달랐다.
그렉의 평가는 점수제.
나의 평가는 말하자면 점수 합산제. 그렇기에 고가 캡틴 로건 같은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은 그렇단 거지만.’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아직 살을 못 빼고 있다.
“고.”
“…….”
“저기, 고.”
“뭐, 뭐냐.”
“어제 뭐 먹었수?”
“쿼터파운더 치즈…….”
“버거?”
“다섯 개.”
“You Goddamn Pig.”
나는 황당해 중얼거렸다.
그 말에 고개를 든 고가 날 노려보았고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해졌다.
아니, 확실히 인상이 세기는 하네.
갓파더에 나오는 행동 대장, 루카 브라자 역을 해도 될 것 같았다.
브라자가 맞나. 아무튼.
“……후우.”
그러다 한숨을 내쉬는 고.
“면목이 없군, 캡틴.”
“캡틴?”
“바쿠가 그러던데. 여기는 해적선이고 너는 선장이라고 말이야.”
“……그거 계속 밀고 갈 건가.”
“나쁘지 않은 컨셉 같은데.”
“아, 아니. 말 돌리지 말고.”
나는 다시금 고를 밀어붙였다.
“어쩔 거야? 다이어트.”
“해야지.”
“그래놓고 오늘도 웬디스 치즈에서 밀크셰이크에 프렌치프라이를 듬뿍 찍어 먹을 것 같은 얼굴인데.”
“흠. 오늘은 그걸로 할까.”
“저기, 속마음이 나왔는데.”
“……면목이 없군.”
“아니, 말로만 그러지 말고 뭔가 목표를 잡고 확실히 좀 해보자니까.”
“음, 채소는 먹고 있는데.”
“어떤 걸?”
“토마토. 케첩으로.”
아, 일반적인 미국인들의 식습관을 선수가 된 이후로도 유지하고 있군.
그나마도 이 몸매를 유지하는 건 무지막지하게 운동하기 때문인가.
‘아무래도 방법이 필요하겠는데.’
사실, 나는 다이어트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빠삭하게 아는 편이었다.
전생에 프로듀서로 선수들을 관리하면서 경험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에서 말하건대.
다이어트는 혼자 할 수가 없다.
나도 경험한 일이었다.
회사에서 쫓겨나듯 나와서 모든 걸 잃고 떠돌면서 나이 든 몸이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에 다이어트를 하려고 했는데.
‘실패했지.’
그야말로 처참하게.
그때 느꼈다.
무언가를 끊는다는 건 힘들다.
“내가 좀 도와줄까?”
“응? 어떻게…….”
“사실, 인디 시절에 당신처럼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는 선수가 하나 있어서 도와준 경험이 있거든.”
“어떻게 했지?”
“내가 교관이 되는 거지.”
“뭐?”
“다이어트 교관.”
그런 내 말에 고는 순간적으로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약간 놀란 건가.
“아, 안심해. 교관이라고는 해도 그렇게 스파르타식으로는 안 하니까.”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훈련 내용이 어떤 건지 물어봐도 될까?”
“일단 뭐 같이 살아야겠지.”
“굳이 그렇게?”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고.”
나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식이조절이 별것 아닌 듯하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지. 그런 의미에서 당신을 자제시켜줄 사람이 필요해.”
바로 그게 나라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