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 밑이 퀭해진 채로 출근을 하자니 티파니가 커피를 뽑아다 주었다.
내가 고의 싸구려 맨션에서 하룻밤을 보낸 사실을 알고 있는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괜찮아요? 얼굴이 엉망인데,”
“……아, 괜찮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막 밤에 뭐 먹으러 간다고 탈출했어?”
“그럴 리가.”
나름 프로레슬러다.
거기다 옆에서 누군가 도와주고 있는데 그런 꼴사나운 짓을 할 리가.
다만.
“소리가 크더라고.”
열두 시쯤 누워서 새벽 네 시까지.
꼬르륵, 꼬르르르륵.
주기적으로 고의 배에서 그런 소리가 나다가, 겨우 잠든 이후에는 또 엄청나게 코를 골아댔다.
덕분에 나는 한숨도 못 잤고, 솔직히 티파니가 두 명으로 보였다.
두 배로 좋군.
“교대로 할까요?”
“그래야겠어.”
고의 맨션에서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건 다들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가장 힘든 건 본인이리라.
적어도 이 패턴에 적응될 때까지는 최대한 도와줘야겠다 싶었다.
그런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티파니가 속내를 알아채고는 웃었다.
“그래도, 즐거워 보이네요.”
“어떻게 알았어?”
나는 쓰게 웃었다.
사실 그렇기는 했다.
고는 링 위에서만큼이나 달변가였던 터라, 어제 우리는 같이 자리에 누워서 실컷 레슬링 토크를 했다.
즐거운 시간이었고, 새삼 느꼈다.
이 브랜드는 성공할 거다.
아직 젊은 나이이면서 향후 프로레슬링 업계를 책임지게 될 수많은 스타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사모아 고.
C.M. 펑크.
AK 스타일스.
실력을 갖춘 여성 레슬러들.
그 외 대부분.
원래 역사에서는 WWF 바깥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스카웃되어 시대의 주역으로 우뚝 섰던 이들이었다.
그런 자들을 내가 직접 프로듀싱한다면 얼마나 더 큰 인재가 될까.
이 업계는 어디까지 성장할까.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좋아.”
나는 의욕을 느끼며 일어섰다.
그러자니 티파니가 만류했다.
“신, 오전에는 좀 쉬어둬요.”
“그럴 수도 없어.”
“일하다 쓰러지면 어쩌려고.”
“하루 안 잔 건데 뭐.”
유난이다.
그래도 좋았지만.
가볍게 웃은 나는 걱정하는 티파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이야기했다.
“오늘 오전에 평가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친구를 바쿠가 가르치기로 되어있어서 말이야.”
“아, 그때 그 친구?”
“아마 문제가 생길 거야.”
나는 반쯤 확신하며 대답했다.
“그래도 너무 무리는 말아요.”
“응, 커피 고마워.”
나는 캔커피로 카페인을 보충하며 그대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직원 열 명이 진행한 평가에서 총합 수치가 가장 낮은 선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시나와 함께 시대를 양분했던 남자였다.
C.M. 펑크.
시카고 일리노이 출신.
키 185센티미터.
체중 80kg.
빼빼 마른 몸에 상반신을 온통 문신으로 뒤덮은 인디 출신의 선수.
외양도 볼품없고 딱히 기술적으로 완성되어있지도 않은 그에게 대부분은 좋지 못한 평가를 내렸다.
카리스마 2
스타일 3
마이크 워크 5
기믹 3
무브 1
링 사이콜로지 3
나는 여기에서 무브와 스타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합격점을 주었다.
말인즉슨 그에게 모두 합격점을 준 사람이 하나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뭘 숨기랴.
바로 폴 헤이건이었다.
인디 단체 시절부터 펑크의 재능을 눈여겨보았다고 하는 그는 전생에서도 펑크를 항상 중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확실히 말하자, 그건 펑크의 재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었다.
펑크는 운동 신경도 꽝이었으며 강해 보이는 외양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팬들의 지지를 얻어냈다는 점에서 프로레슬링답다 싶었다.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그는 회사가 생각하는 스타가 아니었고, 그걸 뒤엎을 만한 힘도 없었다.
그렇기에 팬들의 지지를 받았음에도 오래 이어지진 못했고, 결국 회사를 탈단하면서 그 커리어는 끝나고 만다.
일이 그렇게 된 데 가장 큰 책임은 물론 바트 맥센에게 있었다. 하지만 펑크 역시 잘못이 없지는 않았다.
녀석은 말했듯 고약한 성질머리를 가져서, 갖은 사고를 다 치고 다녔다.
특히나 안타까운 점은, 스스로는 굉장히 자기 자신을 올바르고 정의로운 사람이라 믿고 확신한다는 건데.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녀석은 프로 의식을 중시하면서 자기가 봤을 때 그게 없는 선수는 철저하게 무시하고 따돌림을 시켰는데.
애초에 그 ‘프로 의식’이 뭔지도 사실 모호했고, 스스로도 그걸 어길 때가 많았기에 다들 싫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어떻게 아이콘 급이 된 건가 싶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녀석은 자기가 가진 몇 안 되는 천부적인 장점을 이용해서 팬들을 설득할 줄 아는 선수였다.
그리고 사실, 아예 협조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서 자신이 인정한 소수의 선수들과는 굉장히 잘 지냈고.
그 ‘정의감’이 묘한 부분에서는 잘 발휘되어서 게이임을 커밍아웃한 후배 레슬러를 보호해줬을 정도다.
즉, 성질머리가 고약하기는 해도 근본적으로 나쁜 인간은 아니란 거다.
그게 그건가.
아니, 애초에 같은 성인인데 이걸 컨트롤 못한다는 점이 나쁜 거지만.
그래도 이번 생에는 그런 성격을 조금은 잡아보고 싶은 생각이 컸다.
그래, 사람 만들자.
복도를 걸으며 그런 다짐을 되새긴 나는 훈련장 안으로 들어섰다.
링 위의 펑크는 바쿠의 손에 이끌려 이리저리 내던져지고 있었다.
뭔가 어설펐다.
낙법이란 결국 최대한 안전하게 몸의 충격을 흡수하며 떨어지는 거다.
그게 기본이자 전부였다.
좋은 선수는 낙법 하나만으로 상대방을 띄우고 멋진 경기를 만든다.
하지만 펑크는 경력이 꽤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다지 잘하진 못했다.
쿵-!
콰앙-!
떨어질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내가 영국에서 발굴하고 GCW에서 함께 넘어온 윌 오 스피디와는 조금 다른 스타일의 낙법이었다.
스피디는 그 아슬아슬함을 커버할 수 있는 유연성이라도 있지, 반대로 이놈은 전혀 그런 재능이 없었다.
할 줄은 알았지만.
잘하지는 못했다.
그게 일류와 이류를 가른다.
그럼에도 펑크는 최고가 되었다.
그 이유는 뭘까.
결국 남들보다 나은 자기 재능을 최대한 살렸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하지만 역시…….’
좀 못 봐줄 것 같기는 했다.
우리 세대, 다시 말해 시나의 시대에 전성기를 보냈던 이들 중에서 기술력은 가히 최악이 아닐까.
아, 여기에서 말하는 ‘최악’은, 프로레슬링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 중에서 최악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자니 또 웃겼다.
아이콘이었던 시나도 유연함이 떨어져서 끊임없이 ‘경기가 재미없다’는 단점을 지적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보자면 역시 프로레슬링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은 결국 레슬링이 아닐까 싶어졌다.
바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펑크, 더 빠르게!!”
“큭……!”
이 말라깽이는 체력도 좋지 못해, 마지막에 가서는 숨을 헐떡거리며 바쿠의 손에 질질 끌려 다녔다.
그렇게 훈련이 끝났다.
그렉이 링으로 올라가 자기가 담당한 리키타를 위로 불러냈고.
나는 지쳐 구석에 있는 펑크를 뒤로한 채 바쿠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말했다.
“저 녀석은 글렀어.”
“그렇습니까?”
“딱 인디 레벨이야. 마이크워크는 잘하는데, 다른 부분이 영…….”
“점차 나아지겠죠.”
“네가 ‘점차 나아져야’ 하는 선수를 데리고 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군.”
“재능이 보였으니까요.”
“내게는 안 보인다만.”
“그래요?”
“거기다 협조성도 전혀 없어.”
“어떤 점에서요?”
“단점을 지적하면 서로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거기다 눈빛도 영…….”
“흐음.”
나는 펑크를 슬쩍 돌아보았다.
우연히도 순간 눈이 마주쳤고, 녀석은 곧바로 시선을 휙 돌려버렸다.
이 부분은 바쿠를 믿는다.
그가 펑크를 협조성이 없는 성격이라고 평가했으면 정말 없는 것이리라.
“제가 손 좀 봐주겠습니다.”
“어떻게?”
“저희 식으로 해야죠.”
어차피 그러려고 온 것이었다.
나는 가볍게 몸을 풀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펑크에게 다가갔다.
“좀 쉬었나?”
“아, 예.”
“올라와, 한판 붙자고.”
마침 링이 비었다.
* * *
‘엉망이군.’
훈련이 끝난 뒤, 나는 생각했다.
고무할 만한 점은 딱 하나.
펑크는 그래도 열정적이었다.
나와 실전 형식으로 공격을 주고받을 때마다 최대한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었고, 나는 거기에 감화되었다.
잘만 키운다면 앞으로 이 단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을 터다.
지금은 아니었지만.
“허억, 크허억…….”
30분이 넘는 혈전.
링 바닥에 완전히 뻗어버린 펑크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숨만 몰아쉬었다.
나는 바깥을 돌아보았다.
“바쿠!”
선수들을 돌봐주고 있던 그가 내게 물이 든 페트를 하나씩 던져주었다.
그렇게 두 개.
그중 하나의 뚜껑을 까드득 딴 나는 그대로 펑크의 얼굴에 뿌려주었다.
아직 더울 때였다.
“괜찮냐?”
“예, 그, 그렇슴다.”
“말 편하게 해. 나이도 비슷하면서.”
“예? 나이가 무슨 상관…….”
“아, 여기 미국이지.”
그래도 한인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Yu-Gyo 정신을 배워서 그 영향을 받았다.
“어쨌든, 경력도 나랑 비슷하잖아. 굳이 말 어렵게 할 필요 없다고.”
물론, 영어에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이 확실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의를 차리는 말투는 있고, 펑크는 계속 내게 그런 식으로 말했다.
그래서 그냥 그런 거 없이 좀 편하게 대하라고 말을 한 것이었다.
“그, 래. 알겠어.”
“더위 안 먹게 조심하고.”
나는 펑크에게 물을 하나 더 건네주었다. 그러자 겨우 일어난 녀석이 뚜껑을 따고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물었다.
“넌 안 마셔도 되냐?”
“뭘 이 정도 가지고.”
“대단하군.”
“넌 아직 부족해.”
“…….”
펑크가 날 슬쩍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녀석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 보았다.
“내년 1월까지 벌크를 키우고 기술을 단련해. TV 쇼에 나갔을 때 남들에게 꿀려 보이지 않도록 말이야.”
“하, 너 역시 저쪽에 있는 링 프로듀서들하고 똑같은 말을 하는군.”
“뭐?”
“다들 내가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말하기만 바쁘지. 사람 기죽이려고 여기에 불러놓은 건가 싶어지는데.”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남의 말을 곡해해서 받아들이지 마. 펑크. 너는 프로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여기에 온 거잖아.”
“…….”
“불만이 있다면 누구도 너에게 그런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단점을 개선해. 그게 바로 프로란 거야.”
펑크가 시선을 피했다.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앉은 나는 시선을 마주친 채로 대답을 종용했다.
“알겠어?”
“그, 그래.”
말했듯이, 펑크는 분명 성미가 좋지 못하고 협조성마저 없는 성격이었다.
프로레슬러로서 최악이다.
하지만 재능은 확실했다.
마이크 하나로 남들을 매혹하는 능력 하나만큼은 천재적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녀석을 이 단체에서 키워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성격에 맞춰주며 질질 끌려갈 마음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할 일을 주고.
그걸 완수하면 칭찬을 한다.
그렇게 해서 나는 녀석이 선수로서 성장하는 걸 도와줄 생각이었다.
입사 첫날부터 내게 반발했던 만큼 쉽지는 않은 길이겠지만 말이다.
* * *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후우, 후.”
그래도 진득하게 달라붙어서 신과 끝까지 훈련을 끝낸 펑크는 샤워실에서도 반쯤 뻗어 있는 상태였다.
그나마 버틴 거였다.
정말 고된 훈련이었다.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잠시 훈련을 복기하고 있자니 거대한 몸집의 사내가 샤워실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사모아 고였다.
“아, 고.”
“그렇게 물 맞고 있으면 탈수 올 수도 있으니 적당히 해라.”
무뚝뚝하게 이야기한 고가 그대로 물을 틀고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수증기가 번져갔다.
잠시 고민하던 펑크가 입을 열었다.
“좀 어때?”
“죽을 것 같군.”
“나도 그래.”
그와는 인디 시절부터 알고 지낸 터라 펑크가 마음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대였다.
“그래도 잘 적응하는 것 같은데.”
펑크는 고가 베이다에게 크게 칭찬을 들은 걸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취급.
그건 펑크도 잘 알고 있었다.
인디 출신.
제대로 몸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 프로레슬러.
그렇기에 다들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인디 시절 숱한 명경기를 만들며 자신을 증명해왔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반발로 남들과 분쟁을 빚게 되는 것이었다.
그걸 알고 있는 고는 몸을 다 씻어낸 뒤 펑크에게 격려를 건넸다.
그가 제일 좋아할 말이었다.
“캡틴이 그러더군.”
“신?”
“그래, 너에게는 분명히 빛나는 재능이 보인다고 말이야.”
“…….”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펑크.
고는 그대로 샤워실을 나갔고 자리에 남겨진 그는 씨익 웃어 보였다.
사실, 신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펑크는 애초에 반항할 마음이 없었다.
“존나 멋져.”
왜냐면 신은 펑크가 자신이 인디 시절부터 가장 좋아하는 레슬러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