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
위클리 쇼의 메인이벤트는 WWF의 탑과 TMA의 탑의 싱글 경기였다.
신 VS 사모아 고.
그야말로 페이퍼뷰 급 매치.
모두에게 이 회사가 각각 단체에서 최고였던 선수들이 맞붙는 장이라고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수고.”
오프닝 세그먼트를 마치고 돌아와 인사를 하던 나는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찌르는 것을 느꼈다.
돌아보자 붉은 머리의 리키타가 내 가슴을 철썩 때렸다.
아프구먼.
“아주 멋졌어. 신.”
“나가십니까?”
“그래, 한번 해봐야지.”
피식 웃은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고릴라 포지션 앞에 섰다.
진지한 눈빛.
WWF에서 성적인 모욕을 받으며 은퇴했던 그때의 그녀가 아니었다.
향후 여성 레슬러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위대한 선배를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어 묵직한 라틴 음악과 함께 남성 보컬이 노래를 시작했다.
[So Fu-k your rules Man-!]
[Waaaaaaaaaaaaaggggghhh!!]
팀장들의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카리스마 8
스타일 8
마이크워크 4 → 6
기믹 7
무브 5 → 7
링 사이콜로지 3 → 5
물론, 남성 선수와 여성 선수들은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 받았지만.
그걸 감안해도 그녀만큼 멋진 선수는 얼마 없는 게 사실이었다.
여성으로서의 매력과 동시에 카리스마까지 동시에 가진 멋진 선수.
모든 남자들이 꿈꾸는 ‘누나’.
그게 바로 리키타였다.
……실제로도 리키타는 락커룸 내에서 수많은 남자 선수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닌 것으로 유명했다.
‘원래는 트리쉬도 같이 스카웃해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녀는 본인이 남편과 아이를 만든다는 의지가 확고해서 그냥 놔뒀다.
뭐, 자기가 가정을 꾸려서 살겠다는 사람의 의지를 어떻게 막겠는가.
원래는 그녀와 리키타, 여기에 한 사람까지 더해 세 명이 여성 레슬러진을 확 잡아주었으면 했는데.
그때, 누군가 또 등을 툭 쳤다.
“신.”
돌아보자 그녀가 서있었다.
나와 비슷한 선글라스.
검은 경기복 위에 롱코트를 걸친 카리스마 있는 동양계 여성 레슬러.
심지어 나와 같은 한국계.
TMA의 위민스 디비전을 주름 잡던 하이 플라잉 + 서브 미션의 강자.
“킴.”
제인 킴이었다.
“다녀올게요.”
“그래, 잘 부탁해.”
앞으로 위민스 디비전은 저렇게 두 선수가 이끌고 나가게 될 터였다.
카리스마 4 → 6
스타일 7
마이크워크 1 → 4
기믹 5
무브 7
링 사이콜로지 4 → 6
그 아래로 각기 다른 단체에서 스카웃해온 신인들이 따라붙는 형식.
분명 이쪽도 대박이 날 터.
‘지금쯤 모두 놀라고 있겠지.’
WWF에 남은 동료들을 잠시 기억해낸 나는 락커룸으로 돌아갔다.
이제 시작이었다.
* * *
리키타와 킴의 첫 경기가 이어진 후로도 수많은 선수들이 링으로 나가서 자신들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AK 스타일스.
어느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는 레슬러지만, 외모와 기믹 부분이 부족해 그걸 중점적으로 개선시켰다.
10년 뒤, 그가 WWF에 입성했을 때처럼 수염과 머리를 기르게 했다.
덕분에.
기믹 1 → 6
카리스마 3 → 7
그 외 점수가 모두 고득점을 마크해 분명히 눈에 띄는 선수가 되었다.
그 상대는 대니얼 라이언이었다.
팬들이 일컫기를, 궁극의 언더독.
펑크와 같은 시대에 WWF의 아이콘이 될 재능의 소유자였으나 대부분은 그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다.
170이 약간 넘는, 프로레슬러로서는 치명적이다 싶을 정도로 작은 키.
거기에 그 역시도 AK 스타일스처럼 외모적으로 무척이나 밋밋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수염을 기르게 하고 폴 헤이건에게서 마이크워크 특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카리스마 0 → 4
마이크워크 1 → 3
그다음은 C.M. 펑크였다.
이 반년 동안 착실하게 사고를 안 치고 나를 따라와 준 녀석은 몰라볼 정도로 몸이 좋아진 상태였다.
그래서 사실.
가장 많이 성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재능을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한 것에 가까웠지만.
카리스마 2 → 5
스타일 3 → 8
마이크워크 5 → 7
기믹 3 → 5
무브 1 → 3
링 사이콜로지 3 → 9
펑크는 몸을 키우고 앞선 이들과 마찬가지로 멋진 수염을 기르며 선수다운 강렬한 외모를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프로레슬러로서의 평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외모지상주의라기 이전에 우리는 프로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하나 이어지는 경기에 팬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한 노력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큰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메인이벤트.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나와 고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링 벨이 울린 직후, 고는 저돌적인 동작으로 나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콰앙-!
살이 짓이겨지는 듯한 태클.
하반신에 힘을 주어 견뎌낸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아냈다.
정말이지 화끈한 스타일이다.
이게 사모안 디스트럭션 머신.
단순한 락 업조차 파이팅이 넘치는 것이 확실히 팬들을 집중하게 했다.
힘에서 밀렸다.
코너 쪽으로 물러서던 나는 고의 팔을 떨쳐내고 그 뒤로 돌아들어갔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윽?!”
뒤로 물러서며 회전한 녀석이 팔꿈치를 써서 힘차게 내 턱을 후려쳤다.
퍼억-!
거기에 놀라 물러서자 돌아선 고가 다가와 내 목을 툭툭 쓰다듬었다.
명백한 도발.
거만한 미소에 황당해 서있자니 팬들이 어마어마한 반응을 보내주었다.
[Uooooooooooooooooohhhh!!]
멋진 링 사이콜로지였다.
우리의 경기가 무엇을 이유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 PWA에서 자기 자신이 최고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고작 이거야?’라고.
그걸 알아차린 팬들이 고의 배드애스함에 환호했고, 어이가 없어 웃은 나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이어 펀치를 날렸다.
쩌억-!
진짜로 때렸다.
뒤로 물러난 고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고,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Yeeeeeeeeeeeeeaaaaaahhh!!]
팬들이 환호를 보냈고, 뒤를 이어 고가 힘차게 내 얼굴을 후려쳤다.
퍼억-!
알싸한 통증에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화끈한 브롤러 파이팅으로 본격적인 경기가 시작되었다.
사모아 고.
덩치가 큰 그였지만 파워 하우스가 아니라 나와 비슷한 브롤러 파이팅 위주의 올라운더에 가까웠다.
심지어 그 덩치로 미들 로프 수어사이드 다이브까지 써서 플라잉 포크찹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다.
그런 그가 살을 빼고 몸 안의 근육을 드러냈으니 두 가지 면에서 환상적인 시너지가 날 수밖에 없었다.
쩌억-!
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후릴 때마다 그 파괴력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고.
실제로 몸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줄어든 만큼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경기를 풀어갈 수가 있었다.
물론 나 역시 만만찮은 상대였지만.
뻐억-!!
나는 고의 폭발적인 경기에 말려들지 않고 천천히 체력을 깎아나갔다.
얼굴을 후려쳐 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한 뒤, 수플렉스로 넘기며 차근차근 주도권을 잡았다.
말하자면 투우를 하는 것이었다.
한 번 잡히면 끝장이었지만, 나는 능숙하게 붉은 천을 휘두르면서 돌진해오는 고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그 목에 검을 꽂았다.
쩌억-!
순간적으로 터진 슈퍼 킥.
[Waaaaaaaaaaaaaggggghhhh!!]
관객들의 환호와 함께 뒤로 물러선 나는 로프를 붙잡고 쪼그려 앉아 고의 몸이 휘청거리는 걸 보았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었고.
나는 곧바로 내달렸다.
종아리에 힘을 주고 뛰어올라, 적당한 위치까지 내려와 있는 고의 턱을 향해 힘차게 무릎을 뻗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이거나 먹어라!!”
벌떡 일어선 고가 내 목에 팔을 휘감아 그대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우라나게.
투-콰앙-!
[Waaaaaaaaaaaaaggggghhh!!]
내 몸이 바닥을 몇 번이고 튕겨 그대로 반대편으로 나가떨어졌다.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을 뻔했을 정도로 강렬한 우라나게였다.
‘더럽게 아프네.’
하지만 이쪽 역시 슈퍼 킥으로 제대로 안면을 깠으니 피장파장이었다.
고는 그래도 되는 상대였다.
아~! 레슬링 재밌다!!
……투지를 느끼는 것과 달리 내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지만 말이다.
가까이 다가온 고가 핀을 했다.
1!
2!!
카운트는 3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내가 빠져나가려던 순간, 다리를 붙잡고 일어선 고가 그대로 몸을 돌리며 다리를 옆구리에 끼웠다.
우드득-!
등과 다리가 힘차게 꺾였다.
“크하아악-!!”
싱글 레그 보스턴 크랩.
커버에서 이어진 서브 미션.
그 또한 사모아 고의 거만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스스로 커버를 풀어내고 너 같은 건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면서 서브미션 기술을 거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신! 항복하겠나?!”
“하겠수?!”
심판의 물음에 비명을 지른 나는 단단하게 스쿼드 자세로 앉아 내 다리를 꺾고 있는 고를 돌아보았다.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단단히 고정되어있는 고의 다리를 붙잡고 힘차게 잡아당겼다.
쿠웅-!
바닥에 엎어지는 거체.
여기에서 나의 4대 피니시 무브 중 하나인 샤프 슈터로 연결해낸다.
고의 양발을 내 다리에 엮고 그대로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크아아아아악!!”
[Yeeeeeeeeeeeeeeaaaaaahhh!!]
환호를 보내는 팬들.
그 앞에서 나는 단단하게 몸을 고정하고 선 상태에서 고의 허리와 다리를 힘차게 꺾어보였다.
우드드드득-!!
거센 비명을 지르는 고.
그 역시 뒤쪽으로 손을 뻗어 내 발을 붙잡으려고 들었지만.
콰앙-!
나는 잡히려던 발을 들어 그 손을 찍는 것으로 그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꺾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앗-!!”
“크아아아아아아악!!”
내가 내는 기합과 고가 내는 기합이 경기장 안을 가득 채운 가운데.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챈트가 계속 이어졌다.
* * *
멋진 쇼였다.
또한, 환상적인 메인이벤트였다.
[사모아 고! 버텨냅니다! 어떻게든 버텨내면서 로프로 전진합니다!!]
[신이 힘에서 밀리고 있습니다!!]
해설자들의 코멘터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고릴라 포지션의 직원들은 숨도 못 쉬고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야말로 명경기였다.
두 테크니션에 의해 벌어지는 경기는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멋졌다.
물론 그것은.
쩌억-!
퍼억-!
콰앙!
두 사람이 ‘진짜로’ 주먹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저건, 나중에 잔소리를 해야겠군.”
그렉 하트가 쓰게 웃었다.
“왜 그래? 잘하고 있는데.”
베이다가 눈썹을 찡그렸다.
어디까지나 안전을 중시하는 그렉과는 반대로 베이다는 실전성을 중요시하는 레슬링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신과 고가 벌이고 있는 즐거운(?) 하드 히팅 경기가 퍽이나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서로 진심을 담아 때리는 펀치.
끝나고 맥주 한 잔 하면서 왜 그렇게 세게 때렸냐며 툴툴거리고 멍이 든 곳에 얼음찜질을 하는 싸움!
“저게 사나이들이지!”
“……하아.”
한숨을 내쉬는 그렉.
[Waaaaaaaaaaaaaaaaggggghhh!!]
[관객들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첫날부터 최고의 경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말 환상적인데요?!]
하지만 분명 반응은 최고였다.
아마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WWF, ACW 관계자들은 지금쯤 대책회의에 들어갔겠지 싶었다.
사실 그렉은, 여기 와서 직접 선수들을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신의 행동이 어처구니가 없다고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WWF라는 거대한 회사에 대항해 단체를 세우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와도 같았으니까.
하지만.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상황은 PWA 쪽으로 유리하게 흘러갔다.
ACW라는 단체가 나오고, 죽을 쑤면서 PWA처럼 작은 단체가 조커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갔다.
‘이대로 정말 ACW와의 거래를 성사시켜서 그들의 회사에 출연하면.’
WWF를 쓰러뜨리는 것도 일은 아니다.
신이 그렇게 하진 않겠지만.
아니, 그렇게 되면 반대로 ACW 대신 WWF를 택하는 방향도 있었고.
새로운 시대가 찾아왔다.
그걸 만든 것은, 바로 링 위에서 사모아 고를 혈투 끝에 쓰러뜨린 남자.
[1, 2, 3!!]
땡땡땡!!
[신이 승리합니다! 사모안 헤드 헌터! 사모아 고를 쓰러뜨리며 자기가 최고의 선수임을 증명해냅니다!!]
[Waaaaaaaaaaaaaaggggghhh!!]
그 테마가 나오는 가운데.
신은 코너 로프 위로 올라가 팔을 펼치며 자신의 승리를 자축했다.
두터운 근육질의 몸매.
저 녀석도 훨씬 나아졌다.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왜냐면.
“베이다.”
“응?”
“만약 신에게 같은 식으로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주고 싶나?”
“저 녀석 경기 오늘 처음 보는데.”
“……그렇군.”
그렇다면 판단이 불가능하겠지.
마음속으로는 이미 점수를 정해두었던 그렉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결과에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카리스마 10
스타일 10
마이크워크 10
기믹 10
무브 10
링 사이콜로지 10
바로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신의 점수였다.
어디 하나 흠을 잡으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완벽한 선수.
심지어 프로레슬링 내적만이 아니라 외적으로도 완벽하게.
굳이 단점을 꼽자면 냉정하게 말했을 때 역시 인종이겠지만.
그는 그걸 자신의 드라마로 삼아 쿨하게 세상과 싸워가고 있었다.
방송의 막바지.
카메라에 대고 키스를 한 신이 씨익 웃으며 소리쳤다.
[내가 박살 낸다고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