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94화 (294/634)

294.

위클리 쇼 다음 날 아침.

침대 위에서 깨어난 나는 왼쪽 눈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끼고 화장실로 가 거울 속의 내 모습을 확인했다.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간밤에 고가 휘둘렀던 펀치 한 방이 아주 제대로 걸린 모양이었다.

나는 싱긋 웃었다.

“존나 멋져.”

꽤 마음에 드는 훈장이었다.

만족스러운 경기였다.

고는 환상적인 선수였다.

기술력도 있고 패기도 멋지고. 내게 맞서서 러셀만큼이나 잘 해주었다.

그리고 더 넓게 봤을 때, 위클리 쇼도 생각 이상으로 멋지게 나와줬다.

현재 PWA의 선수들은 대부분 인디 출신으로, 방송에서 유명한 이들은 나나 리키타 정도를 제외하면 없었다.

그나마 WWF처럼 전국 방송을 내보내는 TMA 출신의 고나 AK 정도?

하지만 어제 첫 위클리 쇼에 모인 이들 중에서 그들을 알아볼 정도의 마니아 팬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제각기 링 위에서 자기 매력을 뽐내며 경기를 치렀고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끌어냈다.

멋진 출항이었다.

순풍이 불었고 파도 없이 잔잔했다.

아침으로 단백질 셰이크를 챙겨 마시고 곧장 회사로 향했다.

분위기는 죽여줬다.

“신!”

“어제 잘 쉬셨습니까!”

“와, 멍 굉장한데요.”

위클리 쇼가 끝난 다음 날.

각자 업무에 따라서 출근한 직원들이 활짝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회의실로 향한 나는 팀장급 인사들이 대부분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다들 어제 나 대신 뒷정리를 했을 텐데, 의욕이 넘치는 모습들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제기랄, 엉망진창인데?”

바쿠가 껄껄 웃었다.

“야, 화장 제대로 하고 왔네.”

“끝나고 데이트나 하자.”

다들 즐거워하는 얼굴로 날 놀려대는 가운데, 한 사람만은 정반대였다.

바로 그렉 하트였다.

“닥터에게는 보였나?”

“어, 아뇨.”

“끝나고 꼭 보여라.”

“네, 넵.”

……아무래도 저렇게 진지한 성격은 하트 패밀리 쪽의 유전병이 아닐까.

그래도 날 걱정해준다는 건 알겠다.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은 나는 아까부터 종이뭉치를 꽉 움켜쥐고 있던 헤이건을 돌아보았다.

“결과인가요?”

“Freakin’ Awesome.”

개-쩐다는 이야기를 한 그가 내 손에 구겨진 종이뭉치를 건네주었다.

천천히 펼쳐서 확인하자 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결과가 나타났다.

최고 시청률.

방송 시작 2시간 17분 후 264만.

죽여주는 결과였다.

우리는 온갖 페널티를 가졌다.

ACW처럼 남부 팬들을 크게 끌어 모으면서 캡틴 로건과 같이 이름값이 높은 레전드급 선수들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WWF처럼 계속 군림해온 왕국도 아니었다.

우리는 정말 콘셉트처럼 일종의 해적단인 셈이었다.

“여기서 가장 고무적인 부분은, 방송 시작부터 끝까지 시청률이 상승하기만 할 뿐 떨어지지 않았다는 거야!”

헤이건이 흥분하며 이야기했다.

“방송 중간에 다른 채널에서 미식축구 경기가 시작되었는데도 말이죠?”

“그래, 첫 쇼의 버프가 있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결과라고 할 수 있지.”

미국의 국기國技라고 할 수 있는 미식축구가 시작되었는데도 시청률이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상승하다니.

정말 만족스러웠다.

나는 팀장들에게 물었다.

“앞으로 이 시청률을 굴려 나가기 위해서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거기에 할리가 입을 열었다.

“그야 물론, 스타를 만들어야지.”

“누구를 스타로 만들죠?”

거기에는 각자 다른 의견을 내놨다.

사모아 고, AK 스타일스, C.M. 펑크, 대니얼 라이언.

그 외에도 로스터의 다양한 선수들이 언급되었다.

좋은 징조였다.

그만큼 많은 수의 선수들이 스타가 될 자질이 있음을 이 프로페셔널들에게 증명을 받았다는 거니까.

“그럼, 투표를 하죠.”

나는 손바닥을 쭉 폈다.

“올해 3월까지 저희는 다섯 명의 선수를 확실하게 푸시해야 합니다.”

“어째서?”

“ACW의 위클리 쇼를 습격할 선수가 다섯 명이라는 거잖아.”

헤이건이 이해가 빨랐다.

“그리고 정확히는 네 명이고.”

“물론,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그렉.

“한 자리는 무조건 너다. 신.”

거기에 이견은 없었다.

“그, 그럼 네 명으로.”

나는 어쩐지 뺨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내가 한 말을 약간 수정했다.

* * *

나와 함께 ACW를 침공할 4명의 선발은 최대한 빨리 이루어져야만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게 결과가 확정된 상태여야만 각본부터 시작해 이후 위클리 쇼를 만드는 기준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 1주차에서 고는 이미 확정을 받은 상태라고 봐도 좋았다.

그는 자신을 TMA에서 온 강자라고 선언하고 나에게 맞서서 잘 싸웠다.

팬들도 그렇게 납득했다.

그런 남자가 2주차부터는 갑자기 약자로 부킹된다면 그건 정말 각본의 개연성을 벗어난 이야기겠지.

아니, 그럴 수도 있긴 했지만 나와 고 모두 이미지가 망가질 터였다.

‘지금 이 PWA의 최강자는 나니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아니, 진짜로.

테이커의 연승 기록을 깬 나보다 더 큰 업적을 세운 선수는 없으니까.

어쨌거나.

투표권을 한 장 가진 상태에서 나는 일단 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나머지 세 사람.

‘흐음.’

솔직히 다 데려가고 싶은데.

호텔 뷔페를 앞에 두고 정확히 메뉴 네 개만 골라 먹어야 하는 기분.

누구를 택할까.

고민하던 나는 일단 쟈니 에이스를 사모아 고의 옆에 적어 넣었다.

과거 GCW 시절에는 슈퍼스타였지만 메인 쇼에 올라와서는 그다지 중용 받지 못했던 비운의 프로레슬러.

현재 그의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카리스마 3 → 5

스타일 9

마이크워크 1 → 2

기믹 2 → 4

무브 10

링 사이콜로지 6 → 8

분명히 말하자.

쟈니 에이스는 ‘하이 플라잉’이라는 확실한 장점이 있는 선수였지만.

대성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꽃미남에 마른 근육질이었지만 연기는 어색했고 기믹도 꽤 엉성했다.

물론, 잘하기는 했지만 더 큰 재능을 지닌 선수들이 많은 경우랄까.

하지만.

지금 이 PWA를 비롯해 ‘시대’는 쟈니가 활약하기 딱 좋은 상태였다.

한 번 스타였지만 WWF에서 중용 받지 못하고 쓰러진 안타까운 선수.

그렇기에 나는 쟈니가 이번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나머지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티파니는 뉴욕에서 S&T 관련 일을 하고 있어서 문자로 투표를 보냈는데.

그녀를 포함해 대부분의 인원들이 쟈니 에이스에게 표를 주지는 않았다.

나는 티파니와 전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이유를 물었다.

[쟈니 에이스요?]

“그래. 괜찮지 않아?”

[어, 글쎄요. 분명 잘하는 선수긴 하지만 카리스마가 영 안 느껴져서.]

티파니의 픽은 사모아 고와 AK 스타일스, C.M. 펑크와 리키타였다.

“리키타는 좀 예상 못 했는데.”

[지금 신, 당신 다음으로 팬들의 주목을 받는 픽은 바로 그녀라고요.]

“알고 있어. 그래서 다섯 명과 별개로 습격에 포함시키려고 했지.”

ACW에도 여성 로스터는 있다.

대부분 그녀들의 경기는 화장실에 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거기에 리키타가 난입한다면 분명히 큰 충격을 불러올 수 있을 터였다.

[그러면 따로 뽑아야 하나?]

“쟈니 에이스 어때?”

[으앙! 판단 흐려지게 하지 마요!]

“……좋은 선수라고 생각하는데.”

[끙, 그건 아는데. 아무래도 다른 선수들에 비하자면 우선권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는 거죠.]

확실히 그랬다.

사모아 고나 C.M. 펑크 같은 개성 있는 픽들을 제외하면 확실히 쟈니 에이스는 우선순위가 밀렸다.

“이거 아무래도 이번 주는 쟈니 에이스와 경기를 가져야겠는데.”

[또 뭘 하려고요?]

“재미있는 거.”

나는 미소를 지었다.

* * *

다시금 찾아온 수요일 밤.

PWA의 위클리 쇼가 시작되었다.

이날부터는 방송이 시작됨과 동시에 전체 순위표를 먼저 내보냈다.

나와 지난 주 승리를 기록한 선수들의 이름이 상위권에 있는 가운데.

오늘 나는 지난주 1패를 기록한 쟈니 에이스와 한판 붙을 예정이었다.

매치 카드가 나가자 해설자들도 거기에 대해서 언급을 할 정도였다.

[이거 쟈니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군요. 기세를 타야 하는데 1패를 기록 중인 상황에서 상대가 신이라뇨.]

[쟈니도 분명 훌륭한 선수이긴 하지만 신에 비하자면……. 글쎄요.]

[어려운 도전이 될 듯합니다.]

그런 평가가 사실 맞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니까.

나는 그것을 쟈니에게 이야기했다.

락커룸.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있던 그가 이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말로요?”

“여, 열심히 해보지.”

안타깝게도.

선역으로서 화려했던 GCW 시절의 모습과는 달리, 쟈니 에이스는 현재 자신감을 크게 잃어버린 상태였다.

WWF 메인에서 내내 온갖 선수들과 프로듀서들에게 ‘넌 안 돼.’라는 평가를 들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거기에 여기 와서는 온갖 재능 있는 선수들을 눈으로 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포기하면 절대로 안 되는 것이었다.

인간은 뻔뻔하게 살아야만 한다.

자신을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쟈니.”

“으, 응?”

“각본이 있긴 하지만, 저는 링에 올라가서 당신의 WWF 시절을 헐뜯을 겁니다. MNM을 모욕하고요.”

“…….”

“거기에 어떻게 대답하실 거죠?”

“어, 내가 까불면서 너한테 MNM은 최고의 팀이었다고 하다가 한 방에 맞고 뻗어버리는 건 어때?”

“여기는 WWF가 아닙니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 또한 프로레슬링이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팀원들에게 단체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강조한 게 있었다.

‘선과 악이 아닌 남자 대 남자로 링 위에서 맞붙는다고 생각해라.’

작은 단체였기에 할 수 있는 대형 회사와는 다른 방식의 부킹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저는 각본 상의 쟈니 에이스가 아니라 실제 당신이라면 어떤 식으로 행동할 건지를 묻고 있는 겁니다.”

“그, 거라면.”

고민하던 쟈니는 길게 한숨을 쉰 뒤,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동료를 욕하는 놈은 용서 못 해.”

그 말에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바로 그거였다.

* * *

링 위.

먼저 마이크를 잡은 나는 반대편에 서있는 쟈니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너는 WWF 시절에도 쩌리였잖아? 존나 구린 털 코트 입고 멍청이처럼 팀 단위로 쳐맞기나 하고 말이야.”

“…….”

“물론, 태그 팀 시절에는 신-테이커를 한 번쯤인가 이기긴 했지. 하지만 여기는 태그 팀이 없다고.”

“알고 있어.”

“네가 할 일은 간단해.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워서 내가 널 커버하고 쓰리 카운트가 이어지는 동안 천장의 얼룩이나 세고 있으면 되는 거야.”

[Uooooooooooooooooohhhh!!]

화끈한 마이크워크에 충격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팬들. 거기에 피식 웃은 나는 관객석을 돌아보았다.

“물론! 날 보러 와준 이 멋쟁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내가 널 두들겨 패는 걸 보여주는 게 맞겠지만!”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자, 어떻게 생각해? 쟈니.”

“얌전히 커버를 당하거나 너에게 흠씬 두들겨 맞거나. 지금 내게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건가, 신?”

쟈니가 내게 다가왔다.

그의 마이크워크에 대한 평가는 2점. 열 명 중 두 명만이 실력이 있다고 평가를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제 바뀐다.

내가 쟈니가 생각하는 감정을 그대로 뱉으라고 주문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WWF라는 회사에서 받았던 무시에 대한 울분을 내게 그대로 토해냈다.

짜악-!

그가 내 뺨을 후려쳤다.

따끔한 통증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자니 쟈니는 이쪽이 화를 낼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패배자로 보이냐? 아니야! 나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를 살아왔어! 네가 방금 한 말은 나와 내 팀에게 있어 씻을 수 없는 모욕이다!”

그가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던졌다.

계속하라는 뜻으로 가만히 지켜보자니, 숨을 크게 몰아쉰 쟈니가 다시금 소리쳤다.

“네가 나보다 더 나은 선수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패배를 인정해야 한다는 건 아니야!”

넌 나보다 더 나은 커리어를 보냈다. 하지만 그게 네 발밑에 바짝 엎드려서 보낸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외친 쟈니는 마지막으로 팬들이 잊을 수 없는 말을 외쳤다.

“나는 내가 달걀인 걸 알아도 바위에 부딪혀야만 직성이 풀리겠다고!”

환상적인 마이크워크.

[Yeeeeeeeeeeeaaaaaaahhhhh!!]

[Johny! Johny! Johny! Johny! Johny! Johny! Johny! Johny! Johny!]

이어지는 챈트.

지금쯤 TV를 보고 있는 누군가는 쟈니의 윙 패드 슈즈를 꽈악 움켜쥐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멋졌다.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갔다.

투지를 보이는 쟈니의 앞에서 싱긋 웃은 나는 그대로 재킷을 벗었다.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었다.

스스로 달걀인 걸 알아도 결국 바위에 부딪혀 파멸하기를 선택한다.

나름대로 재능을 갖췄음에도 현재까지 그저 그런 커리어를 이어온 쟈니가 했기에 정말 와닿는 말이었다.

티셔츠 만들자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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