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295화 (295/634)

295.

2주차의 위클리 쇼가 끝난 뒤, 팀장급 인사들의 투표로 첫 번째 탑 가이 다섯 명의 선정이 이루어졌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았다.

신.

사모아 고.

AK 스타일스.

C.M. 펑크.

그리고.

쟈니 에이스까지.

“생각보다 호응이 좋더구나.”

평화로운 낮의 사무실.

그렉은 그저께 열렸던 위클리 쇼에서의 경기를 보고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확실히 쟈니는 잘해줬다.

경기는 내가 이겼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팬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네가 잘 이끌어줬기 때문이겠지.”

“전 한 거 없습니다.”

거기에 난 딱 잘라 말했다.

난 단지 상대가 되어줬을 뿐, 쟈니 스스로가 팬들의 마음을 뒤흔들 정도의 마이크워크를 해낸 것이다.

GCW의 에이스 플레이어로 시작해 메인 쇼에서는 찬밥 대우를 받았으나 그럼에도 매사에 최선을 다한 선수.

그걸 팬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호응을 얻은 거지.’

나는 언제나 생각했다.

프로레슬링의 각본은 현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있어야만 팬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고.

“쟈니의 이번 마이크워크 또한 그 부분을 짚어내고 있었죠.”

“그래서 네가 이 단체에는 선역과 악역이 없다고 이야기한 거였군.”

“예, 저는 이곳에 소속된 선수들이 역할에 목매지 않고 자기 자신만의 드라마를 보여줬으면 합니다.”

그게 PWA의 모토였다.

선과 악이 없고.

각자의 욕망을 지닌 선수들 간의 대립.

“물론, 아예 선악의 구분이 없지는 않겠죠. 쟈니는 이번에 확실한 선역 이미지를 구축하지 않았습니까?”

“언더독으로 말이지.”

우리는 그런 쟈니에게 패배와 승리를 거듭하게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5위라는 목표를 쥐어줄 생각이었다.

마지막 상대는 고가 괜찮겠지.

분명 큰 호응을 얻을 거다.

그렉도 거기에 동의했다.

“AK나 사모아 고도 TMA 시절과 비슷하게 각자 선역과 악역 스타일로 나뉘어서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여기에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데, 현재 고가 저 다음으로 큰 환호를 받고 있는 선수라는 겁니다.”

“그건 그렇지.”

“팬들을 욕하고 상대를 잔혹하게 난도질하더라도 카리스마 있는 선수는 분명히 환호를 받는 법이란 거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결국 요즘 사람들은 선수가 악역이라서 싫어하는 게 아니라 재미가 없어서 싫어하는 거라니까요.”

“……흐음.”

“선역도 전형적인 행동만을 하면 꼭 역반응이 나오지 않습니까?”

“지금 시나처럼 말이냐?”

“그렇죠.”

“그 친구는 재능이 있지만, 요즘 러셀하고 대립하는 걸 보고 있자면 WWF도 얼마 안 남은 것 같더군.”

“그건, 뭐.”

틀린 예상이었지만.

지금 시점에서 시나는 러셀이 어떻게든 잔혹하게 받쳐주고 있었지만 확실히 구린 탑 페이스이기는 했다.

WWF라는 회사, 그리고 바트 맥센이 그런 식으로 부킹하고 있었다.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를 작은 틀에 가둬서 그렇게 하지 못하게 두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시나는 정말 잘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었다.

자신을 믿어주는, 혹은 믿기 시작한 팬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천천히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난 거기에 나만의 방식으로 찬물을 끼얹을 생각이고 말이다.

“요새 ACW 쇼 보셨습니까?”

“모니터링은 하고 있다.”

“지금 시나보다 더한 역반응을 얻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거 아십니까?”

“아, 그 양반.”

그렉이 한숨을 내쉬었다.

캡틴 로건.

다시금 돌아온 우리들의 슈퍼 히어로를 내세운 새 쇼는 현재 비참하게 날개가 꺾여서 추락하고 있었다.

“저희가 노릴 건 그쪽입니다.”

사실, 이후로 ACW는 극적인 변화를 하나 꾀해서 그걸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며 WWF를 추월하지만.

나는 그게 이루어지기 전의 과도기에 딱 끼어들어서 역사를 좀 더 쿨한 방식으로 바꿔볼 생각이었다.

* * *

2008년 3월 7일.

우리가 제작하는 PWA의 시청률은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상승했다.

위클리 쇼의 제작비를 생각하자면 매 회마다 그야말로 황금이 가득 찬 수영장이 하나씩 생기는 셈이었다.

……아니, 그건 좀 오버군.

하지만 점점 그렇게 되어갔다.

PWA는 신선한 이미지를 가진 프로레슬링 단체로 각종 협찬에 광고를 받아 브랜드 네임을 불려나갔다.

티셔츠도 엄청나게 팔아먹었고.

특히나 잘 팔린 건, 내가 새롭게 내세운 슬로건인 『ALPHA』 티셔츠.

그리고 PWA의 단체 티셔츠였다.

버닝 스컬이 새겨진 검정 티셔츠가 그야말로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는데.

전에 집에도 몇 장 보내드렸더니 엄마가 농사일 할 때 입으신단다.

……뭐, 어쨌거나.

순항하는 이쪽과는 다르게 다른 두 대형 단체는 계속 지지부진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청률이 우리보다 더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쇼의 크기 자체가 다른 만큼 그들은 나름대로 600만 대를 유지하면서 잘 해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성장해온 우리 PWA의 존재가 눈에 걸릴 터였다.

말하자면 세 명의 카우보이가 서로를 바라보고 서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최후의 승자는?

확률적으로는 우리겠지.

왜냐고? 가장 강한 A와 B는 반드시 서로를 쏘아야만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서로보다도 오히려 곁다리로 코를 파면서 서있는 PWA를 더 신경 쓰고 있을 터였다.

분명히 그러했다.

그렇기에 제안에 응했겠지.

가볍게 밥이나 먹자는 제안.

장소는 뉴욕.

WWF의 땅으로, 말하자면 적지(敵地)였다.

그런 곳에서 PWA와 ACW의 미팅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티파니와 나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 레스토랑에 도착했는데.

……솔직히 말하겠다.

고급스러운 나무 재질의 내부에 휘황찬란한 조명, 세련된 사람들까지 더해.

아무리 겪어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듯한 별세계 같은 광경이었다.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라더니.

그 말대로 더럽게 비싸 보이는 외관부터가 눈에 들어왔다.

“신. 뭐해요.”

“아, 그래.”

살짝 현기증을 느끼며 서있자니 티파니가 자연스럽게 내가 에스코트를 하도록 이끌어주었다.

뭔가 표현이 이상한데 그랬다.

내가 에스코트를 하는 걸 에스코트하는 게 바로 티파니인 셈이었다.

“왜 이렇게 긴장했어?”

“아니, 요새 계속 PWA에서 근육 남정네들하고 레슬링만 했더니 이런 곳에 오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정장도 불편했다.

그러자니 킥킥거리며 웃는 티파니.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거네.”

“……그건 그래.”

확실히 좋은 선수들과 좋은 쇼를 만드는 것이 가장 행복하기는 했다.

마치 GCW로 돌아간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 이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 날 흥분케 했다.

“슬슬 내부는 다져졌으니, 대양으로 나아가 적들과 맞붙을 시점이지.”

“이야기는 잘 부탁해요.”

“디테일은 맡겨둘게.”

각자의 역할은 정해두었다.

34층, 안쪽의 개인실.

자리에 안내되어 30분 정도 기다리고 있자니 그쪽 일행이 도착했다.

‘두 명이라더니.’

아는 얼굴이 왔다.

슬슬 이 남자가 나올 때라고 예상은 했기에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데릭 비숍.

현 ACW의 부사장으로, 이후 파격적인 각본을 통해 ACW가 WWF를 추월하게 만드는 일등 공신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ACW의 1차 암흑기를 만드는 데도 큰 역할을 맡는다.

좋아.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어서 오세요. 터너 씨.”

“멋진 밤이로군요. 티파니.”

터너가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능구렁이 같은 영감.

같은 맥센이라고 전에는 노골적으로 티파니를 고깝게 여기더니 이제는 아예 태도가 정반대가 되었다.

하지만 뭐 어쩌랴.

이게 사업이고.

우리가 성공했다는 증거였다.

“이쪽은 저희 부사장인 데릭 비숍이에요. 데릭, 이쪽은…….”

“물론 알고 있습니다.”

데릭이 손을 내밀었다.

“티파니 맥센.”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신.”

그렇게 서로를 소개한 뒤, 자리에 앉은 우리는 곧장 식사를 시작했다.

느긋하게.

대화도 하면서.

“그러고 보니 요즘 할리우드에서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하나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그래도 체드 터너는 명색이 방송사 사장이라 그런지 꽤나 말이 통했다.

바트 맥센 선생은 죄 하는 이야기가 프로레슬링이라 지칠 때도 있는데.

“아이언……잭인가? 그 왜 마벨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 있잖습니까?”

“저, 저는 그쪽은 잘.”

“그래도 캡틴 아메리칸 같은 히어로는 한 번쯤 들어보셨잖습니까?”

“그렇죠. 워낙 유명하니까.”

티파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언잭도 유명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영화가 나오지 않은 이 시점에, 그쪽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은 모를 수도 있기는 했다.

예를 들자면 캡틴 로건은 알아도 그렉 하트는 모르는 느낌?

아무래도 캡틴 아메리칸은 40년대부터 활약한, 미국 코믹북의 상징과도 같은 캐릭터 중 하나니까.

“어쨌든 갑자기 그걸 영화화한다고 해서 좀 황당하더군요. 그전까지 엑스 피플 같은 정도를 제외하면 흥행한 히어로 무비가…… 있었나요?”

“팀 거튼 감독의 배드맨도 있죠.”

내가 대답했다.

“저는 성공할 것 같던데요. 배우 싱크로율이 정말 대단해서 말이죠.”

“로버트 대니 주니어 말이군요. 마약은 제대로 끊었을까 모르겠는데.”

터너가 혀를 쯧쯧 찼다.

물론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쓴웃음밖에 안 나왔다.

마약은 끊고.

영화는 대박을 친다.

향후 마벨 시네마틱 유니버스라 불리는 거대한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일까.

터너의 말마따나 이때의 아이언잭은 인지도가 살짝 애매한 히어로였다.

그런 그의 영화가 성공한 이유라.

뭐, 핑계를 대자면…….

“만약 아이언잭 무비가 성공한다면 그 이유는 이거 때문이 아닐까요.”

나는 품 안에 두고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터너를 향해서 내밀었다.

“에이폰?”

“예, 아시죠? 손가락으로 까딱거려서 조작하는 최신형 스마트폰이요.”

“물론 알죠. 그런데 그게…….”

“최첨단 아닙니까.”

현재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이 스마트폰의 인기가 아이언잭의 흥행에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일종의 나비효과처럼 말이다.

현재 최종 조정 작업을 진행하며 5월에 개봉할 예정인 아이언잭 무비.

그 성공에 정말로 스마트폰이 영향을 끼쳤는가는 사실 알 수 없었지만.

티파니는 내 말에 동의를 했다.

“확실히, 이런 식으로 대중들이 기술의 발전을 느끼게 되면 꼭 한동안 그것과 관련된 붐이 일더라고요.”

“아이언잭 무비는 확실히 그런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물건이겠지.”

하이테크 공돌이가 온갖 기능이 들어간 강화슈트를 제작하여, 그것을 입고 빌런과 싸우는 스토리.

분명히 스마트폰을 처음 접한 이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스타일이었다.

그런 우리의 이야기에 한동안 골똘히 생각하던 터너가 쓰게 웃었다.

“나처럼 시대의 풍파에서 밀려난 노인네에게는 어려운 이야기군요.”

또 저러신다.

눈빛만 봐도 그 능구렁이 같은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말이지.

나는 피식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직 정정하신데요.”

“아뇨. 이 업계에는 항상 젊음이 필요하죠. 여기 이 친구도 노련하기는 하지만 그런 부분은 영 부족해서.”

터너가 비숍의 어깨를 툭 쳤다.

“PWA의 약진 또한 그 젊음이 큰 무기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군요.”

“……그래도 캡틴 로건이 이끄는 ACW에 비하자면 새 발의 피죠.”

슬슬 분위기가 잡히기 시작했다.

나는 애피타이저로 나온 요상한 캐비어 요리를 한입에 다 털어 넣었다.

말하자면 포커 판에서 아직까지 둘 다 카드를 숨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협업 제의를 하고 싶어 한다.

터너도 내가 일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건 어렴풋이 느낄 터였다.

뭔지 모를 클래식 음악이 이어지는 가운데 계속해서 식사가 진행되었다.

“훌륭한 요리군요.”

“여기 레스토랑이 괜찮아요. 셰프도 아는 사람이라 평범한 요리에 비해 더 재미있는 맛이 나는군요.”

“확실히 풍미가 좀 독특하네요.”

테이블 토크는 티파니가 시작해 터너가 받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전혀 이해가 안 돼서 나는 얌전히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을 기다렸다.

그리고 후식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먹으며 터너에 대해 파악하던 나는 이내 어렵지 않게 그 성미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아까 젊음 운운한 것부터 시작해.

‘확실히, 캡틴 로건이 중심으로 있는 현 ACW의 상황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군.’

하긴 그럴 터였다.

준비 다 해서 기껏 회사를 출범시켰더니 망해가는 WWF를 제압하기는커녕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으니까.

‘딱히 더 간 안 봐도 되겠어.’

그렇게 생각한 나는 식후로 나온 우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었다.

입 안에 퍼지는 화려한 단맛.

역시 이거다.

일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나는 직관적인 게 좋았다.

괜히 코스 요리며, 클래식 음악이며, 풍미며, 돌아 돌아 얻는 것보다는 이런 단맛이 훨씬 더 취향이었다.

……말하자면.

참느라 혼났다는 이야기다.

“터너 씨.”

“네, 신.”

“WWF를 무너뜨리겠다는 야망과는 달리, 요새 좀 부진한 거 아닙니까?”

내 무례한 언사에 순간적으로 테이블 위가 정적으로 휩싸였다.

“…….”

슬쩍 눈빛을 보내는 티파니.

터너 옆의 비숍이 노골적으로 눈썹을 찡그렸지만, 정작 터너 본인은 피식 웃으며 그 말에 동의했다.

“맞는 말이군요.”

“주주들이 실망하겠는데요.”

“맞습니다. 저희 팀은 반 WWF를 앞세워서 만들어졌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죠.”

“방법은 있으십니까?”

“글쎄요. 하나 생각하고 있는 게 현재 있기는 하지만…….”

“캡틴 로건의 악역 전환이죠?”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터너.

비숍 역시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국의 영웅.

프로레슬링의 상징.

그런 남자의 악역 전환으로, ACW는 비로소 WWF를 앞서기 시작한다.

나는 웃으며 물었다.

“만약 거기에 저희 PWA가 에이폰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어떨 것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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