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
캡틴 로건.
그는 그야말로 명실상부, 프로레슬링이라는 업계의 상징과도 같았다.
아니, 그뿐이랴.
그것을 넘어선 미국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미국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의 남자가 바로 그였다.
심지어는 2014년에 미국 스미소니언에서 선정한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리스트에 오를 정도였다.
복서, 무하마드 아라이.
농구선수 마이키 조던.
야구선수 베이브 로스.
그런 급의 위치라고 평가 받았다.
미국인들이 베트남 전쟁의 패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남자.
그들에게 명예와 신념, 희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쳐준 슈퍼 히어로.
바로 그게 캡틴 로건이다.
……물론 그러는 사이 백스테이지에서는 정치 싸움으로 차마 보기 힘든 미국의 역겨운 면모가 나왔지만.
어쨌거나.
TV 앞에 모인 소년소녀들은 로건의 말에 계몽되었다.
‘비타민과 우유를 챙겨먹고 매일 기도해라! 진실되며 정의롭게 행동해라!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다! 브라더!’
하지만 그건 과거의 일이었다.
시대는 변했다.
사람들은 캡틴 로건이 악에 맞서서 싸우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그 누구라 하더라도 ‘절대적인 선’은 언제나 역반응을 받는다.
그게 현재였다.
‘그런 상황에서 또 캡틴 로건이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를 밀고 있으니.’
어떻게든 그때의 추억팔이로 이어가고 있지만 결국 스러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캡틴 로건 자체도 그렇게 사생활이 훌륭한 인물은 아니라서.
스테로이드 파동 이후로 온갖 사생활 폭로가 이어지며, 이혼을 하고 자기 딸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와 사귀는 등 온갖 막장 짓을 했기 때문에.
일회성 복귀라면 추억을 느끼고 열광하겠지만 그게 드라마로서 계속 이어진다면 이질감을 느끼는 거다.
그렇기에 이루어진 턴 힐이었다.
2008년 7월 7일.
악역 태그 팀으로 쇼를 쑥대밭으로 만들던 케빈 대시, 스카티 홀과 로건이 연합해서 만들어진 스테이블.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위대했으며, ACW를 흥행시키고 동시에 파멸로 이끌었던 최강 최흉의 스테이블.
바로 nWo(neo World order)였다.
신세계의 질서.
그와 동시에 캡틴 로건은 할리우드 로건으로 링네임을 개명하고 처음으로 악역 행보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게, 음.
대박이었다.
‘미친 인간이지.’
선역으로서도 아이콘.
악역으로서도 아이콘.
어떻게 그런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 싶어질 정도로 위대한 업적이었다.
물론 그 이후로 백스테이지에서 정치질을 하다가 ACW를 말아먹지만.
그런 면에서 또 아이콘답다.
로건은 말년에 WWF와 척을 질 때면 항상 다른 단체에 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정치질을 해서 신기하게 그 단체를 말아먹고는 했다.
‘TMA라던가.’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은 로건을 WWF의 진정한 충신으로 불렀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경쟁 단체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개선장군처럼 WWF에 돌아오니까.
‘그것도 그 남자만 할 수 있는 거지.’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자니, 옆에서 줄곧 끙끙 앓고 있던 티파니가 나를 슬쩍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뭐……?”
“잠깐 다녀오죠.”
그녀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갑자기 이렇게 돼서, 나는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그 뒤를 따라갔다.
“아, 아니. 어딜 가?”
터너와 방금 막 헤어지고 호텔 앞으로 부른 리무진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티파니가 바닥에 질질 끌리는 드레스 끝자락을 들고서는 나를 돌아보았다.
“아직 배고프죠?”
“……뭐?”
“핫도그 먹자.”
천진한 얼굴.
방금 전까지 캡틴 로건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던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그 뒤를 따라갔다.
우리는 뉴욕의 거리에 파묻혔다.
네온사인이 흐르는 거리.
그 가운데를 걷고 있는 우리는 확실히 어딘가 좀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거기다 다들 날 알아봐서.
“오, 신!”
“신이다!”
다들 신기해하며 내게 인사해왔다.
사실, 일반적으로 길거리에서 셀럽을 알아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TV로 볼 때와 실제로 볼 때의 차이는 의외로 꽤 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지금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사람들이 알아봤는데.
하나는 미국 내에서도 드문, 키가 190에 이르는 떡대 동양인이라는 거고.
다른 하나는 이놈의 턱시도였다.
“신, 사인해줄 수 있어요?”
“지금은 안 돼요.”
왜 네가 대답을 하냐. 티파니.
팔을 붙잡혀 질질 끌려가는 동안 나는 이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도착한 근처의 공원.
우리는 근처 노점상에서 핫도그를 빅 사이즈로 하나씩 사서 적당히 앉았다.
왠지 모르게 품 안에 넣어둔 전화기가 계속 울리는 것 같지만 무시했다.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그런지 좀 이 풍경을 즐겨두고 싶은 기분이었다.
조용한 공원 안.
벌레가 우는 소리와 저 멀리 보이는, 우리가 방금 지나쳐온 네온사인 거리.
“멋진데.”
“맛있네요.”
우리는 각자 다른 감상을 내놓았다.
거기에 피식 웃었다.
일 이야기가 끝나고 또 일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갑자기 그녀가 손을 이끌어서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나쁘진 않은 일탈이었다.
“그렇게 배고팠어?”
“아, 저는 뭐 배고프진 않았는데 어렸을 때 여기 핫도그를 많이 먹어서.”
“뉴욕식이 깔끔해서 좋지.”
나는 특히 다진 양파와 피클을 잔뜩 넣고 소스도 잔뜩 뿌리는 걸 즐겼다.
우연인지 티파니도 같은 취향이었다.
이따 들어가서 쇠질하고 자야겠군.
“그런데, 무슨 생각을 했어요?”
“아까 호텔 앞에서?”
“오랜만에 같이 나왔는데 난 보지도 않고 있으니까 머릿속에 핫도그 생각이 난 거 아니에요.”
“그으, 건 제가 잘못했습니다.”
“반성하세요.”
티파니가 내 코를 쿡 찔렀다.
“그래서, 오늘 일은 다 끝났는데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 말이 맞았다.
디테일은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했고.
협업에 관한 것만 일단 말해뒀다.
그쪽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터너는 분명히 우리의 제안에 큰 흥미를 보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뒤를 준비해야지.”
“그 뒤?”
“어차피 지금 그쪽 각본을 꽉 잡고 있는 건 로건이야. 그러니까 내가 맡아서 처리를 해둬야겠지 싶었거든.”
“아~ 그러고 보니 제가 내일 우연히도 브리 로건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악당이구먼.”
“당신만 하겠어요?”
티파니가 사악하게 웃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라스베이거스에서 위클리 쇼 촬영을 마친 나는 곧바로 비행기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
로건의 저택이 그곳에 있었다.
그래서.
왜 한창 ACW 나이트로 팀에 합류해 전국 투어를 돌고 있어야 할 그가 어째서 베벌리힐스 저택에 있는가.
이유는 간단했다.
로건이 쇼에서 어깨 부상을 입어 한동안 결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심점이 사라진 ACW는 그동안 로건을 밀어주느라 일궈놓은 게 없어서 급한 불만 끄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다 로건 때문이었다.
선수 하나가 어떻게 그렇게 큰 권력을 갖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로건은 아이콘이지 일반 선수가 아니다.
그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거대한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거다.
‘그래서 돈도 왕창 번 거겠고.’
또 다시 눈앞에 거대한 저택.
로건은 프로레슬링 업계를 떠나 있던 와중에도 꾸준히 셀럽 활동을 해왔다.
거기에서 번 돈으로 사실 탱자탱자 놀면서 지낼 법도 한데 현역 복귀라.
‘돈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초인종을 꾹 누른 나는 안에서 나온 사용인의 안내를 받아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온갖 화려한 미술품들.
그리고 비싼 스포츠카들.
이런 걸 모조리 손에 넣고도 로건은 결국 그 고생길로 돌아온 것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다시 한 번 팬들의 환호를 받고 싶어서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바트를 죽이고 싶어서거나.
“아, 신.”
저택 뒤뜰의 수영장.
민망한 삼각 수영복 차림으로 선 베드에 누워 있던 로건이 나를 반겼다.
“로건, 잘 지내셨습니까?”
“어때 보이나?”
“어깨 부상처럼은 안 보이는군요.”
“아냐. 아직 좀 뻐근해. 젊었을 때 맞은 약 때문에 염증이 생겼다는데.”
“지금은요?”
“크하하하! 노코멘트하겠네.”
로건이 호쾌하게 웃었다.
하지만 역시.
50대 초반의 몸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근육량을 보자면 역시.
그래도 현재 풀타임으로 스케줄을 소화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거겠지.
그게 싫었던 그렉 하트는 나와의 대결을 끝으로 깔끔하게 은퇴했던 거고.
하지만 역시.
무리하게 불렸다는 느낌이었다.
“약은 의사의 권고대로.”
“하하하, 괜찮아. 그보다. 경쟁 단체의 넘버원인 나에게 이런 식으로 상냥한 말을 해줘도 되는 겐가?”
“당신은 단체를 떠나 프로레슬링 업계의 가장 위대한 존재니까요?”
그렇게 너스레를 떨자니 로건이 다시 한 번 호쾌하게 웃어보였다.
프로레슬링 복귀부터 시작해서 브리 로건 문제 같은 골칫거리에 이르기까지.
나는 꾸준히 로건을 도와주면서 지금껏 계속 선배에 대한 예우를 갖춰왔다.
그러므로 그는 백스테이지 내에서 사이가 좋은 선수가 거의 없는 것과는 별개로 나에게는 호의를 표시해왔다.
“일단 안으로 들지. 시가 피우나? 위스키도 괜찮은 게 있는데 말이야.”
“아, 감사합니다.”
나는 분위기를 해칠까 그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일단 받아들였다.
응접실 안에 나란히 마주 보고 앉은 우리는 일단 서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어떻게 지내나?”
“재미있게 지내고 있죠.”
“부럽구먼. 나는 단체에 영 쓸 만한 녀석이 없어서 말이야. 자네가 같이 있어줬으면 아주 즐거웠을 텐데!”
“태그 팀이라도 맺고요? 그거 꽤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 같은데요.”
“하하하! 오겠나?”
“PWA에 제 주식도 있어서.”
“파이러츠! 로망이군.”
“프로레슬링이 결국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로망의 재현인 거죠.”
“아는구먼. 알아. 제기랄. 이렇게 말할수록 정말 탐이 나는 인재로군.”
로건이 나를 잠시 바라보았다.
트리플H 때와 비슷한 상황인가.
하지만 새끼 사자는 절대로 다른 무리의 밑에 들어가지 않는 법이었다.
나는 적당히 말을 돌렸다.
“그쪽은 요즘 어때요?”
“나? 뭐 잘 지내고 있네만.”
“TV쇼에서도 말인가요.”
“……뭐, 그건.”
로건은 시가에 불을 붙였다.
“사실, 잘 안 돼.”
“그렇게 보입니다.”
“더 이상 나 같은 늙은이가 탑 가이가 될 수 없는 걸지도 모르지.”
그는 쓸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사실, 거기에서 좀 놀랐다.
로건쯤 되는 인물이라면 남들이 뭐라고 하던 그냥 자기 입맛대로 밀고 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역시 여론은 의식하는 듯했다. 그러니까 책임을 회피하는 거고.
부상을 핑계로 쇼에 나가지 않으면서 자신의 역반응을 피하는 거다.
‘일이 쉬워지겠는데.’
그렇게 생각한 나는 뜸을 들이지 않고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사실, 이번에 ACW와 저희 PWA가 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협업?”
“예, 옛날 NWA처럼요.”
“호오…….”
역시 곧바로 이해하는 로건.
그 시대를 박살낸 주역이었던 만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거겠지.
두 단체가 협력해서 서로 경쟁하는 형식의 드라마를 만드는 것 말이다.
“로건, 다시금 미국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슈퍼스타가 되고 싶으십니까?”
“뭐?”
“만약 당신에게 그럴 의지가 있다면 저에게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나는 피우고 있던 시가를 로건을 향해서 툭 내밀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상상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당신이 시가를 피우고 링 위로 입장하는 걸 말이죠.”
“뭐? 그건 또 무슨…….”
할리우드 로건 시절의 전매특허.
로건은 자신의 nWo 크루들과 함께 타락의 상징으로 시가를 내세웠다.
담배와는 다른, 시가.
사실 이게 현실의 로건이었다.
그는 시가와 비싼 술을 즐겼고 여자도 거침없이 탐하는 호색한이었다.
그러므로 nWo는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으므로.
“턴 힐을 하죠.”
“누구? 내가?”
“예, 그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자, 잠깐. 지금 우리 각본진하고 이야기는 하고 내게 말하는 건가?”
“데릭 비숍의 아이디어던데요.”
“나와는 아무 말도 않고…….”
한숨을 내쉬는 로건.
아마 고민이 많을 것이다.
그는 숀 시나처럼 수십 년의 커리어의 대부분을 선역으로 보내왔다.
그렇기에 물론 고민이 되겠지.
나는 한 가지를 덧붙였다.
“만약 지금 턴 힐을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제가 만드는 역사에 휩쓸리겠죠.”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거기에 피식 웃는 로건.
“그런 상대를 돕는 건가?”
“예, 그렇게 해서 이 시장이 더 커지는 게 훨씬 나은 길이니까요.”
“…….”
고민이 많아 보이는 얼굴.
하지만 그는 얼마 가지 않아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