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그 후로도 위기에 처한 캡틴 로건을 구하기 위해 선수들이 달려 나왔다.
그 모두가 ACW에서 적어도 하이 카더 이상의 선수들이었으나, 나는 그에 맞춰 선수들을 모두 준비해두었다.
관객석 앞의 바리게이트를 타고 앞으로 내달린 쟈니 에이스가 공중을 날았다.
그대로 달려 나오던 크로우를 덮쳤고, 관객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놓았다.
이어 나오는 대시와 홀 역시 AK와 펑크의 난입에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렇게 주요 선수들을 모두 쓰러뜨린 팀원들이 천천히 링으로 올라왔다.
쟈니는 여유롭게 웃었고, 고는 야성을 드러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ACW의 대표자들을 손쉽게 처리한 우리를 보고 관객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나는 든든했다.
이 친구들은 PWA에서의 훈련생 생활을 거치며 약점을 크게 보강했다.
앞으로 이들이 하는 경기 하나하나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관객들의 뇌리 속 깊숙한 곳에 박히겠지.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서 의자에 앉아 폼을 잡고 있는 나는 현재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분명 가장 핫한 선수였다.
관객들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들은 지금 이 상황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깊이 몰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침묵하는 것이었다.
환호나 야유.
어느 쪽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대치 구도가 이어졌다.
의자에 앉은 내 뒤로 PWA에서 선발된 네 명의 강자들이 섰다.
그 반대편의 캡틴 로건은 홀로 외로이 우리들에게 맞서고 있는 상황.
내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놀러온 것 같아?”
침묵하는 로건.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협업하자고. 협업.”
[Booooooooooooo-!]
“벨트를 내놓던가. 아니면 매번 우리가 쇼를 망치는 걸 구경하던가.”
참으로 재미있을 것이다.
“아, 어차피 구린 쇼였는데. 이렇게 해서 시청률이라도 챙기는 게 낫나?”
“……목적이 뭐냐?”
“목적? 그야 간단하지.”
로건의 어시스트를 받은 나는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팬들에게 우리들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음에 안 들거든.”
2만의 팬들이 숨을 죽인 채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로건을 조롱해나갔다.
“당신 같은 노친네가 이 바닥에서 계속 정점에 있다는 게 말이야. 솔직히 팬들도 지루해할걸? 언제 적 로건이야. 매번 비타민! 기도! 부라더! 그렇게 꿈같은 소리는 이제 집어치우라고!”
[Booooooooo……!!]
[Yeeeeeeeeeeaaahhh!!]
거센 야유와 환호가 뒤따랐다.
내 문제적 발언이 링 위에서 팬들의 반응이 완전히 양분되도록 만들었다.
여기에서 확실해졌다.
캡틴 로건의 시대는 이제 끝이다.
팬들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다.
“당신도 알잖아? 거기다, 모순적이지 않아? 불륜과 폭력, 온갖 사건들을 일으킨 당신이 링 위에서는 ‘캡틴’으로서 팬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니.”
[Uooooooooooooooooohhhhh!!]
충격에 빠진 관객석.
지금 나는 다시 금기를 어겼다.
캡틴 로건의 사생활을 폭로하면서 이 드라마가 말도 안 되는 걸 지적했다.
“열 좀 받나? 캡틴!”
“명예도, 신의도 없는……!”
“당신이 그걸 말하니 위선이 되는군. 차라리 WWF의 숀 시나처럼 위시메이커 재단 활동이라도 열심히 하던가.”
하지만 로건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야 당연하지. 스트리퍼들 하고 놀아야 하니까. 그게 무대의 막이 내려간 후의 당신이잖아. 캡틴 로건.”
로건이 마이크를 내던졌다.
선역으로서의 이미지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었다.
그렇기에 터진 분노.
다가오는 그를 피해 뒤로 물러선 나와는 반대로, 다른 PWA 선수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들이 로건을 붙잡고 제지했다.
돌진해오는 황소의 목에 줄이 걸렸고 나는 그 앞에서 씨익 웃어 보였다.
“크윽……!!”
로건이 이를 빠득 깨물었지만.
“왜? 열 받아? 한판 해볼까?”
나는 계속해서 그를 조롱했다.
그리고 도전을 선언했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로건. 증명해줄게. 당신은 퇴물이고 이 업계의 정상에 서있어야 하는 건 나라는 걸!”
대답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이크는 진작 던져졌고, 로건은 지금 내 친구들에게 붙잡혀 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나는 마이크를 툭툭 쳐서 강도를 확인한 뒤, 그대로 로건의 안면을 있는 힘껏 후려갈겼다.
뻐억-!
한순간 올려붙여지는 로건의 턱.
몸을 붙잡고 있던 네 사람이 손을 놓자 로건은 천천히 바닥에 쓰러졌다.
링 위에서 절대로 쓰러지지 않기 때문에 붙은 그 별명이 바로 ‘불멸자’.
그 추락.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나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PWA에서 사랑을 담아, 병신아.”
충격에 빠진 전 세계를 뒤로 하고 그렇게 메인이벤트가 마무리되었다.
* * *
두말할 것도 없이, ACW는 완전히 WWF를 저 밑바닥으로 처박아버렸다.
ACW의 시청률은 800만을 뚫었고, 반대로 WWF는 400만 선이 무너졌다.
말인즉슨, WWF를 보던 팬들이 이쪽으로 계속 넘어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마 여기가 한계일 터였다.
시나를 아이콘으로 내세운 WWF는 ACW보다 파급력도, 대중성도 낮아졌으나, 확실히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린아이들과 그 가족 팬들.
앞으로 ACW가 지향해나갈 노선에 그다지 큰 흥미를 갖지 못하는 이들.
그 중심에는 시나가 존재했고.
그리고 반대편에는 내가 있었다.
PWA, 그리고 ACW와 함께.
하지만 그런 협업은 어디까지나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만 했다.
‘앞으로 2년 정도는 이쪽 노친네들하고 계속해서 일해야 할 테니까.’
크로우 정도를 제외하면 다들 이 업계에서의 경력이 길고, 한때는 단체의 메인 이벤터도 맡아본 이들이었다.
대시와 홀은 존 마이클스와 절친으로 그 시대에 크게 활약을 했었고.
랭 새비지는 로건과 함께 두말할 것도 없는 황금시대의 슈퍼스타였다.
그렇기에, 자존심이 강한 그들을 잘 구슬리는 것 또한 할 일 중 하나였다.
월요일 밤, 나이트로의 촬영을 마치고 PWA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로건과 함께 비즈니스석에 앉은 나는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덧붙이며 이번 각본의 주안점을 설명해주었다.
“결국 스타게이트 이후, 당신은 다시금 ACW의 중심에 우뚝 설 겁니다.”
“악역으로서 말인가?”
“예, 20년 동안 영웅으로서 살아왔던 당신의 타락만큼 멋진 드라마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잘하실 겁니다. 로건 당신의 인생을 그대로 투영한 캐릭터니까요.”
나는 싱긋 웃었다.
말하자면 그건, 로건의 사생활이 막장이라는 뜻이었지만, 다행히 본인은 제대로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기대되는군.”
고개를 끄덕이는 로건.
계획은 이러했다.
스타게이트까지 2주가 남았고.
PWA와 ACW는 각 위클리 쇼를 오가며 우리들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립을 빌드 업 해나갈 예정이었다.
사모아 고는 랭 새비지와.
쟈니 에이스는 크로우와.
AK 스타일스는 스카티 홀과.
C.M. 펑크는 캐빈 대시와.
각자가 대립하고 모두 승리한다.
그리고 그 패배에 충격을 받은 ACW 측에서는 선과 악이 대립하다 로건의 턴 힐로 새로운 시대에 돌입한다.
전생에는 이보다 좀 더 느린, 7월에 턴 힐을 할 예정이었지만.
이번 생에는 그보다 빨랐고, 턴 힐의 이유도 훨씬 극적이었다.
‘나는 로건과 정반대의 입장이니까.’
젊고.
얻지 못했고.
그럼에도 유능하다.
반대로 ‘현재’의 로건은.
늙었고.
다 얻었고.
그럼에도 무능했다.
턴 힐 후에는 다시금 그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ACW 전체를 슈퍼 캐리 하는 입장에 설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고, 그렇기에 이 대립은 팬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었다.
물론 현실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신.”
“예, 로건.”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면 밤에 같이 카지노라도 가지 않겠나?”
“카지노요?”
“그래, 아는 친구가 거기에 있어서 한 번쯤은 들러야 하거든. 재미있는 밤을 보낼 수 있을 걸세.”
“……아, 뭐.”
나는 쓰게 웃었다.
사실 예정이 있었다.
“도착해서 훈련 끝나고 안 뻗는다면 같이 가시는 걸로 하죠.”
“훈련?”
“기초 말입니다. 베이다가 이번에 절 좀 빡세게 굴리기 시작해서.”
“하, 자네 같은 선수도 기본기 훈련을 하다니 이거 참 놀랄 일이로군.”
“운에는 맡기고 싶지 않거든요.”
“운?”
“예, 아무리 잘해도 사소한 실수 한 번에 죽거나 불구가 될 수 있는 게 바로 이쪽 세계 아니겠습니까?”
“그건…….”
물론 로건은 이해하지 못할 터다.
그는 주먹을 한 번 휘두르는 걸로.
슬램을 한 번 날리는 걸로.
압도적인 환호를 받는 선수였다.
지금까지 그랬고, 턴 힐 한 뒤로도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나처럼 매번 지옥의 입구를 향해 기꺼이 몸을 내던지는 남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겠지.
하지만 이런 남자도 있는 법이다.
그게 바로 나고.
* * *
왠지 모르게 호기심이 생겼다.
비행기 안에서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신을 본 이후였다. 로건은 호텔에 가는 대신 PWA 팀에 합류했다.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도 신은 팀장들과의 회의에 참석해 내일 있을 각본의 디테일을 보기 시작했다.
거기에 참가한 로건은 새삼 PWA에서 신이 가진 존재감을 알게 되었다.
각본을 체크한 그가 한마디 꺼낸 것만으로 모두가 집중을 할 정도였다.
“나쁘진 않은데. 여기에서 로건의 등장을 앞으로 당기는 게 어떨까요?”
“쇼의 오프닝으로?”
“예, 오프닝 자체를 차에서 내리는 로건을 보여주면서 시작하면 분명히 큰 파급력을 끌 수 있을 텐데요.”
“그러면 그렇게 하지.”
고개를 끄덕이는 각본팀장.
내일 쇼에서, 로건은 PWA에 나타나 신과 경기를 부킹할 예정이었다.
원래는 그게 쇼의 중반부에 나와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는데, 신은 그걸 앞으로 당기자고 말한 것이었다.
그로서 내일 쇼의 디테일은 완전히 바뀌었고.
……놀랍게도 더 좋았다.
신이 관객석에서 ACW의 쇼를 지켜봤던 것처럼 로건 또한 그렇게 가자.
지난주 쇼의 오마주였다.
“물론 정의의 편인 로건이 직접 그러지는 않고, 제가 유도를 해야겠죠.”
링으로 정정당당하게 들어온 로건이 불러내지만, 신이 오늘 경기가 있다면서 마지막에 하자고 미루는 것이다.
거기까지 설명한 신은 구석진 곳에 앉아 얌전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로건을 돌아보았다.
“괜찮죠? 로건.”
“그래, 멋질 것 같군.”
“헤이건이 ACW 쪽에 이야기를 좀 해줘요. 각본 디테일을 좀 변경할 예정이라고. 설명 요구하면 해드리고.”
“맡겨둬라.”
“그럼 오늘은…….”
“잠깐, 신.”
그렉 하트가 손을 들었다.
모두 시선을 집중한 가운데, 그렉은 아무렇지도 않게 로건을 깜짝 놀라게 하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제는 멋졌다.”
“감사합니다.”
“……?”
로건은 황당해 그렉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잠깐 시선이 마주치자니 그렉이 노골적으로 눈썹을 찡그렸다.
프로 의식이 강한 그렉은 로건과 사이가 무척 좋지 못한 편에 속했다.
로건은 그렉의 성격을 오만하다고 여겼고, 그렉은 로건을 헌신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로건은 놀라고 있었다.
‘그’ 그렉 하트가 남을 칭찬하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켜보니 그럴 법도 했다.
회의가 끝난 뒤.
모두가 퇴근을 했지만 신은 끝까지 남아 베이다와 기초 훈련을 시작했다.
링 바닥에 일단 매트리스를 깔고.
쿠웅-!
쾅!
그 위에서 낙법을 쳐나갔다.
“머리가 흔들리잖아!”
베이다가 버럭 소리를 쳤고 그럴 때마다 신은 정신을 다시 가다듬었다.
그제야 로건은 신이 어째서 피로 속에 훈련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끄응……!”
프로레슬러는 몸을 쓰는 연기자다.
그 연기는 격투기의 형식을 띄고 있고, 오랜 시간 경기가 이어졌다.
그렇기에 확실히 지친 상태에서 훈련을 하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내일 쇼가 있는데 저렇게까지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순 없었지만.
‘기가 막힌 놈이야.’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뒤쪽의 문이 열리며 먼저 퇴근했던 그렉 하트가 다시 훈련장으로 돌아왔다.
그 손에는 타코 빌의 로고가 찍혀 있는 비닐 봉투가 들려 있는 상태였다.
“그쪽도 있었습니까?”
“난 됐네.”
“줄 것도 없었습니다.”
퉁명스럽게 말하는 그렉.
자신을 지나쳐 신에게 다가가는 그를 로건은 저도 모르게 다시 불렀다.
“그렉.”
“뭡니까?”
“훈련 중이니 좀 이따 주게.”
“……당신치고는 현명한 판단이군요.”
그렇게 말한 그렉이 가만히 서서 두 사람의 훈련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로건은 그와 단 한순간도 가까이 있고 싶지 않은 관계였지만.
그래도 궁금증이 더 컸다.
“저 친구, 매일 저러나?”
“매일은 아닙니다. 쉴 때는 확실하게 쉬면서 체력 조절을 계속하고 있죠.”
“하지만 왜 오늘은?”
“오늘이니까요.”
“아, 지쳤을 때.”
“그걸 또 알아보시는군요.”
“난 현역이니까.”
“내내 쉬면서 중요한 순간에만 경기를 뛰는 현역 말이군요.”
“……여전하군.”
“그쪽도 말입니다.”
“평소라면 받아쳤겠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싸우러 온 게 아니야. 그렉. 그러니 신을 봐서 한 번 참도록 하지.”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렉.
그가 기억하고 있는 로건은 링 위에서는 슈퍼 히어로, 링 아래에서는 폭군이라는 이중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렇기에 사이가 안 좋았던 건데.
그런 그가 신을 인정하는 모습은, 솔직히 말해서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는 어이가 없어 신을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