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그렇게 찾아온 수요일 밤.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눈 돌아갈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
“예!!”
“여기 카메라 각 좀 확인해봐!!”
아니, 그건 알아서 좀 하지!
순간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곧바로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카메라맨이 이동하게 되는 각도를 확인해주었다.
“여기서 왼쪽으로 쭉 들어와서 차를 한 번 쑥 훑은 다음에 로건이 차에서 내리는 걸 보여주는 거야. 어때?”
“아주 멋지군요. 아, 하나만 더, 오늘 일몰 시간이 언제였죠?”
“18시 32분. 쇼가 시작했을 때는 완전히 날이 저물어 있을 거야.”
“조명만 한 번 체크해주세요.”
“오케이.”
고개를 끄덕인 팀장이 조명팀 쪽과의 협업을 위해 밖으로 달려나갔다.
각 점검이 면밀하게 이루어지는 사이 나는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2시.
일견 시간이 많아 보이지만, 3시에서 4시쯤 되면 마니아 팬들이 도착해 주변을 점거하기 때문에 이 일은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누군가가 도착한다는 각본을 스포일러하게 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주 완벽한 쇼를 선보인다.
그건 비싼 표 값을 지불하고 이 쇼에 찾아와주는 팬들에 대한 예우였다.
TV 방송은 TV 방송.
반대로 쇼는 쇼.
쇼의 현장감은 TV 방송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자자, 다들 빨리 끝냅시다!!”
내 옆에 있던 폴 헤이건이 외쳤다.
시설을 총괄하기도 하는 그는 뒤뚱거리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진행을 확인하며 계속 직원들을 독려했다.
그런 그가 날 돌아보았다.
“신, 여기는 대충 마무리될 것 같으니 가서 좀 쉬어두는 게 어떻겠나.”
그 말에 주차장 내부를 힐끔 돌아본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일은 내 소관이 아니다.
그렇기에 눈치껏 배려를 해주면 그쪽을 믿고 빠지는 ‘액션’도 필요했다.
더군다나 피곤하기도 했고.
“그럼 그렇게 하죠. 잘 부탁드립니다. 헤이건.”
“그래, 맡겨둬.”
헤이건은 슈퍼 베테랑인 만큼 무난하게 잘 해주리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주차장을 빠져나와 다시 경기장 안으로 들어온 나는 쉴 곳을 찾아 경기장 안을 맴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딱히 몸을 눕힐 만한 장소는 없는 게 사실이었다.
‘나중에 휴게실 하나 만들어둬야지.’
그나마 락커룸이 최선인가.
자고 일어나면 목이 굳어지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계속 걷던 나는 이어 누군가에게 뒷덜미가 붙잡혔다.
“이쪽으로 와요.”
“어?”
그대로 끌려갔다.
방문을 열고 나를 휙 낚아채듯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 건, 티파니였다.
“갈 곳 잃은 비둘기예요? 뭐 그렇게 복도를 몇 바퀴나 계속 돌고 있어.”
“아, 여기가 있었군.”
나는 쓰게 웃었다.
단장실.
여기라면 쉴 수 있겠지.
“쇼 시작할 때까지 좀 쉬어둬요. 오늘 경기도 하나 있지 않았던가?”
“펑크와 경기를 해야지.”
“그 친구 실력 좀 늘었던데요. 몸이 뻣뻣하던 게 왠지 좀 줄어든 느낌이야”
“매일 요가를 시키고 있으니까.”
“잘 따라오네요. 처음에 이야기할 때만 해도 절대로 다루기 쉬운 친구일 거 같다고는 느끼지 못했는데.”
“그러게.”
나는 쓰게 웃었다.
단장실 소파에 몸을 누이자 얼마 지나지 않아 티파니가 이쪽으로 왔다.
“무릎 빌려줄게요.”
“잘 쓰고 닦아서 돌려드리겠습니다.”
딱히 거절하진 않았다.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티파니의 무릎을 베고 눕자 금세 노곤해졌다.
‘좀 무리를 하긴 했던 모양이군.’
그래도 뭐.
각오를 해두기는 했다.
모두 그럴 터였다.
우리 모두 야망을 가지고 이 단체에 모여서 함께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슬쩍 눈을 뜨자 스마트폰을 두들기고 있는 티파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해……?”
“아, 메일 보내는 연습.”
그리고 문자가 도착했다.
주머니 속에서 이어지는 진동에 핸드폰을 확인한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할 당신을 위해 예쁜 장미꽃 한 송이 놓고 가요.
@>------------]
“이게 뭐야?”
“장미꽃. 여기가 꽃잎이고 이게 잎, 길쭉한 게 줄기. 바쿠가 가르쳐줬어요.”
이때 감성이란 게 참 아련하군.
“여기를 봐도 있고.”
“……?”
고개를 들자 자신의 얼굴이 꽃이라는 듯 턱 밑에 양손을 가져다대고 있는 티파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 래.”
“그렇게 노골적으로 창피해하지 말아줄래요. 나도 좀 죽고 싶어지니까.”
티파니가 내 뺨을 슬쩍 꼬집었다.
좀 자려고 했는데.
왠지 이렇게 쉬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말하자면 영양제를 맞고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바보야. 스마트폰은 그런 거 없어도 이모티콘 다 준비되어 있잖아.”
“어, 그래요?”
“봐봐. 이거.”
나는 꿀벌 이모티콘을 보냈다.
“이건…….”
“장미꽃에 취한 꿀벌이지.”
“푸하하! 뭐야, 이거! 귀여워!”
그렇게 도란도란.
티파니의 무릎을 베고 누운 나는 쇼가 시작할 때까지 피로를 풀었다.
* * *
관객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제일 윗자리의 할리 레이시가 지시를 내렸다.
“오프닝 준비해.”
“방송 10초 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고릴라 포지션에 모여 있던 팀원들이 제각기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Go!!”
기다리던 영상 팀장이 그 말에 맞춰 주차장의 카메라를 메인으로 돌렸다.
칠흑같이 어두운 주차장.
그 안으로 들어오는 리무진.
관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이어 차가 멈춰서며 카메라가 앞에서부터 리무진을 훑고 지나갔다.
리허설을 했던 대로 좋은 조명 아래에서 보기에 편안한 화면이 나왔다.
“멋지군.”
할리가 칭찬을 했고, 이어 차량 뒤쪽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내렸다.
문을 비추며 올라가는 카메라.
그리고 나타난 것은.
[Uooooooooooooooooohhhh!!]
캡틴 로건.
상상도 못한 인물의 등장이었다.
ACW의 상징인 그가 PWA에 나타나다니. 내가 나이트로에 출연한 것 이상으로 파급력이 강한 사건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주차장을 빠져나와 경기장 복도를 걷기 시작하는 로건.
인터뷰어가 그를 붙잡았다.
[로건, 여기는 대체…….]
[내 한마디 하지. 브라더.]
[Waaaaaaaaaaaaaaaaggghhh!!]
역시 아이콘다운 환호였다.
나는 금방 사람들을 선동해 그걸 야유로 바꿔버릴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신은 명예도 신의도, 그 어떤 것도 없는 놈이야. 우리 쇼를 멋대로 습격하고 팬과 선수들에게 상처를 줬지.]
하지만 그와 반대로.
[캡틴 로건은 비겁하게 습격이나 하지 않는다! 나는 링 위에 올라가 당당히 신에게 말할 것이다. 나와 싸우자고! 그는 이제 수많은 로거마니아들을 앞에 두고 싸우게 될 것이다!!]
[Waaaaaaaaaaaaaaaaggggghhh!!]
거대한 환호가 뒤따랐다.
역시나 대단한 카리스마였다.
시대착오적이라고 불리는 캐릭터.
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역사가 엄청났기에 팬들은 그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럼에도 역시, 이제 식상하기는 했다.
‘캡틴’ 로건이 아무리 존경을 받더라도 쇼의 주인공인 이상 팬들에게 계속 즐거움을 줘야 할 의무가 있는데.
지금의 로건은 그런 역할을 맡기에는 너무 식상하고 오래된 캐릭터였다.
그것도 이제 곧 끝나지만.
[What You Gonna Do, Brother!]
마지막으로 자신의 시그니처 대사를 말한 로건이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전환해.”
할리가 오더를 내렸고 곧바로 메인 카메라가 경기장으로 전환되었다.
실시간으로 촬영과 방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정확도가 중요했다.
그리고 다들 프로페셔널이기에 누구보다도 재빨리 그것을 해냈다.
[놀라운 일이군요!]
[캡틴 로건이 PWA에 등장했습니다! 그것도 정정당당하게 들어오는군요!]
[어, 솔직히 말해 걱정입니다. 해적선에 올라탄 해군 제독이로군요.]
“3번으로.”
화면이 다시 전환되었다.
복도를 지나가고 있는 로건을 앞에서 클로즈 샷으로 찍으며 그 주변에 서있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들 이곳에 정면으로 들어온 로건을 아니꼽게 바라보면서 서있었다.
멋진 광경이었다.
팬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Yeeeeeeeeeeeeeaaaaaahhhh!!]
PWA는 그동안 단체 내부에서 계속 경쟁과 승리의 드라마를 보여주었다.
이 업계에서 최고가 되기를 꿈꾸고 있는 재능 넘치는 신인 선수들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세련된 스타일의 쇼.
그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바였고 시청자들은 거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렇기에 충성심 높은 팬들은 손바닥을 뒤집듯 너무나도 손쉽게 로건에 대한 태도를 바꿔버리고 말았다.
“7번 카메라.”
입장로 위로 로건이 나왔다.
[Booooooooooooooo-!!]
갑자기 야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해설자들이 거기에 대해 설명했다.
[이해할 수 없군요! 갑자기 팬들이 로건에게 야유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모두 깨달은 거겠죠. 이곳은 PWA입니다. 로건은 분명 이 링에서는 절대로 환영받을 수 없는 인물이에요.]
그 흔한 입장 음악 하나 없이.
초라하게 링에 오르는 캡틴 로건.
[Booooooooooooooooooo-!!]
야유 속에 침묵하며 서있는 그를 본 나는 옆에 서있던 그렉을 돌아보았다.
“그렉.”
“뭐냐, 신.”
“이걸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2006년의 그날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언제 말이냐?”
“ECW 원데이 스탠드 말입니다.”
시나의 인생에서 가장 괴로웠던 날.
그 말에 그렉이 쓰게 웃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턴 힐 하지 않고 계속 선역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
“그게 시나니까요.”
나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그게 시나의 인생이다.
그렇기에 이해를 받는다.
하지만 로건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타락하는 흐름이…… 아무래도 이야기로서 흥미롭겠죠.”
프로레슬링의 기믹은 데뷔가 어쨌든 간에 점차적으로 현실의 선수에게 맞춰서 변주되어가기 마련이었다.
오튼 역시도 가장 큰 인기를 얻었을 때는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을 다 때려잡고 다니던 ‘바이퍼’ 시절이었듯이.
그 선수를 상징하는 시절은 묘하게도 그 선수의 실제 성격과 닮아있다.
지금 역시도 그랬다.
[Booooooooooooooooooooo-!!]
야유 속에서 진짜 당황해 마이크를 쥐었지만 말 한마디 못하는 로건.
“슬슬 가죠.”
나는 그를 돕기 위해 나섰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
내 테마가 경기장에 울려 퍼지자 놀란 팬들이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Waaaaaaaaaaaaaaaaggggghhh!!]
역시나 홈 그라운드다운 느낌이었다.
나는 자신감을 갖고 링으로 나갔다.
입장로 위.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환호를 보내는 팬들의 앞에서 양팔을 펼쳐 보인 나는 그대로 ‘The Alpha’다운 당당한 모습으로 움직였다.
이곳에서는 내가 최고다.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계속해서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나.
내가 바로 알파.
이 구역의 우두머리다.
그렇게 생각하며 링에 오른 나는 로건이 쥐고 있던 마이크를 낚아챘다.
[Uoooooooooooohhhhh!!]
“여기는 내 링이야. 만약 할 말이 있다면 내 허락을 맡고 하라고. 로건.”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아니면 여기 내 친구들의 허락을 맡아도 되겠군! 다들 지금 로건이 하는 정의로운 말이 듣고 싶나?!”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No!]
“안타깝군. 싫다는데.”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그쪽에서는 당신이 선역이고 슈퍼스타에 아이콘 넘버원 베스트 바웃 머신이겠지만. 여기는 아니야. 이 링의 우두머리는 나고, 내 허락을 맡아.”
물론, 절대로 로건이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일단 지금은 때가 아니지.”
[Booooo……!!]
“아, 기다려봐. 이유가 있으니까.”
나는 링 아래로 내려갔다.
의아해 바라보는 팬들과 로건.
“거기 보안요원 아저씨, 일어서 봐. 어, 어어. 그 의자 이쪽으로 줘.”
모두 계획된 연출이었다.
보안 요원이 앉아 있던 철제 의자를 손에 쥔 나는 관객석으로 넘어갔다.
“이쯤이면 되려나?”
의자를 펼치고 털썩 앉아 링을 보기 편안한 자리인지 한 번 점검을 했다.
[Uooooohhhh……!]
확실히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내 동작에 커다란 호응을 보내는 팬들.
“여기가 당신 자리야. 로건. 내가 그랬듯이 우리 쇼가 어떤지 보라고.”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로건에게 쏟아지는 맹렬한 챈트.
그런 상황에서 날 가만히 바라보던 로건이 천천히 링 아래로 내려왔다.
마이크를 내던진 나는 로건이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이로서 혹시 싶어 우리 방송을 틀었던 ACW 팬들도 로건이 계속 얼굴을 비추는 이상 채널을 돌리지 않겠지.
그들은 말하자면 현재 로건에게 몰입한 상태에서 이 쇼를 볼 테니까.
그렇기에 지금부터 이어질 수많은 경기들은 모두 ‘특별히’ 준비를 해뒀다.
ACW 팬들이 우리 쇼에 빠져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