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02화 (302/634)

302.

문득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시니어 스쿨을 다녔을 때 나는 솔직히 말해 좋은 학생까지는 아니었다.

프로레슬러를 꿈꾸면서 학교생활이나 공부는 계속 뒷전이었고, 매번 사고를 쳐서 선생들로부터 욕을 먹었다.

그때쯤이면 동네 친구들도 나를 이상하게 봐서 대부분 혼자 다녔지.

그런 내가 인디 레슬링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어떤 기분을 느꼈겠는가.

째지는 기분이었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얼간이로 시작했지만, 점차 그들 무리에 섞여들려고 많이 노력했었다.

안타깝게도 그들 역시도 나를 ‘동양인’ 그 이상도, 이하로도 안 봤지만.

그럼에도 행복한 시간이었고.

나는 PWA가 왠지 모르게 그 시절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고는 했다.

특히나, ‘왁자지껄’한 부분에서.

“할 수 있지?! 나탈리!!”

“예, 옙!!”

커튼 앞에 선 리키타와 나탈리가 기합을 불어넣고는 이어 링으로 나갔다.

[So Fu-k Your Rules Man-!!]

먼저 나가는 리키타.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그 뒤를 따르는 나탈리.

두 사람의 전적은 현재 3승 1패.

오늘 나탈리는 다시 한 번 리키타를 이기고는 그녀의 인정을 받게 된다.

PWA에서 나탈리의 캐릭터는 보수적인 프로레슬링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자신의 성격을 크게 반영했는데.

그렇기에 자유분방한 슈퍼스타 리키타와는 상극이었고, 그로 인해 팬들로부터 야유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리키타가 그런 그녀를 인정하면서 멋진 관계가 만들어진다.

‘리키타가 조커라니까.’

그녀가 이 PWA에 와주었기에 위민스 디비전이 잘 굴러가고 있는 거다.

이런 선수를 그렇게 굴욕적으로 은퇴시킨 WWF는 좀 반성을 해야 한다.

왜냐면 지금 리키타는 상품성 하나만큼은 나와 막상막하일 정도로 자기 매력을 뽐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리키타의 헤드 시저스 휩!]

[나탈리가 나가떨어집니다!]

[2연승을 자신한 나탈리! 과연 오늘 경기에서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하지만 리키타도 가만히 앉아서 당해주지는 않을 겁니다! 아?! 리키타가 자신의 기술에 자폭을 합니다!!]

[나탈리에게 반격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곧바로 샤프 슈터를……!]

[너무 마음이 급했어요! 그걸 리키타가 잡아서 바로 롤 업으로!!]

[1, 2……!!]

[Waaaaaaaaaaaaaggggghhhh!!]

겨우 빠져나오는 나탈리.

관객들의 반응도 좋고, 이만하면 확실히 멋진 경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았어!!”

“가라, 리키타!”

직원들 역시도 즐겁게 경기를 지켜보면서 계속 쇼를 진행하고 있었다.

[Likita! Likita! Likita! Likita! Likita! Likita! Likita! Likita! Likita! Likita!]

관객들의 반응도 아주 좋았고.

나는 그런 와중에 생각했다.

‘정말로 옛날 생각이 나는군.’

그때도 지금처럼 다들 최선을 다해 쇼를 준비하고 그 결과를 보여줬다.

하지만 하나 다른 게 있었다.

그 시절과는 달리 나는 현재 이 PWA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였다.

두 사람이 경기를 짜는 데 도움을 준 그렉 하트가 내게 의견을 물을 정도로.

“어떤 것 같나?”

“아주 좋은데요.”

거기에 솔직하게 대답한 나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경기를 지켜보았다.

선수들이 저마다의 장점을 뽐내고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지만.

개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반응을 보여주고 있는 건 역시 사모아 고였다.

브롤러 파이팅에서 그치지 않고 각종 슬램류 기술까지도 섞어서 사용하는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거기다 하나 더.

그를 평범한 빅 가이가 아니라 사모아 고로 만드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

[거기서 구경하고 있지 말고 나와! 어디 한 번 나랑도 붙어보자고!!]

갑자기 바리게이트 앞으로 다가가 로건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하는 고.

[Uooooooooooooohhhhhh!!]

그 호전성에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미리 짜여있던 각본은 아니었지만, 심판이 나와서 말리자 분을 식히며 돌아오는 그 그림이 무척 멋졌다.

나는 안으로 들어온 고를 환영했다.

“멋졌어. 고.”

“그렇다면 다행이군.”

가볍게 하이파이브.

“메인이벤트를 부탁한다.”

“그래.”

상대가 상대인 만큼 걱정은 없었다.

그다음에 이어질 메인이벤트 타임에서 내가 상대할 것은 바로 ‘경이로운 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AK 스타일스였다.

* * *

여기서 좀 고전적인 구분을 해보자.

사모아 고가 ‘선악역’을 통틀어 내 다음 가는 레벨의 선수라고 한다면.

AK 스타일스는 선역으로만 한정을 지었을 때 내 다음 가는 선수였다.

그렇기에 경기는 시작하기 전부터 어마어마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Let’s Go SIN!]

[AK Styles!]

[Let’s Go SIN!]

[AK Styles!]

[Let’s Go SIN!]

[AK Styles!]

팬들의 챈트가 AK와 나,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응원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코너에 기대 몸을 풀었다.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

AK는 훌륭한 선수였다.

하이 플라잉에 더해 그라운드 테크닉까지도 겸비하고 있어서 팬들을 분명 즐겁게 할 수 있는 레슬러였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키가 180 정도로 좀 작은데다가 밋밋한 외모로 그다지 주목받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PWA에서 수련을 거듭하며 이제는 완전히 바뀐 모습이 되었다.

벌크를 키우고 수염을 기르면서 최대한 카리스마 있게 모습을 다듬었다.

그로서 지금 AK는 내 앞에 서있어도 전혀 꿇리지 않은 모습을 갖췄다.

푸른색 롱 팬츠에 글러브. 그리고 오른쪽 팔꿈치에만 엘보 패드를.

저 엘보 패드의 위치가 절묘한데.

땡땡땡!

때마침 링 벨이 울렸다.

호기롭게 돌진해온 AK가 그대로 내 안면에 포암(Forearm)을 날렸다.

쩌억-!

둔탁한 통증.

팔꿈치와 손목 사이의 단단한 뼈를 사용해 공격하는 기술로, AK가 해머링이나 찹보다 애용하는 무브였다.

물론 나도 거기에 지지 않고 해머링을 날리며 AK와 맞붙기 시작했다.

[Waaaaaaaaaaaaaaaggggghhh!!]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곧바로 체인 레슬링으로 이었다.

AK의 뒤로 돌아들어가 허리를 붙잡고 그대로 뽑아 올린 나는 그대로 녀석을 반대편으로 메치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큭?!”

손가락을 꺾어 내 팔을 풀어낸 AK가 착지한 뒤 그대로 발을 걸었다.

측방 낙법으로 쓰러진 내 몸을 타고 오른 AK가 그대로 매미처럼 달라붙었고, 이어 나를 힘차게 뽑아 올렸다.

“크아아아아앗-!!”

저먼 수플렉스.

시야가 수직으로 빙글 돌았다.

쿠웅-!

그리고 ‘홀드’까지.

상대방의 허리를 잡고 수직으로 들어 올린 뒤 뒤로 넘겨, 상대방의 목과 등에 큰 충격을 주는 저먼 수플렉스.

그렇게 찍은 상태에서 브릿지 자세로 버텨 핀 폴까지 이어버리는 ‘홀드’.

유연성과 기술력, 힘.

그리고 받아주는 상대방까지.

수많은 것들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난이도 높은 무브.

AK는 그걸 해냈다.

그리고 난 아팠다.

[1……!]

일단 커버를 벗어나고.

그렇게 한 방 먹은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분위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역시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그것을 보여주며 우리는 다시 한 번 천천히 긴장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AK에게 달려들어 그 가슴팍에 날카로운 찹을 날렸다.

쫘악-!

[Woooooooooooo-!!]

크게 휘청거리는 AK의 몸.

이어 해머링.

해머링 앤 찹 콤보.

그런 식으로 주도권을 가져온 나는 이어 AK와 링을 크게 쓰며 본격적으로 경기를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Waaaaaaaaaaaaaagggggghhhh!!]

팬들의 반응도 좋았다.

조금 템포를 빠르게 가져갔지만 AK는 그런 나를 무척이나 잘 따라왔다.

‘러셀과 붙어도 밀리지 않겠군.’

러셀이 좀 더 그라운드 레슬링에 능한 스타일이라면, AK는 타격기와 하이 플라잉을 적절히 섞은 느낌이었다.

큰 차이는 없었지만.

콰앙-!

계속해서 몰아붙이던 AK를 넘겨버린 나는 그대로 탑 로프로 올라갔다.

[Uoooooooooooooohhhhh!!]

자리에서 일어서는 관객들.

그 너머에, 가만히 자리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로건이 보였다.

나는 곧바로 날아올랐다.

피닉스 스플래시.

공중에서 마구 회전한 내 몸이 그대로 누워 있는 AK의 몸 위로 내리꽂혔다.

콰앙-!

상쾌한 통증.

핀 폴까지 이어졌다.

[1!!]

[2!!]

AK가 팔을 들며 빠져나왔다.

[Waaaaaaaaaaaggggghhhh!!]

환호 속에 경기는 계속 이어졌다.

주도권을 잡은 채 계속해서 공격하던 나는 이어 코너로 AK를 내던졌다.

콰앙!

거기에 부딪친 AK가 등을 부여잡은 채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때를 노려 달려들자니.

AK가 휙 옆으로 피했다.

“……?!”

모조리 연기였다.

코너에 정면으로 충돌한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러자니 내 앞에서 돌아서있던 AK가 힘차게 뛰어오르며 발을 날렸다.

화려한 오버 헤드 킥.

프로레슬링 기술로서는 펠레 킥.

쩌억-!

측두부에 꽂히는 AK의 킥.

순간 정신이 아찔해져 무너진 나는 손가락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니, 사실 연기였지만.

머리는 인체의 급소.

그곳을 공격당하는 걸 보면 뭐가 어쨌든 순간적으로 걱정이 들기 마련.

거기에 손을 덜덜 떨어주면 이 경기가 가진 치열함이 배가 되는 것이다.

[Waaaaaaaaaaaaaaggggghhhh!!]

하지만 AK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나를 어깨에 걸쳐 파이어맨즈 캐리 자세로 들어 올린 녀석이 그대로 목을 붙잡은 채 반대편으로 넘겨버렸다.

그렇게 떨어진 내 뒤통수가 그대로 주저앉은 AK의 무릎으로 떨어졌다.

콰앙-!

우시고로시.

해석하자면 소(牛) 죽이기.

상대방의 후두부에 큰 충격을 주는 AK의 시그니처 무브 중 하나였다.

“크학?!”

뒤통수를 붙잡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역시, 떨어질 때 손으로 보호를 하기는 해도 어마어마한 충격이긴 했다.

하지만 이게 AK 스타일스였다.

그의 테크닉은 결국, 거의 대부분이 머리에 큰 충격을 주는 기술이 주력이었다.

왜냐면 피니시 무브가 상대방의 머리를 노린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쓰러진 사이, 로프 바깥으로 나간 AK 스타일스가 심호흡을 했다.

그 모습이 생생히 느껴졌다.

로프를 양손으로 꽉 붙잡은 녀석이 몸을 튕기며 위로 힘차게 뛰어올랐다.

그 상태에서 뛰어올라 플라잉 포암으로 안면을 후려치는 피니시 무브.

그 이름하야 페노미널 포암!

[Uoooooooooooooohhhhh!!]

그게 시전되기 직전!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간 나는 로프에 걸쳐진 AK의 발을 잡고 당겼다.

“어?”

순간 당황하는 AK.

옆으로 몸이 휙 돌았고 녀석은 그대로 밑으로 떨어져 로프 사이에 힘차게 ‘그곳’이 끼고 말았다.

순간 맴도는 정적.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비명을 지르는 AK.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

“흐어어어어어어어어억!!”

경기의 마지막 순간.

현재 둘째까지 낳고, 넷째까지 낳게 될 경이로운 남성성의 소유자 AK.

그 미래가 사라졌다.

“미, 미안. 미안합니다.”

이게 경기 중이라는 사실도 잊고 나는 로프에 다리가 끼인 채 비명을 지르고 있는 AK의 어깨를 두들겼다.

순간적으로 크게 당황해 로프에 팔을 기대자 위아래로 크게 요동쳤다.

“내가, 참.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하지만 빼주진 않았다.

관객들이 웃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왁자지껄하게 웃음이 터졌고 나는 로프에 고●가 끼어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는 AK를 놔두고 그대로 마이크를 가져와 손에 쥐었다.

“뭐, 이렇게 됐으니 오늘 경기는 무효로 하고 다음 주로 미루도록 하지?”

사실 이 모두가 각본이었다.

캡틴 로건을 통해 PWA를 본 시청자들을 그가 나오지 않는 다음 주까지도 이 방송을 보게 만드는 원동력.

멋진 경기의 결말을 허무하게 끝내고 다음 주를 기다리게 만드는 거다.

물론, 여러 번 사용하면 다들 피로감을 호소하기에 다음 경기에서는 반드시 멋진 결말을 보여주어야겠지만.

어쨌든 오늘 중요한 건 AK와의 결말이 아니라 로건과의 대립이니까.

나는 AK가 계속 껴있는 로프에 기대어 의자에 있던 로건을 불러냈다.

“올라와, 로건. 이야기해보자고.”

AK가 ‘어어어어억…….’ 하고 고통에 겨운 소리를 냈다.

그사이 링으로 올라온 로건이 내게서 마이크를 건네받고 입을 열었다.

“멋진 경기였다.”

“우리 쪽에서는 이 정도면 뭐 많이 아쉬운 레벨의 경기였는데.”

[Waaaaaaaaaaaaaggggghhhhh!!]

“이제 좀 붙어볼 마음이 생기셨나?”

“그래, 확실히 말하지. 넌 강해. 하지만 그 방식은 확실히 잘못됐다.”

[Boooooooooooooooooooooo-!!]

“너에게 내가 진짜 남자의 싸움이란 게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도록 하마!”

“재미있는 헛소리를 하는데.”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이 불행한 사고를 내가 이용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대체 어디가 남자답지 못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나는 로프를 잡고 흔들었다.

AK가 어어어억! 소리를 냈다.

“거기다 이걸 이용한 것도 아니고 경기도 무효로 하고 다음 주로 미뤘는데 내가 대체 왜 남자답지 못한 거지?”

[Uooooooooooooooooohhhh!!]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니까 그렇게 되는 거잖아. 로건.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

나는 반박하지 못하는 로건을 앞에 두고 씨익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내가 당신보다 더 위대한 선수가 되어버릴까 두려운 거잖아. 지금?”

그 시선이 순간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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