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3월 4주차의 나이트로.
스타게이트에서 붙을 PWA 선수들과 ACW 선수들의 대진이 모두 정해졌다.
랭 새비지 vs 사모아 고.
크로우 vs 쟈니 에이스.
태그 팀 챔피언인 캐빈 대시 & 스카티 홀 vs C.M. 펑크 & AK 스타일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캡틴 로건 vs 신까지.
분명히 이 다섯 경기는 현재로서 우리가 낼 수 있는 최대의 대진이었다.
물론, 약점이 없지는 않았다.
PWA 선수들은 네임벨류가 부족했고, 대립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각각을 완벽한 형태로 빌드 업 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걸 커버하기 위해서 ‘습격’이라는 포장지를 씌워둔 것이었다.
즉, WWF 레슬 임페리움에 맞서 개최되는 이번 스타게이트의 콘셉트는 PWA와 ACW 간의 한판 승부였다.
그리고 그게 먹혔다.
남아있던 스타게이트의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되었고 페이퍼뷰의 판매량도 2,000만 가구를 돌파해버렸다.
반대로 WWF는 완전히 죽을 쒔다.
티켓 판매는 어떻게든 매진시켰지만, 페이퍼뷰의 판매량에서는 스타게이트와 2배 가까이 차이가 벌어졌다.
어째서 일이 그렇게 되었는가.
모두가 나를 믿었지만 일이 이렇게 잘 풀리자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있잖습니까.”
“……?”
“???”
스타게이트 직전의 마지막 회의.
내가 자신만만하게 한 이야기에 자리에 모여 있던 간부들이 저마다 머리 위에 의문의 갈고리를 띄워보였다.
거기에 설명을 좀 덧붙였다.
여기가 그냥 PWA 친구들만 있었다면 끝까지 거만한 돼지 포지션으로 나갔겠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않았다.
특히나 로건이 한숨을 내쉬고 옆에 있던 대시가 날 슬그머니 노려봐서.
역시 아직 다들 날 인정하지 못하는 시점에서 너무 농담이 섣불렀군.
“정확히 말하자면, 어. 제가 데려온 PWA의 멤버들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그게 무슨 말인가?”
“이게 평소에 낮던 뉴스 시청률이 높아지는 원리하고 비슷한데요.”
“선문답을 하자는 게 아닐세.”
로건의 말에 나는 가볍게 웃었다.
좀 이런 연출로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끌려고 했던 나는 쓰게 웃었다.
본론부터 듣자 이거지.
“두 개죠. ‘원하는 거’니까.”
“원한다고?”
“지금 가장 핫한 이슈가 뭡니까?”
여러 단체의 출범이었다.
그로 인해 만들어진 2강 1약의 삼파전. 그 가운데에서 이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될 것인가.
“물론 현실은 보통 재미가 없기 때문에 극적으로 일이 벌어지지는 않죠. 그렇기에 다들 갈망했던 겁니다.”
이 세 단체 간의 싸움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언제쯤 되면 제대로 붙고 서로 싸우게 될 것인가.
“그리고 이번 PWA 대 ACW의 각본은 절묘하게 그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다고 할 수 있잖습니까?”
“그건 그렇죠.”
고개를 끄덕이는 ACW의 부사장, 데릭 비숍.
“저희의 협업으로 균형추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판도가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그걸 해낸 게 저죠.”
“……예에.”
“제 말이 틀립니까? 의문을 남기고 WWF와의 계약이 종료된 가장 핫한 FA가 소규모 신생 단체에 들어가서 ACW를 습격하고 영웅과 맞서 싸운다.”
이게 바로 ‘드라마’였다.
다들 부정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회의실 가득한 사람들을 돌아본 나는 문득 시나가 떠오르는 걸 느꼈다.
‘암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개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암은 사라질 수 없다.
나는 알고 있다.
부모님을 암으로 잃어보았으니까.
그렇기에 말할 수 있었다.
암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싸우는 거지.
나도 그렇고.
“그리고 물론, ACW 역시도 거기에 맞서서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 있죠.”
나는 로건을 돌아보았다.
그의 상징적인 턴 힐로 인해 앞으로 시작될 ACW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터였다.
꿈과 희망의 황금시대가 끝나고.
우리에게 맞서기 위해.
현실이 찾아오겠지.
“멋진 날이 시작될 겁니다.”
나는 확신하며 이야기했다.
* * *
2008년 4월 6일, 일요일.
오후 다섯 시.
전 세계를 따져도 몇 안 되는 20만 관객이 수용 가능한 스포츠 스타디움.
그중 두 개에서 동시에 프로레슬링 업계 최대의 페이퍼뷰가 개최되었다.
동부의 레슬 임페리움.
남부의 스타게이트.
그와 동시에 미국 사람의 약 60퍼센트는 한 집에 모여서 미리 구매해둔 페이퍼뷰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팀원들과 락커룸에 모여 앉아 모니터링TV로 스타게이트를 지켜보았다.
15명가량 되는 선수들이 나가 한 명의 선수만이 살아남는 배틀 로얄.
그걸 시작으로 ACW 측의 경기가 이어졌고 팬들은 강렬한 성원을 보냈다.
[Waaaaaaaaaaaaaaaaagggghhh!!]
레슬 임페리움과 같은 급다웠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상하게 반응이 좀 양분되는 경향이 있었다.
[Boooooooooooooooo……!!]
ACW의 스타들이 날뛸 때마다 계속해서 야유를 보내는 팬들이 존재했다.
그걸 본 나는 씨익 웃었다.
“PWA 팬들이로군.”
“얼굴만 봐도 알겠군.”
때마침 카메라가 그들을 비춰주어서 고가 황당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오늘이 할로윈도 아닌데.”
다들 해적 분장을 했다.
가로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정도가 양반으로, 다들 한쪽 눈에 안대를 쓰고 종이로 된 커틀러스를 들지를 않나 해적 모자를 쓴 사람도 존재했다.
숫자도 적지 않았다.
화면이 관객석을 비출 때마다 해적 분장을 한 사람들이 보일 정도였다.
“대장, 어떻게 생각해?”
펑크가 물었다.
“자꾸 이야기를 현실로 끌어오려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 콘셉트는 만화 같은 ‘해적’이잖아.”
“그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거겠지.”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현실에서 모티베이션을 끌어왔을 뿐, 그걸 과장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게 특징이었다.
이 업계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야망이 해적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구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렇기에 나쁘진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모르는 이들은 유치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사모아 고의 차례가 찾아왔다.
“고.”
“후우, 그래.”
“쫄지 말고.”
“……속이 좀 안 좋은데.”
“그럼 랭 새비지 같은 영감한테 져줄 생각이야? 넌 그런 놈이었어?”
“아니, 그렇지 않아.”
고가 부정했다.
자기 실력에 대해 프라이드가 높은 그는 분명 자기 네임벨류가 밀리는 상황에서도 지고 싶지 않아 했다.
그렇기에 분명, 이 자리에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릴 것이 분명했다.
머리에 검정색 타월을 뒤집어쓴 그가 숨을 몰아쉬며 바깥으로 나갔다.
우리는 고를 믿고 기다렸다.
랭 새비지보다 앞서 입장하는 그의 테마가 이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파괴적인 금관 악기의 울음과 함께.
사모안 부족 출신의 가장 위험한 남자가 워-크라이를 시작했다.
[Woo-Ah! Woo-Ah! Woo-Ah! Woo-Ah! Woo-Ah! Woo-Ah! Woo-Ah!]
그리고 이어지는 사자의 울음소리.
그와 함께 금관 악기들이 다시금 날카롭고 잔혹한 음을 내기 시작했다.
미래, WWF에서 그가 사용했던 테마를 재현해낸 그 노래의 이름은.
Destroyer.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Booooooooooooooooooo-!!]
팬들의 반응은 양분되었다.
그 음악에 맞춰 야만인처럼 고의 이름을 따라 부르는 PWA의 팬들.
그리고 그런 습격자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ACW의 팬들까지.
그 감정을 이끌어낸 장본인은 검은 타월을 머리에 뒤집어 쓴 채 천천히 링으로 입장했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거만하고 잔혹한.
사모안 디스트로이 머신.
그것을 본 나는 생각했다.
‘슈퍼 멋있군.’
모두가 그를 두려워했다.
* * *
사모아 고가 경기에서 승리했다.
순간 풀이 죽었던 ACW의 팬들은 이어진 경기에도 계속 응원을 보냈다.
키기이이이이이잉-!
[Now Listen!!]
그 콘셉트는 사모아 고와 정반대.
잘생기고 몸도 잘 빠진 쟈니 에이스는 마치 오래된 할리우드 영화의 남자 주인공처럼 멋지게 링으로 나왔다.
털 코트에 흰색 십자가가 양쪽 알에 새겨진 검은 선글라스.
그리고 긴 갈색 머리.
키기이이잉-!
기타 연주에 맞춰 그가 팔을 들어 올리자 좌우에서 폭죽이 튀어 올랐다.
그 모션에 슬로우 연출이 가미되면서 쟈니의 캐릭터를 설명해주었다.
파쿠르의 달인.
닌자.
그 역시도 승리를 거뒀다.
아슬아슬한 차이였지만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든 피니시 무브인 스타십 페인을 우겨넣은 게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펑크와 AK가 팀으로 나아갔다.
두 사람 다 겁먹지 않고 자신들에게 야유를 보내는 관객들에게 맞섰다.
경이로운 자, AK 스타일스는 팔을 좌우로 펼쳐 보이며 자신을 과시했고.
무릎을 꿇은 채 손목을 체크함으로써 시간을 확인한 펑크가 이어 힘차게 팔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It’s-!! Clobberin’ Time-!!]
때려눕힐 시간이다.
자신의 캐치프레이즈와 같은 대사를 말하며 링으로 나아가는 펑크. 그리고 그 옆에서 함께 나아가는 AK.
좋아, 바로 저거였다.
내가 주문한대로…… 아니, 각자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우리는 이름 없는 자들이다.
거기에서 출발했다.
능력은 있지만 인정받지 못했고.
단점 하나로 버림을 받고 어떻게든 자신을 증명하려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뚱뚱한 고.
개성 없는 쟈니.
키가 작은 AK.
빼빼 마른 펑크.
마지막으로 동양인인 나까지.
하지만 다들 PWA를 통해 그걸 극복했고 링 위에서 자신을 증명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그걸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 내 차례가 다가왔다.
우리의 반대에 서있는 남자.
모든 면에서 완벽한 남자.
캡틴 로건을 때려눕히기 위해서.
그를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 * *
지미 웨인.
올해 47살.
옥수수를 키우는 농사꾼인 그는 그때 당시 스타게이트에서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 중 하나였다.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서 전문 업체에 의뢰를 맡기고 심지어 며칠 전부터 경기장 근처 호텔에서 묵느라 만 달러 가까이 사용했던 그는, 얼마 후 가족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쇼의 메인이벤트가 시작되려는 시점이었어.”
그때 당시 관객석은 ACW 팬과 PWA 팬으로 양분되어 알 수 없는 미묘한 기 싸움이 이루어지고 있던 시점이었다.
쇼 내내 그래서 이거 이러다가 싸움이라도 나지 않나 생각하던 찰나, 그에게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아니 글쎄, 맥주를 너무 마셔서 그런지 갑자기 오줌이 마렵지 뭐야.”
그래서 광고 시간을 확인하고 잠깐 화장실에 다녀올까 일어서던 찰나였다.
갑자기 관객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PWA의 팬들이었다.
[SIN-! SIN-! SIN-! SIN-! SIN-!]
“내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니까?”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PWA 놈들의 숫자는 엄청나게 적었어. 그런데도 완전히 경기장이 떠나갈 것처럼 다들 미쳐서 챈트를 해대는데.”
거기에 맞서 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야유를 보냈다.
[Booooooooooooooooooooooo-!!]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어, 이거 이상한데.’라고 말이야.”
우리는 로건을 응원해야 하지 않나?
아니, 앞선 경기까지 더해서.
왜 이 경기에서 다들 ‘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TV에서 해주는 나이트로 방송을 켜고 정겨운 로건의 얼굴을 봤을 때.
그때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
좋기는 했다.
하지만 너무 정겨운 나머지, 쇼가 끝날 때까지는 보지 못하고 그대로 소파 위에서 잠이 드는 게 보통이었다.
그리고 그게 바뀐 건.
신이 사고를 친 다음부터였다.
ACW의 나이트로를 볼 때마다 언제 신이 나타날지 전전긍긍해하며 보았다.
모두가 그러했다.
남부에 사는 ACW 팬들 모두가.
신이라는 선수를 알고, WWF 시절에는 응원마저 보냈던 이들 전부가 그를 보기 위해 나이트로를 보고 있었다.
그 주변에 선 남자들도 멋졌고.
[PWA에서 사랑을 담아, 병신아.]
로건 같은 남자에게 그런 식으로 맞서는 그를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때쯤 깨달았다.
지미 웨인은 문득 떠올렸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이거 설마 나.”
신을 좋아하는 거 아닌가?
그 순간이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
심장에 때려 박히는 한 남자의 노래.
그 의지의 표명.
농부 일로 고되, 매일 매일 술이 아니면 버텨나갈 수 없었던 지미 웨인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던 한 동양인.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이어서 경기장이 어두워졌다.
팬들이 웅성거렸다.
ACW의 팬들은 두려워했고.
PWA의 팬들은 환호를 보냈다.
그 가운데, 완연한 어둠 속에서.
키기이이이이이이이이잉-!!
그 테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날카로운 메탈의 연주.
순간 불길이 화르륵 타올랐다.
입장로 전체를 태워버릴 듯 솟아오르는 불길 사이로 그가 나타났다.
한 남자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The Breaker.
The Alpha.
Man On Fire.
수많은 이름을 가진, 프로레슬링 업계를 통틀어 가장 화제가 되는 남자.
키기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날카로운 기타 연주와 함께 그가 천천히 입장로를 향해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을 감추듯 분사되는 스모그.
연기를 거치고 나온 그가 팔을 하늘을 향해 번쩍 들어 올렸고, 그 순간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때에 대해, 지미 웨인은 이런 식으로 의견을 내놓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지.”
한 남자.
한 인간.
특히나 동양인.
“그게 그런 걸 할 수 있을 줄이야.”
미국인은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미 웨인은 바지에 오줌을 지리는 것도 모르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SIN.
미국인이 만들어낸 죄악이 천천히 링을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