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05화 (305/634)

305.

[Waaaaaaaaaaaaaaaaaggghhhh!!]

야유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모두가 내게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런 가운데, 입장로를 지나 링으로 올라간 나는 코너 로프를 밟고 올라서서 힘차게 주먹을 위로 치켜들었다.

20만 명의 관객들이 별처럼 보였다.

이 위에서 로건과 나는 업계에서 가장 충격적인 경기를 펼칠 예정이었다.

폭동이 일어나거나 팬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 싶었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이건 그런 싸움이기에.

영웅을 현실로 끌어내리는 싸움.

그 희생양이 등장하려고 했다.

내 음악이 끝난 후, 관객석으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잠시 이어졌다.

그사이 재킷과 선글라스를 벗고 나는 링 위에 서서 잠시 몸을 풀었다.

이번에 새로이 제작한 검은색 롱 팬츠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오기 전에 어디 몸을 덜 풀어둔 곳이 없나 봤다.

컨디션은 200%.

멋진 경기를 할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빰! 빰! 빰빰! 빰빠바밤~!!

유쾌한 전조와 함께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만들어진 ‘Rogamania’라는 로고가 초대형 스크린에 떠올랐다.

나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사실, 이것저것 다 떼놓고 보자면 내게 있어 정말 환상적인 순간이었다.

캡틴 로건을 상대로 승리하다니.

물론 나이를 먹은 현재의 로건은 예전처럼 절대적인 아이콘은 아니었다.

무적 선역 기믹.

한 단체, 브랜드의 주인공.

마이키 조던이나 톰 그래디 같은 하이퍼 스타.

하지만 현재의 로건은 그런 무적 선역으로서의 설득력이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지금 내가 그를 이긴다는 각본의 개연성이 성립할 수가 있었다.

ACW에서 변화를 꾀했기에.

로건이 자신이 ‘무적 선역’으로서 있을 수 없으면 차라리 모든 걸 부수고 악이 되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무적 선역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로건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부터 무적 선역 자체가 현대에는 성립하는 것이 정말로 어려웠기에 턴 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만약에 로건이 앞에 ‘무적’을 빼거나 타이틀을 독식하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그대로 활동해도 됐다.

하지만 그는 절대자를 원했다.

무적 선역은 수많은 시험을 받기 마련이었다. 프로레슬러로서의 실력뿐만 아니라 선수의 실제 인성까지도.

그나마 80년대에는 그게 먹혔다.

그때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순수했고, 프로레슬링을 진짜라고 믿는 사람 역시도 많았던 시대였다.

게다가 미디어의 발달이 더뎠던 시기였기에 사석에서 흠 잡힐 만한 행동을 하더라도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길거리만 잘못 다녀도 사진이 찍혀 인터넷에서 먹잇감이 되는 시대였다.

그렇기에 로건은 더 이상 무적의 선역으로 군림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더 이상 빛나던 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환호가 나오는 이유는.

[Waaaaaaaaaaaaaaggggghhhhh!!]

그가 이 프로레슬링 업계에 이뤄놓은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었다.

붉은색과 노란색이 조화된 롱 팬츠.

두건까지 두른 로건은 입장로 위에 서서 팬들의 환호에 응답해주었다.

그리고 이어 그가 팔을 뻗으며 자신의 시그니처 무브를 취하자마자 철골 구조물로부터 불꽃이 터져 올랐다.

퍼퍼퍼퍼퍼퍼펑-!!

그와 함께 미국의 상징이 나타났다.

초대형 스크린 위에 또르르 말려 있던 초대형 성조기가 펼쳐지면서 로건의 등 뒤로 그 위용을 드러냈다.

[Waaaaaaaaaaaaaaaaggggghhh!!]

팬들의 환호가 더욱 거세졌고.

나는 쓰게 웃으며 생각했다.

‘진짜 애국자라니까.’

이어 성조기를 돌아보며 멋지게 경례까지 붙인 로건이 링으로 걸어왔다.

시선이 교차했다.

[Boooooooooooooooooooo-!!]

그제야 야유가 좀 나왔다.

하지만 대체 누구를 향한 것일까.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나인가?

아니면 그 자리에 선 로건인가?

답은 불분명한 채, 링에 올라온 로건.

그리고 이내 경기가 시작되었다.

땡땡땡!!

링 벨이 울린 순간.

나는 로건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갔다.

동시에 왼발을 축으로 삼아 있는 힘껏 목표를 향해 뛰어오른 뒤, 그대로 힘차게 오른쪽 무릎을 들어올렸다.

목표로 삼은 건 하나.

계획대로 기술을 받아주기 위해서 미묘한 각도로 허리를 숙이고 있는, 키 190에 달하는 캡틴 로건의 안면.

거기에 나의 피니시 무브.

스팅거가 꽂혔다.

쩌억-!

날카로운 소음.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막 집중을 했던 관객들이 충격에 빠졌다.

피니시 무브란 무엇인가.

경기를 끝내기 위해 쓰는 필살기.

그걸 처음부터 써버린 것이었다.

로건의 거체가 모래성처럼 쓰러졌다.

나는 곧바로 핀 폴로 이어갔다.

[1!!]

경기장 곳곳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2!!]

그리고 로건은 3이 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내 커버로부터 벗어났다.

[Yeeeeeeeeeeeeaaaaahhhh!!]

경기가 허무하게 끝나지 않아 기뻐한 관객들이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나 역시도 예상한 바였다는 연기를 펼치며 정신을 차리려 애를 쓰고 있는 로건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너로 물러나 다시금 스팅거를 사용하기 위해서 무릎을 꿇고 준비했다.

[Uoooooooooooooooohhhhh!!]

탄식하는 관객들.

그리고 뒤이어 로건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곧바로 그를 향해 달려갔다.

찰나의 순간.

로건이 링 밖으로 굴러나갔다.

재빠른 행동에 끼긱, 멈춰선 나는 관객들이 놀랐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예상한 대로였다.

캡틴 로건은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매 경기에서 상대방의 기술에 당하더라도 절대 뒤로 빠지지 않았다.

그런 그가 물러난 것이었다.

그리고 링 아래에서도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로건이 언더 독.

그리고 내가 탑 독.

전형을 비튼 경기.

그것은 지금 로건이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연출이었다.

그는 더 이상 캡틴이 아니다.

나는 탑 로프 위로 올라갔다.

아슬아슬하게 턴 버클을 밟고 서있는 상태에서 잠시 있자니 이어 로건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Waaaaaaaaaaaaaagggggghhhh!!]

그런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시야가 한순간 크게 요동쳤다.

그리고 로건은 오랫동안 이 일을 해온 베테랑답게 나를 안전하게 받아내며 동시에 바닥에 쓰러졌다.

‘역시 이런 면은 안 녹슬었군.’

그럼에도 통증이 없진 않았지만.

이 정도는 당연했고.

견딜 만했다.

링 바깥에서 쓰러진 로건과 나.

팬들이 초장부터 큰 기술이 연속으로 터지자 경기를 집중하며 보았다.

내가 이런 식으로 이목을 끌면서 경기를 시작하자고 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래야만 로건이 쉬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벌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로건은 현재 50대.

나이가 많아 체력이 부족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경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배려를 해줘야 할 정도로.

그렇기에 선택한 방식이었다.

물론, 로건을 휠체어에 태워서 끌고 간다고 한들 난 쉴 마음은 없었지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순간 얼어붙은 관객석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고작 이거냐?!”

그건 로건에게 던지는 말이었다.

그리고.

[Boooooooooooooooooo-!!]

[Yeeeeeeeeeeeeeaaaahhh!!]

환호와 야유가 반반.

마구 뒤엉킨 채 날아든 20만 팬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세차게 후려쳤다.

피식 웃은 나는 곧바로 로건의 머리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링으로 다시 올려 보냈다.

경기는 그렇게 피니시 무브를 먼저 사용한 내가 주도권을 계속 가졌다.

쫘악-!

퍼억-!

평소 하던 대로 해머링과 찹으로 로건을 몰아붙인 나는 일부러 그의 체력을 생각해 링 이곳저곳을 다니진 않았다.

그렇기에 좀 더 링 사이콜로지에 중점을 둔 채로 경기를 주도해 나갔다.

언제라도 로건을 이길 수 있다는 듯 여유를 부리며 양분되어 있는 관객들의 반응을 더 이끌어 냈다.

“제기랄, 이거 너무 쉽잖아!!”

[Boooooooooooooooooo-!!]

[Yeeeeeeeeeeeeeaaaahhh!!]

그렇게 차근차근.

한 호흡씩 쉬면서 경기가 이어졌다.

굉장히 클래식한 스타일이었다.

그렇기에 경기가 계속해서 이어질수록 로건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Logan! Logan! Logan! Logan! Logan! Logan! Logan! Logan! Logan!]

물론 나를 향해서 쏟아지는 콜 또한 거기에 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지금 경기는 분명히 로건이 선, 내가 악처럼 연출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반응이 양분되는 이유는 간단했다.

시대가 현재의 나를 원하고 있다.

내가 언제나 보이는 파격을.

그렇기에 나는 조금 더 기술의 강도를 높여서 로건을 계속 몰아붙였다.

쓰러진 그를 일으켜 세운 뒤,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 등을 잡고 들었다.

백 드롭.

콰앙-!!

공중으로 번쩍 들어 올려진 로건이 등부터 해서 땅에 떨어졌다. 그 충격을 받은 링 바닥이 힘차게 흔들렸다.

그와 함께 쓰러진 내 어깨 위에는 로건의 발이 걸쳐져 있는 상태였다.

누워 있는 포지션에서 엉덩이를 중심축으로 잡고 그대로 180도 회전.

로건의 다리가 내 다리 사이에.

이어질 기술은 간단했다.

[Uooooooooooooooohhhhh?!]

팬, 관계자, 심판.

심지어 로건 본인까지도.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로건의 다리를 꽈배기처럼 엮어낸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프 슈터.

그렉 하트, 그리고 러셀 하트로부터 이어받은 내 시그니처 무브 중 하나.

“크하아아아아아악-!!”

로건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팬들은 숨을 죽이며 그것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다 예상한 대로였다.

* * *

“미쳤군.”

그렉 하트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뭐가? 평범한 슈터잖아.”

거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베이다.

그는 지금 펼쳐지는 경기가 신의 브루털Brutal한 면모가 있어서 좋았지만 어쩐지 좀 느릿하다고도 느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에서 경기를 보고 있던 그렉은 신음을 흘렸다.

지금까지 그는 신이 보여준 각 무브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느꼈다.

이 미친놈은 지금 자신의 전성기 시절을 뛰어넘는 짓을 해내고 말았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경기는 환상적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바쿠가 심각한 그렉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렉, 왜 그래?”

“지금, 안 느껴지십니까?”

“좋은 경기라고?”

“그 정도가 아닙니다. 이건 저와 락콜드의 경기에 견줄…… 제기랄.”

순간 인정을 할 뻔했다.

이 경기가 그렉 하트 vs 락콜드의 역사에 남았던 명경기만큼이나 환상적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사실상 로건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 높았다.

그리고 또한.

“신이 로건을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불멸자가 아니라 인간으로요.”

“그게 무슨 소리야?”

“보십시오.”

그렉이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크하아아아악!!]

[아아, 로건! 고통스러워합니다!]

[관객들도 차마 보지 못하는군요!]

“어?”

바쿠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샤프 슈터.

상대에게서 항복 승을 받아낼 수 있는 서브미션 기술이었다.

하지만 말했듯.

“로건은 자기 커리어 내내 단 한 번도 항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긴장이 떨어졌다.

‘에이 저게 뭐야. 항복하지 않고 알아서 기술 잘 풀고 나오겠지.’

모두가 반사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TV 화면에 나오고 있는 관객들은 로건을 안타까워하면서 계속 응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게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군, 정말로.”

“저는 예전의 그 경기에서 락콜드를 선역으로 만들었죠. 하지만 신은 지금 로건을 인간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미친 자식이군.”

그게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팬들이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엄청난데.

심지어 시작 후, 10분 동안.

“줄기차게 공격을 하면서 로건을 몰아붙였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팬들은 전혀 지루함을 못 느끼고 있습니다.”

정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그렉이 경악한 부분은 한 가지가 더 존재했다.

그렉 하트는 캡틴 로건을 혐오한다.

그가 WWF의 무적 선역으로서의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백스테이지 내에서 수많은 정치질을 일삼으며 쓰레기 짓을 마구 해댔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와 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했기에 저렇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경기 진행을 할 수가 있는 거지?

그렉은 의문을 느꼈다.

그 누구도 로건을 이기지 못한 건 사실, 그가 백스테이지 내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로건이 사라졌다.

남은 건 인간이었다.

불멸하지 못하는.

경기가 계속 이어졌다.

[아~ 로건! 벗어납니다!]

[로프 브레이크로군요! 팬들이 한시름 놓았습니다! 신! 두려운 상대입니다! 어떻게 저런 선수가 있을까요!]

[테이커조차 이긴 남자입니다! 로건이라고 해서 방심할 수가 없……!]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무릎을 꿇고 앉은 로건이 미친 듯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댔다.

[캡틴 업! 캡틴 업입니다!!]

“병신.”

그렉이 노골적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캡틴 업.

위기의 상황에 처한 로건이 팬들의 응원을 받아 몸이 회복되어 신비한 힘을 발휘해 전세를 역전하는 기술.

80년대의 프로레슬링의 만화적인 스타일의 끝판왕이자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가장 말도 안 되는 무브였다.

자, 이제 여기에서 신이 뭔가 싶어서 공격하면 로건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겠지.

그리고 신이 당황하는 사이 미친 듯이 링을 돌아다니며 관객들의 반응을 모으고 힘을 얻게 되고.

신이 더 때리면 무시하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You!’라고 외치는 거다.

그리고 이어 해머링 반격.

기껏 신이 인간으로 만들어줬더니 다시금 신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 행동을 그렉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라고 생각한 시점이었다.

쩌억-!!

옆으로 한 발자국 크게 내딛은 신이 로건의 안면에 슈퍼 킥을 후려갈겼다.

그리고 로건은 쓰러졌다.

“…….”

“…….”

“……캡틴 업이 깨졌다고?”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던 일이다.

그렉과 바쿠, 베이다까지.

자리에 모여 앉아 스타게이트를 지켜보던 이들은 모두 지금 역사의 한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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