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07화 (307/634)

307.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설마 했던 전패.

ACW는 완전히 자존심을 구겼고, 심지어는 태그 팀 타이틀까지 내주었다.

ACW 팬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전패 이후의 스토리가 궁금했기에 시청률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폭 상승했다.

물론, 스타게이트 이후의 나이트로는 완전히 초상집이나 다름없었다.

대부분 선수들이 서로를 비난하며 이 패배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려고 했다.

심지어 ACW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캡틴 로건은 아예 위클리 쇼에 출연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선역인 랭 새비지&크로우와 악역인 케빈 대시&스카티 홀이 대립을 시작했고.

반대로 그런 ACW와는 달리 우리는 첫 약탈의 성공을 축하하고 있었다.

2,000여명의 관객이 모인 무대 위.

[Pirates! Pirates! Pirates! Pirates! Pirates! Pirates! Pirates! Pirates!]

팬들이 챈트를 하는 가운데, 우리는 링 위에 모여서 승리를 자축했다.

내가 소리쳤다.

“멋진 밤이었지! 안 그래?!”

[Waaaaaaaaaaaaaaggggghhh!!]

“전설적인 순간이었어! 나는 한 시대의 아이콘을 끝장냈고! 여기 있는 모두가 각자 제 역할을 해내주었지!”

나는 ACW 태그팀 챔피언 벨트를 두르고 있던 AK와 펑크를 앞세웠다.

“그리고 멋진 전리품도 가져왔고!!”

두 사람이 머리 위로 번쩍 벨트를 치켜들자 환호성은 더욱 강해졌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스타게이트에서의 전승! 그뿐만이 아니야! 우리의 출연으로 인해 레슬 임페리움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렸지!”

그 말이 사실이었다.

같은 시기 개최된 레슬 임페리움의 페이퍼뷰 판매량은 스타게이트에 비하자면 완전히 나가리나 다름없었다.

티켓이야 그쪽도 완판을 시켰지만.

판매량은 1,700만 가구.

여기서 우리가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더 대립을 깊게 만들어 완전히 짓눌러버리는 것도 가능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진 못했고.

3,000만을 넘긴 우리에 비하면 그래도 아슬아슬한 선까지는 지켜냈다.

그래도 멋진 결과였지만.

“WWF와 ACW가 벌이고 있는 월요일 밤의 전쟁! 그 승자가 누구 같아?!”

[Pirates! Pirates! Pirates! Pirates! Pirates! Pirates! Pirates! Pirates!]

“그래, 맞아!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야! 오히려 시작에 불과하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거다! 언제 어느 때라도 여기 이 개자식들이 뭉쳐서 너희가 사랑하는 그 단체를 박살 내러 갈지 몰라! 항상 긴장들 해두시라고!!”

[Waaaaaaaaaaaaaagggggghhhh!!]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사모아 고가 내 앞으로 나오더니 느닷없이 마이크를 낚아채갔다.

“멋진 연설이었다. 신.”

관객석이 순간 술렁거렸다.

순간 찬물이 끼얹어진 듯 순간적으로 열광적이던 분위기가 싸해졌다.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는.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알아둬라. 이번에는 네가 대장이었지만 다음에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거다.”

내게 도전을 선언했다.

각 선수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래, 아직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지.

나는 다시 마이크를 빼앗았다.

“어디 해봐. 패배자.”

[Uooooooooooooohhh!!]

고가 다시 마이크를 가져갔다.

“좋아, 기다려라.”

질 수 없다는 듯 우리 사이에 끼어드는 쟈니, 펑크, 그리고 AK까지.

거기다 백스테이지 뒤의 선수들도.

한 팀인 동시에 계속 경쟁하는 사이.

ACW가 로건의 턴 힐을 통해 시대를 열어보려는 것처럼, 우리들 역시도 충분히 준비를 해두고 있었다.

……그리고 WWF 역시도.

* * *

2008년 4월 중순.

패배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든 바트 맥센은 레슬 임페리움 이후로 줄곧 임원들을 쉬지 않고 몰아붙였다.

이후의 일정을 이야기하고 한 해를 꾸려나갈 시기에 그런 식으로 ‘더 나은 아이디어’를 요구하니 다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꼬장이 너무 심해서 임원들 사이에는 총알이 두 발 든 리볼버가 필요하다는 농담이 떠돌 정도였다.

한 발은 바트에게 쏘고.

한 발은 자신에게 쏘겠다고.

물론 어디까지나 ‘농담’이었지만.

오늘 회의에서는 정말로 누군가 근처에 있는 총포상을 검색해볼 생각을 할 만큼 그 꼬장이 심각했다.

“이걸로는 안 돼!!”

바트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회의실 안에 있던 모두가 순간 몸을 움찔 떨었다.

“이딴 각본으로 뭘 어쩌자는 거야!! 왜 러셀 하트가 트리플H를 이기고 월드 타이틀을 따야하는 건데!!”

그야 러셀 하트는 포지션 상 신의 라이벌이고 그 신은 현재 이 업계에서 가장 핫한 슈퍼스타 중 하나니까요.

그렇게 용기를 내어서 말할 수 있는 인물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시대는 변했다.

새로운 시대가 찾아왔다.

2008년.

이전까지의 슈퍼스타였던 캐스켓-테이커, 트리플H 같은 선수들은 이제 슬슬 2선으로 물러나야만 할 때였다.

하지만 바트는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 그는 러셀이나 오튼 같은 젊은 선수들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트리플H, 그리고 테이커는 확실히 업계에 영원히 이름이 남을 자들이다.

하지만 아직 상자는 열리지 않았다.

러셀 하트와 랜스 오튼을 그만큼 밀어준 적도 없으면서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였다.

시나도 그렇게 뜨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당장의 결과만을 원하고 있는 바트 맥센은 지금 임원들에게 불가능한 요구만을 하고 있었다.

어린애가 생떼를 쓰듯이.

“왜 우리가 그딴 신생 머저리들에게 패배를 해야 하느냔 말이야!!”

바트가 분노를 토했다.

“아무도 몰라?!”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쪽에서 내가 만든 ‘작품’들을 가져갔으니 그렇게 된 거잖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박살을 내버렸지!”

바트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개새끼들……! 신! 체드 터너! 다 똑같은 쓰레기들이야!!”

바로 그때였다.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던 케인 맥센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들어줄 수가 없었다.

“뭐냐, 케인!”

“저희도 PWA와 협업을 하죠.”

그게 유일한 답이었다.

ACW가 시청률 전쟁에서 WWF를 제치고 앞으로 나간 순간은 바로 PWA와의 협업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WWF도 PWA와 협업한다면 충분히 그와 같은 상황을…….

“헛소리 집어치워!!”

할 수 없겠다.

“그건 PWA에만 좋은 일이잖아! 왜 우리가 우리 쇼에서 놈들을 슈퍼 스타로 만들어줘야만 하는 거냐?!”

바트는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케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사실, 선수들을 비롯한 대부분이 지금 PWA와의 협업을 원하고 있었다.

정작 결정권자는 결사반대했지만.

그래도 케인은 그런 고집을 꺾을 만한 카드를 하나 준비해온 상태였다.

“이번에 극동 투어 있잖습니까.”

“…….”

“그거 지금 신이 이적하면서 문제가 발생해서 미뤄둔 거 아닙니까?”

그 말이 맞았다.

모든 건 대략 1년 전.

2006년 10월경에 신의 상품성을 내세워 WWF에서 극동 투어를 기획했다

신을 얼굴 마담으로 내세워서 티켓 판매량은 순조로웠고, 서울 올림픽 경기장의 10만장 티켓이 매진되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요코하마 국제종합 경기장을 대여해서 12만 장의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2007년이 되어 신이 WWF를 나가버리면서 한국과 일본 측에서 난감하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미 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프로모까지 내세워 티켓을 다 팔아버린 WWF는 사기꾼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그때는 ACW의 존재까지 없었던 상황이라 WWF에서는 위클리 쇼를 3주간 휴식하려고 해놨다.

외통수.

코너에 몰린 바트 맥센이라는 쥐를 신이라는 고양이가 포크와 나이프를 든 채로 몰아붙이고 있는 상황.

“그걸 타계하기 위해서라도 PWA와 협업을 해야만 합니다.”

“…….”

바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쪽과 협업하면 신도 분명히 합류할 테고, 동시에 위클리 쇼도 흥미롭게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 어떤 식으로요?”

각본팀장이 물었다.

거기에 케인은 랙다운 측에서 종합한 아이디어를 천천히 늘어놓았다.

“저희가 빈집털이를 당하는 거죠.”

“빈집털이?”

“예, 극동 투어를 간 시점에서 위클리 쇼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런 식으로 각본을 진행해야 할 겁니다.”

케인의 생각은 이러했다.

PWA의 로스터에서 절반.

WWF 로스터의 절반.

“메인 이벤터에 로우 카더를 섞어서 극동 투어를 진행하는 거죠. 신도 거기에 분명히 포함을 시켜서.”

그리고 미국에 남은 하이 카더와 미드 카더 선수들을 모아서 PWA의 ‘빈집털이’ 각본을 진행하도록 한다.

“이거라면 분명히 극동 투어와 위클리 쇼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콰앙!

바트 맥센이 다시 테이블을 내리쳤다.

하지만 그는 버럭 소리를 지르는 대신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었다.

“다 꺼져.”

“…….”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말에 간부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케인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머릿속이 복잡할 터.

회의실을 나온 그는 긴 한숨과 함께 창밖으로 보이는 깃발을 바라보았다.

WWF 본사.

검은색의 WWF 깃발과 성조기가 맹렬하게 바람에 휘날리는 게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르르.

신호음이 가고.

[아, 케인.]

완전히 지옥이나 다름없는 이쪽과 달 리 해맑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신. 지금 어디야?”

[라스베이거스죠. 지금 막 회의가 끝나서 밥이나 먹을까 싶었는데. 어떠세요. 괜찮다면 같이 먹을까요?]

“그래. 12시간만 기다려주겠어?”

[하하하, 그럴까요.]

“진심이야. 신.”

[흐음.]

신이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케인으로 하여금 온몸에 소름을 느끼게 만들었다.

[극동 투어 때문에 그러시죠?]

“…….”

[그거 문제가 될 줄 알았어요. 광고 찍을 때 내가 한국말하고 일본어로 그때 보자고 했는데. 정작 내가 안 온다고 하면 분명히 난리가 나겠지.]

“그래, 그거하고.”

[위클리 쇼의 진행도 문제가 있으니까 저희와 협업을 하고 싶다는?]

“………….”

[다 알아요. 다. 지금 그쪽 상황이 어떤지. 아, 뭐 딱히 연락을 들은 건 아니기는 한데. 그렇게 흘러갈 거라고 대충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죠.]

“……하나만 물어도 될까?”

[예, 뭐죠?]

“설마 2006년 극동 투어가 정해진 시점부터 이걸 기획하고 있었나?”

[그럴 리가요. 우연입니다.]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신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그에 맞춰서 자신의 행동을 계획하고 움직이고 있다고 한들.

극동 투어를 통해서 WWF가 알아서 기어들어오게 만드는 이 전략을 다 계산에 두고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프로레슬링의 신이 그를 도와주고 있는 것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케인은 물론 그걸 믿지 못했고 신의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그 전화의 반대편.

[도와주겠나?]

“저희 쪽에는 뭐가 떨어지죠?”

신은 사무실에 앉아서 티파니와 함께 스피커폰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글쎄, 그쪽으로서도 좋은 이야기 아닌가? 극동 투어에 함께 참가하고 우리와 협업할 수 있는 거라면.]

“말했듯이 지금 ACW와 협업을 하는 중이라 무척 바쁘거든요.”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이후로 로건의 턴 힐이 갖는 임팩트를 위해 앞으로 PWA는 잠시 ACW를 습격하는 것을 멈출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생에 블러핑은 필요했다.

상대가 속든, 속지 않든.

그렇게 해서 계획을 이루기 위해 순간순간 떠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바트가 싫어할 텐데요.”

[아버지라면…….]

“설득해드릴까?”

신이 물었다.

그 말에 고민하던 케인은 ‘일단 해보겠다.’는 답을 내놓았다.

[그러니 만약, 내가 아버지를 설득한다면 협업할 생각이 있을까?]

“그건 설득하고 이야기해보죠.”

[그래, 알겠어. 12시간 뒤에 라스베이거스에서 보도록 하지.]

말인즉슨 그 안에 바트를 설득하고 여기 와서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었다.

전화가 끊어졌고.

신은 반대편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티파니 맥센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계획한 대로인데요.”

“그렇게 됐네.”

운이 좋았다.

WWF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내민 극동 투어라는 카드가 실제로 디테일이 겹치며 독약이 된 상황.

두 사람은 거기에서 WWF와 협업을 통해 다시금 이 PWA를 더 큰 회사로 성장시켜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이 성사되면 어떤 요구 조건을 내거실 생각이에요?”

“순이익의 절반.”

“그렇게나?”

“줄 수밖에 없을 거야. 극동 투어의 메인 카드가 나였으니 말이야.”

물론, 신은 얼마 전 베이다를 영입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을 다녀와서 그 희소성은 조금 떨어질 터였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선수로서 경기는 가지지 않았기에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뭐죠?”

“나는 시나와 경기를 가질 거야.”

“……그러고 보면, 당신은 시나와 한 번도 경기를 가진 적이 없었죠.”

“마침 벨트도 없는 시나고. 이때가 아니면 언제 붙어볼까 싶어서.”

그렇게 말한 신은 여러 해 동안 가까이서 봐온 티파니가 처음 본다 싶을 정도로 이레적인 행동을 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신이 왜인지 긴장하고 있었다.

“신……?”

“응?”

“아니, 시나가 뭐라고 그렇게 긴장을 하나 싶어서요.”

“경기가 끝나면 말해줄게.”

“대체 뭔데에.”

티파니가 살짝 재촉을 하자니 신은 눈을 가늘게 뜨며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각본은 잘 숙지했어?”

“아, 예. 대충 읽어뒀어요.”

미소를 짓는 티파니.

WWF의 상황과 별개로, PWA에서도 홍보를 위해서 해둘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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