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
티파니는 보통 오전 7시에 일어났다.
비몽사몽한 채 정신을 차리니 옆에 신은 없었고, 그녀는 셔츠 한 장만 걸친 채 일어나 일단 과일을 꺼냈다.
아침으로 과일을 먹고.
가끔 당이 필요하다 싶으면 여기에 식빵 한 장 정도를 곁들이는 게 보통.
거실로 나오자 자동으로 공기청정기가 작동했고,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내린 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샤워를 하다가 허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일반적으로 동양인 남성은 그런 부분(?)에서 부족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그게 진짜 편견이란 걸 알았다.
그렇게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고민하다 나와서 커피를 마시면서 식탁 위에 놓여있는 신문을 읽으며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는 게 주된 패턴.
평화로운 시작.
오늘 할 일을 생각하면서 정확히 오전 8시 30분에 비서로부터 연락이 오는 걸 기다리고 있던 티파니는.
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
요란한 전화 벨 소리를 들었다.
‘뭐지?’
오전 8시 4분.
발신 번호도 표시되어있지 않아서 티파니는 의아해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리고 음악이 이어졌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질문 한 가지만 드리겠습니다.]
굵고 낮은 남자의 음성.
그리고 익숙한 이 음악은 분명.
[준비되셨습니까?]
거기에 당황해 대답이 나왔다.
“예? 이거 저희 선수 음악인데. 지금 누가 전화를 주고 계신 거죠?”
라고 물어본 순간이었다.
키리리리리리링쿠아아아아아아앙!!
노골적으로 시끄럽게 편곡한 음악과 함께 남자의 호쾌한 외침이 이어졌다.
쾅쾅쾅쾅콰콰쾅!!
[이번 주 일요일 밤! PWA 월드 챔피언 신이 타이틀 방어전을 가집니다!! ACW 스타 임페리움에서 말이죠!!]
“……What the.”
[지금 바로 페이퍼뷰 티켓을 구매하시면 어썸한 신의 모습과 함께 59.99달러에 즐기실 수 있습니다!!]
쾅쾅콰콰콰쾅!!
“저기요? 저기, 이거 지금 사기인 거 아시죠? 법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나 모르겠다.
PWA는 타이틀도 없고, 페이퍼뷰도 없었다. 거기다 ACW 스타 임페리움은 또 무슨 잡탕 같은 소리란 말인가?
‘신고라도 해둬야겠네.’
하지만 웃긴 일이었다.
설마하니 보이스피싱 사기단이 전화를 건 곳이 PWA 단장의 집일 줄이야.
어이가 없어져 웃은 티파니는 다시금 커피와 신문에 정신을 집중…….
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
“…….”
달칵.
“Hello?”
[And Good Bye! 라고 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에게 말하세요!]
쾅콰콰콰쾅쾅쾅!!!
[철골 구조물 미끄럼틀 위에서 펼쳐지는 6인의 다자간 매치가 ACW 스타 임페리움에서 펼쳐질 예정입니다!]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지금 주문하고 10달러를 버세요! 할인된 가격인 49.99달러에 모십니다!]
“아, 저기. 바쿠? 누구지……. 이거 재미없으니까 그만할래요? 적당히 하지 않으면 감봉인 줄 아세요.”
전화를 뚝 끊었다.
그리고 다시 커…….
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
달칵.
“……여보세요?”
[거기 Winner 있나요?]
“누구?”
[Winner요. Winner 좀 바꿔주세요.]
“누가 Winner인데?”
[정확히 그 답을 이번주 목요일! ACW 스타 골든 임페리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콰콰쾅콰콰콰콰쾅!!
시끄러운 음악이 다시 이어졌다.
이게 누군가의 장난전화라고 여기게 된 티파니는 분노를 터뜨렸다.
“적당히 하라고!!”
콰콰콰콰쾅!!
[신과 숀 시나의 단체 간 챔피언을 건 최종 대결!! 진정한 미국의 챔피언이 누군지를 알 수 있는 기회!!]
“내 집에 전화 그만해! 내가 누군 줄 알아?! 티파니 맥센이거든!!”
[더 팍이 링으로 돌아옵니다! 이 기회를 두 번 다시 놓칠 순 없겠죠!!]
“Goddamn MotherFuc(삐이)in’! 티파니 맥센이라고!! 알아?! 내 집에 다시 전화 걸면 죽여버릴 테니까!!”
뚝.
“허억, 허억…….”
너무 흥분했다.
순간 숨을 몰아쉰 티파니는 다시금 자리로 가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야기가 아예 안 통한 것은 아닌지, 다시 전화가 걸려오지는 않았다.
‘누군지는 몰라도.’
오늘 출근해서 이런 바보 같은 장난전화를 건 사람을 색출해낸 뒤에 반드시 엄벌에 처해주고 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티파니는 커피와 함께 씻어둔 사과를 손에 들고…….
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
“크으으으윽!!”
달칵.
“여, 보, 세, 요!!”
[널 지켜보고 있다.]
“…………뭐어라고요?”
[……라고 신이 말했습니다!!]
콰콰콰콰콰쾅!!
“야, 이 (삐이-)끼야!!”
투콰콰콰쾅!! 쿵콰콰콰콰쾅!!
[과연 역사상 가장 뜨거운 선수인 신이 나머지 다섯 명의 선수들을 상대로도 승리할 수 있을까요?!]
“내가 지금 당장 람보르기니를 몰고 가서 네 머리통을 날려버리겠어!!!”
[C.M. 펑크! AK 스타일스! 사모아 고! 쟈니 에이스! 대니얼 라이언!!]
“다 아는 양반들이라고오오오오!!”
콰앙!
내던지듯 전화를 끊은 티파니는 그대로 돌아서 씩씩거리며 식탁으로…….
가다가 다시 전화기를 돌아보았다.
조용하다.
“……해치웠나.”
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
“아우!!”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이마를 짚으며 괴로워한 티파니는 이어 굳은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먼저 이야기했다.
“내가 신께 맹세하는데, 만약 이게 또 그 Fu(삐이-)k 같은 장난전화면.”
[여, 여보세요?]
“어?”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여자였다.
[저는 인종 간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보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 어. 음.”
티파니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 죄송합니다. 그, 아침부터 자꾸 이상한 장난 전화가 걸려와서요.”
[아, 그러시군요. 저희는 TBA 라디오 방송국의 시사 채널인데요. 인종 간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그건 자유 아닌가요?!”
[네, 네?]
“저는, 어, 당연히 지지하고 있습니다! 저, 저도 지금 그러고 있는걸요!”
[아~ 그러시군요. 지금 저희 방송에 당신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한 명 있어서요!]
[And his name is SIN!!]
콰콰콰콰콰쾅콰콰랑쾅쾈쾅!!!
“너……!!”
[39.9 달러!]
“안 사! 안 산다고!!”
[29.9 달러!!]
“내가 어젯밤에도 네가 말하는 그 신 개자식을 침대 위에서 얼마나……!!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했거든!!”
[신이 상대 선수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구둣주걱을 꽂는 장면을 보세요!!]
콰콰콰콰콰쾅!!
“널 죽여버리겠어!!!”
뚝.
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
달칵.
[당신에게 이 사람으로부터의 수신자 부담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시이이이이이이인!!]
“제발 죽어, 제발.”
뚝.
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
달칵.
“적당히 하고 좀 꺼지라고! 아니면 내가 이 전화를 러시안 마피아 놈들에게 추적을 부탁해서 널 찾아낸 뒤에 머리에 대고 19경 탄환을 두 발 쏴버릴 테니까! 좋은 하루 되시고! 다시는 전화하지 마! 꺼져!!”
[티, 티파니?! 티파니!!]
“……?”
[티파니, 여기는 TBA 라디오 방송국의 G Morning 스테이션입니다!]
“뭐?”
[푸하하! 완전히 걸려들었어요! 지금까지 장난전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신이 지금 저희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 중이거든요! 크하하하하! 정말이지 엄청난 반응이었습니다!]
“…….”
[티파니? 티파니?]
“거기 위치가 어디죠?”
[어, 캘리포니아의…….]
“잠시만요. 제가 집안에 호신용으로 놔둔 엽총이 하나 있는데, 찾아내고 장전한 다음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티파니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조금 전까지 이어진 ‘장난전화’에 대한 반응은, 사실 모두 연기였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도 좋은 연기였고, 그에 따른 반응 역시도 아주 좋았다.
이것이 바로, PWA가 계획하고 실행한 회사를 홍보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외부 활동.
전국 순회 공연을 안하는 대신 선수들이 여유가 생겨서 이런 식으로 이름을 알릴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니 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And His Name Is SIN!]
“……적당히 해요.”
[미안, 미안.]
“전화할 수 있어요?”
[엉, 당신이 멋지게 마무리를 해준 덕분에 광고 시간에 들어가게 됐거든.]
“어땠어요?”
[당신이 최고야.]
“좀 흥분해서 욕이 심했나?”
[아냐, 아냐. 실제 방송 시간 하고 15초 정도 타임랙이 있어서 다 잘라냈어.]
“그럼 다행이고.”
[……사실 다른 문제가 있지만.]
“뭔데요?”
[어, 캘리포니아잖아?]
“그렇죠.”
[우리 부모님이 너 나온다고 말씀드리니까 동네 사람들 다 불러모아서 들어야겠다고 어제 이야기를 하셔서.]
“………….”
[어쩌지?]
“잠, 깐. 엽총 좀 찾을게요.”
[진짜 다 죽이려고?]
“아니, 내 머리에 쏠 거야.”
티파니는 안색이 창백해져 중얼거렸다.
시부모님(?)이 며느리가 자기 아들을 (삐이이이이이이-)했단 걸 들었다니.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었다.
* * *
그런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결과는 확실했다.
[And His Name Is SIN!!]
우리가 방송 출연을 통해 만들어낸 Unexpected SIN(상상도 못한 신)은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다.
사실 전생에는 SIN이 아니라 CENA를 대상으로 해서 유명해진 ‘밈’이었다.
Unexpected Cena.
이걸 통해서 시나는 순간적으로 미국 내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에 등극했다.
가만히 앉아서 코를 푼 셈이었다.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나를 대상으로, 거기에 직접 행동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그 효과는 확실했다.
인터넷이 이전과 달리 크게 발달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는 PWA에 더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로 인해 상승하는 시청률.
뿐만 아니라 우리는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까지도 런칭할 계획을 입안했다.
이 모든 게 회사를 기존의 업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키워나가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기존의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보다 ‘스포츠’로서의 프로레슬링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단체였다.
그런 만큼 세그먼트의 수는 적었고 선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뭐, 어쨌든.
Unexpected SIN이 큰 화제를 불러 모으면서 여러 가지 이득이 생겨났다.
각종 광고 제안과 스폰서 제안, 내 개인으로서도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해달라는 제안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그런 상황에서 ACW와 WWF는 어떻게 되었는가.
WWF는 일단 고집을 계속 부릴 생각인지 시나를 중심으로 쇼를 밀고 나갔고.
ACW에서는 역사가 진행되었다.
4월 말의 ACW 나이트로.
‘이 순간을 두 번 보게 될 줄이야.’
나는 쓰게 웃었다.
메인이벤트로 선역 팀인 랭 새비지&크로우와 악역 팀, 케빈 대시&스카티 홀의 태그 팀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경기 종반부.
두 팀 모두 체력이 떨어져 쓰러진 시점에서 캡틴 로건이 링으로 돌아왔다.
[오 마이 갓!]
[캡……! 캡틴 로건이 돌아왔습니다!]
[Waaaaaaaaaaaaaaaaaaggghhhh!!]
[대체 그는 누구의 편일까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오랜 친구인 랭 새비지와 크로우를……!]
해설자가 황당해하며 대답한 시점.
로건이 링 위로 올라오는 것을 본 대시와 홀이 링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어진 광경은 분명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턴 힐이었다.
[Wh…… What?!]
[Uooooooooooooooooohhhhh?!]
바닥에 쓰러져 있는 새비지를 향해 이어지는 아토믹 레그 드롭.
콰앙-!
링 바닥이 울리며 자리에서 일어선 로건이 사악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대시와 홀이 링으로 올라와 로건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축했다.
놀랍게도 모두의 영웅이었던 로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링 위에 있는 것은.
현실의 로건이었다.
좀 나쁜 쪽으로 해석된.
[로건, 왜 이런 짓을 하신 겁니까?]
[밈 진! 지금 이 개자식들에게 당장 주둥아리를 닥치라고 말하고 싶군!]
충격에 빠진 관객들.
그들은 ACW를 믿었다.
로건을 믿었다.
패배를 했지만 로건은 다시 한 번 영웅으로서 돌아올 것임을 믿고 있었다.
그걸 배신하는 끔찍한 턴 힐.
하지만.
그들이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이 셋으로부터 시작되는 스테이블은 분명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강렬한 순간을 만들어내게 될 터였다.
‘참 아이러니하단 말이야.’
정작 로건이 무적 선역일 때는 재미가 없기 때문에 점점 떨어져 가던 시청률이 턴 힐을 하자 야유로 뒤바뀌며 삽시간에 올라가게 되다니 말이다.
물론 현생에는 나도 이 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지만.
[난 더 이상 질렸어! 너희 같은 멍청한 돼지 새끼들의 영웅으로 사는 것도 질렸다! 이제 우리 셋은 이 업계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올 것을 선언한다!]
nWo.
Neo World Order.
그 탄생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렇기에 딱히 우리가 출연하지 않아도 ACW의 시청률은 분명히 WWF를 아득히 초월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온 수요일 밤.
위클리 쇼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곧바로 케인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꽤나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다.
[아버지께서 고집을 꺾으셨어.]
“지금 옆에 있어요?”
[……어, 음.]
“있네. 바꿔줄래요?”
그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케인.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편에서 바트 맥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인가?]
“영감, 잘 지내셨수?”
[목소리가 좋아 보이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일단 일에 들어가기 전에 협의를 좀 하고 싶은데.”
[……어디서 보겠나?]
“그쪽이 을이니 이쪽으로 오슈.”
나는 일부러 건방지게 말했다.
그러자니 얼마 후, 전화기에서 좀 떨어진 위치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시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인-!!]
빌어먹게도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