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서울 올림픽 주 경기장.
총 좌석수 69,950석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한 스포츠 스타디움이다.
거기에 경기장 중앙의 링 주변에 추가 좌석을 설치해서 10만을 채웠다.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되었고, 팬들은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터였다.
아니, 사실상.
전 국민이 기다리지 않았을까?
내가 한국에 와서 경기를 펼치고 그 모습을 모두가 눈으로 지켜보는 걸?
그렇기에 나는 와야만 했다.
이게 프로다.
나는 날 믿고 있는 팬들에게 회사와의 협의 하에 광고 후 티켓을 팔았고, 그들을 위해서 싸워야만 했다.
하지만 여기서 사실, 문제가 있다.
극동 투어의 원래 일정은 2월.
그럼에도 내가 WWF와 계약을 해지하면서 지금까지 쭉 미뤄진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다들 내가 그때쯤 방한하기는 했지만, 불만이 쌓여있는 상태.
WWF는 그걸 해소해줘야만 했다.
한국의 프로레슬링 시장은 전생과 비교했을 때 무척 커진 상태였다.
그래서 이 인구수가 적은 나라에서 십만 장이 넘는 티켓이 판매된 거지.
각종 상품 판매량과 시청률도 좋아서 WWF에서는 이번에 공식 머천다이즈 스토어 진출까지 예정해두었고.
그러므로 쇼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서 하늘로 쏘아 올린 폭죽 값에만 수백만 달러가 넘게 쓰였을 정도였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프로레슬링 쇼는 종합 콘텐츠다.
이 폭죽 하나하나.
한옥을 콘셉트로 한 입장로 세트장.
거기에 한복까지 입은 중계진.
그리고 WWF의 목소리.
릴리 가르시아.
[아뇽하세요! Korea!]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녀의 유창한(?) 한국어에 그야말로 엄청난 환호를 보내는 한국 팬들.
그리고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오프닝은 무려 테이커가 맡았다.
대-앵-!
장송곡과 함께 등장한 테이커.
그 상대는 바티스타였다.
‘이번에는 우리 쪽에서 안타깝게도 그 위상에 걸맞은 상대가 없었지만.’
다음에는 꼭 데려오자.
그런 결심을 하며 나는 팬들의 환호 속에 이어지는 경기를 지켜보았다.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오프닝 매치가 끝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WWF와 PWA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로우 카더들부터 천천히.
그렇게 슬슬 쇼의 피치를 올려가는 동안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워후! 정말 죽여주는 반응인데!!”
로우 카더로, 미국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던 스티브 리차드.
신인에 가까운 그에게조차 한국 팬들은 정말 엄청난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렇기에 걱정이었다.
‘나와 시나의 경기에서 팬들이 지쳐서 반응도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즐거웠다.
극동의 작은 반도 국가.
바로 옆 나라인 일본과 달리 프로레슬링 문화가 발달도 하지 않은, 그렇기에 선수들에게는 생소한 국가.
하지만 링에 한 번 다녀온 선수들은 압도적인 한국 팬들의 반응에 그들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의 차례가 다가왔다.
메인이벤트 전의 휴식 시간.
세미 메인이벤트에서 잭 하디와 쟈니 에이스의 래더 매치가 열렸기 때문에 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관객들도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바깥에서 파는 먹을거리를 좀 더 사왔고.
나와 시나는 입장로로 나서는 커튼 앞에 서서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딱히 말은 필요 없었다.
경기에 관해서는 모두 짜두었고.
이제는 서로 대화를 하기보다는 마음을 가다듬는 일에 집중할 때였다.
여기가 내 홈그라운드였기 때문에, 먼저 링에 나가게 되는 건 시나였다.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시작도 전에 이어지는 환호.
이어 시나의 음악이 연주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입장로 위에 서있는 것은 전통 한복을 갖춰 입고 있는 한국의 연주가들.
그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시나의 테마를.
자신들의 악기를 사용해서.
한국식으로 어레인지된 특유의 인트로가 흘러나오자 한국 팬들은 하나가 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 테마가 시작되었다.
[BRRRRRRRRRRRR-!! Amadou!!]
빰~ 빠밤~ 빰~!
빰~ 빠밤~ 빰~!
시나가 커튼을 걷고 밖으로 나갔다.
한국의 전통 음악이 마음에 든다는 듯 어깨춤을 춰보이던 녀석이 이어서 싱긋 웃으며 카메라를 돌아보았다.
[아주 멋진 나라야!]
저것이 바로 시나였다.
시나는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입장을 했다.
연기나 불꽃, 폭죽 등을 쏘아올리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시나의 특별 입장씬은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였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환호가 더욱 커졌다.
모니터링TV를 통해 나는 녀석이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평소에 녀석은 ‘Never Give Up’이라고 적힌 머천다이즈 타올을 카메라에 비춰 보이고 링으로 입장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저 자식이.’
타올 대신 태극기를 가슴 앞에서 들어 보인 녀석이 그것을 허리춤에 꽂아 넣고는 그대로 링으로 달려갔다.
앞으로 계속 전진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자신의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형상화한 듯한 입장.
그렇게 링으로 올라간 시나는 음악에 맞춰 양팔을 들어올렸다.
[Your Time Is Up! My TIme Is Now!]
빰~ 빠밤~ 빰~!
한국의 전통 연주에 맞춰서 나오는 영어 랩핑이 딱히 어색하진 않았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환호 속에서 시나는 자신이 입고 있던 티셔츠와 모자를 관객석으로 던져주며 아낌없이 팬 서비스를 했다.
그리고 이어, 다시 한 번 태극기를 들어 올리고는 그것을 예의를 갖춰서 링 아나운서에게 전달했다.
흠잡을 곳이 없는 행동이었다.
이런 곳에서 남의 나라 국기를 잘못 만졌다가 사고치는 선수들도 많은데.
팬들의 기대를 깔끔하게 충족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존중하는 태도까지 보여서 엄청나게 점수를 따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한국의 전통 음악 연주가들이 서둘러 무대 뒤쪽으로 퇴장했고, 입장로가 텅 빈 상황에서 그 문제가 벌어졌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상대가 나라는 것.
나는 시나와 반대였다.
나는 팬들과 함께하지 않았다.
그들이 날 동경하게 만들지.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입장로 뒤쪽에 설치된 여러 개의 파이로로부터 힘차게 불꽃이 치솟았다.
이어서 분사되는 연기.
‘좋아.’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숀 시나.
내 시대의 아이콘.
회사의 선택은 받았으나 팬들의 선택은 받지 못한 상태에서, 서서히 자신을 증명해나간 이질적인 아이콘.
그리고 내 생각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나이.
그와 싸우러 간다.
지금의 내 모든 걸 걸고.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연기를 헤치고 나아간 나는 팬들의 환호에 응답하며 링으로 올라갔다.
한국 팬들의 사랑은 엄청났다.
같은 동양인.
그리고 같은 나라.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의 심리가 나에게 닿아, 난 이곳에서만큼은 시나에 못지않은 버프를 받는 셈이었다.
그렇게 링으로 올라간 나는 반대편 코너에 서있는 시나를 노려보았다.
[렛츠 고 시나!]
[맨 온 파이어!]
[렛츠 고 시나!]
[맨 온 파이어!]
[렛츠 고 시나!]
[맨 온 파이어!]
팬들이 대결을 기대하며 소리쳤다.
이 극동 투어에서 가장 거대한 경기가 지금 막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땡땡땡!!
링 벨이 울리자 나는 곧바로 링을 크게 돌면서 시나의 눈치를 살폈다.
시나도, 나도.
서로가 만만찮은 상대임을 알고 있는 상황. 팬들의 환호만이 긴장감을 꿰뚫고 경기장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렇게 링을 두어 바퀴.
이어 우리는 동시에 서로에게 달려들어서 팔을 얽고는 락 업을 맺었다.
“크윽!”
“흐아앗!!”
시나가 순식간에 나를 밀어붙였다.
키는 내가 좀 더 컸지만 힘은 근육량이 많은 시나가 훨씬 더 강했다.
포지션으로 봤을 때 ‘파워 하우스’와 ‘테크니션 브롤러’의 대결이었다.
그렇기에 자연히 힘에서 밀린 나는 그대로 로프까지 물러서게 되었다.
그 상태에서 클린치처럼 서로 맞붙고 있자니 심판이 우리를 떼어놓았다.
“후우.”
역시 힘으로는 안 되겠군.
그렇게 생각한 나는 가볍게 몸을 풀고 다시 시나와 락 업으로 맞붙었다.
하지만 그건 페이크였다.
시나의 팔을 쳐내고 뒤로 돌아 들어간 나는 녀석의 허리를 붙잡고 들었다.
쿵!!
링에 내동댕이치고, 그 상태에서 체인 레슬링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결코 힘 싸움으로 가지는 않았다.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허리를 붙잡고 늘어져서 시나의 기를 빼놓았다.
그렇게 내가 목줄을 쥔 채로 경기를 끌고 가려고 한 바로 그 시점이었다.
“크하아압!!”
시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팬들의 환호가 경기장을 뒤덮었다.
허리를 붙잡고 버텨내고 있는 나를 매단 채로 자리에서 일어난 시나.
순간적으로 끌려가던 나는 시나를 다시금 바닥에 눌러버리고자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큭……!”
레슬링은 기본적으로 아래에 붙잡힌 사람이 위에 올라타 넘기려는 사람을 버텨내야 하는 구성의 스포츠였다.
하지만 시나는 그걸 버텨내는 동시에 나를 떨쳐내는 괴력을 발휘했다.
적당한 순간에 팔을 놓고 빠져나오려던 나는 그대로 시나에게 붙잡혔다.
반대편으로 끌려갔다.
“윽?!”
로프 반동.
이후 시나가 나를 어깨로 밀어냈다.
숄더 블록.
콰앙-!
바닥에 쓰러진 나는 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머리를 뒤흔들었다.
그러자니 시나가 내 앞에 섰다.
나는 그걸 올려다보았다.
굴욕적인 상황이다.
근육질의 시나는 마치 자신이 절대적인 슈퍼 히어로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렛츠 고 시나!]
[맨 온 파이어!]
팬들의 챈트가 계속 들려왔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일어섰고, 우리는 다시금 탐색전으로 돌아갔다.
나는 어깨를 붕붕 돌리며 시나가 입힌 타격의 정도를 확인하는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시나가 다가와 헤드록을 걸었다.
“크학?!”
두터운 시나의 팔뚝에 머리가 휘감긴 나는 이를 악물며 통증을 견뎠다.
그 상태에서 천천히 일어선 나는 시나를 반대쪽의 로프로 밀어냈다.
로프 반동 후 반대편으로 달려가 다시 반동을 한 시나가 돌아왔다.
나는 타이밍을 맞춰 뛰었다.
짜악-!
깔끔하게 양발을 들어 올린 나는 그대로 시나의 안면에 드롭킥을 먹였다.
쿵-!
떨어진 직후, 일어나는 시나를 바라보며 나는 양손을 들고 까딱거렸다.
“뭐야, 시나. 겨우 이거냐?”
“후우…….”
자리에서 일어서는 시나
“한국이 멋진 나라라면서? 고작 이런 걸로 무너질 네가 아니잖아! 아직 싸움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나는 씨익 웃으며 도발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관객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턱을 쓰윽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선 시나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퍼억-!
그리고 펀치를 날렸다.
나 역시 지지 않고 받아쳤다.
빠악-!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감정이 올라온 시나와 나는 여러 차례 주먹을 주고받으면서 상대방의 기를 확실하게 꺾어버리려고 했다.
시나의 주먹은 매서웠다.
거기에 지지 않고 받아치던 나는 그대로 시나가 펀치를 날리려는 타이밍에 뒤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크아아!!”
허리를 잡고 힘차게 들어올렸다.
콰앙-!
등부터 링 바닥에 떨어진 시나는 고통에 신음을 흘렸고, 나는 곧바로 쉬지 않고 녀석을 계속 밀어붙였다.
내 스타일대로.
바닥에 쓰러진 시나를 발로 짓밟으면서 반격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시나는 버티지 못하고 링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나는 곧바로 관객들을 돌아보면서 그들의 환호를 유도했다.
“목소리 이거밖에 안 나와?!”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기분 좋은 반응이었다.
역시 이 사람들은 나를 사랑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니까.
가슴을 쾅쾅 때린 나는 이어서 곧장 턴 버클을 밟고 로프 위로 올라갔다.
탑 로프 위.
쓰러져 있던 시나가 천천히 일어섰고 나는 곧바로 거기에 몸을 던졌다.
순간 시선이 교차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떨어지는 내 몸을 받아낸 시나가 그 충격으로 인해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기세를 잡은 나는 공격을 이어갔다.
링 아래에서 이어지는 싸움.
시나 역시도 밀리는 와중에서 반격을 시도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주먹을 흘린 후 복부를 무릎으로 걷어찬 나는 그대로 시나를 바리게이트로 밀고 가 등을 부딪치게 했다.
콰앙-!
“크윽!!”
팬들의 반응은 완전히 미쳤다.
평소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분명히 감격했겠지.
“신!!”
“힘내요! 이겨요!!”
“좋아, 다들 지켜보라고!”
호기롭게 외친 나는 쓰러진 시나의 머리채를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아웃 카운트가 끝나기 전에 다시금 링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몸 상태를 확인했다.
아픈 곳은 있지만.
견뎌낼 만했다.
‘할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을 다독인 나는 그대로 로프를 타고 다시 위로 올라갔다.
최대한 화려하게.
멋지게.
우리를 기다려준 팬들을 위해.
아낌없이 소진할 각오로, 나는 바닥에 쓰러진 시나를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을 번쩍 위로 들어올렸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기에 맞춰 쏟아지는 환호.
지금 나는 이 자리에 위치한 모든 이들의 감정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그걸 느끼며.
뒤로 돌아.
뛰었다.
피닉스 스플래시.
1.9미터에 이르는 몸이 좌우로 회전하며 나는 시나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앙-!!
굉음이 경기장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