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15화 (315/634)

315.

내가 화려한 탑 독 운영의 레슬링 스타일을 가진 것에 비하자면, 시나는 언더 독에 가까웠다.

실제의 입장은 그와 정반대지만.

탑 독과 언더 독.

심리학 용어에 기반을 둔 레슬링 용어로, 지는 쪽을 응원하게 되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선역으로서 시나는 계속해서 얻어맞다가 일발 반격을 통해 분위기를 휘어잡고 끝끝내 승리를 취하는 식.

반대로 나는 상대방을 계속 공격하면서 피치를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언더 독을 상대로 한다면 한 번쯤 주도권을 내주어야만 했다.

우리는 타이밍을 잡았다.

분명히 프로레슬링 경기는 각본에 따라서 동작을 수행하는 퍼포먼스다.

하지만 ‘일류’는 분명히 경기장의 상황이나 팬들의 반응에 따라서 흐름을 조율하고 다룰 줄 알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시나는 아직은 좀 부족했다.

몸이 뻣뻣하고 기술력이 부족한 녀석은 ‘경기’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거기다 2005년 이후 상대한 이들이 모두 다 전설적인 선배들뿐이었기에.

시나는 경기를 할 때 자신의 의견을 내기보다는 상대방에게 맞춰서 따라가는 능력이 발달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언더 독 운영과 맞물려서 녀석은 내가 하는 대로 따라왔다.

그리고 나는 조금 더 애를 태웠다.

쓰러지지 않는 시나를 보고 한국 팬들이 경외감을 느끼고, 지금 이 상황에 더 몰입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이어서 때가 찾아왔다.

무척 자연스럽게.

“Go, 시나.”

내가 짧게 말했다.

내 팔에 당겨져서 반대편으로 달려간 시나가 로프 반동 후 되돌아왔다.

피닉스 스플래시 이후, 이어진 내 여러 시그니처 무브들에도 쓰리 카운트는 빼앗기지 않고 버텼지만.

시나는 지금껏 계속해서 휘둘렸다.

팬들은 그런 시나와 나를 바라보면서 경기의 진행에 조금 더 집중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시나는 쓰러지지 않는다.

내가 어떤 무브를 써도, 어떻게 해서 녀석을 공격해도 절대 쓰러지지 않았고 계속해서 공격을 버텨냈다.

거기에서 생겨난 약간의 조급함.

온갖 기술을 다 맞아도 꿋꿋하게 일어서는 시나를 보고 일어난 흔들림.

시나의 반격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로프 반동 후 내게 돌아온 녀석이 별안간 힘차게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 단단한 어깨가 엉거주춤하게 서있던 내 어깨에 힘차게 충돌했다.

콰앙-!

숄더 블록.

충격으로 쓰러진 나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나를 찾기 위해서 돌아보자.

로프에 몸을 ‘장전’한 녀석이 이어 나를 향해 있는 힘껏 몸을 던졌다.

다시금 숄더 블록.

콰앙-!!

어깨를 부딪쳐 바닥에 쓰러진 나는 비틀거리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나가 바로 눈앞에 서있었다.

순간 당황해 크게 휘두른 주먹.

그것을 피해낸 시나가 내 오금과 허리를 붙잡고 힘차게 위로 들어올렸다.

그 상태에서 앞으로 몸이 돌았고, 시나는 나를 등부터 해서 떨어뜨렸다.

스핀 아웃 파워 밤.

투콰앙-!!

호쾌한 폭음.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커지는 환호.

시나의 국민 콤보가 이어졌다.

대자로 뻗은 내 앞에 서서 허리를 숙인 녀석이 자신의 얼굴 앞에 손바닥을 대고는 세차게 흔들어 보였다.

“You Can’t See Me!”

[유 캔트 시 미!!]

팬들도 열창하는 그 캐치프레이즈.

뒤를 이어 로프 반동을 하고 천천히 다가온 시나가 그대로 내 안면에 쓰러지며 주먹을 내리찍었다.

파이브 너클 셔플.

시나의 시그니처 무브.

꽈앙-!

평소 시나는 이 기술을 상대를 배려해 절대로 직격하게 때리진 않았다.

하지만 난 달랐다.

이마를 저릿하게 울리는 통증.

“크윽?!”

하지만 경기는 계속 이어져야 했다.

충격으로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 나는 그대로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예정대로.

시나의 국민 콤보의 마지막.

피니시 무브.

‘Attitude Adjustment’를 맞기 위해.

“흐아아압!”

돌아선 나를 끝내겠다는 듯 힘찬 기합과 함께 어깨에 들쳐 메는 시나.

순간 위로 번쩍 뛰어올랐던 나는 관객들이 모조리 자리에서 일어서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차렸다.

절체절명의 상황.

그렇기에 다들 날 응원했다.

시나도 응원을 받았지만.

나에 대한 목소리가 더 컸다.

[렛츠 고 시나!]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그렇기에 나는 질 수가 없었다.

이들이 바라는 건 나의 승리다.

팬들의 염원이 내 등을 밀어주었다.

‘말 그대로.’

그렇기에 나는.

몸이 넘어가는 시점에 맞춰 크게 회전한 나는 그대로 링 바닥에 착지했다.

쿵-!!

시나의 피니시 무브.

AA는 파훼가 되었다.

그 상태에서 돌아선 나는 그대로 깜짝 놀란 시나의 안면에 허리를 옆으로 당기며 장전된 오른발을 날렸다.

쫘악-!!

슈퍼 킥.

그대로 쓰러지는 시나.

나 역시도 쓰러졌다.

경기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허억, 헉…….”

“으윽…….”

격렬했던 20분 동안의 경기.

시나의 콤보를 피니시 직전까지 맞은 나나, 일발 역전기로 쓴 슈퍼 킥을 맞은 시나나, 둘 다 한계였다.

“One!”

심판이 텐 카운트를 시작했다.

이대로 10을 셀 때까지 누구도 일어서지 못하면 경기는 더블 케이오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팬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집중하며 들었다.

고요하다.

정말 시끄러운 경기장 안이었지만.

이렇게 땀으로 범벅이 되어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쓰러져 있을 때면 가장 잘 들리는 소리는 오직 하나였다.

내 심장 소리.

여기까지 달려온.

다시 한 번 삶을 살게 된.

내 투쟁의 소리.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Seven-!!]

나는 서서히 일어섰다.

비틀거리며 바닥을 짚고 중심을 잡으려다 쓰러져, 로프를 붙잡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레 내가 마지막 기술을 사용할 위치까지 도달했다.

코너였다.

“후우, 후.”

심호흡.

반대편의 시나는 큰 충격에 다리가 풀렸는지 일어서다 결국 무너졌다.

무릎을 꿇은 그 얼굴이 보였다.

녀석이 미묘하게 웃었다.

이미 양쪽으로 뻗은 미들 로프를 붙잡고 있던 나는 곧바로 몸을 날렸다.

그대로 뛰쳐나간다.

시나가 삽시간에 가까워졌고, 나는 힘차게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 순간.

찰나의 상황.

팬들 모두가 지켜보는 와중.

나는 생각했다.

그래.

분명히 이 경기는 ‘암시’하고 있다.

이 경기와 다음 주에 있을 일본에서의 경기는 나와 시나의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끝날지 예고하는 듯했다.

그렇기에 한번 해보고 싶었다.

나의 최종 목표를 재확인.

현실의 슈퍼 히어로가 나에게 쓰러지는 결말이 과연 팬들에게 먹히는가.

그것도, 2010년 이후에 모든 팬들의 인정을 받고 진정한 WWF의 아이콘이 된 시나를 상대로 말이다.

그리고 난 거기에서.

프로레슬링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다짐을 떠올렸다.

최고는 나다.

아니, 설령 아니더라도.

나는, 나만은 날 믿어야 한다.

그렇기에.

안면에 꽂힌 ‘현재’의 무릎은.

정수리를 꽂아 넣을 ‘미래’의 기술처럼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강력했다.

쩌억-!

몸이 회전하며 쓰러지는 시나.

“허억, 헉…….”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팬들의 환호 속에 녀석을 향해 기어간 나는 그대로 핀 폴을 실행했다.

1……!

[원!]

2……!!

[투!!]

3……!!!

[쓰리!!!]

땡땡땡!!

링 벨이 울림과 동시에 나는 완전히 지쳐 바닥에 뻗어버리고 말았다.

‘……정신적으로 지치는군.’

그런 싸움이었다.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신!]

한국 팬들의 환호와 함께 이어지는 내 테마곡이 흥겹게 귀에 박혔다.

하지만 나는 좀처럼 시나의 위에 누운 채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시나가 말했다.

“신…….”

“엉?”

“무거워.”

“버텨, 인마, 힘도 좋은 게.”

나는 아예 머리에 힘을 빼고 시나 위에 누워서 팬들의 환호를 계속 들었다.

참 멋진 날이군.

* * *

한국에서의 쇼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팬들이 가장 바라고 있던 내 승리가 쇼의 호평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5년 이후, 숀 시나를 상대로 정정당당하게 맞서서 승리한 첫 번째 남자.

물론, 이런 매치는 WWF의 ‘공식 역사’에 포함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정사(正史)로 기록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팬들은, 그리고 한국 언론은 이 승부가 진짜인 것처럼 기뻐했다.

[아침 뉴스입니다. 어젯밤 미국의 프로레슬링 회사인 WWF와 PWA가 공동으로 개최한 극동 투어에서 신 선수가 숀 시나 선수에게 승리를…….]

아침의 첫 뉴스부터 그랬다.

늦은 밤 쇼를 마치고 돌아와 곯아떨어진 나는 정확히 호텔 체크아웃 한 시간 전에 맞춰서 잠에서 깨어났다.

그래서 씻고 나와 뉴스를 보고 있자니 별안간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달칵.

“여보세요?”

[아, 신. 방금 뭐라고 한 거야?]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대답했더니 시나는 알아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Hello라고 했는데.”

[아, 그렇구나. 오늘 어떻게 할래?]

“글쎄.”

[오튼이 같이 놀자는데.]

“그럼 그렇게 하자고.”

나는 대충 호텔 측에서 추천을 받았던 한식집을 떠올리며 전화를 끊었다.

오늘부터 3일간 휴가였다.

다음 주에 있을 일본 투어까지 컨디션을 회복해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크게 두 패로 나뉘어, 나처럼 한국에서 쉬려는 이들. 그리고 일본에 건너가 쉬려는 이들로 나뉘었다.

그리고 대부분 한국에 남았다.

처음에는 일본의 온천 때문에 건너가려는 쪽이 더 많았는데, 아무래도 쇼에서 보여준 한국인들의 반응이 선수들의 생각이 변하는 데 영향을 끼친 듯했다.

그렇게 짐을 챙겨서 방을 나온 나는 로비에서 시나와 오튼을 기다렸다.

먼저 도착한 시나를 본 나는 눈에 멍이 든 것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너 괜찮냐?”

“너야말로.”

“완벽하게 회복했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등에 멍이 배겨서 욱신거렸다.

시나와 나는 잠시 오튼을 기다리면서 어제 경기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시나가 먼저 말을 꺼냈다.

“팬들 반응이 장난 아니던데?”

“미국이었다면 안 그랬겠지.”

“더군다나 WWF였다면 더더욱.”

“…….”

“하하, 농담이야. 농담.”

뼈가 담긴 농담이었다.

물론, 일본에서는 시나가 승리하면서 일대일의 승률을 이루게 되겠지만.

그래도 좋은 경기였다.

아마 이 경기의 영상이 미래에 나와 시나가 싸우게 될 날에 쓰일 날이 오겠지.

그걸 서로가 알기에 시나와 나는 딱히 더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오튼은 다소 늦게 도착했다.

“어, 미안해. 친구들.”

“……네가 밥 사라.”

“뭐? 아, 안 돼!”

녀석이 빌었지만 봐주지 않았다.

나와 오튼, 시나는 함께 서울을 돌면서 온갖 한식을 맛보고 이것저것 선물을 사면서 시간을 보냈다.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들 우리를 알아봐 사인을 부탁해서 매번 시간이 딜레이가 됐지만, 그래도 시나는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휴식을 취한 뒤,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는 곧바로 본토 쪽에서 벌어지는 일을 텔레비전으로 확인했다.

[아아! 사모아 고가 아라와레타!! 고레와 난다!! 아치니와 팡크가! 고레와 피-다브류-에이노 슈게키! 다브류-다브류-에후가 이마 카이조쿠니……!]

안타깝게도 일본 방송의 해설들이 말을 해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상황만으로도 멋졌다.

PWA의 파괴 전차, 사모아 고.

그가 러셀 하트를 박살 냈다.

현재 WWF 월드 챔피언으로 군림 중인 그를 무차별하게 폭행하고는 링을 완전히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그 옆에는 다른 선수들이 함께.

[Waaaaaaaaaaaaggggggghhh!!]

러셀을 구하기 위해 나오는 WWF 선수들로 인해 링이 난장판이 되었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와중.

내가 여기 오기 전 반드시 성사시켜달라고 말했던 각본이 실행되었다.

바로 ‘복수’.

자신을 굴욕적으로 은퇴시킨 WWF에게 복수를 꿈꾸는 그녀가 돌아왔다.

뜨든- 뜬~!

특유의 라틴 스타일 인트로.

[Yeeeeeeeeeeeeeaaaaaahhhhh!!!]

팬들이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모두들 잊지 않았다.

굴욕적인 각본을 수행하고 성적인 모욕을 받으며 은퇴한 레전드 선수.

리키타.

그녀가 링에 등장했다.

[So Fu-k Your Rules Man-!!]

PWA의 습격자로 링에 돌아온 그녀는 곧장 로프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한창 남자 선수들이 링 아래에서 뒤엉켜 싸우고 있는 가운데, 그녀는 겁 없이 3미터 아래로 몸을 날렸다.

리키타-썰트.

뒤로 돌아.

그대로 270도를 회전하는 그녀를 지상에 있던 남자 선수들이 받아주었다.

[Yeeeeeeeeeeeeeeeeaaaaahhh!!]

통쾌한 복수극.

물론 거기에 맞서기 위해 WWF 측에서도 니키 제임스가 달려 나왔다.

나와 GCW 시절 동기.

그런 그녀가 리키타와 맞붙을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남자 선수들이 자연히 옆으로 물러서서 싸웠다.

그렇게 이어지는 ‘습격’.

아주 멋졌다.

ACW 때와 비슷한 광경이었으나 선수들 사이에 맺어진 드라마 몇 가지가 이야기의 질을 훨씬 더 상승시켰다.

리키타가 좋은 예시였다.

‘고가 아니었군.’

오히려 오늘의 습격에서 중심이 되고 있는 인물은 분명히 리키타였다.

방송이 끝난 뒤, 나는 생각했다.

‘WWF라.’

분명히 극동 투어를 마치고 돌아가게 된다면 그들과의 대립을 통해서 WWF를 도와주는 것이 맞았다.

문제는 그 차별성이었다.

ACW와 똑같이 습격을 통해서 각본을 전개했던 만큼, WWF와 같은 걸 하기 위해서는 분명 이유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보인 것 같았다.

‘복수인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번 극동 투어가 끝난 뒤, PWA는 분명 또 이 업계의 중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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