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16화 (316/634)

316.

[AA-!! AA-!!]

[わああああああああああああ!!]

투콰앙-!!

[원, 투, 쓰리!!]

땡땡땡!!

[Your Time Is Up, My Time Is Now!!]

나는 일본 투어에서 이어진 일련의 패배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에게서 승리한 뒤, 벌떡 일어선 시나는 관객석으로 들어가 일본 팬들과 함께 멋진 세리모니를 펼쳤다.

링 위에 드러누워 그걸 지켜보던 나는, 분명 이후 다가온 시나와 함께 일어서서 함께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신. 신?

그런데 왜 그러던 시나가 그대로 날 비웃고는 링을 떠나버리는 것일까.

왜 눈앞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거지.

“신!!”

누군가 날 세차게 흔들었다.

나는 번쩍 눈을 떴다.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 어?”

“괜찮아요?”

티파니가 내 얼굴을 보며 물었다.

사무실.

아직 낮.

‘깜빡 잠들었군.’

극동 투어에서 돌아온 지 3일째.

아직 시차 적응이 덜 된 모양인지 낮에 피곤한 일이 많아서 큰일이었다.

그나저나.

묘한 꿈이었다.

“끄응.”

짧게 신음을 흘리고 있자니 티파니가 내 이마를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뭔가 괴로워 보여서 깨웠어요.”

“아, 괜찮아.”

“악몽이라도 꾼 거예요?”

“일본 쇼에서 시나한테 진 거.”

“꽤 담아두고 있나 보네.”

티파니가 킥킥 웃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이겼잖아요?”

“그건 그런데.”

그 승리에는 어디까지나 내가 한국계 출신이라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나를 자신들과 같은 한국인으로 생각해주는 한국 팬들이 시나보다 날 응원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지.

거기에 극동 투어가 어디까지나 단체 간의 협업 과정에 있기에, 일대일로 주고받자는 결론이 나온 거다.

오히려 대단한 것은 시나였다.

한국만큼은 아니었지만 일본 역시도 나에 대해서 크게 호감을 보여주고 있는 몇 개의 국가 중 하나였다.

같은 동양인이니까.

하지만 그런 일본에서 나를 이겨놓고도 시나는 계속 큰 환호를 받았다.

시나는 분명 역반응도 받고 있지만, 우리 시대에서 가장 위대한 스타였다.

그는 이전까지의 프로레슬링을 계승하는 게 아니라 자기 시대를 열었다.

회귀로 얻은 지식을 통해 억지로 비집고 연 나와는 달리, 온전히 자기 자신만의 힘으로 증명해 보였다.

그동안 프로레슬링에 관심이 없었던 어린 소년소녀들, 가족 단위, 여성 팬들을 이쪽 업계로 끌어들였다.

그래서 기존 프로레슬링 팬들의 역반응이 있어도, 메인 이벤터로서 계속해서 활약해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녀석과 싸워 주고받았다.

스코어는 1:1.

그리고 아직 부족한 걸 느꼈다.

물론, 프로레슬링이라는 게 어차피 다 짜고 치는 하나의 드라마긴 했다.

하지만 분명히 개연성이 필요했다.

내가 위대한 선수를 꺾어올 수 있었던 것도 개연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내가 승리해야만 더 재미있을 거라고 팬들을 설득해냈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시나로부터 승리를 거두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앞서 내가 상대했던 그렉이나 테이커처럼, 시대를 이어받기 위해 이겨야 한다는 각본을 쓸 수도 없었다.

나와 같은 시대.

훨씬 위에 있는.

유일한 선수기에.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니 티파니가 말했다.

“그래서 긴장했던 거예요?”

“응?”

“극동 투어 떠나기 전에 몸이 굳어져 있던데. 시나 때문이었나 싶어서.”

“비슷해.”

나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내가 시나를 이길 만한 선수로 성장하고 있는가를 시험해보고 싶었거든.”

“그래서, 결론은?”

“아직 부족해. 많이.”

내가 레슬 임페리움이라는 큰 무대에서 시나를 꺾고 챔피언에 오르는 그림이 아직까진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자니 티파니가 말했다.

“그건 시나도 마찬가지잖아요?”

“……뭐?”

“시나도 PWA에 와서는 당신을 절대로 꺾을 수 없을 거라는 말이에요.”

“그, 건.”

맞는 말이지.

하지만, 음.

“내가 있는 단체에서 내가 이기는 건 당연하긴 한데, 이게 솔직히 진짜로 이기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러니까. 시나도 그렇잖아요.”

“시나도……?”

“우리가, 당신이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 게 WWF인 만큼 그렇게 느껴지는 거지. 즉, 시나가 지금 이기는 것도 WWF에 있기 때문이겠죠.”

티파니가 나를 안아주었다.

“당신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저는 신이 더 멋지다고 생각해요.”

“……그렉 하트가 제일 좋다면서.”

쭈우욱.

티파니가 내 볼을 세차게 꼬집었다.

“아, 아야야야!”

“그거 언제까지 쓸 거야!!”

“아, 아이, 으에!”

왠지 이렇게 위로를 받는 분위기가 머쓱해서 장난으로 넘기려고 했는데.

본전도 못 찾았다.

그래도 기분은 훨씬 나아졌지만.

* * *

WWF와 우리가 협업해서 실행한 두 개의 쇼는 모두 다 큰 성과를 거뒀다.

내가 참여한 극동 투어는 말할 것도 없이 대박을 쳤고, 그사이 본토에서 실행된 습격 각본도 마찬가지였다.

WWF는 오랜만에 시청률 500만을 넘기면서 ACW를 어느 정도 추격했다.

물론 nWo가 지배하고 있는 ACW는 현재 가장 핫한 프로레슬링 단체였다.

하지만 나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견을 피력했다.

회의실.

우리는 WWF 측에 낼 ‘섬머 수플렉스’의 부킹을 정하기 위해 모였다.

각 팀장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고개를 끄덕인 할리가 입을 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팀장들도 다들 동의했다.

이번 8월 페이퍼뷰에서 우리는 반대로 WWF에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상황.

그런 와중, 사업가인 티파니만이 사태를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가능하겠어요?”

“될 것 같은데.”

“아, 아니. 일단 수치로 따져보죠.”

내 자신만만한 대답을 듣고 순간 고개를 내저은 그녀가 하나하나 안 될 것 같다는 근거를 따지기 시작했다.

“현재, 이 ‘월요일 밤의 전쟁’을 10이라고 한다면 대략 7대 3 정도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상황이에요.”

ACW가 7.

WWF가 3.

“ACW는 저희의 도움을 받아 nWo 각본을 터뜨리면서 현재 순항 중이죠.”

nWo는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되었다.

과거의 락콜드 티셔츠처럼 모두가 그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거기다 ACW 측에서는 PWA의 WWF 습격에 대해 방송에서 거리낌 없이 언급하면서 까버릴 정도였는데.

“할리우드 로건이 말했죠. ‘우리에게 패배하고 그런 이류 단체 놈들 등골이나 빼먹으려고 하는 머저리들이 아닌 이 쇼를 봐라! 부라더!!’라고요.”

“와, 연기 잘하는데.”

“……저기, 전 진지하거든요.”

티파니의 얼굴이 순간 붉어졌다.

“로건의 그 세그먼트에 대한 호응은 엄청났다고요? 당장 다음 주 시청률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안 먹혔어. 괜찮을 거야.”

“어떻게 확신하죠?”

“리키타가 있잖아.”

나는 확신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티파니.

“지금 WWF 팬들이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뭐라고 생각해?”

“어, 한두 개가 아니죠?”

“리키타의 은퇴와 관련되어서.”

“……아하.”

티파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마가 있다는 말이군요.”

이해력이 빨랐다.

여기서 좀 그 역겨운 기억을 어쩔 수 없이 테이블에 끄집어내 보자면.

리키타의 은퇴는 굴욕적이었다.

보통 은퇴식에서 선수는 자신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선수에게 패배하고 팬들의 예우 속에 은퇴하기 마련이다.

은퇴식이 열리거나 그게 아니면 보통은 ‘Thank you!’ 챈트라도 들었다.

하지만 리키타는 회사 측의 의도적인 심술로 인해, ‘Hoe Sale’이라는 굴욕을 맛보며 은퇴를 하게 되었다.

Hoe = 창부.

Sale = 판매.

당시 헤픈 여자 기믹을 맡았던 리키타의 물건을 찾아냈다는 콘셉트로 악동 태그 팀인 ‘크라임 모먼트’가 링으로 나와 그 물건들을 판매했다.

브래지어, 팬티, 딜도, 성병 치료제.

심지어 리키타의 물건도 아니었다.

그런 마지막이었다.

“역겨웠죠.”

나는 단언했다.

그게 뭐가 재미있단 말인가?

남녀를 떠나, 리키타에게 존경심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으로서, 솔직히 말해 무척 불쾌한 사건이었다.

아마 팬들 모두가 그럴 터였다.

WWF에서 여성 레슬링의 초석을 닦은 전설, 리키타가 받기에는 초라하다 못해 진짜 역겨운 은퇴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그런 리키타가 돌아온 거야.”

자신에게 그런 개 거지같은 은퇴를 겪게 한 WWF에 복수하기 위해서.

“어떻겠어?”

“분명히 다들 기대하고 있겠죠.”

티파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팀장급 인사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안 그렇습니까?”

모두 표정이 진지했다.

거기에서 나는 우리가 WWF에 환멸이 나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WWF는 좋은 회사가 아니다.

좋은 선수들은 많았지만, 그들을 상처받게 하고 단순한 톱니바퀴로 써버려서 팬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걸 벗어나기 위해서는 트리플H처럼 정치력으로 남을 짓밟거나, 브룩 레스너처럼 떠나는 길뿐이었다.

그렇게 이루어져온 업계니 이 시장이 계속해서 몰락하게 되는 것이었다.

현 아이콘인 시나도 2010년도 후반이 되면 바보 취급하는 게 WWF인데.

지금 시나를 보고 자란 팬들이 그런 회사, 아니, 프로레슬링 자체에 애정을 가지고 볼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러므로 저희는 이번 섬머 수플렉스에서 ‘선역’으로 나가게 될 겁니다.”

“뭐?”

“에이, 아무리 복수할 이유가 있다고 한들 WWF 팬들을 얕보는 건가?”

다들 그런 내 말에 의아해했다.

그럴 법도 했다.

우리의 습격 각본으로 인해, 역반응이 나오고 있던 로건조차도 턴 힐 직전에 큰 환호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듯, ACW 팬들로 들어찬 그쪽 쇼에서는 우리가 악역이 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현재 WWF를 시청하고 있는 팬들은 ACW나 PWA가 절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충성심 있는 자들이었다.

가족, 어린아이, 여자 팬들.

시나를 주인공으로 한 쇼에 열광하고 그 이야기를 지켜보고 싶은 이들.

그런 이들에게 맞서 우리가 선역으로 부킹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간단해.”

나는 웃으며 설명했다.

“지금 WWF로부터 등을 돌린 팬들이 다시 돌아오도록 만들면 되지.”

물론, 우리가 본격적으로 섬머 수플렉스 대립을 시작한 첫 주에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기는 힘들 터였다.

아무래도 티켓 판매가 모두 이루어지고 난 이후일 테니까.

하지만 그마저도 괜찮았다.

현재 WWF 주된 팬들은 가족 단위.

그들은 내 말에 분명히 귀를 기울여줄 터였다.

* * *

그렇게 우리가 건넨 제안을 황당하게 느끼기는 WWF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봐도 자신들이 선역으로 부킹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PWA가 선역을 맡겠다고 하다니.

보통 영상매체에서 습격자들은 안 좋게 표현되기 마련이고 방어자들은 반대로 좋게 표현되는 게 많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따라서 바트 맥센도 내 제안에 어이가 없어 웃더니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요새 감이 좀 떨어졌군. 신.]

[내기하실래요?]

[내기? 어떤 내기?]

[저희에게 다음 주 오프닝 세그먼트를 맡겨주신다면 바로 보여드리죠.]

선역으로서의 반응을.

물론 그것은, ‘승부’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바트의 성격을 알고 한 제안.

거기에 호탕하게 웃은 바트는 드디어 이길 때가 왔다는 듯 허락을 했다.

그리고 찾아온 월요일 밤의 버닝콩.

“1분 전입니다!!”

고릴라 포지션 안의 직원들이 분주하게 마지막 준비를 하는 가운데, 나는 리키타와 함께 자리에 서있었다.

붉은색 롱 헤어에 끈 나시, 롱 팬츠까지 힙하게 갖춰 입은 그녀는 아까부터 계속해서 몸을 풀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긴장돼요?”

“응?”

“전설의 귀환이군요.”

“누구? 나?”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 리키타.

“다들 반겨줄까? 나는 이 회사에 있어선 안 될 ‘헤픈 여자’였는데.”

WWF의 근거는 바로 그것이었다.

리키타가 마지막으로 한 ‘헤픈 여자’ 기믹은 전체이용가 시대에 맞지 않기에 권선징악을 보여주는 게 맞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게 아니었다고 말하면 되죠. 실제로도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은 그럴 가치가 있는 선수에요. 다들 우리의 말을 들어줄 겁니다.”

“……흐응.”

“겁먹지 말고 가자고요.”

나는 확신했다.

지금 바트 영감은 ‘어딜 우리 땅에서 너희들이 선역을 해?’라는 식으로 말하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그건 착각이다.

팬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렇기에 분명 우리의 ‘이유’를 듣고 긍정적으로 반응을 해줄 터였다.

‘그리고 방송이 나간 다음 주부터는 WWF를 끊은 팬들도 우리를 보기 위해서 다시금 채널을 돌릴 테고.’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자니 돌연 내 앞에 서있던 리키타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신.”

“네?”

그리고 슬쩍 다가온 그녀가 내 목덜미에 미소와 함께 입술을 가져다댔다.

쪽.

순간 반응도 전에 이루어진 키스.

그리고 천천히 내 가슴을 밀어내며 떨어진 그녀가 요염하게 웃어 보였다.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말이야. 나 헤픈 여자 맞아. 그게 뭐 어때. 여자가 헤프면 안 되는 법 있나?”

“……예?”

“물론 멋진 남자 한정이지만.”

뭐라고 반응을 해줘야 하지.

농담이란 건 알겠는데.

당황해 자리에 굳어져 있는 날 지켜보던 리키타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너 진짜 순진하구나?!”

“……아니, 평범한 건데요.”

“뭐야. 링 위에서는 누구보다 터프한 네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이야.”

리키타가 내 엉덩이를 때렸다.

“성희롱입니다.”

“너도 하던가.”

살랑살랑.

“…….”

“아가씨한테 이를 거지만.”

“아니, 그거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 저한테 이런 행동을 하신 거예요?!”

“왜?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응큼한 걸 해야 한다는 법은 전혀 없잖아?”

“…….”

아, 새삼 알게 되었다.

리키타는 태도 불량 시대의 레전드.

동시에 사생활에서 수많은 남자 선수들과 염문을 뿌린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링 위에서 해야 하는 것도 별반 다르지는 않고.”

“……아, 예.”

“신 선수! 준비해주세요!!”

바로 그때, 들어갈 준비가 끝났는지 음향 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심호흡을 하고 섰다.

나는 이제부터 PWA의 대표로 나가서 리키타를 불러내는 역할이었다.

그러자니 이번에는 내 등을 퍽 소리가 날 정도로 힘차게 때리는 그녀.

“좋아! 오늘 한번 해보자고!!”

“…….”

네,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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