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17화 (317/634)

317.

월요일 밤의 버닝콩.

오랜만의 귀환이었다.

쇼의 오프닝이 끝난 직후, 어수선한 관객들의 분위기가 피를 차갑게 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무척 오랜만에 한 테마가 경기장 안을 뒤흔들어 놓았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Waaaaaaaaaaaaaagggggghhhh!!]

내 음악의 인트로를 듣고는 순간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는 관객들.

나는 싱긋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바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좋았어.”

일단 호응은 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옆에 서있던 리키타와 시선을 교환한 뒤, 나섰다.

커튼을 걷고 바깥으로.

링 위.

우리의 무대 위로.

[Waaaaaaaaaaaaaaaaaggghhhh!!]

다들 왜 ‘적’인 나를 반겨주는가.

간단한 이유였다.

나는 이곳 출신이다.

홈 타운 보이가 돌아왔는데 일단 야유부터 보내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지난 방송에서도 고나 펑크가 습격을 시작했을 때는 야유가 나왔지만 리키타가 등장하자 환호가 나왔다.

그렇기에 나는 확신을 했다.

지금 이 순간.

근거가 충분하고 ACW로 넘어간 옛 팬들이 돌아온다면 우리는 분명 선역 부킹을 받을 수 있게 될 터였다.

그렇기에 난 당당하게 행동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1년이 넘어서야 이루어진 귀향.

평소처럼 가죽 재킷에 롱 팬츠, 선글라스로 무장한 나는 팬들의 환호 속에 자신만만하게 링으로 올라갔다.

물론,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놀란 표정으로 서있던 링 아나운서 릴리 가르시아가 내게 다가왔다.

“오랜만이네! 신!”

“아, 릴리. 마이크 좀 줄래요?”

모두가 각본이었다.

나를 환영하는 옛 동료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지금 받고 있는 ‘환호’가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한다.

바트 맥센은 분명히 내가 역반응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쯤 WWF 팬들에게 실망감을 느끼고 있겠지.

그렇게 음악이 끝났고 마이크를 움켜쥔 나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뭔가 좀 이상한데?”

[Waaaaaaaaaaaaggggghhhh!!]

“나는 분명히 ‘습격’을 위해서 여기에 왔는데. 다들 환영을 해주고 있군. 심지어 뭐야. 음악까지 틀어주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Thank you! Everyone! 사랑한다고! WWF는 역시 좀 그쪽하고 다른데?!”

나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말하는 ‘그쪽’이 어딘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굳이 설명을 해주자면…… 아, 여기에서 말해도 되나?”

바트에게는 이미 허락을 구했다.

ACW 측에서 이미 쇼에서 계속 WWF를 언급하며 욕하는 시점이라 굳이 우리가 점잔을 떨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해도 좋다고.

그런 결론 아래에, 나는 가감 없이 ACW에 대한 디스를 이어나갔다.

“ACW!”

[Booooooooooooooooooo-!!]

“‘틀딱 쇼’잖아? 이미 은퇴한 지 10년은 지난 영감들 데려다가 뭐하는 거야? 손주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제기랄. 뭐? 우리가 패배하고 2군 쇼 털어먹으러 갔다고? 무슨 소리야? 프로레슬링의 원조는 여기인데.”

[Waaaaaaaaaaaaaaaaaggghhhh!!]

“진 건 맞아! 솔직히 인정해. 나는 할리우드 로건에게 패배를 맛봤지.”

‘각본’ 상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내가 다음 달 27일쯤 죽을 노인네한테 딱 한 번 졌다고 질질 짜고 있어야 하나?!”

나는 손을 쫙 뻗었다.

“아니지!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이 업계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 계속 싸워야 한다는 말이야!!”

[Waaaaaaaaaaaaaaaagggghhhh!!]

“그를 위해 돌아온 거다!! 거기서 똑똑히 지켜보라고!! 로건! 이제부터 시대는 다시 나! ‘신’이 서있는 바로 이곳을 가리킬 테니까!!”

카메라에 대고 슛(Shoot).

검지손가락을 편 상태에서 BAAAM-!! 하고 총을 쏘는 동작을 취했다.

그리고 경기장이 들끓기 시작했다.

[Uoooooooohhhhh……!!]

[Ooooooooooooooooohhhh!!!]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이 내 이름을 마구 소리쳤다.

ACW라는 거대한 단체로 인해 불안해하던 그들의 마음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나는 카메라를 쏘고 있떤 검지를 틀어 입장로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전설의 음악이 시작되었다.

따단~! 딴딴!

리키타.

[So Fu-k your Rules Man-!!]

[Waaaaaaaaaaaaaaaaagggghhh!!]

투콰콰콰콰콰쾅-!!

터져 오르는 폭죽.

번쩍이는 조명.

다리를 내던지고 미친 듯이 춤을 추며 링으로 나오는 리키타. 나는 그 모습을 확실하게 지켜보았다.

내가 존경하던.

모두가 존경하는 그녀가 돌아왔다.

복수를 위해서.

* * *

[이제부터 시대는 다시 나! ‘신’이 서있는 바로 이곳을 가리킬 테니까!!]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콰앙-!!

고릴라 포지션.

“저 개자식이!!”

바트 맥센이 화를 참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분통을 터뜨리는 그를 보고 자리에 있던 모두가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가지는 않았다.

바트 맥센은 이를 아득바득 갈면서 모니터링TV가 비추는 신을 노려보았다.

모두가 공포에 떨었지만 그것을 보고 웃는 사람이 단 한 명 존재했다.

“회장님!”

바로 리키타였다.

“‘습격’이 시작됩니다!!”

그 말이 맞았다.

바트 맥센은 자신이 위험한 행동을 자처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내 단체에 내가 독을 풀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So Fu-k your Rules Man-!!]

‘네 규칙 따위는 다 엿 먹어.’

그런 가사에 맞춰 리키타가 나갔다.

그들이 링을 장악했다.

분위기는 완전히 최악이었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겠지.

WWF의, PWA의, ACW의.

북미, 남미, 유럽, 아시아.

모두가.

[지금 여기에 WWF의 전설이 돌아왔는데 반응이 이거밖에 안 나와?!]

[Waaaaaaaaaaaaaaaaaaggghhh!!]

바트가 만들어낸 왕국의 성벽에 금이 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

바트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며 고민을 거듭했다.

예상과는 달랐다.

저 팬 놈들은 그동안 멋진 쇼를 보여준 은혜도 잊고 저 멍청이의 프로파간다에 제멋대로 휘둘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내가 돌아왔다!! WWF!!]

[Waaaaaaaaaaaaaagggghhhh!!]

분명히 통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자신이 직접 허가를 내린 이상 섣불리 일을 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에 빠진 바트.

바로 그때, 한 덩치 큰 사내가 거침없이 고릴라 포지션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곧바로 바트의 앞에 서서 이 상황에 대한 해결을 요구했다.

“회장님.”

“어, 어……?”

“저걸 저대로 두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하지만.”

“제게 맡겨주십시오.”

“뭐?”

“타이밍만 회장님이 지정해주십시오. 나가서 어떻게든 해보이겠습니다.”

“……그래.”

바트가 숨을 삼켰다.

WWF는 점령된 링 위를 바라보면서 반격의 때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 * *

“나는 이 업계, 아니……!! 50년이 넘는 프로레슬링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여성 프로레슬러라고!!”

리키타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때와는 달랐다.

이전.

다시 말해 굴욕적인 은퇴식에서 리키타는 ‘자신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위민스 챔피언’이라고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때 그녀는 ‘헤픈 여자’ 기믹으로 미움을 받는 찌질한 악역이었고 그 말이 전혀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메이 영! 센세이션 셰리! 자이나! 트리쉬 스트라토! 나는 그들 모두를 뛰어넘는 최고의 선수였단 말이야!!”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위민스 레슬링의 아이콘.

향후 이어질 수많은 선수들에게 영감을 준 존재.

그것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리키타라는 프로레슬러였다.

“하지만 이 회사는 어떻게 했지?! Hoe Sale?! What A Fu-king Joke! 그래서 나는 이대로 사라질 수가 없었던 거야! 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니까!!”

“…….”

아니, 누나. 분명히 아까 전에는 스스로 헤픈 여자라고 인정하셨으면서.

어, 뭐.

현실에 있는 리키타가 아니라 링 위의 리키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인가.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빼앗아주겠어! 지금 위민스 챔피언이 있으면 나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보여줄 테니까!!”

[W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은 완전히 우리의 편이었다.

여성 관객의 비율이 높아진 덕도 있어서 팬들은 리키타라는 전설의 은퇴를 망친 WWF에게 반감마저 느꼈다.

그런 상황에서.

원래 예정대로라면 현 위민스 챔피언인 니키 제임스가 등장해서 리키타와 대립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음악은 순간적으로 나와 리키타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날카로운 기타 연주.

그와 함께 이어지는 사악한 목소리.

[Time To Play The Game……!!]

트리플H.

왕 중의 왕.

더 게임.

경기장 전체에 녹색의 조명이 번쩍였고 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Waaaaaaaaaaaaaaagggghhhh!!]

그리고 그가 등장했다.

193cm에 130kg의 거구.

링 기어에 티셔츠 한 장만을 입은 그가 나를 노려보며 천천히 걸어왔다.

황금빛 머리칼을 어깨까지 기른 그 모습은 말 그대로, 사자와도 같았다.

동시에 냉혹하고 지능적인 암살자 같은 면모까지 갖춘 그는 그야말로 시대의 정점에 서있는 레슬러였다.

‘그런데, 왜?’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아니, 뭐.

대충 알겠다.

무슨 상황인지.

‘이 영감탱이가.’

각본을 즉석에서 바꿔?

이건 완전히 슛이나 다름없었다.

이따가 꼭 한마디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헌터의 말을 기다렸다.

어쨌든 쇼는 must go on이니까.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군.”

지금의 헌터는, 평소에 점잔을 빼면서 말하던 것과는 좀 달라진 상태였다.

2007년, 부상에서 복귀한 뒤로 줄곧 ‘선역’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땠더라.’

아, 그래.

지금 헌터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배드애스한 선역 캐릭터였다. 그리고 꽤 나쁘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신, 어째서 회사를 나갔던 네가 돌아와 갑자기 행패를 부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눈 뜨고 있는 한 절대로 그렇게 둘 마음은 없다.”

“…….”

“나는 이 WWF의 챔피언으로서 네놈을 반드시 쓰러뜨리고 말겠다!”

“…….”

와, 정말 재미없네.

진짜 구닥다리다.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아마 지금까지의 WWF였다면 내 마이크워크는 이렇게 진행되었겠지.”

하지만 트리플H는 치고 나왔다.

[Waaaaaaaaaaaaaagggggghhhh!!]

말했듯 트리플H는 현재 배드애스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선역이었다.

그렇기에 이처럼 내가 취하고 있는 현실과 맞닿아있는 방식의 각본 전개를 따라올 수가 있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데. 헌터. 아니, Mr. Shovel이라고 불러드릴까?”

나는 헌터의 별명을 언급했다.

Mr. Shovel.

‘삽’이라는 뜻으로 적당히 후배에게 져줄 때도 됐는데 꼭 끝까지 이겨 먹고 마는 헌터를 비꼬는 별명이었다.

“그 별명을 슬슬 너한테 물려줄까 했었는데. 회사를 나가버리더군.”

그가 날 비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사실 좀 아쉬웠는데. 몇 년 전에 했던 유럽 투어 기억나나? 거기에서 내가 무릎에 부상을 입은 나를 반쯤 억지로 이겨먹었던 것은?”

“물론, 다 기억이 나지. 갑자기 투어 중간에 무릎이 나갔다고 엉엉 울던 네 모습이 눈에 지금도 훤한데.”

나는 낄낄거리며 기억을 날조했다.

물론, 그런 적은 없다.

하지만 적당한 왜곡과 과장이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법이었다.

“그 결과를 내보시려고?”

나는 헌터의 허리춤에 단단히 고정되어있는 황금색 벨트를 바라보았다.

WWF 유니버스 챔피언십.

“감당할 수 있겠어? 헌터.”

“그야 물론이지. 신.”

[Uooooooooooooooooohhh!!]

Face To Face.

서로 얼굴을 맞대고 선 헌터와 나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는 관객들.

지금 이 순간, 얼토당토않은 방식으로 내 섬머 수플렉스 경기가 정해지는 것 같았다.

각본에 없던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마이크에 사운드가 담기지 않도록 쥔 상태에서 헌터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쩔 겁니까?”

“글쎄.”

“원래 이거 아니었잖아요? 이거 솔직히 갑질 아닙니까? 지금 장난해요?”

“너무 깐깐하게 굴지 마라. 신. 우리로서도 너희가 너무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면 영 그림이 안 사니까.”

“들어가서 이야기하죠.”

나는 그렇게 빚을 지워두었다.

물론, 바트 맥센이 나에게 WWF 메인 챔피언십을, 그것도 다른 단체에 속한 지금은 더더욱 줄 리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걸 통해서 경기 외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여럿 쓸 수 있을 것 같았으니 괜찮을 듯했다.

물론 그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하는 관객들은 나와 트리플H의 경기가 성사된 것에 마냥 기뻐하고 있었다.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이거 원.

앞으로 굉장한 일이 벌어지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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