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21화 (321/634)

321.

사실, 랜스 오튼은 원래부터 프로레슬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밴드 오브 브라더’라는 전쟁 영화를 보고 환상에 빠져서 곧바로 미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리고 그건 최악의 선택이었다.

영화는 영화였을 뿐.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유분방했던 오튼은 해병대에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불명예 제대’를 하고 말았다.

미국은 군인을 크게 존중하는 만큼, 불명예 전역자에게는 무척 가혹했다.

선택에 대한 책임도 지지 못하는 머저리로 낙인이 찍혀서 어디를 가더라도 이 일로 욕을 먹을 것이 뻔했다.

막말로 근처 마트 캐셔 일조차 구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인식이 안 좋았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었다.

프로레슬러가 될 수밖에.

집안에서 내놓은 자식이 되어버린 오튼은 그렇게 해서 선수가 되었다.

그렇기에 사실, 다른 선수들처럼 뭔가 원대한 꿈을 가지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스트레스에 연약한 편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을 때는 여유롭고 유쾌한 면도 있지만, 그게 없을 때는 한없이 우울해졌다.

해병대에서 교관에게 개긴 것도 사람을 가혹한 환경에 몰아넣는 훈련이 오튼과는 상극이었기 때문이었다.

커리어 초창기에도 그랬다.

그래서 오튼은 헌터와 플레어에게 살아남는 방법을 배워 일부러 다른 선수들과 기 싸움을 하면서 지냈다.

락커룸 내에서는 과거의 존 마이클스에 버금가는 개망나니라는 평가를 들었지만, 그래도 편해서 괜찮았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못했다.

GCW에서 콜 업 된 한 동양인 남자가 행한 참교육(?)으로 인해서였다.

락커룸 내에서는 나름대로 편했지만 선수로서는 불안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오튼은, 그 곁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면서 선수로서 성장했다.

전생보다 훨씬 더.

전생에도 WWF의 레전드 중 하나로서 대우받을 재목이었던 그는 현재는 그보다 훨씬 더 성장하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옆에 있는 사람 덕이었다.

팬들의 반응이나, 자신이 역사에 뭔가를 새긴다거나……. 원래는 그런 건 절대로 흥미가 없었던 그였는데.

지금은 좀 달랐다.

ACW의 존재가 주는 압박감, 거기에 더해 이 회사에 대해 느끼는 책임감.

마지막으로 그동안 함께해온 동료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충실성까지.

프로레슬링을 통해 오튼은 20대 초반의 애송이가 아니라 사회성을 가진 자랑스러운 어른으로 성장했다.

……물론, 그 사회성이 발휘되는 건 업계인들뿐이고, 바깥으로 나가면 다시금 망나니처럼 굴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 그는 여느 때와 달리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그렇게 생각해서 신에게 매치에서 뭐든지 해도 좋다고 말을 했더니.

“오, 그래? 너 뜨거운 거 잘 참냐?”

“……? 아니.”

“야, 테이블 위에 불을 지른 다음에 거기다 네가 R.K.O.를 쓰는 거야. 진짜 화끈할 것 같지 않냐?”

“뜨거울 텐데.”

“테이블이 부서지면서 같이 불도 꺼질 테니까 생각보다는 괜찮을 거야.”

생각이 변했다.

역시 신은 미친놈이었다.

일반인과 생각이 다르다.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멋지니까 해보자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쓰리 스테이지 오브 헬.

세 개의 경기를 연속해서 하면서 마지막에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선수가 월드 챔피언에 오르는 경기 방식.

보통은 일대일 방식일 때 나오는 경기였지만 이번에는 트리플 스렛이다.

신, 트리플H, 랜스 오튼.

분명히 몸의 부담은 덜어질 테지만, 그만큼 더 하드한 범프를 수행하겠지.

하지만 신도 다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경기를 제안한 것이었다.

“헌터와 바트에게 인정받아야지.”

“……그전에 죽겠는데.”

“걱정 마. 안 죽으니까 우리 옛날에 하드코어 매치했을 때 기억나냐?”

“그야 물론이지. 그때 등에 압정 박혔던 거, 아직도 꿈에 나오거든.”

“그때도 안 죽었잖아?”

“……설마 그것도 할 거니?”

오튼이 불안해하며 물었다.

“그럴 리가. 아무리 그래도 WWF 페이퍼뷰는 전체이용가잖아. 힘들겠지.”

“그, 그러면 불 테이블도 힘든 거 아냐? 그것도 충분히 하드코어한데.”

“그건 괜찮아. 피 안 나잖아.”

“…….”

오튼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신은 확신하고 있었다.

불을 피운 테이블 위에 기술을 시전하는 범프 정도는 충분히 전체이용가 등급에서도 할 만한 퍼포먼스였다.

미국의 영상물에서 ‘폭력’으로 여겨지는 요소는 크게 봤을 때 두 가지.

‘피’와 ‘총’이었다.

그러므로 WWF에서도 시청률 등급을 전체이용가로 변경한 뒤에는 이마에 피를 내는 블러드 잡을 금했다.

말하자면, ‘불’을 사용하는 건 어디까지나 서커스적인 요소로서 생각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한숨을 내쉰 오튼은 신이 하려는 행동을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결국, 하드하게 갈 거란 말이냐?”

“그래야 증명이 되지.”

신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증명한다.

무엇을?

탑에 올라갈 자격이 있는 선수임을.

누구에게?

팬과 수뇌부에게.

어째서?

그렇게 해야만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고, ACW를 추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로써 이 삼파전의 균형을 다시금 갖춘다.

그게 신이 바라는 바였다.

“알겠다. 알겠어.”

오튼은 별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 자신도 원하는 바이기는 했다.

행여나 이 회사가 무너진다면 자신으로서도 갈 곳이 마땅찮았으니까.

거기에.

옆에서 이처럼 계속 자신을 도와주고 있는 신을 생각해서라도 절대 싫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문제는 하나.

“저기 그런데.”

“응?”

“마지막 경기는 어떻게 할 거냐? 뭔가 더 사악한 수를 생각하는 건…….”

“그건 일반 매치로 가야지.”

“뭐? 어째서?”

신이라면 분명히 악마 같은 발상을 할 거라고 생각했던 오튼은 예기치 못한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은 피식 웃었다.

“간단한 이야기야.”

이 경기의 목표는, 오튼을 최대한 강력한 선수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만 팬들이 지금 오튼에게 가진 기대감이 충족될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일반 매치가 가장 적절했다. 다른 매치에는 불순물이 섞여서 행여나 다른 말이 나올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경기는 그러기 마련이야. 우리가 하는 게 결국 그거잖아.”

프로레슬링.

그렇기에 그 묘미를 가장 살릴 수 있는 일반 경기를 마지막에 배치한다.

“분명 잘 될 거야.”

신은 확신에 차 대답했다.

* * *

그렇게 계획을 잡은 우리는 마지막으로 WWF 쪽에 각본을 제출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허가는 나왔다.

왜냐면 칼자루는 내가 쥐었으니까.

애초에 그쪽에서 먼저 각본을 어기면서 빚을 지워둔 상태였기에, 내가 딱히 설득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나는 그냥 이렇게 말했다.

이쪽과 대면하자 또 다시 분노를 참아내기 시작한 바트를 앞에 두고서.

“오튼이 이기는 걸로 해주시죠.”

“하지만 놈은…….”

“징계 받았잖습니까. 믿어주세요.”

“그냥 헌터에게 지면 안 되겠나?”

“예, 안 되겠는데요.”

“자네도 좀 물러서줘야…….”

“아니, 그렇게 물러서서 그쪽이 각본 어기고 헌터 내보낸 거 참았잖습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끄그그극……!! 시이이이인!!”

소리는 질렀지만.

바트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제안하는 각본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헌터는 전혀 납득하지 못했고 계속해서 구시렁거렸지만 말이다.

그래도 난 그걸 이해했다.

헌터는 말하자면 프로의식의 화신과도 같은 사람이라서, 내 말을 듣고도 아직 오튼을 믿을 수는 없는 거겠지.

섬머 수플렉스를 앞둔 버닝콩.

오늘 우리 세 사람은 링 위에 나가 쓰리 스테이지 오브 헬에서 치를 경기 세 개를 랜덤으로 뽑을 예정이었다.

물론, 미리 다 정해두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우연성에서 오는 드라마를 보여주기 위한 링 세그먼트.

차례대로 나와 헌터가 나오고.

[I Hear Voices In My Head-!!]

마지막으로 오튼이 자신의 테마 음악과 석양 같은 주황색 조명 아래에 천천히 링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마이크를 먼저 쥔 건 헌터.

“이거 원,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랜스. 정말 잘 모르겠어.”

그가 오튼을 바라보았다.

“네가 돌연 이 경기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하다니 말이야. 이 벨트를 원하나? 그렇다면 어디 한번…….”

“헛소리는 집어치워. 헌터.”

[Uooooooooooooooohhhhh!!]

오튼은 분명한 반응을 얻었다.

‘그’ 헌터를 말로서 제압하고는 벨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링 위에 서있는 우리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내가 관심 있는 건 오직 하나야. 너와 신, 두 명을 이번 섬머 수플렉스에서 완전히 박살 내는 거지.”

“할 수 있겠어?”

내가 거만하게 물었다.

“랜스 오튼~. 말은 좋지. 3세대 프로레슬러로서 조각 같은 몸에 멋진 피니시 무브까지. 환상적인 레슬러야.”

나는 팬들이 인식하고 있는 녀석을 그렇게 입에 담음으로써, 그것을 부수기 위한 밑작업을 해나갔다.

“하지만 너. 내가 여기 있었을 때도 제대로 이겨본 적이 없잖아? 매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이겼었지.”

“……그랬었지. 틀린 말은 아니야.”

오튼이 그걸 솔직하게 인정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평소 같았다면, 악역 랜스 오튼이었다면, 분명히 아니라며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변호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오튼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거기에서 팬들은 신선함을 느꼈다.

PWA의 참가와 랜스 오튼의 약진으로 버닝콩의 시청률은 다시 600만을 넘겨 ACW를 추격해나가고 있었다.

오튼이 맡은 역할은 막중했다.

하지만 녀석은 잘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왜 과거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거지? 내가 며칠 전 네게 R.K.O.를 먹였을 때 완전히 기억이 없으셨나?”

[Waaaaaaaaaaaaaaagghhhhh!!]

“널 이 매트 위로 꽂았을 때 정말로 환상적인 기분이었지! 신! 독사에게 먹힌 오소리 새끼처럼 축 늘어져서 움직이지 않는 널 보는 건 즐거웠어!”

녀석이 사악하게 웃었다.

“헌터! 너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난 더 이상 네 어깨에 걸린 그 황금 어쩌고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흥분해 링 위를 연이어 맴돌던 오튼이 이어 중앙의 테이블로 다가섰다.

그 위에는 상자가 있었고.

“그리고 생각했지. 이 R.K.O.를 링 위가 아니라 바닥에서 쓰면 얼마나 더 큰 고통을 너희에게 줄 수 있을까?”

상자 안에는 번호가 적혀 있는 공이 여러 개 들어있는 상태였다.

오튼이 상자 안에서 공을 꺼냈다.

번호는 3번.

그러자 입장로 위로 설치된 초대형 스크린에서 영상이 재생되었다.

뚜르르, 뚜르르르…….

미친 듯이 돌아가는 룰렛.

그것이 3번.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를 가리켰다.

[Waaaaaaaaaaaaaaaaagggghhh!!]

“멋지군.”

씨익 웃어 보이는 오튼.

그 바람대로 링 밖에서 치르는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가 1번으로 나왔다.

사실 이 ‘스트리트 파이트’는 상당히 근거가 있는 매치 선정이었다.

링 바깥에서 안으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각각 다른 장소에서 세 개의 경기를 치르는 게 이 쓰리 스테이지 오브 헬의 묘미였다.

하지만 그게 우연인 척.

미소를 지은 나는 마이크를 쥐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바람대로 되셨군. 오튼. 그러면 나도 여기에서 내 소원을 말해볼까?”

[Waaaaaaaaaaaaaaagggghhhh!!]

“아니, 그전에. 원래 뱀이란 게 그런가? 나 같은 남자를 앞에 두고 비겁하게 목을 뜯는 정도밖에 못하나?”

나는 상자 안으로 손을 넣었다.

“항상 그렇더군. 너는 매번 날 끝장내지 못하고 링 밖으로 도망쳤지. 내가 일어서는 게 두려웠던 모양이야.”

[Uooooooooooooooooohhhhh!!]

여기서 일단 포인트를.

그리고 ‘복선’을.

“그러므로 나는, 네가 도망치지 못하는 경기 방식이 나왔으면 좋겠군.”

상자에서 나온 공은 6번.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다시 돌아간 룰렛이 스틸 케이지 매치를 가리켰다.

[Yeeeeeeeeeeeeeaaaaahhhh!!]

“C’mon!!”

기가 막힌 ‘우연’에 나는 관객석의 팬들을 돌아보며 반응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은 가장 마지막.

챔피언에게로 향했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를 그저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던 헌터.

그가 상자에서 공을 뽑았다.

마지막 경기는 래더 매치.

거기에 대해서 그가 말했다.

“왕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법.”

King Of Kings.

왕중 왕.

그것이 트리플H.

“경기가 끝났을 때, 나는 분명히 이 링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너희 패배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거다.”

멋진 말이었다.

……선역으로서는 딱히 어울리지 않는 대사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게 세 개의 경기를 선발한 우리들의 사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Ooooooooohhh……!!]

팬들 역시도 그것을 느꼈는지.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각자 팬들로부터 챈트가 쏟아졌다.

분명히 이질적인 경기다.

나도 선역.

헌터도 선역.

오튼도 선역.

세 선역이 서로를 증오하며 확실히 이겨야만 할 이유를 가진 채로 서있는 가운데, 먼저 행동한 것은…….

바로 나였다.

쩌억-!

지금까지 당해온 게 있으므로.

여기서 경기 직전 마지막까지 당해주기만 하는 것도 그림이 안 좋다는 의거에 따라서 나온 각본이었다.

링 위에 서있는 세 명의 카우보이 중 살아남는 것은 바로 한 사람뿐.

그건 분명 챔피언이 되어야만 했다.

오튼의 몸이 기울었다.

쿵-!

바닥에 쓰러진 녀석.

그리고 다가오는 헌터.

배를 걷어차여 허리를 숙인 내 머리를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넣은 헌터가 그대로 피니시 무브를 선사했다.

투-콰앙-!!

페디그리.

전신이 지릿지릿 대는 통증에 링 바닥에 뻗은 나. 그리고 그 옆의 오튼.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듯 벨트를 한 손에 든 채 포즈를 취하는 헌터.

그렇게 경기 직전, 마지막 세그먼트는 챔피언의 승리로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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