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22화 (322/634)

322.

더운 여름 중에서도 가장 더운 날.

그때, 더위를 날려버리겠다는 의미로 열리는 게 바로 WWF의 4대 페이퍼뷰 중 하나인 섬머 수플렉스였다.

대략 매해 15만의 관객들을 경기장으로 불러들이는 이 쇼는, ACW의 출범 이후로 분명 적자를 각오했었다.

3년 전에 미리 대여해둔 경기장이라 어쩔 수 없이 써야만 했지만, 티켓 매진이 안 이루어지는 것도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PWA의 개입으로 인해 WWF는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티켓은 완판되었고, 당일 개최된 ACW에 크게 밀리지 않는 선에서 페이퍼뷰의 판매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였다.

‘덕분에 이득도 많이 봤고.’

하지만 오늘 열리는 이 섬머 수플렉스는 어디까지나 시작점에 불과했다.

WWF가 ACW를 추격할 시작점.

그 쇼가 시작되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섬머 수플렉스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해설자들의 말과 함께 처음으로 링에 등장한 것은 PWA의 선수였다.

바로 리키타.

[So Fu-k Your Rules Man!!]

은퇴 전 니키 제임스에게 맛봤던 굴욕을 지워내기 위해 그녀가 돌아왔다.

그 까다롭던 팬들이 자신을 인정하게 만들고, 여성 레슬링계의 아이콘 중 하나로 우뚝 선 카리스마적 존재.

[Waaaaaaaaaaaaaaaaaaaagghhh!!]

그 경기는 완벽했다.

리키타는 링에서 멋지게 니키를 제압했고 다시금 벨트를 되찾았다.

특히나 저각으로 떨어지는 마지막 ‘리타 썰트’는 그야말로 레슬러로서 그녀의 진수를 멋지게 설명해주었다.

Hoe Sale이 마지막이 아닌.

더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건 과정이 되었고, 그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그랬다.

오늘의 패배는 미래를 위한 초석.

러셀이 내 생각대로 멋지게 한 사람의 악역 메인 이벤터로서 ACW에 대항할 수 있는 카드가 되어준 것처럼.

오튼도 그럴 터였다.

그렇게 페이퍼뷰가 진행되었고 각 경기들이 멋지게 제 역할을 해냈다.

역시 선수들은 문제가 없었다.

그들은 각자 역할에 맞춰서 멋지게 경기를 치러냈고 그것은 세미 메인이벤트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숀 시나가 승리합니다!! 챔프가 다시금 유니버스 챔피언에 오릅니다!]

The Champ.

[Waaaaaaaaaaaaaaaagggghhhh!!]

[Boooooooooooooooooooooo-!!]

야유도 있고, 환호도 있고.

하지만 역시.

러셀이 잘 받쳐주고 있었다.

거기까지 끝나고 경기의 메인이벤트.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도 다 풀어뒀고.

멋진 경기를 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나는 고릴라 포지션이 아니라 반대편에 있는 실내 주차장 쪽을 향해서 걸어갔다.

“어이, 신!”

누군가 불러 돌아보자 부커가 자리에 서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Break A Leg!”

“Of Course!”

행운을 빌어주는 말에 싱긋 웃은 나는 그 외에도 선수들의 격려를 받았다.

“잘해라. 꼬마.”

테이커.

“기대하마.”

레이.

“보고 배울 테니까.”

바티스타까지.

그 외에도 다양한 선수들이 이제는 다른 편이 된 나를 그런 것과 상관없이 업계인으로서 받아들여주었다.

‘왠지 코끝이 찡한데.’

하지만 그조차 양분으로 삼았다.

프로레슬러에게 있어서 경기란, 말하자면 성과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특히나 이 페이퍼뷰의 경기는 더 그랬다.

결국 모든 대립의 끝은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위험한 것도 많이 할 예정이었고, 다른 선수들이 걱정을 해주고 있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난 괜찮았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우리를 따라다니며 경기를 촬영할 카메라 감독과 직원들, 선수들이 있는 것이 보였다.

가볍게 몸을 푸는 헌터.

왠지 덜덜 떨고 있는 오튼.

마지막으로 내가 등장하자 헤드셋을 끼고 서있던 바트가 말을 시작했다.

“2분 남았다.”

“준비 끝났습니다!”

“너희는 좀 어떠냐.”

직원들의 말에 바트는 나와 헌터, 오튼을 돌아보며 한마디씩 건넸다.

“아주 좋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헌터.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신, 너는?”

“오줌 좀 싸고 와도 됩니까?”

“1분 안에 돌아와라.”

“힘든데. 용량이 커서.”

“그럼 그냥 있어.”

눈썹을 찡그리는 바트.

하지만 이 대화에 오튼이 낄낄 웃으면서 조금 긴장이 풀어진 것 같았다.

시간이 흘렀다.

근처의 모니터링TV에서 시리얼 광고가 나오는 가운데, 직원들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기를 점검했다.

그리고 광고가 끝난 뒤.

“고고고!!”

[섬머 수플렉스에 돌아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카메라가 해설자들을 비추자 다들 요란하게 자리에서 퇴장했다.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

경기장 곳곳의 기물을 이용해서 싸우는 룰로. 말 그대로 길거리 싸움에 가까운 경기 방식이었다.

그 외에는 상대에게 항복이나 핀 폴을 따내면 이기는 구조.

“순서는 신, 오튼, 헌터입니다!”

카메라 감독의 지시가 내려왔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 꼿꼿이 서있는 내 발 쪽으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아래에서 위로 잡는 연출.

하지만 여기에서 평소처럼 신호를 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테마 음악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카메라가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그게 허리 부근에 도달할 때쯤 나는 입고 있던 가죽 재킷을 벗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선글라스를 벗었고.

[WAAAAAAAAAAAAAGGGGHHH!!]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환호가 들려왔다.

사실 오튼을 밀어준다는 목표 아래에 각본을 실행해왔지만, 나 역시도 팬들의 큰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기대에 맞춰, 예정했던 대로 카메라를 붙잡은 뒤, 돌렸다.

옆으로.

[I Hear Voices In My Head-!!]

테마곡이 바뀌며, 껌을 씹고 있던 오튼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녀석은 나에 비하자면 완전히 헐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경기복이었다.

심지어는 재킷이나 티셔츠처럼 입장복도 없이 달랑 삼각팬티 스타일의 경기복 하나만 입고 링에 나왔다.

하지만 그래도 잘 어울렸다.

정강이까지 뒤덮는 레슬링 부츠, 니패드와 양쪽 팔목에 테이핑을 하고.

근육질의 팔을 뒤덮고 있는 해골 문신이 확실히 카리스마가 있었다.

날 바라보며 웃는 오튼.

잠시 후, 다시 카메라가 돌았다.

[Time To Play The Game-!!]

허리춤에 황금색 월드 챔피언 벨트를 차고 있던 헌터가 팔을 힘차게 위로 뻗으며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러면서 입 안에 머금고 있던 생수를 힘차게 머리 위로 뿜어냈다.

푸우우웁-!!

특유의 물쇼.

거기에 맞춰 오튼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헌터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아직 음악이 끝나기도 전.

“큭?!”

오튼이 먼저 헌터에게 태클을 먹이며 쓰러뜨렸고 나는 그런 오튼의 머리채를 잡고 당기며 혼란이 빚어졌다.

역시 트리플 스렛은 이런 맛이지!

……팬들 중 누군가 본다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은 오프닝.

쓰러진 채 순간 정신을 못 차리는 헌터의 허리에서 벨트를 잡아든 나는 그 끝을 잡고 힘차게 휘둘렀다.

쩌억!

“크하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헌터.

이어서 다가온 오튼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양철 쓰레기통을 들고 그걸로 일어서려는 헌터의 머리를 내리쳤다.

퍼억-!!

찌그러지는 헌터.

일반적인 경기 방식이 아니었다.

보통 트리플 스렛의 방식도 아니고, 스트리트 파이트는 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하기로 했다.

초장부터 풀 스로틀.

그렇게 순간적으로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오튼과 나는 이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나는 벨트를 내던졌고.

오튼 역시 쓰레기통을 던졌다.

그리고 우리는 쓰러진 헌터를 남겨둔 채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오튼은 나와 서로 몸이 닿기 직전에 뒤로 돌아서 그대로 머리통을 붙잡으려고 들었다.

R.K.O.의 시전 자세.

하지만 나도 호구는 아니다.

그 등을 밀쳐낸 나는 곧바로 오튼의 오금을 걷어차며 무릎을 꿇게 했다.

그리고 찾아왔다.

Stinger Time.

다리를 걷어차며 자연스레 오튼의 앞으로 이동한 나는 그대로 뒤로 돌아 힘차게 뛰어올랐다.

무릎을 들어 올리는 순간.

“……!!”

오튼이 뒤로 쓰러지면서 피해냈다.

순간적인 피니시 무브 공방.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본다면 분명히 혀를 내두를 만한 장면이었다.

오튼의 R.K.O. 그리고 내 스팅거.

두 기술 모두 들어가기만 한다면 상대에게서 당연하다는 듯 쓰리 카운트를 빼앗을 수 있는 강한 기술이다.

평소의 오튼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수준 높은 공방. 그건 우리가 합을 맞춰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오튼의 능력치를 최상으로 끌어낼 수 있는 남자였다.

그렇게 한차례 긴장감 넘치는 순간이 지나가고,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순간 숨을 몰아쉰 순간이었다.

쿵-쿵-!!

큰 소리에 옆을 돌아본 나는 이쪽을 향해서 달려오는 헌터를 발견했다.

그 손에는 그의 시그니처 웨펀이라고 할 수 있는 슬레지 해머가 들린 채였다.

공사 현장 등에서 사용하는, 사람을 향해 휘두르면 정말 죽는 흉기.

사실 고무로 만든 특수제작품이지만.

헌터는 그 머리 부분을 손으로 감싸 쥐고는 내 복부를 향해 힘껏 찔렀다.

퍼억-!

“커흑?!”

하지만 그조차 아팠다.

순간 중심을 잃고 쓰러진 내 앞에 선 헌터가 다시 한 번 해머를 들었다.

하지만 직후, 오튼이 달려들어 헌터를 밀어내며 다시금 난전이 빚어졌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찔해진 나는 옆에 있던 뭔가를 붙잡고 일어섰다.

우드득!

그때, 붙잡은 그것이 순간적으로 꺾이면서 나는 재차 중심을 잃었다.

“제기랄…….”

뭔가 싶어 올려다보자. 하얀색의 고급스러운 세단이 서있는 게 보였다.

바트 맥센의 밴틀리였다.

그리고 내가 붙잡은 건 그 백밀러.

“…….”

이를 어쩐다.

손에서 덜렁거리는 그걸 멍하니 보고 있자니 이내 헌터를 제압한 오튼이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눈은 경악에 물든 채.

내 머리를 붙잡고 바싹 붙은 녀석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야, 이거 각본이냐?”

“아닌데. 커버해보자.”

“어떻게?”

“……박살 내서.”

“뭐?”

의아해하는 오튼.

하지만 내가 계획을 설명하고 책임을 진다고 말하자 군말 없이 응했다.

아니, 원래 바트의 밴틀리는 여기가 아니라 다른, 어, 좀…… 프라이빗한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게 맞지 않나?

어쨌든 내가 이 백밀러를 부수면서 순간 다시 넘어졌으니, 이걸 실수가 아니도록 포장을 해야만 했다.

이 경기는 완벽해야만 한다.

내가 백밀러를 부순 것도 하나의 암시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선 나를 향해 야구방망이를 든 오튼이 다가왔다.

녀석이 그걸 힘차게 휘둘렀다.

쩌억-!!

금이 가는 유리창.

튀어 오른 파편이 박혔는지 순간 어깨에 깜찍한 통증이 스쳤다. 나는 그걸 무시하고 오튼의 공격을 피했다.

‘바트가 비명 지를 게 훤하군.’

어쨌거나 우리는 비싼 밴틀리를 중심에 둔 채로 길거리 싸움을 이어갔다.

오튼이 다시 휘두르려던 방망이를 뺏어서 손에 쥔 나는 반대로 힘차게 금이 가있던 유리창을 까부쉈다.

빠각-!!

부서지는 유리창.

흘러내리는 바트의 눈물!

하지만 연출적으로는 완벽하다!

“크아아악!!”

우리는 경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부수는 차가 밴틀리인 것도 모르고 서로를 박살 내기 위해서 싸워댔다.

그리고 다가온 헌터까지 합류해 슬레지 해머를 마구 휘둘러대는 탓에 차량의 수리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거기에서 나는 트리플H라는 선수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심을 느꼈다.

“이 멍청한 자식들이…….”

순간 황당하다는 듯 말했지만.

그 역시도 여기에 참여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이 드라마, 경기, 퍼포먼스에 완벽하게 섞여들어 주었다.

프로의식의 완전체.

그리고 아마 밴틀리 수리비의 3분의 1을 내줄 멋진 남자!!

그와 함께 우리는 첫 번째 경기인 스트리트 파이트를 계속 이어나갔다.

기술보다는 각종 연장.

기술을 쓸 때는 앞선 밴틀리처럼 주변의 온갖 사물들을 파괴해가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싸워나갔다.

승부의 행방은 묘연했다.

누구 하나가 기세를 잡으려고 하면 다른 두 사람이 달려드는 탓에 체력만 계속해서 소비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배정된 경기 시간은 40분.

즉, 첫 경기의 결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계획대로 우리는 링 쪽으로 이동하면서 싸웠다.

그리고 입장로로 나왔다.

고릴라 포지션이 아니라 그 옆을 통해서 나와서 관객들 앞에 나타났다.

[Waaaaaaaaaaaaaaaaaaaggghhh!!]

순간 쏟아지는 엄청난 환호.

기다렸다는 듯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의 이름을 마구 외쳐댔다.

SIN!!

Triple H!!

Orton!!

그런 와중, 먼저 나온 나와 헌터는 계속해서 싸움을 벌여대고 있었다.

목표물은 하나.

입장로 옆에 쌓여 있는 드럼통.

슬레지 해머를 꿋꿋하게 들고 있던 헌터는 그 리치 때문에 근거리까지 파고든 나를 제대로 공격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주먹과 찹으로 헌터를 드럼통까지 몰아붙이던 나는 이내 체력이 다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차례가 왔다는 듯.

슬레지 해머를 드는 헌터.

[Uoooooooooooooohhhhh!!!]

하지만 킥은 해머보다 빠르다.

쩌억-!!

허리를 당기며 슈퍼 킥.

옆으로 밀어차는 기술에 넘어간 헌터가 드럼통에 그대로 부딪쳤다.

콰콰콰콰쾅-!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가짜 드럼통이 무너지며 헌터가 거기에 깔렸다.

“허억, 헉…….”

첫 경기의 끝이 다가온다.

그걸 느끼며 뒤를 돌아본 나는 바로 뒤쪽에 깔린 테이블 하나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순간 의아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든 나는 테이블에서 풍겨오는 알코올의 악취에 눈썹을 찡그렸고.

티잉-!

시끄러운 경기장 안에서도 그 소리는 그 어떤 때보다 훨씬 잘 들렸다.

라이터에 불이 붙는 소리.

오튼이 손에 쥐고 있던 불을 내던졌고 나무 테이블에 불이 붙었다.

화르륵-!

[Uoooooooooooooooooohhhh!!]

경악하는 관객들.

WWF에 잠시 하드코어가 돌아왔다.

불 건너편에 서있던 오튼이 순간적으로 불안감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내가 소리쳤다.

“오줌 마렵냐?!”

그 말에 녀석이 드디어 웃었다.

좋아.

Man On Fir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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