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일렁거리는 불꽃.
팬들의 의식이 거기에 집중되었다.
나무로 된 테이블은 오랫동안 불꽃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기에 우리는 최대한 빨리 끝내야만 했다.
오튼과 나는 윗부분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테이블을 사이에 둔 채 이리저리 오가며 계속 싸움을 벌였다.
열기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내 이마를 후려치던 오튼의 손이 미끄러질 정도였고, 놈이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정말 미친 거 아니냐?!”
[Waaaaaaaaaaaaaaaaaggghhhh!!]
환호 속에 묻힌 목소리.
내가 비틀거리면서 대답했다.
“재밌겠지?”
그리고 슈퍼 멋질 거다.
내 말을 들은 오튼은 슬쩍 한숨을 내쉬더니 곧바로 불꽃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내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이어 내 쪽으로 뛰어오른 녀석이 독사처럼 힘차게 머리통을 붙잡았다.
나 역시도 번쩍 뛰어올랐다.
R.K.O.
오튼과 날 붙잡아 연결된 부분이 그대로 힘차게 불꽃을 향해서 추락했다.
고기 굽는 냄새가 난다 싶더니.
투콰앙-!!
의식이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어찌나 아팠는지, 곧바로 돌아왔다.
“크하악?!”
“Fu-king Sh-t……!!”
자동으로 비명이 나왔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관객들의 큰 환호 속에서 오튼과 나는 몸을 비틀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테이블이 부서지는 충격에 불꽃이 꺼졌고, 이어서 옆에 서있던 심판들이 달려와 우리 상태를 확인했다.
“신, 신! 괜찮나?!”
“……끝나고 Korean BBQ 가자.”
고기 냄새가 죽여주는군.
안면이 후끈거리는 통증에 슬쩍 눈을 뜬 나는 바닥에 엎드린 오튼의 등이 붉게 달아오른 것을 발견했다.
녀석이 보호해주었다.
원래 R.K.O. 자체가 상대의 머리를 자기 어깨에 걸치면서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여주는 기술이긴 했으나.
방금 오튼은 내 머리를 좀 더 깊숙이 잡음으로써 불길이 얼굴에 직접 닿지 않도록 막아주었다.
‘자식이.’
누가 누굴 걱정해?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고맙긴 했다.
‘오늘 KBB는 내가 쏘도록 하마.’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오튼이 정신을 차리고 내게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This Is Awesome!!]
짝! 짝! 짝짝짝!
어썸 챈트가 벌써 나왔다.
그 말에 정신을 차린 오튼이 천천히 내게 다가와 그대로 핀 폴을 했다.
[1……!]
“괜찮냐?”
“끝나고 고기 먹자.”
피식 웃음이 나오는 한마디.
[2……!!]
[3……!!!]
그렇게 첫 경기가 끝났다.
[Waaaaaaaaaaaaaaaaggghhhh!!]
승자는 랜스 오튼.
[첫 번째 경기인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는 랜스 오튼이 승리했습니다!!]
링 아나운서의 외침.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다가오던 헌터가 오튼의 등을 확인해보고는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챈 것 같았다.
“랜스, 괜찮나?”
“별거 아님다.”
너스레를 떠는 오튼.
그 말에 헌터의 눈빛이 변했다.
자신과는 다른 프로의식을 인정하듯 그가 천천히 오튼의 뺨을 쓰다듬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경기 중이란 걸 깨달았다.
쫘악-!
뒤늦게 싸다구로 전환.
순간 나가떨어진 오튼이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자니 기다리고 있던 심판이 녀석의 등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신, 좀 도와줘야겠다.”
“그러시죠.”
다음 경기는 스틸 케이지 매치.
헌터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그대로 링 위로 올라갔다.
그때쯤 내려온 철장이 링 위를 감쌌고, 진행 요원들이 각 코너 기둥과 철장을 케이블 타이로 연결했다.
그로써 완성되는 전사의 투기장.
그 위에 선 헌터가 날 커버했다.
[1……!]
[2……!!]
겨우 빠져나왔다.
거기에 순간적으로 미소를 지은 헌터가 뒤로 둘러나 날 기다려주었다.
이게 지금의 헌터.
선역 트리플H.
야성적인 몸과 외모를 자랑하는 그는 확실히 팬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Waaaaaaaaaaaaaaagggghhhhh!!]
원래 계획에서 좀 달라졌지만.
이대로 좀 심리전을 걸듯이 시간을 끌며 오튼이 돌아오는 걸 기다리자.
R.K.O.의 충격이 아직 채 빠지지 않았던 나는 로프를 붙잡고 일어섰다.
그러자니 과장된 동작으로 달려오는 헌터. 난 그걸 옆으로 피해냈다.
찰그랑-!!
철장에 부딪친 헌터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거기에서 나는 그 경기 스타일을 떠올리고는 순간 숨을 몰아쉬었다.
올드 스쿨.
화려하고 빠른 공방 위주의 현대 레슬링이 아니라, 느릿느릿하고 심리전 위주로 싸우는 고전적인 스타일.
그런 상황에서 헌터는 먼저 철장에 부딪치면서 굴욕적인 셀링을 해줬다.
그 뜻은 간단했다.
우리를 인정했다는 뜻이었다.
‘좋아.’
나는 그를 믿고 움직였다.
곧바로 철장을 타고 올라갔다.
[Waaaaaaaaaaaaaaaaagggghhh!!]
15만이 넘는 관객들이 날 보기 위해 일어선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슬쩍 돌아보자, 코를 움켜쥔 채 다가오는 헌터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내 발목을 움켜쥐었고.
곧바로 뒤로 돌아 떨어져 내린 나는 헌터의 어깨 위에 목마를 타듯 앉았다.
한순간 그와 나의 감각이 공유됐다.
이 자세.
그리고 왼쪽 뒤꿈치로 헌터의 옆구리를 툭 건드리는 하나의 신호.
거기에서 우리는.
도합 반 세기가 넘게 프로레슬링을 해온 우리는, 한 심상을 공유했다.
이어진 행동은 간단했다.
몸을 비틀며 그대로 뒤로 떨어진 나는 종아리로 헌터의 머리를 감쌌다.
그대로 내던졌다.
콰앙-!
허리케인라나.
내 발이 주는 힘을 따라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한 헌터가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Waaaaaaaaaaaaaaggghhhh!!]
팬들의 환호 속에 고개를 든 나는 뒤를 이어 오튼이 철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광경을 목격했다.
한순간 쓰리 카운트를 빼앗겼던 나는 곧바로 송곳니를 드러냈다.
반면, 오튼은 화상의 통증이 심한지 눈썹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퍼억-!
그 곁으로 다가가 안면에 펀치를 먹인 나는 비틀거리는 오튼의 머리통을 붙잡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냐?”
“할 만해.”
“실수하지 마라.”
일단 그렇게 말했다.
물론, 알고 있다.
오튼이 나를 보호하려다가 등 쪽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것쯤은.
하지만 지금은 경기 중이다.
상처에 대해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경기가 끝난 이후로 충분했다.
경기는 계속 이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오튼의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어, 철장 경기는 나와 헌터 위주로 이어졌다.
정해진 스팟에서 오튼이 빠진 만큼 헌터와 나는 즉석에서 경기를 짰는데.
서로 알 거 다 아는 프로인 만큼 전혀 문제없이 경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불현듯.
경기 중간에 헌터가 내게 말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
“넌 대체 뭐냐? 저 개망나니 같던 오튼을 이렇게 움직이게 만들고.”
“이제 시작입니다.”
슬슬 숨이 부치기 시작했다.
2경기의 마지막 스팟.
여기는 오튼도 참가해야만 했다.
내가 쓰러져있는 사이, 오튼 쪽으로 향한 헌터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일단 따귀 한 대 갈기면서 뭐라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불현듯.
다시 기습 R.K.O.가 터졌다.
투-콰앙-!
[Yeeeeeeeeeeeeaaaaaahhhhh!!]
환호를 보내는 팬들.
밀리고 밀리다가 마지막 한순간 힘을 쥐어짜내 상대방의 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오튼의 피니시 무브.
순간 경기의 분위기가 반전되었고 오튼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넘어졌다.
힘에 부쳐서 무너진 놈이 천천히 철장 문을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스틸 케이지 매치.
핀 폴, 서브미션.
혹은 어떤 방식으로든 경기장을 탈출하기만 하면 승리하는 매치였다.
그리고 오튼이 다가가자 바깥에 있던 심판들이 문을 열어주었다.
저대로 나가기만 하면 승리.
하지만 나는 분명히 말했었다.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그렇기에 이어진 행동은 섬머 수플렉스 직전 세그먼트의 재현이었다.
몸이 앞으로 내달렸다.
동시에 힘차게 뛰어오른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겨우 기어가고 있는 오튼의 뒤통수를 노렸다.
사실은 등 쪽에 가깝지만.
쩌억-!!
힘차게 날아 꽂히는 스팅거.
오튼의 몸이 꺾였고, 나 역시 거기에 휘말려서 바닥에 쓰러졌다.
[Uooooooooooooooohhhhh!!]
위험천만한 무브에 경악하는 관객들.
우리는 누구 하나 일어서지 못하고 자리에 누운 채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헌터가 일어섰다.
“허억, 헉…….”
우리 둘을 슬쩍 돌아본 그가 철장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2경기의 마지막 스팟.
위험천만한 역전 탈출극.
긴장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일부러 헌터는 느릿느릿하게 몸을 움직였다.
로프를 타고 넘어간 그가 그대로 철장 바깥에 양발을 대기만 하면 승리로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오튼이 발을 붙잡았다.
[Uoooooooooooooooooohhh!!]
“윽?!”
자리에 엎드린 채 기어가 헌터의 발을 붙잡은 오튼.
거기에 헌터는 발을 털어내며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장 입구.
그 앞에 허리를 숙여 로프를 밟고 빠져나가려는 헌터가 보였고.
그 발을 오튼이 엎드린 채로 붙잡아 대치가 이루어지는 상황 속.
나는 내달렸다.
순간 큰 힘으로, 오튼의 발을 밟고 뛰어오른 나는 슬쩍 허리를 숙이는 헌터의 발까지 밟고 다시 뛰었다.
팬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아슬아슬한 쾌감이 등을 스쳤다.
그리고 삼단 로프까지 뛰어넘은 나는 푹신한 재질로 되어있는 링 밖의 바리게이트에 그대로 충돌했다.
콰앙-!
어깨와 등으로 해서 충격을 흡수한 나는 그대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철장 쪽을 돌아보았다.
경기는 끝났다.
[두 번째 경기인 스틸 케이지 매치는 신이 승리했습니다!]
나의 승리.
[W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의 환호성 속에 숨을 몰아쉬고 있던 나는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엄청난 스팟이었다.
링 안의 오튼이나 헌터도 순간 어안이 벙벙해져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말 그대로 승리를 훔쳤다.
하지만 뭐 어떠랴.
슈퍼 멋진데.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야, 이 새끼야! 비겁하게!!”
“내가 못 나가게 한다면서?!”
가까이 다가온 오튼과 헌터가 나를 욕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사람을 돌아본 나는 멋지게 중지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 힘이 빠져 철장에 기댔다.
이어서 3경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심판이 다가와 내게 이야기했다.
“신 선수, 철장 올린답니다.”
“아, 옙.”
그렇게 말하며 철장으로부터 떨어지려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철장에 벨트가 걸렸다.
“어? 자, 잠깐만요.”
하지만 그렇게 말한 것도 소용없이, 철장은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 신 선수?!”
“아니, 이게 걸렸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돌아선 나는 순식간에 철장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어쩔 수 없이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관객들의 반응이 순간 싸해졌다.
아니.
원래대로라면 철장의 이 날카로운 부분을 천 같은 걸로 감싸서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해두어야만 하는데.
시설팀의 미스였다.
그리고 그게 우연히 맞아떨어지면서 나는 철장과 함께 공중에 떠올랐다.
‘어떤 병신이…….’
중간에 철장이 멈추기는 했지만 이미 링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온 상황이라서 뭔가 어색했다.
이게 사고처럼 보이는 와중.
팬들의 반응에 순간 ‘걱정’이라는 감정이 섞이기 시작했고 나는 팬츠의 벨트를 빼고 돌아보았다.
그리고 동아줄이 내려왔다.
“야, 이 새끼야 도망치냐!!”
순간적으로 경기장이 고요해진 틈을 타서 오튼이 내게 버럭 소리쳤다.
3단 로프보다 더 위에 서있는 내 바로 아래에서 녀석은 이런 사고를 자연스럽게 각본으로 연결시켰다.
‘믿고 있었다구!’
아니, 사실 믿지는 않았지만.
기대 이상으로 해준 것이지.
그렇게 잠시 서있자니 트리플H까지 상황을 감지하고는 나를 도와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날 받아주기 위해 욕을 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곧바로 뛰어내렸다.
추락했다.
몸을 쭉 펼친 채 떨어지는 날 받아낸 두 사람이 동시에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관객석이 침묵에 휩싸였다.
충격에 휩싸였다.
우리 세 사람은 누구 하나 일어서지 못하고 자리에 쓰러진 채였다.
각본에 없던 상황.
하지만 그게 지금은 잘 먹혔다.
왜냐고?
“후우…….”
모두가 순간 맞춰줬으니까.
즉흥극의 미학이었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숨을 몰아쉬며 관객석을 돌아보았다.
그들이 내게 집중했다.
나는 호흡을 붙잡은 채, 땀으로 범벅이 된 상반신을 펼치고 나와 함께 이어지는 그들의 호흡을 놔주질 않았다.
그리고 이어.
힘차게 팔을 펼쳐들며.
포효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관객들이 나를 따라 외쳤다.
[Uooooooooooooooooohhhhh!!]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내가 섬머 수플렉스에서 가장 빛나는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