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24화 (324/634)

324.

분명히 실수였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업계 관계자들, 개중에서도 눈썰미가 좋은 지극히 소수의 인물들뿐이었다.

말인즉슨, 방금 세 선수는 벨트가 철장에 끼인 위험천만한 상황을 환상적인 스팟으로 연결해냈다는 말이었다.

신.

랜스 오튼.

트리플H까지.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헌터와 오튼을 낙하 공격으로 덮친 신이 벌떡 일어서며 힘껏 포효했다.

[Uooooooooooooooooohhhhh!!]

그로써 그들은 세상을 속였다.

라스베이거스에서 PWA 선수들과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그렉 하트는 순간 식은땀이 삐질 흐르는 것을 느꼈다.

현역 시절, 트리플H와는 몇 번이고 경기를 치르며 그가 어떤 선수인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이 경기가 보여주는 놀라운 퀄리티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그 헌터니까.

닉 플레어의 후계자.

에고가 강한 그렉이 보기에 그 둘은 오직 한 가지 스타일로밖에 경기를 치를 수 없는 삼류 레슬러들이었다.

하지만 그게 절묘하게 하나의 재미 요소로 섞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트리플 스렛이라서.’

그렇기에 호흡이 잡혔다.

헌터가 하는 느릿한 경기 방식을 신이 상대를 강하게 공격하는 하드 히팅으로 받아주면서 이끌었다.

그러는 동시에 오튼과는 빠른 공방을 선보이면서 헌터의 느릿함을 숨을 돌릴 수 있는 순간으로 조명해냈다.

‘괴물 같은 자식.’

그렉은 이해했다.

아마 그뿐만이 아니라 업계의 선수들은 모조리 이것을 이해하고 있겠지.

이 경기가 완벽한 것은, 신이 헌터와 오튼의 중간 지점에서 경기를 조율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순간 의아했으나.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자존심 강한 헌터나 느긋한 오튼은 현역 시절의 그렉이라고 할지라도 컨트롤하기 어려웠을 선수들이었다.

아마 서로 하고 싶은 걸 하려다가 경기를 망쳤을 가능성이 컸겠지.

하지만 신은 그 조율을 해냈다.

그래서 정말 놀라웠다.

‘비록 경기에서는 진다고 했지만.’

업계 관계자들에게는 신이 두 사람 사이에서 경기를 조율하고 있는 모습이 정말로 인상적으로 보일 터였다.

3경기 역시도 그랬다.

링 위에서 지친 채 모인 세 사람.

심판이 회수해온 WWF 월드 챔피언 벨트가 링 한가운데 높은 곳에 걸렸다.

세 번째 경기는 래더 매치.

룰은 간단했다.

접사다리를 사용해서 높은 곳에 걸린 벨트를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승리.

그렇기에 일단은.

그 도구인 사다리를 꺼내는 과정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조차 평범하지 않았다.

각자 꺼낸 사다리가 달랐다.

락커룸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러셀 하트는 어이가 없어져 소리쳤다.

“저건 반칙이잖아!!”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사다리의 크기가 달랐다.

헌터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2.5 미터 정도 되는 길쭉한 접사다리를.

신이 그 절반 정도 되는 얇은 사다리를. 오튼이 아주 짧은 사다리를 손에 들고는 다시 링으로 올라왔다.

공격은 오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퍼억-!

그가 짧은 접사다리를 가진 이점을 사용해 헌터의 발등을 찍었다.

고통스러워하며 사다리를 놓치는 헌터. 이어서 신이 그 안면을 노리고 힘차게 사다리를 휘둘렀다.

쩌억-!

[Uooooooooooooohhhh!!]

호쾌한 타격음.

그렇게 헌터가 쓰러지자 오튼과 신을 사다리를 쓴 공방을 이어나갔다.

래더 매치의 ‘래더’를 살린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절묘한 싸움이었다.

턱-!

서로 잡고 있는 사다리가 맞물린 상태에서 신이 먼저 펀치를 휘둘렀다.

[Waaaaaaaaaaaaagggghhhh!!]

단순한 무브임에도 환호는 엄청났다.

그걸 보고 있는 바트 맥센의 마음을 밴틀리처럼 박살 낼 정도로 말이다.

“끄응…….”

[정말 대단합니다! 신! 그리고 오튼! 각자 원하는 사다리를 가지고 화려한 공방을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충격으로부터 회복하고 일어선 헌터가 사다리를 가로로 들고 한창 싸우던 두 사람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퍼억-!

“그렇지!!”

사다리에 부딪혀 쓰러지는 두 사람.

이어, 사다리를 바닥에 내려놓은 헌터가 오튼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저, 저! 뭐하는 거야!!”

바트는 흥분해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헌터는 오튼을 바닥에 놓인 사다리 위에 힘껏 메쳤다.

뻐억-!!

“끄아악!!”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오튼.

나무 재질에 금속을 덧댄 접사다리는 링 바닥보다 몇 배는 더 아팠다.

하지만 세 사람은 그런 건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마구 싸워나갔다.

사다리가 링 위에 우뚝 섰고, 세 사람은 그걸 중심에 둔 채 온갖 화려하기 그지없는 범프들을 선보였다.

[Waaaaaaaaaaaaaaaaggggghhh!!]

팬들의 환호가 뒤따랐다.

그걸 지켜보던 바트는 정말 한 사람만 없으면 완벽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신이었다.

하지만 그가 없으면 이 경기의 완벽함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를 갈면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어……! 어어어?!]

2.5미터가 넘는 사다리 끝까지 올라간 신이 그대로 몸을 던지며 바닥에 쓰러져 있던 오튼의 몸을 덮쳤다.

투콰앙-!!

화려한 다이빙 엘보우 드롭.

[Uooooooooooooooohhhhh!!]

고통에 몸부림치는 두 사람을 보고 팬들은 환호와 함께 챈트를 보냈다.

[Fight Forever!]

짝! 짝! 짝짝짝!

[Fight Forever!]

짝! 짝! 짝짝짝!

[Fight Forever!]

짝! 짝! 짝짝짝!

이 경기가 영원히 이어지기를.

팬들의 그런 의식을 담은 챈트는 그야말로 프로레슬러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환상적인 챈트였다.

그 정도로 멋진 경기였다.

* * *

통증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100kg이 넘는 몸으로 사다리 위로 올라가 다이빙 엘보우 드롭을 먹이는 건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그런 후회도 잠시.

통증이 사라졌다.

숨을 몰아쉬며 나는 씨익 웃었다.

이거지, 이거야.

체내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순간적으로 몸이 크게 가뿐해졌다.

물론, 다 눈속임이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통증으로 또 며칠 못 자고 완전히 난리도 아니겠지.

그럼에도 나는, 지금 이 순간만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쓰러진 오튼을 남겨둔 채,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반대편에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던 헌터를 바라보았다.

경기의 마지막 스팟.

잠시 침묵하던 우리는 그대로 서로 반대편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중간쯤에 발을 걸치고, 그 상태에서 서로에게 한 방씩 펀치를 날렸다.

쩌억-!

퍼억-!

쩌억-!

퍼억-!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헌터와 나에게 쏟아지는 챈트.

그리고 나는 헌터의 주먹질을 버텨내지 못하고 사다리 밑으로 추락했다.

쿵-!!

방금 사다리 위에서 다이빙 엘보우 드롭을 사용한 대미지가 남아있었다.

그사이 사다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올라간 헌터가 타이틀을 회수했다.

[W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의 환호성 속.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헌터는 이내 중심을 잃고 사다리로부터 떨어졌다.

쿵-!!

누구도 일어서지 못했다.

타이틀은 헌터의 손에 들어갔지만 스코어는 우리 세 사람 모두 같았다.

“허억, 허억…….”

“후우…….”

“끄응…….”

나와 헌터, 거기에 오튼까지.

우리 모두는 이미 한계를 돌파했다.

하지만 아직 승부는 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링 아나운서인 릴리 가르시아가 예정되어있던 이야기를 했다.

[쓰리 스테이지 오브 헬 매치가 끝났지만 세 선수가 일대일대일의 동률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경기는 서든 데스 룰로 계속 이어지겠습니다!]

[Yeeeeeeeeeeeeeaaaaahhhhhh!!]

환호를 보내는 팬들.

그 앞에서, 우리 세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심지어는 아주 약간의 탈수 증세도 느꼈지만.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로프를 붙잡고 숨을 몰아쉬며 겨우 일어선 나는 반대편에서 나와 함께 일어난 두 사람을 잠시 노려보았다.

오튼과 헌터.

둘 다 눈이 죽지 않았다.

각종 변수로 인해 경기 시간은 원래 예정보다 5분을 더 넘어간 35분째.

하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최후의 싸움.

이미 레슬링 경기라기보다는 서로 악에 받쳐서 치고받는 쪽에 가까웠다.

퍼억-!

“큭……!”

내가 휘두른 주먹질에 맞은 오튼이 비틀거리며 물러서자 옆에 서있던 헌터가 내 안면을 세차게 후려쳤다.

뻐억-!!

이어서 충격에서 회복한 오튼이 헌터를 공격했고, 그런 식으로 자리에 선 채로 공방이 계속 이어졌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Orton!]

팬들의 챈트는 열광적이었다.

그들은 여기에서 누가 이기더라도 끝내주는 환호를 보낼 준비가 되었다.

레볼루션 각본 이후, 시나의 역반응을 받아내며 그 나름대로 배드애스한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 트리플H.

WWF를 나가고 나서 시대의 혁명가로서 ACW와 WWF를 오가며 언제나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신.

마지막으로.

귀찮은 헛소리는 다 필요 없고, 싸움에 대한 짙은 순수성만 가진 채 마구잡이로 이 싸움에 끼어든 오튼.

모두가 슈퍼스타였다.

나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내가 지금 이들과 함께, 이 링 위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쩌억-!!

그 감정을 담아 힘차게 날린 슈퍼 킥이 그대로 헌터의 턱에 꽂혔다.

기습적인 킥에 순간 팬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 보였다.

그로써 끊어진 균형의 추.

오튼이 내 머리를 노리고 도약했다.

순간적으로 반응해서 밀어낸 나는 누군가 어깨를 턱 잡는 것을 느꼈다.

몸이 뒤로 돌았다.

그리고 나타나는 건 투지로 안면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트리플H의 모습.

그가 내 복부를 힘껏 걷어차면서 동시에 페디그리를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오튼이 더 빨랐다.

몸의 탄성을 이용해 내 위로 뛰어오른 녀석이 헌터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그렇게 R.K.O.가 작렬했다.

투콰앙-!!

나는 두 사람을 피해 옆으로 굴렀다.

정신을 차리자 쓰러진 헌터를 뒤집어 핀을 하는 오튼의 모습이 보였다.

[1……!]

[2……!!]

곧바로 달려들어 오튼을 밀어낸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헌터가 링 밖으로 굴러나갔다.

체력을 회복하려는 요량이었다.

그만큼, 오튼과 나에게는 상대로부터 핀을 따낼 절호의 기회가 왔다.

경기의 마지막 순간에 들어가기 전.

“후우, 후우…….”

우리는 링 위에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려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튼이 실실거리며 웃었고.

나 역시도 활짝 웃었다.

[Uoooooooooooooooooohhhh!!]

그런 우리를 보며 팬들이 환호했다.

오튼과 나.

커리어 초창기부터 함께 해온 숙적.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선수.

물론, 녀석 역시 대단한 선수였지만 레볼루션 각본 이후로는 좀 시들하단 평가를 받는 것도 사실이었다.

악역으로서 크게 성장한 러셀.

시대의 간판스타가 된 시나.

혁명가를 자칭하는 신.

이런 세 사람에 비하자면 어딘가 한 끗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을 향한 푸시를 멋지게 소화해낸 녀석은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들과 같은 수준의 선수로 격상했다.

그리고 나와 격돌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오튼이 내 머리통을 붙잡고 힘차게 위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통할 리가 없었다.

“큭……!!”

그대로 오튼의 등을 밀어낸 나는 힘차게 뛰어올라 무릎을 치켜들었다.

콱-!

하지만 뒤로 돌아선 오튼은 양손을 들어 힘껏 내 스팅거를 막아냈다.

경기의 마지막 순간에 걸맞은 화려한 피니시 무브 공방이 이어졌다.

오튼이 몇 번이고 R.K.O.를 쓰기 위해 내 머리통을 붙잡으려 들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녀석을 밀어내고는 스팅거를 먹이려고 시도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링 위에서.

[Waaaaaaaaaaaaaaaaaggghhhh!!]

팬들의 환호 속에.

공방을 주고받던 나는 오튼을 다시 한 번 밀어내고는 손바닥을 들었다.

쫘악-!

“크윽?!”

오튼의 등에 찹을 날리고.

오금을 걷어차 무릎을 꿇게 만든 나는 오튼을 지나쳐 반대편으로 달렸다.

로프에 몸을 장전하고 곧장 튕겨져 나온 나는 그대로 오튼의 턱을 노리고 힘껏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 순간 깨달았다.

눈이 죽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직후, 오튼은 정말 독사처럼 낮은 자세로 몸을 움직였다.

내가 공중에 떠오른 상태에서.

녀석이 완전히 사라졌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팬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던 중.

턱.

나는 머리통을 붙잡혔다.

보통 자세와는 정반대로.

리버스 R.K.O.

이 날을 위해 오튼이 준비해온.

이 환상적인 경기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결함이 없는 새로운 무브.

다리를 쭉 뻗은 나는 그대로 뒤통수부터 링 위에 처박히고 말았다.

투-콰앙-!!

어찌나 높이 뛰어올랐는지 땅에 떨어진 내 몸이 크게 튕겨져 올랐다.

오튼이 곧바로 나를 커버했다.

[1……!]

다가온 심판이 팬들과 함께 카운트를 세고 있자니 오튼이 속삭였다.

“야.”

[2……!!]

“Korean BBQ는 내가 쏜다.”

“…….”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3……!!!]

쏜다고?

오늘 완전히 거덜을 내야겠군.

땡땡땡!!

그런 생각과 함께 울리는 링 벨.

[Waaaaaaaaaaaaaaaagggghhhh!!]

명승부를 본 팬들의 거친 환호성.

그 가운데에서 오튼과 함께 링에 널브러진 나는 멋진 고양감을 느꼈다.

[I Hear Voices In My Head-!!]

녀석의 테마 음악이 경기장 안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는 생각했다.

이 일로 인해서 ACW 측에서도 확실히 느끼게 되었을 터였다.

나.

그리고 PWA가 가진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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