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
그렇게 2008 섬머 수플렉스의 메인이벤트는 오튼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충격적인 결과였다.
ACW의 관계자들은 당연히 헌터가 타이틀을 방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돌아온 랜스 오튼이 다시 타이틀을 따내면서 예상이 어그러졌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쇼가 끝난 뒤, 잠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데릭 비숍은 늦은 새벽이었음에도 회사의 간부들을 한데 모았다.
다들 모이자 날이 밝아왔다.
지쳐 보이는 간부들을 앞에 둔 비숍은 긴 한숨과 함께 말을 이어나갔다.
“다들 섬머 수플렉스는 보셨습니까?”
“예, 보았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셨죠? 말씀해주시죠.”
“……솔직히 말해서 랜스 오튼이 이길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대부분 그렇게 말했다.
“왜일까요?”
비숍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바로 그게 중요했다.
랜스 오튼의 승리는 이질적이다.
하지만 신이 직접 핀을 내주면서까지 오튼을 푸시한 걸 보면, 분명히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왜 오튼을?
몇 달 전에 호텔에서 사고를 친 것이 문제가 되면서 월드 챔피언 자리도 빼앗겼던 그를 왜 다시 밀어주는가.
그리고 왜 팬들은 거기 열광하는가.
대답은 없었다.
“아무도 모릅니까?”
비숍은 눈썹을 찡그렸다.
“제기랄, 지금 돈 받고 일하는 프로들이 그걸 모르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러는 자기도 모르는 주제에.
비숍은 직원들을 닦달하면서 어떻게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
왜?
대체 왜!
WWF는 오튼을 다시 밀어주는가.
그리고 그게 왜 걱정이 되는가.
고민에 빠져 침묵하던 비숍은 이내 회의의 화제를 전환했다.
“저희 쪽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어, 걱정 안 하셔도 될 듯합니다.”
“nWo의 티셔츠 판매량이 총 삼천만 장을 돌파했습니다. 거의 사회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예요.”
“역사상 그 어떤 단체도 이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부사장님. WWF의 작은 발버둥에 불과하니까요.”
“…….”
하긴.
그 말이 맞았다.
현재 nWo를 내세운 ACW는, 그간 신과 WWF가 올려온 업계의 인기를 빼앗아와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nWo가 매주 행사하는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들은 악역 스테이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조합 자체가 완벽했다.
선역 아이콘에서 타락한 로건.
그 옆에는 ‘빅 대디 쿨’ 케빈 대시와 ‘배드 가이’ 스카티 홀이 함께였고, 그들은 이 ACW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걸 생각하자, 지금 문득 드는 걱정이 괜한 생각이었나 싶어질 정도.
바로 그때였다.
회의실의 문이 덜컥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풀리는 술 냄새에 눈썹을 찡그린 비숍은 술에 만취한 로건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로건?”
“아, 비숍. 또 늦은 밤에 쉬는 직원들 불러다놓고 이게 무슨 짓인가?”
“…….”
비숍은 직원들을 돌아보았다.
분명히 이중 하나였다.
로건의 파벌에 속한 사람이 문자든 전화든 보내서 도움을 요청한 거겠지.
그것이 아닌 이상 이렇게 술에 만취한 로건이 경기장 회의실에 올 리가.
한숨을 내쉰 비숍이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로건. 섬머 수플렉스를 인상 깊게 봤더니 영.”
“그래, 나도 봤네. 오튼이 챔피언이 되었다면서?”
“……예.”
‘봤네.’와 ‘되었다면서?’가 모순적이었지만 비숍은 그냥 넘기기로 했다.
이 회사에서 로건이 가지는 파워는 상상을 초월했으니까.
“뭐, 그래봤자 애송이지.”
그래서 그냥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겠죠.”
“맞아. nWo가 있는 이상 WWF는 더 이상 우리를 이기지 못해. 팬들이 내게 보내는 반응을 잘 알잖나?”
그렇게 당당한 로건의 목소리가 비숍이 느끼던 불안감을 억지로 지웠다.
“다들 끝났으면 나가서 술이나 먹자고!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 초대함세!”
“오, 정말입니까?”
“그래, 피츠버그 미식축구 팀의 치어리더들도 불러놨다고! 크하하하!”
호쾌하게 웃는 로건.
그리고 거기에 동조하는 직원들.
ACW의 회의는 그렇게 아무런 소득이 없는 알코올 파티로 이어졌다.
***
예정이 변했다.
섬머 수플렉스 경기가 끝난 뒤, 원래라면 나는 오튼에게서 코리안 바비큐를 얻어먹기로 약속을 했었지만.
씻자마자 캠핑 버스에서 곯아떨어져 정신을 차리자 아침 해가 떠있었다.
‘격렬한 경기기는 했지.’
무려 40분.
내가 했던 경기들 중에서 가히 최장 시간을 갈아치우지 않았나 싶을 정도.
그런 상황에서 슬쩍 옆으로 돌아누운 나는 바로 옆에서 골아 떨어져 있는 오튼을 발견하고 바로 걷어찼다.
“크헉?!”
배를 걷어차여 침대 밑으로 떨어진 오튼이 어안이 벙벙해져 일어났다.
“어……?”
“어는 개뿔.”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왜 여기서 자고 있냐. 한 침대에서 같이 안 자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어제 기억이 없는데.”
“…….”
“아, 으. 지금 몇 시냐. 배고픈데.”
“7시 42분.”
“뭐야. 아직 더 자도 되겠네.”
오튼이 털썩 쓰러졌다.
순간 화가 부글부글 끓었던 나는 돌아누운 녀석의 등에 붙은 거대한 거즈를 발견하고는 눈썹을 찡그렸다.
“이거 언제 붙였어?”
“어? 끝나고 바로.”
나도 어제 아무 정신이 없어서 그냥 대충 씻고 들어와 자서 잘 몰랐었다.
시계 옆에 검정 봉투가 있어 봤더니 새 거즈와 화상치료약이 들어있었다.
“야, 치료하고 자.”
“…….”
벌써 자고 있다.
하는 수 없어져, 나는 오튼의 등에 붙은 거즈를 떼어내고 소독을 했다.
약을 바르고 다시 거즈를 붙인 나는 엎드린 녀석을 보고 쓰게 웃었다.
그래도.
어제는 좀 멋졌다.
이 일에는 분명 상대방이 필요했고, 그렇게 생각했을 때 오튼은 시나나 러셀과는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잘했다는 말이었다.
거기다 날 지켜주기까지 했지.
그걸 생각한 서비스였다.
피식 웃으며 검은 봉투를 정리한 나는 봉투 안에서 영수증을 발견했다.
‘뭐지?’
웬 영수증일까.
의아해 확인한 나는 이내 그것이 벤틀리의 수리비용인 것을 깨달았다.
“…….”
일단 모른 척하자.
* * *
그로부터 며칠 뒤.
PWA로 돌아온 나는 간부진과 함께 이번 WWF와 진행한 협업을 정리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의 성과가 나왔다.
지표상으로는 그대로였지만, 그 지표를 이루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했고 그게 먹혔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오튼이 그렇게 환상적인 경기를 할 수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군.”
그 깐깐한 그렉이 인정했다.
“솔직히 헌터는 그러려니 했다. 재미는 없지만 그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해주는 선수니까.”
“그, 그렇군요.”
헌터가 울겠군.
“하지만 이번에는 오튼이 빛났다. 중요한 경기에서 그런 식으로 해주는 게 선수에게는 필요한 법이지. ……신, 네 도움이 있었다고는 해도 말이야.”
“오튼이 잘해준 겁니다.”
“아냐. 업계 관계자들은 다 느꼈을 거다. 너 같은 하이퍼 테크니션이 함께해줘서 오튼이 ‘넘어선’ 거야.”
벽을 넘었다.
그렉은 그렇게 표현했다.
평범한 메인 이벤터와 계속해서 시대에 남아 역사를 만드는 선수는 다르다.
그리고 오튼은 그렇게 되었다.
다른 부분은 다 괜찮은데 캐릭터 메이킹과 경기력 면에 있어서 아쉽다는 말을 듣던 오튼이 그것을 넘어섰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걸 통해서 나름대로 모멘텀은 얻었으니 치고 나가는 일만 남았겠죠.”
“그래, 네 말이 맞다.”
오튼은 팬들에게.
나는 업계 관계자들에게.
확실히 어필을 할 수 있었던 대립.
여기에서 하나 더.
“벨트도 하나 따왔잖습니까.”
리키타가 따온 벨트로 인해 우리는 대립의 여지를 조금 더 남겨두었다.
일단 이후의 일에 대해서 따로 계약을 진행하지는 않았고, 만약 일이 틀어지면 벨트를 반납한다는 조건이 계약서에 명시되어있기는 했지만.
“WWF 측에서도 이번 성과를 보면 계속해서 협업을 제안하겠죠.”
“분명히 그럴 거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지.”
헤이건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ACW다.”
현재 이 업계의 1위 단체.
그것도 ‘압도적인’.
PWA와 WWF의 협업이 그들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지금 그리고 있는 커다란 그림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분명 모두가 걱정하는 바였다.
nWo는 사회 현상이 되었다.
다른 업계와 콜라보를 진행하면서 스포츠 스타들을 쇼에 출연시켜 nWo의 일일 멤버로 삼는다는 각본을 전개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그들이 벌이는 패악질이 어디까지 ACW를 장악할 것인가……를 포인트로 잡아서 아주 잘 나가고 계셨다.
하지만 난 걱정하지 않았다.
“오래 가지는 못할 겁니다.”
“뭐? nWo가?”
“예, 아무리 좋게 쳐줘봤자 내후년 이맘쯤에는 몰락을 시작할 겁니다.”
그때가 ACW의 첫 번째 몰락기.
그걸 모르는 팀장들은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당연한 이유 아닙니까?”
이 업계에는 언제나 새로운 스타가 필요하다. 하지만 nWo에 소속된 선수들은 이미 수십 년간 활동해왔다.
“거기다 악역이죠.”
서부극에서 악당의 악행은 말초적인 재미를 선사해주었지만 결코 이야기의 주류에는 포함되지 않는 법이다.
왜냐고?
악당은 완성된 존재니까.
일반적인 이야기에서는 그렇다.
악당은 선역, 다시 말해 그 드라마의 주인공을 막는 존재로 나타난다.
선역은 성장해 악당을 쓰러뜨리고, 자신의 실력에 따라서 계속 선역으로 군림하거나 새로운 악역이 된다.
그렇기에 ‘완성된 존재’인 악당에게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상대가 없는 이상에는 오래가는 게 무척 어려웠다.
완성은 이후가 없다는 이야기.
질린다는 말이었다.
숀 시나와 JBL이 좋은 예시였다.
JBL은 애국자 졸부 기믹의 악역으로서 오랜 기간 랙다운에서 유니버스 챔피언 직위를 유지한 채 활동했다.
그리고 시나는 그때 악동 랩퍼 기믹으로 팬들의 인기를 끌며 성장해, JBL을 쓰러뜨리고 타이틀을 따냈다.
그 드라마.
JBL이 악행을 저지르면서 어그로를 끌어 모으는 사이에 성장하는 시나.
그 전반적인 분위기.
누군가.
어떤 선수가.
내가 좋아하는 플레이어가.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감.
로건의 nWo가 장악한 ACW에는 그게 사라지면서 쇠락기가 도래했다.
랭 새비지도 결국 nWo를 이기지 못하고 굴복하며 스테이블에 들어갔고.
계속해서 그런 각본만 나왔다.
반 WWF의 수장이자 ACW의 심장인 크로우가 잠깐 막아내기는 해도.
nWo, nWo wolfpac, nWo Sliver, nWo Japan, nWo Hollywood까지, 스테이블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속했다.
‘거기에 하나 더.’
지금 nWo 측에 속한 선수들은 ‘경기력’이라는 요소가 정말로 부족했다.
로건 같은 탑 선수들이 나이가 많기 때문에 ACW의 경기는 대부분 팬들이 기대하는 만큼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래서 다들 허무해했다.
그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나는 반드시 시대가 넘어올 거라고 확신했다.
비록 나라는 존재로 인해 상황이 전생과는 많이 달랐지만, nWo도 그렇고 로건도 그대로니 바뀌지는 않을 터.
물론, 그걸 모두 말하진 않았지만.
적당히 근거가 되는 몇 가지만 이야기한 나는 그대로 결론을 내렸다.
“리키타가 벨트를 따냈으니 WWF와 계속 협업을 하는 쪽으로 가보죠. 그쪽 위민스 선수들이 낭비되고 있으니까 허가는 쉽게 떨어질 겁니다.”
그리고 동시에.
“당분간 PWA의 내부 각본에도 집중을 합시다. 우리 쪽에서도 지금 오튼처럼 테이커나 헌터와 붙어도 밀리지 않을 선수를 한번 만들어보죠.”
회의는 그렇게 ‘내실을 다지기 위한 플랜 수립’과 ‘WWF와의 협업 지속’이라는 결론을 낸 채 종료되었다.
다들 주섬주섬 일어서는 가운데, 대충 간부들에게 몇 가지를 상기시켜둔 나는 좀 늦게 바깥으로 나왔다.
더위가 한풀 꺾인 여름 밤.
스케줄이 하나 남았다.
아까, 바쿠가 사무실로 들어오는 날 보며 ‘뭔 어울리지도 않게 셔츠냐?’라면서 낄낄거렸는데, 다음 스케줄을 위해서 미리 입고 있던 거였다.
‘더럽게 바쁘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지도 않고 보타이를 멘 나는 주차장으로 나갔다.
그러자니 주차된 람보르기니 앞에 서있던 티파니가 재킷을 휙 던졌다.
그녀 역시도 뉴욕에서 미팅을 하고 바로 여기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내가 늦었나?”
“아뇨. 전혀요.”
“그래?”
“네. 슬슬 차 몰고 갈까 했는데.”
“그 차림으로?”
나는 피식 웃었다.
하얀 드레스에 하이힐.
약속 장소는 트럼프 카지노.
오늘 우리는 사업적으로 만나고 있는 친구들 몇몇을 불러, 놀면서 일에 관한 이야기를 진행해볼 생각이었다.
내가 운전을 시작했고, 조수석에 탄 티파니가 슬쩍 물었다.
“회의는 어땠어요?”
“ACW를 조질 거야.”
“……가능하겠어?”
“물론 가능하지.”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ACW는 거만했다.
얼마 전에 티파니가 그쪽 여성 레슬러들과 일을 제안하고 싶어서 찾아갔더니, 노골적으로 WWF와의 협업을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로.
우스운 일이었다.
아쉬울 때는 완전히 저자세로 같이 일하자고 하더니, 이제 자기들이 좀 잘나간다 싶으니까 완전히 이 PWA를 산하 단체 취급을 하고 계시지 않나.
하지만 그런 만큼.
재미있을 터였다.
“그 거만한 ACW를 조져서 무릎을 꿇리고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비웃으며 입 벌리고 밑에서 받아먹자고.”
“……변태야?”
비유가 너무 나갔나?
하지만 뭐 어때.
“프로레슬링 각본에서 제일 나쁜 새끼는 nWo지만, 현실에서는 아니거든.”
지금으로부터 훨씬 나중에 나오는 랩퍼, MGK의 노래처럼 현실에서 제일가는 Bad MotherFu-ker는 바로 나였다.
그걸 착각하고 있는 우리 불쌍한 ACW의 친구들에게 현실을 가르쳐주자.
오늘밤 카지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