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라스베이거스의 중심지에 있는 트럼프 카지노는, 인도의 타지마할을 콘셉트로 삼아서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 오너인 로널드 트럼프 선생께서 가지고 계시는 아시아에 대한 비틀린 감성을 적극 구현한 것이 특징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그 비틀린 인도 감성과 트럼프가 좋아하는 현대 미국식 감성이 융화되어 어딘가 미묘했다.
그래도 돈을 잔뜩 발라둔 만큼 돌아다니기에 거북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는 인도 사람들이라면 분명 싫어할 것 같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런 ‘사소한’ 부분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었고.
덕분에 카지노는 연일 아시아의 문화에 대한 편견을 가속시키며 성황리에 고객들의 돈을 빨아먹고 있었다.
그 내부.
티파니와 나는 최상층에 위치한 VIP 클래스 카지노 구역으로 안내되었다.
‘특별한 날’, ‘특별한 고객’들에게만 개방되는 VIP 카지노는 그 이름처럼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웬만한 연예인도 힘들었고, 정재계나 미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슈퍼스타들만이 입장할 수가 있었다.
거기다 트럼프가 개방하는 날만.
그리고 오늘이 그날이었다.
‘이유가 뭐랬더라.’
듣기는 했는데.
어처구니없는 이유라 까먹었다.
어쨌든, 우리도 초대를 받아서 자주 교류하는 친구들과 놀 예정이었다.
사실 나는 들러리에 가까웠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용도?
어쨌든 그들도 사람이니만큼 스포츠 스타나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흥미를 갖는 건 당연하다.
조금 피곤하기는 했지만.
이것도 일의 일부였다.
사업에서 중요한 건 이름값이었다.
우리는 사교계에서 각자가 가진 명성을 최대한 크게 키우려 하고 있었다.
내 프로레슬러, 배우로서의 이름값.
티파니의 사업가로서의 이름값.
그리고 냉정하게 봤을 때, 순조롭게 그 명성이 올라가고 있는 상태였다.
내가 프로레슬러로서 가진 명성은 말할 것도 없었고, 거기에 광고 모델이나 드라마 활동을 병행하면서 나쁘지 않은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다.
티파니도 마찬가지였다.
액플 주식을 비롯하여 우리가 손을 대는 주식은 내가 가진 전생의 지식과 티파니의 감각을 바탕으로 터졌고.
거기에 더해 S&T가 보유한 뮤지션들도 각자 순조롭게 성장 중이었다.
말하자면 대부분 내가 이룬 성과였지만, 티파니의 존재도 도움이 됐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지식과 사업가로서의 재능을 바탕으로 내가 잘 모르는 디테일을 멋지게 잡아주었다.
그리고 내 안목을 전적으로 믿어준다는 점에서 우리는 좋은 파트너였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말이다.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동종업계에서 수십 년간 버텨온 두 사람.
프로레슬링의 독재자, 바트 맥센.
TV 방송계의 대통령, 체드 터너.
……방금 떠올려본 별명인데.
그럴싸하군.
피식 웃자니 옆에서 샴페인을 마시던 티파니가 나를 돌아보았다.
“왜 웃어요?”
“우리가 트럼프와 친해져서 이런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는 게 놀라워서.”
“트럼프 아저씨가 좋은 분이시죠.”
“……그래?”
“예, 절 예뻐해 주신다고요? 게다가, 그쪽 막내가 당신 팬이라던데?”
“오늘 오면 사인 좀 해줘야겠군.”
“이제 다섯 살인데. 안 오겠죠.”
“아, 그런가.”
“잘 자야 잘 크죠.”
“…….”
내 기억에 의하면 그 꼬마, 열네 살에 키가 190이 넘었던 걸로 아는데.
하루쯤 안 자도 되지 않을까.
뭐, 어찌되었든.
카지노는 복층 구조로, 안쪽에 무슨 베르사유 궁전…… 아니, 타지마할처럼 나선형 계단이 존재했는데.
나는 ‘왜 부자들은 죄다 집에다 나선 계단을 까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그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니 웬걸.
그 위로 무슨 대통령처럼 트럼프와 그 아내가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 되긴 하지.’
트럼프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다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밤이군요! 정말로 멋진 밤이에요!!”
트럼프 부부의 옆으로 등장한 인도식 무희들과 함께 음악이 시작되었다.
“다들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영 분위기가 쌔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트럼프는 당당하게 자신의 에고를 밀어붙였다.
인도식 음악과 함께 카지노의 딜러로 나오는 인물들은 잘 정돈된 딜러 복장을 입은 백인 남녀들이었고.
트럼프는 그런 상황 속에서 직접 딱 하나 있는 슬롯머신을 돌리고 777을 띄우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였다.
거기에 사람들이 넘어갔다.
‘역시 대단한 인간이야.’
말 그대로 ‘병신 같지만 멋있어.’라는 표현이 정확히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남들과 다른 반사회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고, 그걸 물려받은 재산으로 밀어붙여 성공시켜 나갔다.
그렇기에.
그 돈과 배경, 셀럽으로 가지고 있는 명성이 조화되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결국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말하자면 티파니 맥센이 인생 말년에 너무 담배를 피워서 정신이 헤까닥 돌았을 때 저런 느낌이 될까.
그래도 사람들은 그때까지 그녀가 쌓은 명성으로 인해서 매료될 터였다.
“……뭔가 귀가 가려운데.”
티파니가 날 슬쩍 바라보았다.
실례되는 생각은 그만두자.
어쨌든.
그렇게 트럼프에 의해서 초대된 손님들은 각자가 원하는 테이블에 앉으면서 카지노를 즐기기 시작했다.
우리도 친구들과 합류했다.
일단 스눕-덕.
“오랜만이군. 신, 티파니.”
“아, 스눕.”
“잘 지냈어요?”
“제기랄, 티파니.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말라고. 지난달에도 만났잖아?”
“후후, 그렇군요.”
“우리는 레슬링으로 바쁜 신과 달리 일 관계로 자주 만나니까 말이야.”
장난스럽게 웃는 스눕-덕.
그 앞에서 할 말이 좀 없어진 나는 얌전히 들러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후로도 티파니가 사업 관계로 알고 지내는 재벌가의 젊은 자제들까지 합류해, 우리는 다함께 놀았다.
하지만 역시, 카지노나 도박은 영 익숙하지 않아 딱히 흥미는 없었다.
그냥 티파니가 환전해온 칩으로 걸고 따고 꺅꺅거리는 것을 옆에서 축하해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이내.
나는 버릇처럼 슬그머니 주변에 서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크게 세 종류.
재계 인사들.
예능 쪽 종사자들.
마지막으로 스포츠 스타들.
아는 얼굴들도 몇 보였다.
‘체드 터너…….’
애인과 함께 온 그는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고 바카라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바트도 왔다.
그는 특이하게도 파트너 대신 WWF의 부사장인 로이타스를 데려왔는데.
딱 하나 있는 슬롯머신을 계속 돌리면서 승부에서 이기려고 들었다.
바트답다 싶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와 비슷했다.
나 역시도 이런 식으로 뭔가 규칙이 복잡한 도박은 영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서 티파니가 뭘 땄다고 말할 때도 그냥 그런가 보다. 싶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바트를 좀 지켜보고 있자니, 이내 그 옆에 한 남자가 다가섰다.
나보다 더 큰.
이 안에서 미식축구 라인맨 다음 가는 덩치를 자랑하는 흑인 혼혈 남자.
더 팍이었다.
드와이트 존슨.
WWF를 나가고 현재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바트와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말하자면 친화력 끝판왕.
지금도 계속 웃으며 대화를 나눠서, 문득 무슨 말을 하나 궁금증이 생겼다.
“티파니.”
“응?”
룰렛 게임에 취해 있다 날 돌아본 티파니가 상황을 파악하고는 웃었다.
“묘한 조합인데요?”
“잠깐 다녀올게.”
“응, 부탁해요.”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이쪽 일은 맡겨두고 무리를 빠져나온 나는 룰렛머신 쪽으로 움직였다.
미국 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서.
이곳의 유일한 동양인인 나를 두 사람은 금방 알아보았다.
“…….”
“어라, 신!”
노골적으로 눈썹을 찡그리는 바트와 달리 환하게 웃어 보이는 더 팍.
그 앞으로 다가간 나는 가볍게 손을 뻗으며 팍과 악수를 나눴다.
“잘 지내셨습니까?”
“물론이지! My Man! 몸이 더 좋아졌는데! 요새 활동도 잘하고 말이야!”
“저도 영화 잘 보고 있습니다.”
“크하하! 아직 멀었지! 아, 영감님. 이 친구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래, 죽었으면 좋겠을 정도로.”
“…….”
“푸하하하하! 신! 영감님에게서 남자로서 최고의 평가를 들었군!”
“저도 그대로 돌려드리죠.”
바트가 죽었으면 좋겠다.
뭐, 딱히 저주의 말은 아니었다.
서로가 숙적인 만큼, 상대방이 어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어떻게 보자면 최고의 칭찬이었다.
물론 동시에 그와는 ‘모순적인’ 마음을 갖는 게 인간이지만 말이다.
“영감, 이런 자리에는 안 오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별일이군요.”
나는 바트에게도 손을 뻗었다.
“그래도 몇 안 되는 동종업계 사람들끼리 뭉쳐서 기분 좋은데요.”
“그러게 말이다.”
바트가 피식 웃으며 바카라를 치고 있던 터너 영감을 돌아보았다.
“저건 동종업계가 아니지.”
“……아, 뭐.”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여기에 팍이 포함되지도 않고.
“저 개자식은 단지 이 업계가 돈이 될 것 같으니까 들어온 놈에 불과해.”
글쎄다.
지금이야 프로레슬링이 이전처럼 핫한 문화 콘텐츠로 기능하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만.
전생에는 그렇지 않았는데도 터너가 굳이 사업을 추진한 걸로 봐서는 역시 바트에 대한 복수심 때문일 텐데.
그런 부분은 전혀 고려도, 생각도 하지 않는 게 바트다운 모습이었다.
그러자니 팍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영감님, 그대로신데요.”
“흥.”
“뭐, 팬들로서는 다양한 선택지가 생기는 만큼 더 좋은 거겠지만. 사업가적인 입장에서는 영 거슬리시겠죠.”
“당연하지.”
“하지만 절대다수의 행복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 아니겠습니까? 팍.”
내가 이야기했다.
“선수들로서도 업계가 경쟁체제에 돌입해야 더 좋은 대우를 받고 팬들도 좋은 쇼를 볼 수 있게 되니까요.”
“맞는 말이군.”
“그러다 보면 돈을 써서 은퇴한 전설의 선수를 데려올 수도 있는 거고.”
뼈가 담긴 말이었다.
거기에 순간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바트 맥센과, 그 옆의 더 팍.
팍은 다시금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데.”
“뭐죠?”
“난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고? 신.”
팍이 내 어깨를 툭 두드렸다.
웃기는 말이다.
프로레슬링 링에 들어온지 몇 년이나 지난 인간이 아직도 자신은 현역 선수라고 이야기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팍이었다.
실제로 그는, ACW를 끝장내기 위한 WWF의 정책으로 2011년에 복귀해.
2012년에 시나와 경기를 가지고.
2013년에 한 번 더 가지고.
그런 식으로 WWF에서 활동했다.
그때 당시 시나와 대립하며 각본상으로만이 아니란 실제로도 감정의 골이 상해있는 상태였다고 들었는데.
내가 직접 그런 상황을 겪게 되자 시나의 감정이 어땠는지 이해가 갔다.
솔직히 말해.
업계를 떠난 인간이 프로레슬러라고 말하고 돌아와서 스포트라이트를 빼먹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래도 일단 웃었다.
“확실히 몸은 준비가 되어있네요.”
더 팍은 인터뷰 등지에서 ‘언제라도 링에 돌아가기 위해서’라고 말하며 거대한 체격을 계속해서 유지했다.
“하하! 그거 고맙군!”
“……드와이트.”
그때, 바트가 끼어들었다.
“끝나고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아, 그럴까요?”
문득 이 자리를 통해 더 팍의 복귀 시나리오가 앞당겨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파티장에서조차 서로 사업에 대해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적당히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을 내렸는지 트럼프가 입을 열었다.
“자자! 다들 주목해주세요!”
뭔가 또 재미있는 일을 벌이려는 모양인지, 나선 계단 앞에 서있는 그 뒤로 거대한 스크린이 서있었다.
‘대체 언제?’
좀 의아해 바라보자니 트럼프는 귀가 솔깃해질 만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찾아와주신 분들께 한 가지 재미있는 게임을 제안 드릴까 합니다!”
그리고 스크린에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좌르륵 떠올랐다.
이어서 스크린의 제일 위에 ‘$50,000’라는 금액이 표시되었다.
“룰은 간단합니다! 이곳에 계시는 손님들 중 가장 먼저 5만 달러 칩을 보유하시는 분이 우승자가 됩니다!”
미묘하게 많은 액수였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휴지 값이나 다름없었지만, 문제는 칩을 그만큼 교환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우리도 5,000달러 정도만 바꿨던가?
나머지도 그렇게까지 과몰입해서 게임에 참가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고.
그래서 5만 달러에 근접한 인간은 아무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다.
스크린에 표시된 인물들은 많게는 2만 달러부터 적게는 3천 달러까지.
‘다 노린 건가.’
거기에 좀 신기한 우연이 하나.
2만 달러 칩을 보유한, 지금 가장 우승에 가까운 사람은 둘이었는데.
바트 맥센과 체드 터너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상품입니다! 우승자에게는 이 트럼프의 이름을 걸고 소원을 하나 들어드리죠!”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마침 이런 일이 벌어지는군.’
우연의 일치로, 트럼프에게 빌 만한 소원도 조금 전에 생겨난 상태였고.
다들 웅성거리고 있는 가운데, 우승을 차지한다면 분명 도움이 되겠지.
문제는 저 두 사람인데.
“이거 재미있겠구먼.”
바트 맥센이 슬롯머신을 돌렸다.
철컹-! 뚜르르르르……!
숫자가 777을 가리키면서 머신에서 칩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왔다.
“좋았어!”
환호성을 내지르는 바트.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 옆으로 직원 하나가 다가와 금액을 정산하고는 스코어에 반영했다.
스크린의 표가 순위제로 바뀌면서 바트 맥센의 이름이 제일 위로.
그 뒤를 쫓는 체드 터너.
티파니의 이름은 9위에 있었다.
표기된 금액은 9,700달러.
초기 자본금에 비해 블랙잭에서 나름대로 수익을 거둬들인 듯했다.
‘이거 재미있겠는데.’
일단 뭘 할지부터 정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