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
카지노장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딜러들이 나서서 칩의 종류를 교환해주었고,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슬롯머신에 집중하기 시작한 바트를 떠나 티파니에게 돌아갔다.
마침 또 게임에서 승리한 그녀가 내가 온 걸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로서 획득한 칩스는 1만 3천.
목표 금액은 5만.
우리는 카지노의 구석진 자리로 향해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할까요?”
티파니가 물었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승을 노리거나.
적당히 포기하고 놀다가거나.
물론, 내가 유일하게 포기하고 있는 건 포기라는 단어의 사용권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티파니도 마찬가지고.
우리의 의견은 일치했다.
“한번 해봐요.”
“그게 재미있겠지?”
나는 싱긋 웃었다.
거기에 상품도 매력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트와 더 팍 사이에 오간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그다지 이 ‘트럼프 게임’에 대해서 큰 흥미를 느끼거나 하지는 못했겠지만.
상황이 변했다.
로널드 트럼프를 이용해서 팍과 바트의 협업을 막아야 할 필요성이 생겼지.
그걸 위해서는 돈을 따서 자기를 알라딘의 지니처럼 말하고 있는 트럼프에게 소원을 하나 빌어야만 하고.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뭘 하느냐.
“블랙잭을 더 해볼까요?”
“그게 제일 안전하겠지만…….”
말했듯 이 게임은 다른 사람보다 먼저 5만 달러를 따야 하고, 그렇기에 다른 변수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
슬롯머신을 돌리는 바트나 바카라를 하는 터너가 먼저 나면 우리가 블랙잭을 해도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거기다 재미가 없으니까.’
어디까지 심리전을 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여기서는 판을 좀 키워볼까.
“결국 내가 잘 치는 포커냐, 아니면 다 같이 즐거운 크랩스냐인데.”
“무엇으로 할까요?”
“크랩스로 하지.”
“왜죠? 포커 잘 친다면서.”
“다 같이 즐거워야지.”
그리고 다들 흥미를 갖고 봐주어야 오늘 승리에 가치가 더해질 테니까.
크랩스는 그런 게임이었다.
게임 참가자가 주사위 두 개를 던져 나온 숫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게임.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카지노 게임으로, 구경꾼들이 많은 게 특징이었다.
나는 일단 주변의 상황을 확인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트럼프가 제안한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대신 주변 눈치만 살피고 있는 분위기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은 가볍게 놀기 위해서 왔는데 느닷없이 경쟁을 하게 되었으니까.
바트나 터너처럼 승부욕을 불태우는 사람들은 지극히 소수에 불과했고, 다들 그냥 구경이나 하고 싶은 거겠지.
‘그러니까 쇼를 보여줘야지.’
나는 곧바로 Geek처럼 슬롯머신을 계속 돌리고 있는 바트에게 다가갔다.
“영감님, 게임이나 하시죠.”
“뭐?”
“저쪽에서 크랩스나 할까 하거든요. 슬롯 그만 돌리시고 어떠십니까?”
“흥.”
무시하는 바트.
칩이 아까보다 더 늘었다.
“이거 조작된 기기군요.”
“원래 그런 기기였던 거지.”
“이걸로 따면 금방 채우겠는데요.”
“비켜줄 생각은 없네.”
“예, 뭐. 이해합니다. 겁쟁이처럼 앉아서 계속해서 슬롯을 당기는 것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는 일이겠군요.”
“…….”
그런 내 도발에 다시 한 번 슬롯을 당기려던 바트의 팔이 멈췄다.
그가 날 노려보았다.
난 싱긋 웃었다.
겁쟁이, 그리고 도망자.
바트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가지.”
“역시 말이 통하신다니까.”
이렇게 나와주셔야지.
나는 슬그머니 이쪽을 돌아보고 있는 터너에게도 다가가 같이 게임을 할 것을 제안했다.
바트가 참가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콧수염을 일그러뜨리며 웃은 뒤 곧바로 크랩스 테이블 앞으로 왔고.
“본격적으로 판이 벌어지는군!”
트럼프 역시도 구경을 하러 왔다.
테이블에 조인한 것은 일단 나와 바트, 그리고 터너. 이렇게 세 사람.
하지만 그 주변에 구경꾼들이 모여들어서 금방 발 디딜 틈도 없었다.
티파니도 내 옆에 섰다.
테이블 안에 다양한 액수의 칩을 늘어놓은 우리는 바로 게임을 시작했다.
그 룰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Passline이나 Don’t Passline. 두 베팅 존 중 하나에 슈터가 돈을 걸고 주사위를 반대쪽으로 던진다.
여기에서 Passline에 걸었다고 가정했을 때는 7이나 11이 나오면 승리, 혹은 2, 3, 12 중 하나가 나오면 패배.
반대로 Don’t Passline에 걸었을 때는 7이나 11이 패배, 2, 3이 승리, 12는 무승부로 규정이 뒤바뀐다.
만약 위에 언급된 것 이외의 숫자가 나오면 Winning Number라 칭하고 추가 베팅을 할 수가 있게 되는데.
이 숫자(승리)나 7(패배), 둘 중 하나가 나올 때까지 주사위를 계속 다시 던져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었다.
뭐, 그 외에도 자잘한 룰이나 베팅 규칙이 있기는 했지만, 크랩스의 묘미는 바로 직접 던진다는 부분이었다.
첫 번째 슈터는 바로 나였다.
일단 베팅을 했다.
패스라인에 1,500달러.
7이나 11이 나오면 승리.
2, 3, 12가 나오면 패배.
그런 상황에서 피식 웃은 바트 맥센이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꽤나 소심하게 가는군.”
그는 그 두 배인 3,000을 걸었다.
“흠…….”
지켜보던 터너는 나와 같이 1,500을.
스틱맨이 봉으로 다섯 개의 주사위를 밀어주었고, 그중 두 개를 챙겼다.
그리고 던졌다.
또르르.
[Oooooohhh……!]
대망의 첫 번째 슈팅.
구경꾼들의 시선이 몰렸다.
굴러간 주사위가 4를 가리켰다.
이렇게 되면 말했듯, 내가 계속 주사위를 굴려 4가 나오면 승리. 7이 나오면 패배를 하게 되는 시스템.
거기에 하나 더.
주사위가 이렇게 나오면 추가적으로 Odds라는 추가 베팅이 가능해진다.
숫자 4가 나왔으니까 여기에서는 최대 Passline 베팅의 세 배까지 가능.
나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공기가 뜨거웠다.
사람들의 열기가 이 크랩스 테이블 위로 모였고, 나는 추가 베팅을 안 하는 바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영감님, 왜 아까 1,500밖에 안 거냐고 저한테 뭐라고 하셨죠?”
“뭐?”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건 배짱이 큰 게 아니라 멍청한 거니까요.”
그리고 반대로 터너는 날 따라왔다.
그렇기에 말했다.
“터너 씨, 더 걸어보시죠.”
“재미있군요.”
싱긋 웃은 그가 1,500을 더 넣었다.
그리고 나는 4,500을 더 걸었다.
순간 웅성거리는 구경꾼들.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 바트.
그리고 터너.
현재 각자 가지고 있는 자본금은 내가 1만, 바트가 2만, 터너가 2만.
그런 상황에서 건 돈은 바트가 3,000, 터너가 3,000, 그리고 내가 6,000.
이상하지 않은 반응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4가 나온다.
그리고 내가 따낸다.
“신 선수.”
스틱맨이 주사위를 돌려주었고, 나는 그것을 잡아 티파니에게 내밀었다.
슬쩍 쇼맨십을 부려보았다.
“행운의 숨결을 부탁해도 될까?”
“……?”
“아, 영화에서 본 거야.”
이번에 대박난 아이언 잭 무비에서.
“무슨 링 위인 줄 알았잖아요.”
“여기가 링 위지.”
쇼맨십을 발휘할 시간이었다.
구경꾼들의 시선이 등에 따다닥 꽂혔고, 초장부터 기세 좋은 베팅에 트럼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
후.
티파니가 주사위에 숨을 불어넣었다. 샴페인의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그리고 나는 주사위를 던졌다.
또르르.
굴러간 주사위가 2를 가리켰고.
나머지 하나가 2를 가리키면서.
36분의 3이라는 확률을 부수며 4라는 숫자가 완성되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광대뼈를 억누르고 입꼬리만을 슬쩍 올렸다.
“I Told you, Guys.”
[Yeeeeeeeeeeeeeeaaahhhh!!]
구경꾼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우리 모두 승리자였다.
하지만 베팅 테이블 앞에 서있는 바트와 터너의 표정은 제각기 안 좋았다.
터너는 경악했고.
바트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왠지 일하는 것 같은데.’
비슷한 느낌이기는 했다.
특히나 돈을 거는 방식이나 우리가 ‘비매너’임을 감안하고 하는 심리전에서 두 사업가의 성격이 드러났다.
이게 완전한 확률 게임인데도.
그 뒤로 슈터가 바트에게 이어졌고, 그는 패배를 만회하겠다는 듯 내가 건 돈과 같은 6,000달러를 배팅했다.
나도 그걸 따라갔다.
“윽…….”
“믿겠수다. 영감.”
터너는 배팅을 소심하게.
그리고 주사위를 굴린 바트는 당연하다는 듯 행운의 숫자를 뽑아냈다.
7.
“크아아아아악!!!”
하지만 비명을 지른다.
나도 돈을 땄기 때문이었다.
다시금 호쾌하게 승리를 따낸 나를 보고 큰 박수를 보내는 구경꾼들.
그 옆에서 티파니가 놀라 물었다.
“이걸 따?”
“당신 아버지를 믿었거든.”
바트라면 해줄 거라고 믿었다.
할 땐 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나는 이어진 터너의 차례에서는 일부러 소심하게 배팅을 했다.
바트도 적게 걸었고.
터너는 주사위를 굴려 크랩스를 터뜨리며 카지노 측에 승리를 안겨주었다.
“크윽……!”
‘신기하게도 들어맞는군.’
나는 분해하는 터너를 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그는 괜찮은 사업가였지만, 이상하게도 손해를 만회하려고 할 때마다 운이 따라주지 않는 경향이 짙었다.
사실, 엄밀히 말해 개인적인 성향과 이 도박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말도 안 되는 근거라도 필요한 게 바로 도박이라는 콘텐츠다.
그렇게 판이 계속 돌았다.
나는 손해를 최소화하며 돈을 불렸고, 삽시간에 두 사람을 넘어서서 5만 달러라는 골인에 근접해나갔다.
구경꾼들이 점차 많아졌다.
물론 테이블의 배팅 액수가 워낙에 큰 만큼 나도 가끔 한 번씩 고꾸라져서 쉽사리 승부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천천히 올라갔다.
계속해서 감정이 격양되어 가는 바트와, 정작 필요할 때 과감해지지 못하는 터너의 심리를 적절히 이용해서.
두 사람이 기세를 잡은 날 따라잡지 못하도록 조종하면서.
마치 PWA가 WWF와 ACW의 사이에서 실속을 챙기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계속해서 크랩스를 해나간 나는 마지막 베팅에서 멋지게 7 주사위를 굴리며 우승을 결정지었다.
“신의 우승입니다.”
[Waaaaaaaaaaaaggghhhhh!!]
마치 상대에게서 쓰리 카운트를 따낸 것처럼 구경꾼들이 환호를 보냈다.
“끄윽…….”
“으음…….”
바트와 터너는 자신들의 패배가 결정되자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딜러가 칩을 담을 상자를 가져왔고, 나는 칩을 정리해 그 안에 넣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두 분.”
게임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 *
파티가 끝난 뒤, 새벽.
티파니와 나는 카지노 측에서 마련해준 호텔방에서 쉬고 갈 생각이었다.
돌아간다는 친구들을 배웅하고 돌아오자 이미 해가 밝아서, 암막 커튼을 대충 치고는 자리에 누웠다.
그러자 들려오는 목소리.
“어떻게 이겼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뭐?”
“이긴다고 하니 진짜 이겼네요.”
티파니는 그게 신기한 눈치였다.
사실 나도 그렇기는 했다.
‘운이 좋았군.’
으레 하는 이야기였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운이 좋았다.
하지만 거기에서 어떻게든 운을 좋게 만들기 위해 내가 한 일이 있다면.
“바트와 터너의 심리를 잘 이용해서 올라오지 못하게 막은 거겠지.”
그리고 이쪽은 확률론에 근거해 서서히 돈을 딴다. 그 작전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먹혔다.
그러자니 킥킥 웃는 티파니.
“멋졌어요. 끝나고 당신이 트럼프 아저씨랑 이야기하러 갔을 때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서 꽤 많이 묻더라고.”
“일 좀 들어오려나?”
“그렇지 않을까요? 멋졌으니까.”
“……왜 자꾸 멋지다고.”
“진짜 멋지니까 그렇죠.”
어둠 속에서 살결이 맞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어떻게 그걸 해냈대.”
“뭐, 그 뒤를 위해서였지.”
“트럼프 아저씨와 한 이야기 말하는 거죠? 어떤 걸 요구했어요?”
“마벨 스튜디오 쪽 사람들하고 미팅을 좀 주선해달라고 했어. 그쪽에 요구할 게 있어서 말이야.”
“영화 출연하려고요?”
“아니, 나는 스케줄이 있으니까 그렇게 오랜 촬영은 힘들 것 같고.”
대신 더 팍을 넣을 생각이었다.
‘생각해보면 웃기는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쪽이 날 영화계 사람들에게 소개를 해주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팍을 소개해주는 입장에 놓이다니.
물론, 전생에 팍은 마벨 스튜디오 영화가 아니라, 대립각에 있는 D.C. 필름스에서 악역 캐릭터를 맡았었다.
하지만 바트가 내 이야기를 듣고 팍을 꼬셔보려고 하는 이상, 나에게는 그걸 막아야 할 의무가 생겼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트가 기를 못 펴게 해야 돼.”
ACW의 영향으로 현재 바트는 자신의 의견을 줄이고 최대한 선수들의 의견을 따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가 주도해 팍을 데려오면 순간적으로 시청률은 크게 오르겠지.
그럼에도 팍은 결국 할리우드로 돌아갈 테고, 그 계약이 끝난다면 WWF의 시청률은 다시금 떨어질 터였다.
그러므로 막아야만 했다.
현재, 현역 선수들이 성장할 환경이 마련된 WWF는 분명 고난을 딛고 ACW를 제치게 될 터였다.
하지만 임시방편으로 팍을 데려와 그걸 근거로 바트가 다시 전권을 쥐고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한다?
‘최악의 결과가 나오겠지.’
그러므로 적어도 2011년까지는 그가 WWF에 돌아오지 못하게 더 매력적인 스케줄을 쥐어줘야만 했다.
시나, 오튼, 러셀.
세 사람이 충분히 성장해 팍에게 지지 않을 정도의 큰 스타가 될 때까지.
WWF라는 회사는 규모가 축소되더라도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맞았다.
티파니가 피식 웃었다.
“너무 배려해주는데요?”
“그건 아니야.”
“그래요?”
“응, 왜냐면…….”
프로레슬링이라는 드라마는 절대 주연 하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옆의 다른 선수들.
그들 역시 못지않게 빛나줘야만 팬들도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녀석들이 잘 성장해주면, 언젠가 돌아가서 박살을 내줘야겠지.”
결국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은 바로 그것이었다.
신 vs 테이커의 이름보다 더 크게.
언젠가.
신 vs 러셀 하트.
신 vs 랜스 오튼.
신 vs 숀 시나.
그 대진들이 팬들의 기억에 더 또렷이 남을 수 있도록.
그렇기에 전혀 배려가 아니었다.
결국 내가 이기고 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