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28화 (328/634)

328.

카지노에서의 파티가 끝난 뒤.

시간은 흘러 2008년 10월.

4/4분기.

한 해의 마지막이 찾아왔다.

PWA는 크게 두 가지 방향성을 가진 채 계속 위클리 쇼를 운영해나갔다.

그중 하나가 바로 리키타를 구심점으로 삼아서 진행하는 각본이었다.

섬머 수플렉스에서 WWF 위민스 챔피언을 획득한 그녀는 곧바로 누구도 자신에게 이길 수 없다고 선언했고.

그걸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ACW와 WWF 측의 선수들이 넘어와 대립하는 식으로 각본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히 WWF와 ACW 측의 극적인 협업이 이뤄졌다.

‘이유는 사실 별거 없지만.’

두 단체 모두 위민스 레슬링에 대해 별 관심이 없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실 위민스 레슬링은 항상 그랬다.

아무리 잘하는 선수가 나와도 그 상대가 될 만한 선수가 부족했기에 언제나 크게 주목 받지 못하는 디비전.

하지만 그렇기에, 마이너한 취급을 받는 자들 특유의 연대감으로 위민스 디비전은 나름대로 성장을 해갔다.

그로써 우리는 이득을 봤다.

다른 쇼에서도 이어지는 위민스 디비전 대립에 흥미를 느낀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PWA를 봤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WWF 버닝콩과 ACW 나이트로라는 초대형 위클리 쇼에서 계속 쇼를 홍보하고 있는 셈이었다.

동시에 현재는 약간 소강 상태에 접어든 ‘단체 간의 대립’이라는 각본 콘셉트를 계속해서 써먹으면서 말이다.

그와 동시에.

남성 선수들이 주축인 맨스 디비전에서는 내실을 다져나갈 생각이었다.

내년까지.

이유는 간단했다.

“슬슬 선수들을 보내야죠.”

“어디로?”

“물론 WWF입니다.”

“……?”

그런 내 말에, 회의실에 있던 팀장들은 모두가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내가 처음에 이 단체를 만들 때, 이전 GCW 팀원들에게 했던 말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자, 잠깐만. 신.”

바쿠가 황당하다는 얼굴을 해보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선수들을 보낸다고? WWF로? 왜? 그런 선택을?”

“아, 음. 일단 끝까지 들어주세요.”

나는 거의 패닉 직전까지 내몰린 바쿠를 진정시키고는 말을 이었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일부러 다 거르고 결론부터 이야기했는데.

그게 메인 쇼에 항상 선수를 빼앗겨왔던 트라우마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일종의 파견 사원 제도죠.”

“파견……?”

“예, 소속은 저희 쪽에 있지만 그쪽 팀하고 다니면서 쇼에 출연하는 선수들을 슬슬 만들어보자는 거죠.”

“내실을 다지자면서?”

“그를 통해 도달할 목표점도 같이 설정해두면 동기부여가 되겠죠.”

나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내실을 다진다.

이것만으로는 좀 두루뭉술했다.

그렇기에 나는 WWF에 파견을 보낼 만한 선수들을 확실히 겟-오버 하게 만든다는 목표점을 잡은 것이었다.

일단 아이디어는 거기까지.

헤이건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걸 WWF에서 받아들일까?”

“그 부분은 제가 맡겠습니다.”

“그렇다면 안심이군.”

헤이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내가 바트에게 제안을 하면서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자신이 있었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것.

올 4/4분기에 선수들을 키워내 내년 1월에 있을 킹스 럼블을 통해서 WWF에 데뷔하도록 만든다.

이쪽 선수들이 WWF로 넘어간다면 30명의 선수들이 출연하는 럼블 매치가 시기적으로 가장 적절하겠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럼블 매치는 선수들이 데뷔하거나 복귀하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였다.

텐 카운트가 끝난 뒤 자신의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그 모습은 언제나 팬들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니까, 그때 일이 제대로 진행할 수 있도록 연말까지의 각 선수들의 위상을 더 키워주는 것으로 하죠.”

현재 PWA는 아직 그 부분에서 많은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였다.

다른 단체의 습격 각본에 집중하느라 각 선수들이 아직까지 더 깊은 매력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으니까.

내가 우리 선수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우리 선수들은 반대로 서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바로 그때, 내 말을 듣고 납득한 헤이건이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프로레슬링 각본은 크게 봤을 때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 설명되지.”

그가 손가락을 들었다.

“선수가 자신을 증명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남을 부정하려고 하거나.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아직 PWA에서는 두 가지 내러티브 모두 부족한 상태야.”

“정확합니다.”

내가 씨익 웃었다.

“하지만 뭐, 아직 남아있다는 말로 대체하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요?”

아직 보여줄 게 많다는 뜻이었다.

올해 말까지 WWF 쪽으로 두 명의 선수를 진출시킬 수 있도록 준비한다.

내가 그런 목표를 제시하자니, 마지막으로 그렉 하트가 질문을 던졌다.

“왜 ACW는 미포함이지?”

“아, 그쪽은.”

우리가 선수를 보내더라도 시스템적으로 활용할 능력이 현재 전무했다.

nWo를 중심으로 해서 쇼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탓에 자기 쪽 선수들도 백 퍼센트 활용하지 못하는 마당에.

우리가 선수들을 보내봤자 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그림이 뻔히 보였다.

그래서 ACW는 제외하고.

WWF는 반면, 약간의 잡음이 있다 한들 분명 새로운 선수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 있다.

그렇기에 우리 쪽 스타들이 가더라도 분명히 자리를 잡을 수 있겠지.

“그럼, 일단…….”

그걸 위해서.

“선수들하고 이야기해보죠.”

그 작업이 선결되어야만 했다.

* * *

결국 중요한 건 링 위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선수들의 의견이었다.

그들이 직접 그 각본을 수행할 의지가 있어야 링 위에서의 디테일이 발전해 더 좋은 쇼가 나올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훈련하고 있는 각 선수들을 만나 두 가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들었다.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하나. 현 상황이 마음에 드는가.

둘. 선수로서 어디까지 가고 싶은가.

그리고 셋.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

그런 질문에 오늘 저녁이랍시고 사온 샐러리를 어그적어그적 씹어 먹던 사모아 고가 나를 돌아보았다.

“뭐?”

요새 다시 체중 관리 중이었다.

빅 맨 사이즈에 강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근육을 불린 고는 몸도 가벼워져 부상의 위험도 많이 줄었다.

문제는 그로 인해서 먹는 야채의 양이 거의 소처럼 늘었다는 거였지만.

지금도 샐러리를 두 통 사와서 으적으적 씹어 먹는 게 인상적이었다.

“나를 어떻게 생각 하냐고.”

“좋은 선수지. 질투가 날 정도로.”

“질투?”

“그래, 이 업계에서 너에게 존경을 느끼지 않는 인간은 없지만, 그런 만큼 경쟁심도 똑같이 느끼는 거지.”

고가 달변가답게 의견을 내놨다.

그 목표는 최고가 되는 것.

현 상황은 아주 좋지만 답답하다.

그다운 대답이었다.

다른 선수들도 대부분 비슷했다.

어느 정도의 디테일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단 현재 상황과 단체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꽤나 고평가를 내렸고.

목표점도 다들 높았다.

최고가 되고 싶다.

이름을 남기고 싶다.

단체의 탑에 올라서고 싶다.

미래에 다들 그렇게 되는 것처럼 강한 동기를 보유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런 선수들만 모았지.’

나에 대한 평가도 비슷했다.

“내가 쓰러뜨리고 싶은 상대지.”

쟈니 에이스는 그렇게 말했다.

“저를요?”

“그래, 왜냐면 네가 그전까지의 전설들을 계속 꺾어오면서 너 자신이 그런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야.”

“어, 제가요?”

“그래. 적어도 나한테만큼은 넌 이미 그런 존재야. 신.”

쟈니는 길게 풀어서 이야기했다.

GCW 시절부터 나를 봐온 그는, 과거에는 좀 띠껍게 느꼈다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게, 잘나가니까.

실력은 인정하지만, 그것만으로 성공할 수 없는 이 정글에서 능숙한 정치질과 운을 통해서 성공했으니까.

“유럽 투어 때 공항에 갇혀 구역질을 해대면서 네가 헌터를 쓰러뜨리는 것을 보았지. 그게 참 인상적이었어.”

“아, 그때요.”

……솔직히 말해 운이 좋았었다.

물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같은 기회를 받아도 나처럼 환상적인 결과를 낼 수는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결국 운을 살리는 것도 실력.

그렇기에 쟈니는 날 질투했었다.

그마저도 내가 랙다운에 와서 직접 함께 일하면서 인정하게 되었다지만.

“솔직히 나는 테이커와 처음 만났을 때 눈도 못 마주치고 떨었거든. 그런데 넌 참 사람이 원래 그런 건지.”

테이커의 마음을 사로잡고 순식간에 랙다운 선수들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 그거랑 투쟁심을 불태우는 건 다른 문제지만.”

쟈니가 싱긋 웃어보였다.

거기에 펑크.

“대단한 선수고, 언젠가 큰 무대에서 맞붙어 반드시 이기고 싶은 상대.”

AK까지도.

“업계인으로서 존경하고 있어. 하지만 언젠가 꼭 쓰러뜨리고 말 거야.”

두 사람 모두 존경심을 표하는 동시에 투쟁심을 드러내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런 의견들을 들으면서 나는 새삼스레 실감했다.

지금 SIN이라는 캐릭터가 기나긴 커리어를 이어온 끝에 도달한 위치를.

트리플H, 그렉 하트, 케인 맥센, 테이커와 대립했을 때는 분명히 내가 아래에서 도전하는 입장이었으나.

여기에서는 아니었다.

‘뭐, 당연한 거긴 한데.’

팬들, 그리고 거기에 선수들까지 납득해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자 무언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상황을 정리.

나는 이 PWA에서 탑급 선수였다.

물론, 패배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불의의 일격을 맞기도 했고, 1위를 탈환 당했던 적도 꽤나 많았다.

하지만 단연코, 가장 오랫동안 이 PWA에서 1위를 했던 선수는 나였다.

‘지금은 4위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8월 말부터 시작해서 바로 지난주까지 드라마 촬영으로 인해 위클리 쇼 출연을 쉬었기 때문이었다.

‘배드 브레이커’라는 드라마에, 두 화에 걸쳐 출연하는 마약에 중독된 퇴역 군인 조연 역할로 참가했다.

딱히 큰 역할은 아니었고 적당히 나쁜 짓을 벌이려다 주인공에게 끔찍하게 살해를 당하는 역이었지만.

배드 브레이커 드라마가 워낙 대박을 쳤고 이후에도 고평가를 받아서.

나 역시도 거기에 이름을 올려두면 나름대로 이득을 챙길 수 있으리란 판단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선수들에게 밀렸고, 4위까지 떨어졌다.

PWA는 딱히 ‘동일 경기’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신, 졌을 때 –2점, 이겼을 때 +3점으로 순위를 계산한다.

그렇기에 다른 선수들보다 경기 수가 적어진 내가 4위까지 밀려난 것은 어찌 보자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 상황에서의 복귀.

‘어떻게 할까.’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자 티파니가 꽤나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내놨다.

“당신 위상에 요새 들어 좀 금이 갔다는 설정을 넣으면 어떨까요?”

“내 위상에?”

“예, 오튼에게도 졌고, 로건에게도 졌고. 드라마 촬영으로 또 좀 쉬었고.”

티파니가 방 안에 걸려 있던 PWA의 버닝 스컬 졸리 로저를 돌아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순위도 떨어졌으니 다들 ‘캡틴’에게 의구심을 갖는 것도 해적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잖아요.”

“호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이 맞았다.

우리는 해적.

모든 선수의 계급을 철저하게 실력으로 정한다는 콘셉트를 내걸고는 랭크 시스템을 단체 안에 넣었다.

그러므로 확실히.

두 번이나 연속으로 로건과 오튼에게 잡을 한 나는 분명히 지금 당장 신뢰하는 게 어려운 캡틴이겠지.

“다들 야망이 있는 선수들이고. 당신을 이기고 싶어 하는 이 열망을 각본에 남아내면 멋질 것 같은데요.”

“거기에서 나는 좀 졌다고 건방진 것들이 밑에서 도전하니까 미치고?”

“그런 셈이죠.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알아두셔야 하는 게.”

최종적으로는 내가 이겨야만 한다.

티파니는 그렇게 설명했다.

결국 PWA에 남는 건 나였다.

그렇기에 이 각본은 WWF로 갈 두 명의 선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과 동시에 다소 떨어진 나의 위상을 PWA에서 재확인하는 각본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야 단체가 유지되죠.”

“맞는 말이야.”

하지만 나 스스로 ‘내가 이겨야 한다.’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래서 누군가 대신 말해주었으면 하던 상황인데.

티파니가 그 역할을 해줬다.

그 말이 맞았다.

어쨌든 우리 위클리 쇼의 기본적인 목적은 PWA를 홍보하는 것이었다.

우리 쇼가 최고고 더 낫다.

그렇기 때문에 단체를 떠나게 되는 선수는 패배를 하고 가는 게 맞았다.

그래야만 남는 선수가 단체에 계속 군림하며 쇼를 이끌어갈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번에 우리가 보여줄 드라마는 흥미로웠다.

“내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다고 생각한 두 사람이 도전을 하고.”

“멋지게 그림을 그려나가지만 결국에는 패배를 하고 큰물에서 배우고 돌아겠다며 단체를 떠나는 거죠.”

확실히 아귀가 딱 들어맞았다.

내가 이 단체의 탑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금 공고히 하는 동시에, 두 사람을 인정하고 떠나보내는 각본.

그 각본에 참여할 선수 두 명.

한 명은 이미 정해뒀다.

“일단 고를 보내볼까 하는데.”

“사모아 고요?”

“그래, 그 친구. 실력도 출중한데다 락커룸 내에서의 태도도 나무랄 곳이 없잖아. WWF에 가서도 적응할걸?”

“본인이 싫어할 것 같은데.”

티파니가 쓰게 웃었다.

그게 걸리는 부분이기는 했다.

사모아 고는 정말 노골적으로 WWF라는 단체를 싫어하는 선수였다.

그들이 내세우는 레슬러에 대한 천편일륜적인 기준이 무척 아니꼽다나.

하지만 이번에 PWA에서 일하면서 비교적 상업적인 의견을 수용할 수 있게 된 그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럼 한번 이야기해볼까요?”

“그래, 혹시 고가 화를 내면서 날 때리려고 든다면 좀 대신 막아주고.”

“……이럴 땐 반대 아닌가.”

눈을 가늘게 뜨는 티파니.

“그래서 남은 한 명은 누구로 할 건데요? 저는 쟈니 에이스를 돌려보내는 그림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래?”

“예, WWF에서 줄곧 무시를 당하다 강해져서 돌아온 그라면 분명히 드라마도 나름대로 풍부하게 있고.”

“그 양반은 WWF 락커룸에서는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성격이라서.”

나는 단언했다.

일단 너무 착했다.

WWF 락커룸에서는 자기 자신을 주장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걸 못해서 무시를 당했던 쟈니를 다시 보내는 게 과연 맞는 행동일까?

“그럼 누가 좋을 것 같은데요?”

“아, 그런 일에 적임인 선수를 내가 한 사람 알고 있지.”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그래.

분명히 그 남자라면 WWF 락커룸에서도, 링 위에서도, 제몫을 챙길 수 있는 개자식이 될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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