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
10월 2주차의 PWA 위클리 쇼.
링에 오른 것은 현재 단체의 1위를 굳건히 수성하고 있는 사모아 고였다.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팬들의 우렁찬 챈트 속에서 마이크를 쥔 그는 이윽고 특유의 건방진 캐릭터를 선보이며 말을 시작했다.
[지겹군.]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이로서 이 링 위에서 내게 대적할 만한 놈들은 아무도 없다는 게 증명되었군. 솔직히 말해서 좀 실망했어.]
그는 현재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휘하면서 나를 잠깐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꽤 잘 먹혔다.
특히나 사모아 고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바로 여성 팬들이었다.
근육을 울끈불끈할 정도로 키운 데다 험악한 인상을 자랑하는 고였지만.
지방 방송에 출연해서 샐러리를 먹었던 장면이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터넷에서 일컫기를.
‘판다 같다나.’
그래서 의외로 여성 팬들이 많았다.
거기에 또 한 명.
칙-! 칙-!!
텔레비전의 노이즈와 함께 한 남자의 노래가 경기장 안에 울려 퍼졌다.
[Look in my eyes-!!]
C.M. 펑크.
[Waaaaaaaaaaaaaaggggghhhhh!!]
팬들의 환호가 경기장을 채웠다.
파괴 전차, 사모아 고에 대항해 특유의 현란한 말솜씨와 악바리 같은 근성으로 무장한 사나이, C.M. 펑크.
당당히 링 위로 올라간 그는 곧바로 마이크를 쥐고 고가 한 말을 부정했다.
[실망했다고? 아니지. 넌 패배가 두려워진 거야. 고. 너에게는 정상에 선 중압감을 견뎌낼 기력이 없으니까!]
[C.M. PUNK! C.M. PUNK! C.M. PUNK! C.M. PUNK! C.M. PUNK!]
[그래서 꺼질 생각이냐?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한번 붙자고. 너도 그다음에 드라마나 찍으러 꺼지던가.]
펑크가 날 명백히 저격했다.
[그 개자식도 그렇게 사라져서 몇 주째 돌아오지 않고 있지. 정상에 있는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거야.]
[신을 말하는 건가.]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챈트가 쏟아졌다.
그런 가운데, 고릴라 포지션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나는 씨익 웃었다.
기가 전혀 죽지 않았다.
아직 팬들이 나를 원하는 상황에서도 두 사람은 그 기류에 말려들지 않고 자신들이 최고라고 주장했다.
바로 그런 태도가 중요했다.
누가 더 낫느냐를 떠나서.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불사를 것처럼 부딪혀오는 저 태도가 무척 중요했다.
그래야 좋은 대립이 나온다.
링 위의 두 사람은 나와 상대방을 계속 디스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이 찾아왔다.
[그 도망자와는 달리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진짜 싸우고 있단 말이지!]
“신.”
“언제든 괜찮습니다.”
음향 팀장의 콜을 들은 나는 입장로로 들어서는 커튼 앞에 가서 섰다.
그리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다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Waaaaaaaaaaaaaaaaaggghhhh!!]
관객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작스러운 복귀.
힘찬 나팔 소리와 함께 나는 커튼을 걷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입장로로부터 길게 뻗어나간 위치에 있는 링과, 그 주변으로 원형을 그리고 있는 관객석, 그 안에 가득한 팬들.
그들 모두가 나를 환영해주었다.
고와 펑크도 각본에 의해 내가 돌아온 것을 기뻐하는 듯 미소를 지었다.
왜냐면 싸울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대로 링으로 들어선 나는 2단 로프를 밟고 올라가 힘껏 팔을 들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쏟아지는 챈트.
새삼 이 단체에서 내가 갖는 무게감을 확인한 나는 바로 마이크를 쥐었다.
“돌아오니 좋군.”
[Yeeeeeeeeeeeeeeaaaahhhhh!!]
“드라마 촬영도 즐거웠지만, 역시 내가 있을 곳은 바로 이 위인 것 같아.”
스포트라이트 아래.
삼단 로프와 매트로 된 투기장.
팬들의 환호가 쏟아지는 무대 위.
“어쨌든, 바쁜 일도 끝났고. 당분간은 또 나에게 도전해오는 멍청이들을 패면서 좀 시간을 보내야겠는데.”
나는 한 박자 늦게, 침묵을 지키며 서있던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사모아 고. 그리고 C.M. 펑크.
“그게, 너희들이냐?”
[Uooooohhh……!]
“사람 없는 자리에서는 신나게 주둥아리를 털어대더니. 뭐야. 왜 다들 또 꼬리를 말고 침묵을 지키시나들.”
“딱히 그런 건 아니었는데.”
펑크가 쓰게 웃었다.
“오히려 난 네가 꼬리를 말고 이 링에서 도망쳤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내가? 왜?”
“패배했으니까.”
“그게 대체 무슨 논리야. 지면 은퇴한다는 조항이 붙은 경기도 아니었고. 사람이 살다보면 질 수도 있지.”
나는 당당하게 맞섰다.
그래, 분명히 나는 요즘 다른 단체 선수들과의 경기에서 많이 패배했다.
할리우드 로건에게.
그리고 랜스 오튼에게.
하지만 뭐 어쩌란 말인가.
“네가 나에게 느끼는 존경심이나 기대감은 알겠는데. 펑크. 안타깝게도 둘 다 만만찮은 선수들이었어. 그렇지?!”
[Yeeeeeeeeeeeeeaaaahhhh!!]
내가 동의를 구하자 마음이 감화된 팬들이 엄청난 환호로 응답해주었다.
“사람이 이기고만 살 수는 없지!!”
바로 그 말이 맞았다.
나는 시나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 마음도 없었다.
기회만 되고 그게 내가 보고 있는 큰 그림에 부합만 하면 충분히 다른 선수에게 져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뻔뻔하게 이야기한 거다.
사람이 질 수도 있지.
“내가 저기 있는 You Can’t See Me! Guy도 아니고 말이야! 안 그래?!”
[Uoooooooooooooooohhhhh!!]
WWF의 숀 시나까지 디스.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나는 황당해 서있는 펑크 대신 고를 돌아보았다.
“어깨가 무거워 보이는데?”
“시험해보던가.”
“그렇게 해주지. 잘 들어. 고. 내가 돌아온 이상 너는 더 이상 이 버거의 패티가 아니야. 그 밑에서 버거를 받쳐주는 토마토가 오히려 어울리지.”
얼굴도 열이 받아서 빨개졌고.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자니 고가 곧바로 얼굴을 들이밀고는 이야기했다.
“네가 그 잘난 드라마 촬영으로 떠나있는 동안 나는 이 링 위에 올라오는 개자식들을 계속 쓰러뜨려왔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나랑 붙는 족족 개털리는 주제에 어떻게든 경기 횟수로 밀어붙여서 1위 먹었다는 거?”
“너에게는 충실성이 부족해.”
“오, 멋진 말을 하는데.”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충실성! 순수성! 열정! 다 좋은 말이지! 뭐, 그런 걸로 날 디스하는 놈이 너 같은 놈 하나는 아니야! 프로레슬링이나 쳐하지 뭔 연기냐면서 저기 뉴스에서 또 개소리를 떠들어대더군!!”
[Uooooooooooohhhh!!]
[Boooooooo……!]
반응 속에 섞인 야유.
그건 우리 쪽에서 관객으로 위장해 심어놓은 직원들이 보내는 것이었다.
난 그걸 놓치지 않았다.
“여기에도 조금 있는 것 같은데! 왜? 내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활동하는 게 프로레슬러로서 순수하지 못해서 화가 나는 거냐?!”
나는 그대로 말을 이어나갔다.
“저기 저 그, 누구냐. 드와이트 어쩌고 하는 양반 때문에 그러는 거겠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로건도 그랬고.
결국 스타가 된 인물들은 ‘좀 더 편하게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이 업계를 떠나는 일이 잦았다.
브룩 레스너도 비슷하지.
이 업계는 희생의 시체탑 위에 서있다. 그건 콘텐츠의 소비자도, 창작자도 부정할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그럼에도 굳이 이런 이야기를 또 하는 이유는, 언제나 그렇듯 설명을 하지 않으면 오해가 쌓이기 때문이었다.
“나도 너희들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야. 나 같은 메가 스타가 떠나면 너희는 분명 크게 실망하겠지.”
잠깐의 침묵.
결국 팬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이 프로레슬링이 마이너한 컬쳐에 불과하다는 열등감 때문에 생기는 문제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내게 있어 가장 큰 무대는 여기야!”
만약 그렇다면.
내가 바꾸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나가고 있다.
“나는 이 링 위에 있을 때 가장 살아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거든……!”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다시금 챈트가 이어졌다.
내 설득에 당한 팬들의 목소리는 마치 이 트럼프 아레나를 꿰뚫고 라스베이거스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팔을 좌우로 크게 펼친 채 서있던 나는 이윽고 뒤에 서있던 사모아 고를 돌아보았다.
“네가 감당할 수 있겠어?”
이 위치.
탑 가이로서 받는 부담감.
그리고 팬들의 기대감.
독이 든 성배 그 자체.
과연 현재 사모아 고와 C.M. 펑크가 이 위치에 서있을 수 있는 선수일까.
그 답은 곧 밝혀질 터였다.
* * *
땡땡땡!!
요란하게 링 벨이 울려 퍼지며 관객들의 환호성이 링 전체를 뒤덮었다.
[Waaaaaaaaaaaaaaaggggghhh!!]
마치 폭발할 것 같은 반응이었다.
고와 나는 그런 상황에서 천천히 링 위를 맴돌면서 팬들을 집중하게 했다.
폭발할 듯한 기대감.
이 호흡을 조금 낮추면서 팬들이 조금 진정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준다.
이야기는 우리가 바라던 반응과 방향으로 멋지게 진행되고 있었다.
각자 이유가 있다.
고는 자신이 이 업계에 가지는 충실성을 바탕으로 삼아 자신이 탑 자리를 지킬 만한 선수라고 생각했다.
나는 반대로 이 업계와 나 자신의 이름값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거리낌 없이 할 준비가 된 남자였다.
그리고 다음 주에 고를 이어서 나와 대립을 이어나갈 펑크까지 더해서.
우리 세 사람은 이번 대립을 통해서 팬들에게 좀 더 다가갈 예정이었다.
그런 일차 목표를 둔 경기.
쿵쿵쿵!!
육탄 전차처럼 돌진해온 고가 그대로 나에게 태클을 먹이려고 했다.
그걸 어깨로 방어.
하지만 무게로 인해 튕겨져 나갔다.
콰앙-!
바닥이 울리며 몇 바퀴 구른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니 다가온 고가 내 어깨를 붙잡고는 그대로 누르려고 들었다.
“큭……!!”
그걸 피해 옆으로 한 바퀴 굴렀다.
상대와의 체중 차이는 20kg 이상.
힘으로 맞붙으면 진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팬들의 챈트 속에서 가볍게 숨을 몰아쉰 나는 달려오는 고를 맞이했다.
그대로 뛰어 올라 드롭 킥.
높은 타점에서 안면을 걷어차는 드롭 킥은 있는 힘껏 달려오던 고에게는 치명적인 카운터로 작용했다.
퍼억-!
맥없이 쓰러지는 고.
그대로 핀.
[1……!]
빠져나온다.
그대로 경기는 속도를 높였다.
일어서려는 고의 안면을 슬라이딩 드롭 킥으로 다시 걷어찬 나는 바로 일어서 스톰핑으로 놈을 짓밟아댔다.
쿵-! 쿵-! 쿵-!!
로프를 붙잡고 발뒤꿈치를 사용해 무자비하게 몸을 내리찍는 스톰핑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당하는 고.
“신, 그만!”
심판이 말리는 타이밍에 맞춰 숨을 좀 고른 나는 고를 일으켜 세웠다.
그대로 계속 놈을 밀어붙였다.
스냅 수플렉스.
허리의 반동에 맞춰 튕겨 오르듯 들어올리자 그대로 넘어온 고의 몸이 반대편으로 떨어졌다.
콰앙-!
“제길……!”
“고작 이거냐!”
나는 통증에 괴로워하고 있는 고의 위에 올라타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고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옆으로 해서 바닥에 쓰러지게 된 내 등 뒤로 얽혀들듯이 들어온 고가 그대로 기술 하나를 시전하려고 했다.
어깨 너머로 뻗어져 들어온 두터운 팔이 순식간에 내 머리통을 붙잡고 목을 조르려고 들었다.
코키나 클러치.
사모아 고의 피니시 무브 중 하나.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으로는, 리어 네이키드 초크.
사자 죽이기.
Mata Leon이라는 이름이 순간 머릿속을 스치며 나는 그 손가락을 꺾었다.
“윽?!”
그대로 등으로 고를 밀어내며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끈질겼다.
[Waaaaaaaaaaaaaaagggghhhhh!!]
바닥을 구르는 타이밍에 맞춰 함께 구른 고는 내 허리를 다리로 꽉 움켜쥐고는 쉽사리 놔주질 않았다.
“이런……!”
순간 당황해 소리쳤다.
사모아 고.
거대한 덩치에 걸맞은 힘, 그리고 그에 걸맞지 않은 기술 구사력과 유연성까지도 모두 겸비한 선수.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두들겨 패기를 좋아하는 브롤러 스타일이었지만.
필요한 때라면 그 어떤 기술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게 이 남자였다.
나는 다시 한 번 이어질 코키나 클러치를 경계하며 팔을 위로 뻗었다.
하지만 그 순간.
“어딜!”
허리를 움켜쥐던 상태에서 다리의 각도를 옆으로 틀어버린 고가 그대로 링 위를 힘차게 구르기 시작했다.
“으헉?!”
나도 거기에 휘말렸다.
고는 내 허리를 붙잡은 채로 그대로 링을 여러 바퀴 구르며 원을 그렸다.
그걸 따라 옆으로 구르던 나는 순간적으로 시야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롤링 크레이들.
바닥을 여러 바퀴 굴러 상대방을 어지럽게 만든 뒤 핀으로 연결시키는 기술로, 높은 시전 난이도를 자랑했다.
그렇게 적어도 열 바퀴 이상.
눈앞에 별이 도는 걸 느끼던 나는 한 박자 늦게 지금이 커버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1……!]
순간 몸을 비틀며 빠져나왔다.
체력이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쓰리 카운트를 내주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로 대단한 기술이었다.
“크윽……!”
겨우 거리를 벌리고 빠져나온 나는 무릎을 꿇은 채 고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그런 와중 멋진 경기를 보게 된 팬들의 챈트는 하늘 높은 줄 몰랐고.
나 역시도 즐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걸 티를 내지는 못했지만.
‘역시 대단하군.’
난 놈은 난 놈이다.
사모아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