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
[신은 골드 디거야.]
링 위에서 마이크를 쥔 펑크는 거리낌 없이 폭로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시선이 순간 집중되었다.
지금껏 링 위에 선 그 어떤 선수도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펑크가 한 말은 순간적으로 팬들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다.
Gold Digger.
돈이나 신분 상승을 목적으로 나이든 남자와 자는 여자를 뜻하는, 경멸적인 어조를 담은 표현이었다.
그리고 펑크는 나를 그렇게 표현했다.
꽤나 흥미로운 디스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놈이 그렇게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었겠어? 안 그래?]
[Booooooooooooooooooo-!!]
일단은 야유가 나왔다.
하지만 팬들은 펑크가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댈 때마다 신기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고 이야기를 경청했다.
말이 가진 힘.
호기심을 느끼게 하는 카리스마.
모두 펑크가 가진 재능이었다.
[말하자면 티파니 맥센은 신의 Sugar Lady인 셈이지. 솔직히 말해서 본인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걸?]
펑크가 씨익 웃어 보였다.
[신은 과대평가된 선수야! 놈은 혁명가를 자청하고 있지만 체 게바라가 아니라 Sh-t 게바라인 셈이지!]
통렬한 디스.
팬들의 야유가 계속해서 이어졌으나 펑크는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팔을 좌우로 크게 펼쳐 보이며 쏟아지는 야유를 웃으며 받아냈다.
그리고 내가 나갈 차례였다.
그 헛소리에 맞서기 위해서.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Waaaaaaaaaaaaaggggghhhh!!]
내 음악 소리에 따라붙는 환호.
입장로를 걸어가 링으로 올라간 나는 미소를 지으며 펑크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고작 생각한 게 그거냐?”
“뭐?”
“날 깎아내리려고 한 말이 고작 사생활에 대해서 언급하는 거라니.”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럼 이 참에 좀 확실히 이야기를 해둬야겠구나 싶군. 맞아, 나는 티파니와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
개인주의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솔직히 사생활에 대해서 함부로 캐묻는 것은 무척이나 실례였다.
하지만 이 업계는.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언제나 스타의 사생활을 팔아서 연명해왔다.
결국 타인의 비밀을 관음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가진 욕망이라는 뜻.
나와 티파니의 관계 역시 그랬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뉴스 기사.
파파라치들.
각종 매체를 통해서 의도적이건 아니건 어느 정도는 공개가 되었지만.
링에서 확실히 말한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펑크의 디스는 확실히 대중들의 호기심을 빗대어서 자극했다.
내가 정말 골드 디거인가.
내 안티들이나 삼류 가십 잡지에서 자주 나온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나는 이 각본이 도움이 되겠다고 느꼈다.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쿨한 방식으로 나 자신을 변호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본이라는 탈을 빌려서.
그럼에도 너무 진지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도 영 좋지만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봐봐.”
따라서 나는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던지고는 멋진 근육으로 뒤덮인 상반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보였다.
그리고 링 아래로 내려갔다.
좋아 비명을 지르는 팬들.
“꺄아아아아악!!”
나는 개중에서 가장 큰 비명을 지르고 있는 여성 팬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렇게 섹시한 남자에게 반하지 않는 여자가 세상 어디에 있겠어?”
“으앙! 너무 개새끼야! 사랑해!”
[Yeeeeeeeeeeeeeeeeeaaaahhhh!!]
환호가 쏟아졌다.
그와 함께 내게 안겨오는 여성 팬.
나는 그녀가 키스를 퍼붓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키스하면 집에 들어가서 잔뜩 혼이 나거든.
“그런 의미에서 날 골드 디거라고 부른다면 어쩔 수 없지. 미안하게 됐어! 넌 그러지 못해서 화가 나겠군!”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직후, 여성 팬이 참지 못하고 내 뺨에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순간 당황한 채 희롱을 받아들인 나는 뺨에 입술 자국이 잔뜩 남은 것을 느끼며 다시 링으로 올라갔다.
앞으로 내려온 머리를 다시 쓸어 올리자 펑크가 나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냐?”
“……아 뭐, 먼저 반한 건 내가 아니니까 착각하지 말란 소리지.”
나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사실이기도 했다.
먼저 호감을 표한 건 티파니였다.
그리고 전생에 그녀가 트리플H와 사귀고 결혼까지 한 일로 인해서 망설이던 내가 결국 마음을 열게 되었지.
“비즈니스 관계에서 연애 감정으로 발전하는 건 사실, 흔한 일이잖아?”
“자꾸 네 순수성을 증명하려고 하는데, 신. 그게 듣고 싶은 건 아니야.”
“그럼 뭐지?”
“중요한 건 네가 티파니 맥센을 옆에 두면서 수많은 기회를 받았단 거야! 여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나?”
“그래, 그 말은 틀리지 않았어.”
난 솔직하게 인정했다.
“우리는 사생활을 떼놓고서라도 함께 하고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야.”
오히려 당당한 내 태도를 보고 팬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래서 지금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너야말로 내 사생활을 폭로해서 대체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야?”
“너는 지금껏 스스로 기회를 쟁취해낸 것처럼 말하지만 아니었단 거지.”
“이 또한 스스로 쟁취한 거잖아.”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이 빌어먹을 업계는 선택된 자들만이 위로 올라갈 수 있어. 그리고 난 그걸 위해서 티파니를 유혹한 거야.”
누가 당해내겠어?
이렇게 멋진 남자를.
나를 ‘동양인’이라는 틀에 가둬둔 채 생각하는 이들이나 계속 부정하겠지.
하지만 티파니는 그렇지 않았다.
“만약 바트 맥센이 그랬다면 난 그 남자를 유혹했을 거야. 하지만 그 영감은 언제나 나를 틀에 넣어두었지.”
그리고 여기에서.
나는 펑크의 의견을 뒤집었다.
“네가 그걸로 날 비난한다면 어쩔 수 없지. 펑크. 하지만 확실한 건, 넌 기회를 받을 수조차 없다는 거야.”
거기에 더해.
“그 기회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 또한 할 수 없겠지! 그렉 하트! 레전드 오브 레전드! 캐스켓-테이커! The Phenom!! 네가 이들과 맞서 싸워서 과연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Waaaaaaaaaaaaaaagggghhhh!!]
그건 중의적인 표현이었다.
각본 상의 승리가 전부가 아니다.
만약에 승리를 하더라도 팬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역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타낸 기회마다 확실하게 인정을 받았다. 모든 팬들이 적어도 ‘네가 이길 수밖에 없지.’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난 그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내가 누구지?! 나는 SIN이야!! 지금! 바로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레슬러 중에서 최고의 선수이자 언젠가 역사상 최고의 남자로 기록될 Bad MotherFu-ker지!!”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이들의 환성이 들리나?! 펑크! 너는 절대로 날 이겨낼 수 없어! 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 생각을 철저하게 박살 내주지! 이 개자식아!!”
나는 곧바로 마이크를 내던졌다.
펑크 역시도 마이크를 던졌고, 이윽고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와서 섰다.
Face To Face.
[Waaaaaaaaaaaaaaggggghhhh!!]
오늘의 메인 이벤트.
SIN VS C.M. Punk.
물론 최고의 경기가 될 터였다.
* * *
링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펑크는, 눈앞의 신이 다가오는 것을 통해 경기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감각이 점차 사라졌다.
팬들의 환성.
잘 풀어진 몸의 감각.
모든 게.
그리고 남은 건.
눈앞에 서있는 거대한 남자뿐.
새삼 그가 누군지를 느꼈다.
SIN.
현재 이 프로레슬링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키 플레이어.
어쩌면 정말로 이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남자.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에게 쏟아지는 환호 속에서 펑크는 오직 한 가지 일만을 생각했다.
나는 왜 그와 싸우고 싶은가.
왜 싸워서 이기고 싶은가.
나는 누구인가.
신은 방금 멋지게 보여주었다.
링 세그먼트에서.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말했다.
팬들은 그 드라마에 열광했다.
그리고 펑크 역시도 그랬다.
똑같은 인디 출신.
거기에다 인종적인 벽까지.
하지만 신은 그걸 넘어섰다.
그것은 펑크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더 나아져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
자신은 자신.
그런 남자를 뛰어넘기 위해.
펑크는 곧바로 팔을 치켜들었다.
쿵-!!
두 선수가 맞붙었다.
거기에서 터지는 팬들의 환호.
단지 그것만으로.
락 업을 위해 팔을 엮고 링 위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반응이 쩔어줬다.
그런 상황에서 펑크는 머릿속으로 이것이 레슬링이라는 생각을 했다.
‘빠르군.’
락 업을 통해 시작되는 체인 레슬링의 속도는 평소 하던 것보다 빨랐다.
그럼에도 따라가지 못할 건 없었다.
등 뒤로 돌아들어와 펑크의 허리를 잡는 신. 펑크는 그대로 뒤쪽으로 엘보를 휘둘러 그 뺨을 후려쳤다.
퍽! 퍽! 퍽!
3연발.
신의 손이 순간 풀어졌고 펑크가 뒤로 돌아들어가 그 허리를 붙잡았다.
바닥에 바싹 붙는 신.
그 위에 올라탄 펑크는 순간적으로 몸이 번쩍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힙 토스.
엉덩이를 이용해 상대의 하반신을 쳐내 반대편으로 내던지는 기술.
그와 함께 헤드 록이 걸렸다.
“끄윽……!!”
수준 높은 공방이었다.
두 사람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서로 뒤엉킨 채로 경기를 이어나갔다.
누워 있는 펑크에게 헤드 록을 걸다 순간 신의 머리가 뒤로 빠진 순간.
펑크는 다리를 들어 그 머리를 조였고 신은 허리를 힘차게 튕겨 올리면서 관절기로부터 빠져나왔다.
동시에 일어서는 두 사람.
그와 함께 관자놀이를 노린 펑크의 라운드하우스 킥이 힘차게 휘둘러졌다.
순간 위험했으나.
[Uooooooooooooohhh……!]
너무 큰 기술이었다.
공격을 피해낸 신은 그대로 해머링과 찹을 이용해 펑크를 몰아붙였다.
환호는 완전히 저쪽에서 가져갔다.
로프에 등이 닿았다.
쫘악!
찹 한 방을 통해 펑크의 가슴을 열리게 만든 신이 그대로 손을 잡고 반대편으로 내던졌다.
로프 반동.
반대편 로프를 타고 돌아온 펑크의 앞에 나타난 것은 레슬링 부츠였다.
그 밑단.
콰앙-!!
안면을 힘차게 드롭킥으로 걷어차인 펑크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렇게 넘어간 주도권.
신은 자신의 스타일대로 악랄하게 펑크를 몰아붙이며 계속 공격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완전히 원정 경기에 온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 펑크는 안전하게 그 공격을 받아내며 기회를 기다렸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것을 이겨내고 싶었다.
왜냐면.
‘내가 최고니까.’
더 잘할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펑크는 악과 깡으로 신의 공격을 버텨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회가 찾아왔다.
통증과 체력에서 밀려 지친 펑크는 코너 쪽으로 힘껏 내던져졌다.
쿵-!!
턴 버클에 등이 부딪혔다.
코너 좌우로 뻗은 로프에 팔을 걸치고 늘어져 있던 펑크는 크게 링을 돈 신이 도약해 들어오는 걸 알았다.
그걸 옆으로 피했다.
콰앙-!!
“크헉?!”
코너에 정면으로 부딪힌 신이 통증에 괴로워하면서 뒤로 돌아섰다.
그걸 기다렸다!
“크아아악!!”
펑크는 곧바로 신의 머리를 겨드랑이 아래에 끼운 채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뛰어올랐다.
달려 나간 속도와 무게를 더해 신의 안면이 링 바닥과 충돌했다.
투콰앙-!
러닝 불독.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라고!!”
[Boooooooooooooooooo-!!]
야유 속에서 지지 않고 일어선 펑크는 특유의 근성을 발휘해 움직였다.
그의 스타일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었다.
왜냐면 펑크는 사실 기술에서는 딱히 특출 나지 못한 선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킥 공격에 정통하다는 이유로 ‘키커’로 분류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경기를 이끌어가는 운영 능력에 관해서만큼은 도가 텄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껏 자신이 생각했던 감정을 담아 신을 공격했다.
로프에 팔을 거친 채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를 향해 힘껏 내달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점핑 니 킥.
턱을 걷어차인 신이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왔고, 펑크는 그 팔을 잡고 당기며 힘껏 클로스라인을 먹였다.
퍼억-!
달려가다 빨랫줄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뒤로 넘어가버리는 신.
그 위에 올라타 커버.
[1……!]
[2……!]
빠져나왔다.
이게 끝이면 섭섭하지.
그렇게 생각하며 웃은 펑크는 신의 눈빛을 확인하고는 일으켜 세웠다.
잠깐 호흡을 고를 시간을 주기 위해, 펑크는 신의 머리채를 붙잡고 링을 돌며 팬들의 반응을 이끌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악바리 같은 근성으로.
그 누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는 지금 세상을 향해 소리쳤다.
“I’m The Best In The World!!”
[Boooooooooooooooooooo-!!]
인정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아니, 아예 없다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펑크는 씨익 웃었다.
현재 ‘세계 최고’인 신도 이런 반응으로부터 시작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펑크의 손을 뿌리친 신이 펑크의 안면에 호쾌한 슈퍼 킥을 날렸다.
쫘악-!
얼얼한 통증 속에서 쓰러지는 펑크.
비록 오늘 경기는 패배로 끝날 테지만, 기나긴 커리어에서 그는 계속해서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는 선수였다.
또한 PWA와 신은 충분히 그를 키워줄 만한 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