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
네바다 주의 지방 방송국인 NBS.
이곳의 킬링 프로그램은 분명 매주 화요일 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토크 쇼, ‘Nevada’s Night’였다.
각기 다른 게스트들을 불러 이야기도 나누고 인터뷰를 하는 프로그램.
그 진행자인 후르 무르티는 인도 출신으로, 더 위로 올라갈 야망을 언제나 가지고 있는 전문 아나운서였다.
선을 넘는 게 아니라 선이 없는 걸 콘셉트로 삼아서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지금까지 살아남아왔다.
어쨌든 화제성은 큰 무기다.
그렇기에 무르티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최고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인터뷰에 참가한 신 역시도 그렇기에 이 프로그램을 택한 것이었다.
평소 같았다면 무시했을 프로그램이었지만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거기다 오늘은.
아니, 정확히 방송 시작 5분 전에 이루어진 사고가 현재 인터넷 트렌드를 점점 장악하기 시작한 상태에서.
토크 쇼는 자연스럽게 무르티가 언제 사고를 칠까 하는 기대감을 품은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안녕하세요! 신!”
“아, 반갑습니다. 무르티.”
“제 이름을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이군요! 여기 앉으시죠!”
신은 조금 무뚝뚝한 태도였다.
그 스스로 일부러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물론.
실제로 그는 현재 무척이나 영민하게 지금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고.
인터뷰는 신과 티파니, PWA의 관계자들을 제외하면 그런 사실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이 되었다.
무르티가 말했다.
“지난주 경기는 정말 멋졌어요.”
“오, 보셨나요?”
“물론이죠! 요새 PWA로 인해서 미국 서부가 완전히 난리잖아요! 완전히 골드 러시 비슷한 느낌 아닌가요?”
“어……. 글쎄요. 이 업계가 이전처럼, 아니, 이전보다 훨씬 더 크게 성장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그런 업계의 약진에 본인 지분이 얼마 정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120퍼센트죠.”
“와우!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시다니 이거 정말로 놀라운데요!”
“그게 제 스타일입니다.”
신이 싱긋 웃어 보였다.
그제야 좀 분위기가 풀어져 대화를 지켜보던 방청객들이 신에게 박수를 보냈다.
인터뷰는 계속 이어졌다.
출신지.
“로스 엔젤레스 출신이죠. 완전 어렸을 적에는 코리아타운에서 주로 지내다가 학교를 좀 멀리 다녔어요.”
평범한 공립학교.
“거기에서 처음에는 애들이 키 작고 왜소한 꼬마가 있으니까 신나게 두들겨 패다가……. 갑자기 성장기가 되면서 키가 엄청나게 크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운동을 시작했고.
“뭐, 그렇다고 해서 풋볼 멍청이들 무리에 어울릴 수는 없었고,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프로레슬링을 봤죠.”
그렇게 친해진 친구들과 성장한다.
“졸업한 뒤에는 홧김에 집을 나와서 무작정 선수 생활을 시작했어요.”
“집안의 반대가 심했나요?”
“예, 아버지가 엄격하셔서. 위험한 짓은 하지 말라고 항상 이야기하셨죠. 여기서 웃기는 게, 아버지가 그러면서 절 항상 위험하게 던졌다는 거예요.”
“신 선수 같은 덩치를 던진다고요?”
“아버지는 더 크시거든요. 그래도 엄마한테는 절대로 못 당해내지만.”
“와이프를 이길 수는 없죠.”
“저도 그래요.”
신이 씁쓸하게 인정했다.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분위기가 바싹 달아오르고 팬들이 신이라는 캐릭터에 집중하는 타이밍.
무르티는 그때를 노리고 있었다.
질문이 넘어갔다.
“그렇게 인디 시절을 거쳐 최고의 스타가 되고, 현재는 PWA에 계시죠. 솔직히 말해서 어떻습니까?”
“환상적인 쇼죠. 재능 있는 선수들도 많고, 저도 매일매일 위기감을 느끼면서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선수가 가장 기대됩니까?”
“사모아 고? 아니면 쟈니 에이스나 AK 스타일스 같은 테크니션도 좋죠.”
“C.M. 펑크는요?”
“…….”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시선이 교차했다.
고민하는 척 이야기하던 신은 황당하다는 듯 무르티를 보았고, 무르티는 음흉한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신은 표정을 가다듬었다.
“존경하는 선수입니다.”
“그런가요? 요즘 대립을 하시는데 뭔가 애로사항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뭐, 서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한 신이 입을 다물었고, 무르티는 카메라 감독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반응을 확인했다.
자, 무대는 준비되었다.
현실로까지 번진 프로레슬러들의 감정싸움.
그걸 바로 이 순간 보도하게 되다니 정말로 운이 좋았다.
카메라가 순간 얼이 빠져 있는 방청객들의 얼굴을 비췄고, 감정을 숨기려 드는 신의 표정까지도 긁어냈다.
‘모조리 빨아먹어주마.’
시청률이 상승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생각한 무르티는 이어서 다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조금 전에 트위티에서 펑크가 한 말에 대해서…….”
“아, 그건 좀.”
“좀 이야기해주시죠. 인터뷰 직전에 터진 일로 인해 지금 다들 온 신경이 그쪽에 가있는 것 같은데.”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인터뷰어로서 질문입니다.”
“펑크의 독단적인 행동에 대해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십니까?”
“예, 예.”
“후우……. 무르티. 이건 오프 더 레코드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하죠. 혹시 보드카나 담배 같은 거 있습니까?”
“아, 저는 안 피워서.”
됐다.
무르티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그러자니 뒤를 이어서.
카메라 바깥쪽에서 뭔가 반짝이는 게 날아오더니 신이 그것을 받았다.
담배 케이스.
“……?”
무르티가 의아하게 보자 담배를 던진 티파니 맥센이 곧장 뒤로 돌아섰다.
사실, 좀 이상한 행동이었다.
보통 이런 때에는 괜한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말리는 것이 정상 아닌가?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어진 신의 행동에 집중하느라 순간적으로 지워졌다.
“Thank you.”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 그가 케이스를 테이블에 요란하게 떨어뜨렸다.
날카로운 소리.
신은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오감을 조종하며 퍼포먼스를 펼쳐나갔다.
물론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이건 현실이다.
펑크가 트위티에 쓴 디스와 함께 지금까지 이어진 신의 행동은 모조리 진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모두 그렇게 느꼈다.
“어차피 그 개새끼도 선을 넘었으니 나 역시 참을 필요는 없겠지.”
“그, 그렇겠죠.”
고개를 끄덕이는 무르티.
시청률이 촤르르르륵, 올라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확실히 말해두지. 펑크 그 개자식은 애새끼처럼 징징대는 것만 할 줄 알지 스스로 노력해본 적이 없다고.”
“노력이라면 어떤……?”
“뭐, 여러 가지가 있겠지. 사람들하고 잘 지내보려고 한다던가. 그 좋아하는 콜라를 끊는다던가.”
“펑크가 콜라 중독인 건 유명하죠.”
“제기랄, 술, 담배, 약물을 안 하면 뭐해? 지금은 좀 덜 하지만 인디 시절의 그 자식은 완전 돼지였는데.”
신은 끝없이 디스를 넣었다.
펑크의 태도 문제를 지적하면서 기회를 받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고.
이전에 비해 확연히 거칠어진 말투가 그런 말의 생동감을 더해주었다.
“뭐, 솔직히 말하지. 내가 최고는 아니더라도, 펑크처럼 이 업계에서 매년 사장되는 다른 평범한 선수들에 비하면 기회를 많이 받은 편이기는 해.”
하지만 말은 똑바로 해야지.
“이 업계에서는 그 기회를 받는 것도 능력이야. 처참한 사회의 룰이지.”
그리고 하나 더.
“나는 증명했어. 기회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그게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서있을 수 있겠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신은 팔을 좌우로 번쩍 펼치며 환호를 유도했다.
[Yeeeeeeeeeeeaaahhhh!!]
박수를 치는 방청객들.
“이게 보이나? 펑크? 내가 단지 기회를 받기만 했다면 가능했겠어?!”
무르티는 그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순간 시선을 빼앗겼다.
카리스마 있게 논리를 전개해나가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시청자들과 펑크에게 거대한 경고를 날리는 신.
그 모습이 순간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신이 다음 이야기를 한 직후였다.
“그렇다면 좋아! 내가 너에게 기회를 주지! 링 위에서 다시 붙어보자고!!”
“……?”
방청객들도 순간 의아해했다.
방금 신의 말로 인해 현실에 다시금 각본이라는 파도가 엄습해 들어왔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는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존재하는 가운데, 무르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완전히 엿을 먹었다.
이게 실제 상황이었다면 프로레슬링 경기를 하자고 말할 이유가 없다.
즉, 모조리 각본.
지금까지의 인터뷰가 전부 저들이 꾸며낸 각본의 일부였고, 그런 것도 모른 채 이용을 당하게 된 그는 깊은 불쾌감을 느꼈다.
‘우리를 속여?’
아무리 지방 방송국의 마이너한 방송 프로그램이라고 한들, 이런 취급을 받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신이 다시 소파에 앉았고, 무르티는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완벽한 연기력에 깜빡 속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각본이었냐며 몰아붙이는 건 쿨하지 못한 짓이었다.
프로레슬링은 원래 그런 콘텐츠니까.
거기다 여기에서 자신들도 몰랐다는 포지션을 취하면 비웃음을 살 테고.
그러므로 방법은 하나.
일단 강하게 맞춰주는 거다.
“정말로 화가 나셨나 보군요.”
“뭐, 그렇죠.”
“선수가 개인 SNS에서 분노를 표출했던 적이 과연 있었나 싶은데요.”
“제가 기억하기론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더 화가 나는군요.”
이것이 선수의 실제 감정인가.
아니면 각본의 일부인가.
대사 하나하나에서 팬들이 흥미로운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부채질하며, 신은 자연스레 경기의 기대감을 부추겼다.
그렇게 이야기를 받아주며 인터뷰를 이어가던 무르티는, 방송이 끝나기 5분 전 생각해두었던 질문을 꺼냈다.
“다음 질문은…… 솔직히 대답해주셔도 되고 안 해주셔도 되는데요.”
“뭐죠?”
“당신의 섹스 라이프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팬들이 많아서 말이죠.”
“……?”
“어떤가요. 신. 편견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편견일 뿐? 당신은 침대에서 어떤 남자인가요?”
“흠.”
신은 뜻밖에도 침착했다.
사실 이 질문은 PWA 측에서 하지 말라고 요청했던 사생활, 그것도 아주 딥한 사생활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쪽에서 먼저 ‘속인’ 이상 무르티는 자신에게도 계약 조항을 넘어설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신이 인터뷰에서 현실과 각본을 뒤섞은 것과 이 문제는 관련이 없었지만.
‘뭐 어쩌라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결국 화제성이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웃자니 뒤를 이어 신이 한마디를 내뱉고 일어섰다.
“Ask Your Wife.”
이런 것에 어울려줄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나온 짧은 한마디.
차별적인 어조가 섞인 상대방의 무례한 질문을 지지 않고 받아치는 동시에 코믹하기까지 한 대답이었다.
내가 침대에서 어떤 남자냐고?
네 마누라에게 물어봐라.
그런 식으로 대답한 신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무르티를 가만히 놔두고 카메라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결국 거기에 무르티가 카메라 쪽을 돌아보며 끊으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이를 어쩌나.
이미 일련의 대화는 방송을 타고 네바다 주 전체에 나간 뒤였다.
* * *
‘병신.’
방송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나는 무르티에 대해 생각했다.
녀석은 쓰레기였다.
아나운서 직에서 온갖 사고를 치고 잘린 이후에도 어떻게든 가십 잡지에서 인터뷰 기자로 연명을 했고.
이후에는 온갖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무례한 질문을 하면서 그런 걸 좋아하는 팬들에게 잡지를 팔고 살았다.
말하자면 스케빈저 같은 놈이다.
남이 남긴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모아서 어떻게든 먹고 사는 빌어먹을 자식.
그렇기에 나는 녀석에게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애초에 세상에서 가장 멍청하고 저열한 짓 중 하나가 인종으로 상대방을 검열하고 판단하는 것이었다.
거기다 이 인종의 용광로인 미국에서, 생각까지는 몰라도 쉽게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티파니도 화가 났다.
사실 나보다 더.
“바로 고소장 제출하라고 했어요.”
“……뭘 이런 걸로 고소까지.”
“확실히 짚고 넘어갈 문제죠. 완전히 인격 모독이라고요. 이런 개 같은 질문을 하는 놈들은 어떻게 되는지 예시를 하나 만들어둬야만 해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대며 시트에 몸을 기댔다.
그러더니 갑자기 킥킥 웃었다.
“뭐, 그래도.”
“응?”
“센스 있는 답변이었어요.”
“그, 그래?”
“예, 속이 통쾌했죠. 그런 놈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상대를 해줘야 해.”
그런 의미에서 나의 Ask Your Wife는 가슴이 뻥 뚫리는 멋진 디스였다.
……어, 솔직히 무르티에게 말한 걸 후회하지는 않아도, 과연 방송에서 내뱉어도 괜찮은 말인가 싶었는데.
티파니가 이렇게 좋은 반응을 보이자 나 역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티셔츠라도 발매해야겠군.’
Ask Your Wife 티셔츠.
분명히 잘 팔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