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34화 (334/634)

334.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Ask Your Wife.

거기에 여성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해서 Ask Your Husband 티셔츠까지.

“……이래도 되는 겁니까?”

“돈이 되면 뭐든지 해야죠.”

“아니, 도의적 문제가.”

“옛날에 이보다 더한 티셔츠도 발매해본 사람이 왜 그래요?”

그랬었나.

이른 아침.

멀리서 평화롭게 새가 지저귀는 가운데 이런 막장 티셔츠의 도안을 보고 있자니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쩌겠나.

‘우리는 자본주의의 노예인데.’

검정 티셔츠에 프린팅을 넣은 이 제품은, 듣자하니 싸게 판다는 모양이다.

“어차피 이런 막장 티셔츠는 평소에는 입기 힘드니까, 싼 값에 집에서, 혹은 가끔 경기장 올 때 입는 용도 정도로 팔아야지.”

그렇게 말한 것은 할리 레이시였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내가 집에서 저 티셔츠를 입고 아버지를 마주치는 광경을.

‘……두렵군.’

어쨌거나.

그 말 자체에는 동의를 했다.

어차피 대다수 프로레슬링 티셔츠가 그렇듯이, 머천다이즈 상품은 결국 팬심을 자극해서 파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티셔츠는 입고 다니다가 괜히 시비에 걸리거나 할 수도 있으니.

그냥 프린팅이 웃기다면서 사게 하는 편이 여러모로 맞는 전략이겠지.

나라면 평소에 친한 친구에게 선물하는 용도로 사지 않을까.

그런 느낌으로 도안을 정하고.

이후로 우리 크루는 오늘 밤에 개최될 위클리 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일단 시설팀에서 점검에 들어가고.

그사이 나는 펑크, 고와 어제 나온 각본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 쪽 각본은 되도록 러프한 편으로 짜서 선수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따라서 감정이 격해졌을 때 수위가 높아지는 문제도 생겼지만, 그건 시청 등급을 한 단계 높여서 해결했다.

어쨌든 그로 인해 선수들은 확실히 자신의 재능을 뽐낼 기회를 받았다.

뭐, 어디까지나 방법론의 차이였지만, 나는 이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자면 이러했다.

“경기 시간은 15분.”

“그 후에 고가 난입해서 경기를 망치는 걸로 메인이벤트를 끝낸다고.”

“음…….”

각자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다.

경기를 어떤 식으로 진행하고 망치면 그림이 좋을까. 개연성이 있을까.

그리고 팬들이 열광할까.

이 과정에서 링 프로듀서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최근 들어 거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 양반들은 할 일이 많았고, 최근에는 내가 뭘 한다고 해도 그냥 알아서 하라며 놔뒀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생각해?”

나는 최근 들어서 마치 내가 링 프로듀서가 된 것처럼 다른 선수들에게 의견을 묻는 일이 많아졌다.

오늘 어떻게 할 것인가.

경기를.

대립을.

연출을.

그러자니 두 사람은 고민에 잠겼고.

얼마 후, 펑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립 예정이 올해 말까지지?”

“그래.”

“시간은 많군.”

“팬들이 보면서 지루해하지 않도록 호흡 조절이 무척 중요할 것 같은데.”

“삼파전이니까……. 대립을 점점 합쳐간다는 느낌을 내면 될 것 같은데.”

나는 가볍게 박수를 쳤다.

거기에 집중하는 두 사람.

“일단 그렇게 길게 볼 때가 아니야. 바로 오늘 각본에서 어떤 재미를 주고 다음 주를 기대하도록 하느냐지.”

“그 말이 맞군.”

고개를 끄덕이는 고.

사실 내 생각은 간단했다.

오늘은 녀석이 빛날 때였다.

결국, 프로레슬링이라는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팬들에게 어떤 기대감을 심어주고 충족시켜주느냐였다.

그리고 그런 팬들의 기대감을 위해 우리는 레슬러다운 체형을 만들고 기술을 연마하며 입을 털어대는 거지.

말인즉슨, 간단했다.

“우리가 해온 걸 생각해.”

나는 두 사람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무엇을 할 건지 생각해.”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면서 현재를 만들어낸다.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우리의 목표.

우리가 해온 일.

그걸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분명 오늘 할 일이 보인다.

“이건 어때?”

입을 여는 펑크.

“고는 분명히 야유를 받을 거야.”

나는 미소를 지었다.

분명히 그럴 터였다.

2차전에 대한 기대감을 그렇게 심어놨는데 그 결말이 고의 난입으로써 끝난다면 분명히 큰 야유가 나오겠지.

선역과 악역의 경계가 모호한 것이 PWA에서 선보이는 프로레슬링의 특징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야유를 최대한 받게 하기 위해서, 내가 좀 더 팬들에게 큰 야유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펑크가 날 돌아보았다.

“지난주에도 그랬잖아? 분명히 나는 도전자의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Best In The World라고 말했지.”

“그랬었지.”

그게 펑크의 매력이고.

분명히 세계 최고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당당히 그 말을 입에 담는 패기.

그리고 그는 세계 최고가 되어간다.

그게 펑크의 커리어 내내 쫓아다녔던 그의 드라마틱한 캐릭터였다.

“그러니까 고가 야유를 받게 하기 위해서 내가 먼저 링에 올라갈게.”

“어떤 식으로 할 건데?”

“내가 왜 Best In The World인지를 링 위에서 설명할 거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고. 그러므로 분명히 나에게 야유를 보내겠지.”

펑크의 생각은 이러했다.

자신이 링에 올라가서 야유를 끌어내고, 내가 등장해 경기가 시작된다.

“아마 관객들은 내가 너에게 확실하게 패배하는 그림을 바라고 있겠지.”

그렇기에 경기의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고가 나와서 경기를 망친다면 분명히 큰 야유를 받게 될 터였다.

“이 야유를 더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신을 공격하고…… 펑크 너도 거기에 합류하는 편이 좋겠군.”

“그렇겠네. 그리고 야유를 한껏 끌어냈다는 생각이 들면 고, 네가 나에게 머슬 버스터를 먹이는 거야.”

그렇게 링은 정리될 테고.

고가 주도권을 쥔 채 쇼는 종료.

“문제는 여기에서 고가 나를 공격했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오느냔 건데.”

“어떻게 생각하지? 신.”

“거기에서는 환호가 나올 거야.”

여기서는 좀 도와주었다.

지금 포지션을 정리해보자.

내가 선역.

고가 트위너.

펑크가 악역.

대강 이런 구도로 돌아가고 있다.

……물론 PWA는 선악역이 모호하지만, 어디까지나 팬들의 기준을 통해서 생각을 해봤을 때 그렇단 말이다.

그렇기에 고가 날 공격했을 때는 야유를 받겠지만, 펑크를 공격하면 도리어 환호를 받게 될 터였다.

“이 디테일이 중요해.”

나는 그걸 설명했다.

고가 환호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날 쓰러뜨린 이후에 펑크가 보기 싫게 까부는 과정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이해했어.”

뜻밖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거기에서 좀 놀랐다.

사실, 각본이 이렇게 되면 펑크를 완전히 밑바닥으로 깔아버리는 내용이라서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협조성이 좋아졌는데? 펑크.”

“……난 언제나 그랬다고.”

녀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글쎄.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웃자니 가까이 다가온 펑크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희를 믿으니까 이러는 거야.”

“흐음……?”

“네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의 목표를 생각하면 언젠가는 나 역시 커피의 크림처럼 위로 떠오를 거 아니야?”

그 말이 맞았다.

“좋은 마음가짐이군.”

고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나아졌는데.’

여기에 WWF로 갈 때 고까지 붙여보내면 걱정할 염려는 없겠지 싶었다.

고는 펑크와 인디 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니, 두 사람이 함께라면 아마 험난한 WWF 생활도 잘 버틸 수 있을 터.

내가 할 일은 그때가 될 때까지 이 두 사람과 멋진 쇼를 만드는 거였다.

* * *

링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쥔 펑크에게 어마어마한 야유가 쏟아졌다.

[Booooooooooooooooooo-!!]

그 상대가 나이기에.

또한 그가 하는 디스가 팬들의 마음을 설득하지 못하고 꼴사나운 질투처럼 보였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펑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전혀, 조금도.

특유의 턱을 샐쭉 내밀고 입을 다문 얼굴로 팬들이 진정하길 기다렸다.

‘난 놈은 난 놈이야.’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생각보다 어렵다, 저거.

아무리 PWA의 관객 수가 적다고 한들, 2,000명이었다.

그들이 모두가 자신에게 야유를 보내는데, 제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펑크는 그걸 해냈다.

그리고, 그 이상에서도 해냈다.

미래에 레슬 임페리움의 20만 관객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던 그.

그렇기에 다소 멘탈 문제가 있더라도 미래로 데려가고 싶은 것이었다.

펑크는 링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마이크 워크를 할 때 녀석이 자주 취하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펑크는 관객들의 야유가 조금 잦아들자 곧바로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TV 쇼를 보았나?]

의문형으로 시작되는 마이크워크.

[바로 어젯밤이었지. 거기에서 신은 내 트위티 메시지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어.]

[Booooooooooo……!]

[그리고 내게 기회를 준다고 말했지? 좋아. 넌 지금 실수한 거야.]

펑크가 낄낄 웃었다.

거기에 다시 야유가 쏟아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펑크가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올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

왜냐면 펑크니까.

팬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녀석은 땅바닥에 손가락을 대고는 하나하나, 차례차례. 굳건히. 자신의 의지를 담은 문장을 말해나갔다.

[I am The Best Wrestler…….]

In The World.

[Booooooooooooooooo-!!]

녀석이 미래에도 몇 번이고 말하게 될 자신의 캐치프레이즈와 같은 말.

[그렇기에 신, 네가 나에게 기회를 준 건 실수야. 왜냐면 지난주와는 다르게, 나는 널 박살 낼 생각이거든.]

야유가 계속해서 쏟아졌다.

아직까지 인정받지 못한다.

팬들은 펑크를 인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스스로는 계속해서 자신이 세계 최고의 선수임을 자부했다.

일리노이 주 출신의 말라깽이.

시카고의 상징인 육망성 네 개가 들어간 삼각팬티 스타일의 경기복.

팔뚝을 덮도록 붕대를 칭칭 감은 것이, 남들과는 영 다른 모습이었다.

비록 여기에 와서 벌크 업을 했다고 한들, 녀석은 다른 몸 좋은 선수들에 비하면 정말 하잘 것 없는 선수다.

그뿐이랴.

기술력도 부족하고.

문신으로 뒤덮인 몸은 대충 동네에 돌아다니는 양아치처럼 느껴질 정도.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만 하면.

팬들은 그 카리스마와 설득력에 매료되었고.

펑크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그럼에도 안타깝게도 놈은 자신의 에고에 잡아먹혀 괴물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 생에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게 둘 마음은 없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W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의 환호와 함께 링 위로 올라간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서는 펑크의 안면에 힘차게 박치기를 날렸다.

쫘악-!

중간에 바닥을 대면서 타격감을 살리고 충격을 최대한 줄이는 형태로.

땡땡땡-!

내 기습으로 시작된 경기.

충분히 쉬었던 우리는 15분이라는 경기 시간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초장부터 봐주지 않고 서로 치고 받았다.

퍼억-!

그럴 이유도 존재했다.

펑크는 나를 사석에서 공격했다.

그리고 팬들은 이런 이야기가 가진 현실성에 깊이 빠져들어, 우리 두 사람의 싸움에 몰입해주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일방적인 환호 속.

나는 힘차게 펑크의 뺨을 후려쳤고, 펑크도 지지 않고 내 무릎을 찼다.

그렇게 주먹을 주고받던 우리는 현장감을 더하기 위해 링 아래로 내려가서도 계속해서 서로 싸워댔다.

[Waaaaaaaaaaaaaaaggggghhh!!]

“신! 저 새끼 박살 내버려!!”

“뒈져라!! 펑크!!”

바리게이트 바로 뒤쪽의 팬들이 우리를 보며 일어서 크게 응원을 보냈다.

카메라가 뒤따라오며 그런 우리 두 사람을 찍었고, 현장감이 더 커졌다.

나는 관자놀이를 노린 펑크의 라운드 하우스 킥을 피하고 그대로 다시 한 번 힘차게 박치기를 먹였다.

쩌억-!!

“통하겠냐?!”

동작이 큰 기술이다.

맞아줄 리가 없다.

펑크가 순간적으로 크게 휘청거렸고 나는 링 코너 아래쪽에 설치되어있는 철제 계단을 등진 채 바로 섰다.

로프 반동을 하듯이.

펑크의 팔을 잡고 당긴다.

“윽?!”

힘으로 당겨져 달려간 녀석이 곧바로 철제 계단에 어깨부터 충돌했다.

쿠당탕-!!

날카롭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펑크. 나는 그대로 다시 링 위로 올라가 일단 카운트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로프를 타고 탑 턴 버클 위로 올라가 팬들의 반응을 끌어냈다.

“누가 Best In The World지?!”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렇게 내가 보낸 ‘신호’에 맞춰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우는 펑크.

나는 녀석을 믿고 바라보았다.

여기서 링 아래는 3미터 이상.

뛰는 높이를 생각하면 4미터 정도.

그렇기에 받아주지 않으면.

난 죽는다.

하지만 믿는다.

쫘악-!

뺨을 두들겨 기합을 넣은 나는 곧바로 몸을 비틀어 탑 턴 버클 위에서 펑크를 등진 채로 섰다.

그 상태에서 하늘을 향해 검지를 가리키며 신호를 보냈다.

Go.

이어 내 몸은.

[Uooooooooooooohhhhh!!]

경악하는 팬들의 목소리 속에.

힘차게 뒤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펑크를 향해서 떨어져 내렸다.

문설트.

다리를 포함해 온몸을 쭉 편 채로 떨어지면서, 나는 곧 이어서 엄청난 충격이 몸을 덮치는 것을 느꼈다.

투콰앙-!

순간 복부에 느껴지는 충격.

펑크가 나를 받아냈다.

녀석과 함께 쓰러지며 몸이 뒤로 기울었고, 나는 다리가 땅에 닿는 순간 굽히며 그대로 뒤쪽으로 굴렀다.

몇 바퀴 구른 뒤, 통증을 참아내며 겨우 자세를 바로 한 나는 말을 잇지 못하는 팬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다행히 부상은 없었다.

“끄, 끄그극…….”

날 받아낸 펑크는 아파서 죽으려고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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