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36화 (336/634)

336.

11월 중순.

싸늘한 한기가 경기장 내부를 휘감은 가운데, PWA 측에서는 난방 장치를 점검하고 가동 준비를 마쳤다.

매주 2,000명이나 되는 관객들을 맞이해야 하는 만큼, 그에 관한 대비 역시 철저하게 해두어야만 했다.

소방 설비라던가.

아니면 시설 관리라던가.

그중 하나가 난방이고.

‘여름에는 냉방이듯이.’

실내가 서서히 따뜻해졌다.

“으아, 역시 이거지.”

“와, 추워 죽는 줄 알았네!”

선수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런 가운데, 나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짐을 락커에 넣어두고 있었다.

레슬링 기어는 재질이 재질이니만큼 항상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해주지 않으면 곰팡이가 슨다.

롱팬츠.

부츠.

패드.

테이프.

안에 입는 언더웨어.

가죽 재킷.

선글라스까지.

전부 락커에 넣어둔 나는 방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끼며 패딩을 벗었다.

이건 손에 들고.

그대로 돌아보자니 현재 함께 일하고 있는 두 사람이 내 앞에 다가섰다.

사모아 고.

“따뜻해져서 좋군.”

그리고 C.M. 펑크.

“이제 핫 팩 안 붙여도 되겠어!”

“……뭔가 가난한 단체 같으니까 굳이 핫 팩 같은 소리는 하지 마라.”

겨우 며칠 늦었을 뿐이었다.

네바다 주의 법안에 의거해서, 실내 온도가 10도 이하로 내려가야만 중앙 난방 시스템을 트는 게 가능했는데.

이게 우리는 좀 묘해서.

관객들이 꽉 들어차서 소리 좀 지르다 보면 금방 10도가 넘어가 쉽사리 난방을 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슬슬 팬들이 안에 들어와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동장군이 코웃음을 칠 정도로 날씨가 추워지고 있었다.

말인즉슨 시간은 지났고.

우리의 대립은 좋은 반응을 얻고 각자 모멘텀을 쌓으며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안녕~ 신.”

챔피언, 리키타를 중심으로 해서 운영을 해나가고 있는 위민스 디비전.

“오, 캡틴! 일찍 나왔네.”

AK나 쟈니 에이스 같은 테크니션들이 든든하게 경기력을 받쳐주면서.

우리는 내실을 다진다는 1차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해나가고 있었다.

‘좋군.’

이 충실감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곧바로 고, 펑크와 함께 각본 팀 사무실로 향했다.

거기에서 최종 픽스된 각본을 확인하고 오늘 일을 체크한 뒤 준비를 하는 것이 바로 낮 동안 할 일이었다.

하지만 가던 중.

“신!”

복도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본 나는 펑키 헤어 바쿠를 발견했다.

그가 다가왔다.

“바쿠……?”

“잠깐 와줄 수 있나?”

“무슨 일이죠?”

“어, 정보를 하나 입수했는데.”

아무래도 여기서 하기에는 곤란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바로 가죠.”

“고맙네.”

고개를 끄덕이는 바쿠.

고, 펑크에게 양해를 구한 나는 바쿠의 뒤를 졸졸 따라 사무실로 향했다.

공동 대회의실.

안으로 들어서자 다들 모여 있다.

“……? 웬일이죠.”

오늘 회의하는 날도 아닌데.

그러자니 중심에 서있던 티파니가 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일단 앉아요.”

“그, 그래요.”

그 말에 앉았다.

그러자니 이야기가 나왔다.

“방금 입수한 정보인데, 아무래도 ACW 측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나봐.”

“뭘? 전쟁이라도 하재?”

“그건 아니고요. 아무래도 저희 쪽 선수들과 접촉을 한 모양이에요.”

“펑크와 고겠지.”

난 또 뭔 대단한 정보라고.

“혹시 둘하고 이야기해봤어요?”

“안 해봐도 알아.”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두 사람은 절대.

절대 네버.

ACW에 갈 친구들이 아니었다.

단순히 신뢰의 문제가 아니었다.

“절대 안 가.”

“그걸 어떻게 확신하죠?”

“생각해봐. 지금 ACW가 어떻지?”

“nWo로 잘 나가고 있죠.”

“동시에, ‘경기’는 개판이지.”

그게 중요했다.

프로레슬링에서 경기가 차지하는 비중? 확실히 말하자면 크지는 않았다.

숀 시나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경기력이 좋은 것과 프로레슬러로서 대성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nWo는 그와는 달랐다.

로건은 늙었고.

“대시는 부상이 심하지.”

홀은 알코올 중독이다.

“이참에 명확히 말해두죠.”

슬슬 이야기할 때이기는 했다.

미래를 아는 자로서.

nWo와 ACW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분명한 근거와 함께 이야기한다면 분명 여기 있는 사람들도 안심하겠지.

적어도 우리 선수들은 WWF라면 몰라도 ACW로 갈 인물들은 없었다.

“ACW는 2년 안에 망할 겁니다.”

“뭐?”

“이전과 같은 영향력을 되찾기는 쉽지 않을 거란 이야기죠. nWo 각본이 언제까지 갈 것 같으십니까?”

“그래도 1년 정도는…….”

“그렇다면 이후는?”

“…….”

“키워둔 선수가 없잖습니까.”

WWF도 그렇게 멸망했다.

미래를 보지 않고, 현재 있는 선수들만으로 단체를 꾸려가다, 그들의 약빨이 다하면 몰락하는 구조.

그 아래의 선수들은 선배들의 잡을 받지 못해 팬들에게 그들보다 한 단계 더 낮은 선수로 인식되었고.

프로레슬링은 시시하다는 인식이 퍼져 팬들은 ‘OO가 좋았지.’라면서 과거를 추억하기만 하는 구조.

그러면 또 회사로서는 옛날의 그 선수들을 불러다가 단기 계약으로 경기를 뛰게 만드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ACW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단계까지 가지 않고 로건이 회사를 말아먹은 뒤 WWF로 돌아오면서 끝나지만.

어쨌든.

“현재 nWo 각본 때문에 자기들 자리가 없단 건 선수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하고 붙어서 제대로 된 경기가 나오겠습니까?”

“당신은 했잖아요.”

“……그래서 정말 힘들었지.”

솔직히 말해서.

로건과 했던 경기들은 내 실력을 온전히 백 퍼센트 발휘하지는 못했었다.

어떻게든 링 사이콜로지 쪽으로 밀어내서 최대한 옛날 스타일로 했지만.

“테이커와 했던 걸 생각해보라고.”

“음, 하긴……. 그때 당신, 아나운서 테이블에 배가 찍혀서 죽을 뻔했죠.”

“그, 그 정도는 아닌데.”

티파니의 시선이 사나웠다.

나는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

“제 말을 듣고도 불안하시다면 다들 펑크와 고에게 직접 물어보시죠.”

“아니…….”

고개를 내젓는 그렉.

“확실히 근거가 있는 이야기군.”

“일회성 경기라면 몰라도 대립을 이어가기에 적절한 상대는 아니지.”

“더군다나 같은 회사라면.”

“끔찍하군.”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 말이 맞았다.

확실히 대단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nWo는 한 단체의 아이콘이 될 만큼 엄청난 시대를 만들어냈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앞서 말한 대로 각자 문제들이 있어서 경기력 부분에서 절대로 팬들을 만족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시나도 경기력이 안 좋다고는 했지만 중요한 때는 좋은 선수들의 리드를 받으면서 제 역할을 해냈었다.

그리고 엄청난 똥 파워로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신만의 매력을 보여주면서 팬들에게 계속 어필을 했지.

강자로 보일 여지가 충분했다.

하지만 로건이 체력이 없어서.

대시가 부상으로 끙끙 앓으며.

홀이 술에 취해 휘청거리면서.

링 위에서 제대로 된 경기도 가지지 못하고 허무하게 끝을 내는데, 팬들이 과연 이후를 기대할 수가 있을까?

“전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군…….”

“우리는 우리 할 일만 잘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럴 능력도 충분하죠.”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신.”

바로 옆에 서있던 업계의 혁명가, 폴 헤이건이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거, 노린 거냐?”

“뭘요?”

“너는 분명 WWF에 선수를 임대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지.”

바트 맥센은 내가 설득하겠다.

“그 설득의 방법이, 이거였나?”

역시 헤이건.

통찰력이 깊다.

그는 방금, 우리 쪽에 제안이 온 것으로 WWF의 선수들 역시 같은 제안을 받았을 것을 멋지게 추론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어, 사실. ACW로서는 쓸 자리가 없다면 굳이 우리 선수들을 데려갈 이유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뭐냐.

거기에는 티파니가 대답했다.

“그냥 선수들을 돈으로 사들여서 다른 단체를 망하게 하려는 거겠죠.”

“옛날에 바트가 그랬던 것처럼.”

헤이건이 이를 갈았다.

ECW도 비슷한 방식으로 망했다.

“아, 그 말이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티파니.

“우리에게만 제안이 오지는 않았을 거다. 왜냐면 그들이 결국 가장 큰 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MotherFu-king WWF.”

“Damn Right.”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마, 베테랑들을 빼가려고 하겠죠. 개중에서도 WWF에서 완벽한 대접은 받지 못했던 선수들.”

“거트 엔젤?”

“아니, 잠깐만. 뭐가 이상한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바쿠.

“신, 너는 분명히 우리 선수들을 내년 1월에 거기로 보내겠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쪽 선수들이 이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야 가능한 책략이잖냐? 어떻게 알아낸 거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는 손가락을 들었다.

“하나. 돈은 위대합니다.”

솔직히 돈 더 준다는데, WWF라는 회사에서 자신의 한계 역시 깨달았을 베테랑들이 계속 남아있겠는가?

“둘, 그쪽에 정보원이 있습니다.”

“누구?”

“그건 그 친구의 명예를 위해서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나는 쓰게 웃었다.

사실 나였다.

정확히는 전생의 나.

11월 말이 되면 WWF 선수들의 계약이 종료되며 ACW로 이적하는 선수들의 숫자가 꽤나 많았었다.

‘그때 바트는 비명을 지르며 기댈 곳이 없어 엉엉 울기까지 했지.’

전생의 정보를 미리 선점해두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었던 전략이다.

물론, 나는 그에 대해 사람들이 믿을 만한 근거도 확실히 생각해뒀다.

“지금 WWF 쪽 베테랑들의 계약 만기일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아무도 계약서에 사인을 안 한다는군요.”

“말인즉슨…….”

“ACW 쪽에서 손을 써둔 거겠죠.”

“이거 굉장하군.”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넌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거냐?”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지?”

“와, 정말 이건…….”

“한니발 바르카로군.”

다들 한마디씩 했다.

거기에 괜히 머쓱해져 헛기침을 한 나는 이번 일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이제 다들 이해하셨죠?”

“음, 그래.”

“네 말대로 앞으로 걱정 없이 우리 할 일만 계속해서 해나가면 되겠군.”

“네가 말한 선수들에 대한 조사는 해봤다. 핀 발로는 지금…….”

“일본 쪽에 있죠?”

“그래, 계약 문제가 있긴 해도 최대한 빨리 데려올 수 있을 듯한데.”

드류가 문제란다.

“WWF의 산하 단체인 OVW 소속으로 있는 친군데, 그쪽에서 통 놔주려고 하지를 않아서 말이야.”

“그건 제가 해결하죠.”

“또……?”

“어차피 일을 성사시키려면 바트와 제가 직접 대면해야 하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핀 발로.

그리고 드류 맥킨마이어.

두 선수 모두 환상적인 재능을 가진 플레이어들로, 이 단체를 거쳤을 때 분명 빛이 날 만한 이들이었다.

* * *

2008년 12월 7일.

WWF와 계약이 종료된 다음 날, 거트 엔젤이 ACW 나이트로에 등장했다.

[거트 엔젤! 거트 엔젤입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WWF 챔피언! 숱한 기록을 쌓아 올린 그가 드디어 이 초인들의 전장에 참가합니다!]

[크하하하!! 그 ‘구린 쇼’를 벗어난 그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정말……!]

해설자의 말이 순간 멈췄다.

거트 엔젤은 nWo에 맞서 싸우고 있는 크로우를 돕기 위해 ACW에 왔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링에 올라온 그는 크로우를 공격하면서 nWo 측에 설 것임을 밝혔다.

[Uoooooooooooooooooooohhh!!]

충격적인 전개.

위클리 쇼를 찾은 ACW 팬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콰직!!

바트 맥센이 내던진 덤벨이 회의실의 거대한 텔레비전을 박살 냈다.

유리 파편이 튀었고, 그 주변에 있던 임원들이 순간 대피했다.

왜 회의실에 덤벨인가.

그것부터가 이미 바트 맥센의 특이한 성향과 운동 중독을 설명해주는 것이었지만…… 어쨌거나.

“이런 빌어먹을 쓰레기 같은……!!”

바트는 분노로 날뛰며 모두가 도망칠 때까지 회의실을 뒤집어 놓았다.

최악의 상황이 찾아왔다.

드디어 WWF 소속이었던 선수들이 ACW 쪽으로 이적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계약도 돈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회사로서는 선수들을 놔주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크윽……!!”

그렇게 날뛰다 손을 다친 바트는 이를 악물며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엉망진창이 된 회의실.

아무도 없었고.

결국 이 위치에서 모든 책임을 져야만 하는 그는,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깊은 고독감을 느끼고 있었다.

60년 평생.

언제나 승리하며.

목을 비틀어 상대를 죽이며.

그렇게 쌓아올린 모든 게, 지금 모래알처럼 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상대는 모든 면에서 우위였다.

nWo는 현재 모든 미국인들이 가장 쿨하다고 생각하는 집단 중 하나였고.

ACW의 뒷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TBS는 WWF보다 자금력이 강했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선수가 필요했다. 어떤 무엇보다도 강렬한 아이콘 레벨의 대단한 선수가.

‘제발 누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삐리리, 삐리리리리.

내선 전화가 울렸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그걸 돌아본 바트는 이내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뭔가.”

[회, 회장님. 전화입니다.]

“누구로부터.”

[신, 입니다.]

[…………그 빌어먹을 새끼가 뭐라고 했는지,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그, 그게.]

망설이는 비서.

하지만 재촉이 없이도.

그는 회의실 안에서 바트가 난동을 부리는 소리에 겁을 먹고 대답했다.

“아마 지금쯤, 회의실에서 난동부리는 게 끝났을 테니 바꿔달라고.”

“……………….”

긴 침묵이 이어졌다.

[회, 회장님?]

“크크크크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바트가 호쾌하게 웃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길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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