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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링의 신-337화 (337/634)

337.

지리적으로 미 북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코네티컷 주의 겨울 날씨는 혹독한 추위로 무척이나 유명했다.

패딩 위에 머플러도 두르고 털모자까지 썼는데도 턱이 덜덜 떨렸다.

‘마치 바트 맥센의 지금 마음처럼.’

간단한 헛소리를 생각하며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마중을 나온 본사 직원과 함께 WWF 본사로 향했다.

정말 더럽게도 추웠다.

차 유리창에 살얼음이 끼고 거리는 완전히 눈으로 뒤덮여서, 여기서 Human VS Wild나 찍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달린 끝에 도착한 본사.

안으로 들어선 나는 곧바로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회장실까지 안내되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바트 맥센이 자리에 앉아 나를 격하게 반겨주었다.

“오다가 비행기 추락사고 소식만 찾아봤는데. 어떻게 잘 도착한 모양이군.”

“저도 60대에 성질 고약한 노인에게만 발병하는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소식을 매일 찾아보고 있었는데요.”

지지 않고 받아쳤다.

날 여기까지 안내해준 바트의 비서가 순간적으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손짓에 밖으로 나갔고.

바트와 나는 마주보고 앉았다.

“좋아, 뭘 제안할 셈이지?”

“이번에 몇 명이나 빠지셨습니까?”

“……그게 이 일하고 관련이 있나?”

“그러니 여쭙는 거죠.”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할 말은 아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물어보았다.

고민하던 바트가 순순히 대답했다.

“세 명일세.”

거트 엔젤.

부커 리.

그리고 RVD까지 갔다는 모양이다.

“그러게 평소에 잘 좀 해주시지.”

“……내가 못해줬다고 생각하나?”

“그럼 잘해주셨다고 생각하세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바트.

나는 쓰게 웃었다.

‘이럴 거면서.’

사실, 그래.

확실하게 말해서.

연봉 문제를 제쳐두고서라도 선수들이 이 회사를 거를 이유는 많았다.

‘복지 문제라던가.’

WWF의 메인 이벤터들은 1년에 300일이 넘는 스케줄을 소화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그 아래 선수들이 노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들 역시도 충분히 하드한 스케줄을 소화했다.

1년 내내 미국 전역을 이동하면서 쇼를 하는데, 회사에서는 그 흔한 유류비조차 지원해주지 않았다.

다른 회사도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룡 기업.

WWF가.

“거기에 의료 보험 문제도 있고.”

나는 거침없이 말을 해나갔다.

“WWF 선수들 대부분이 결혼하고 5년도 못 가서 이혼하는 거 알죠?”

왜냐면 남편이 집에 안 들어오니까.

여성 선수들은 아예 결혼을 하면서 동시에 은퇴를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자니 바트가 눈을 부라렸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당신, 곱게는 못 죽을 겁니다.”

지은 죄가 많아서.

그러자니 바트가 피식 웃었다.

“내가 남을 괴롭혀서?”

“그런 셈이죠.”

“아니지. 신. 확실히 이야기하지. 나는 단지 ‘승부’에서 이긴 것뿐이야.”

그가 테이블로 몸을 뻗어왔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눈빛에 분노가 서려있는 것이 느껴졌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내게 주어진 패를 가지고 승부를 걸어 이겼지. 거기에서 패배자들이 날 원망하고 죽이고 싶다고 한들 상관하지 않아.”

“…….”

“선수들도 그래. 만약 내가 제안한 카드가 싫다면 떠나면 될 일일세.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지.”

단 한 명을 빼면.

그가 날 가리켰다.

“너.”

“예, 저요.”

“오직 너만이 날 죽이려고 하지. 그런 너에게 그런 ‘온건한’ 말을 들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군.”

바트가 사악하게 웃었다.

“나한테 단체가 먹혀서 자살을 한 사업가 놈들도 있어. 하지만 난 상관하지 않아! 왜냐면 승부였으니까!!”

그러므로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다.

“죽은 그 개새끼의 자식이 내 앞에 나타나 날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여도, 나는 웃으며 당당히 죽어갈 거다.”

왜냐면 지지 않았으니까.

그 자식 놈이 그렇게 바트 맥센을 죽인다는 건 결국, 집안 전체가 패배를 선언한 것과 다름없으니까.

“……아니, 그러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좀 욕심만 버리라는 건데, 왜 굳이 총 맞아 뒤질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이기려고 하는 겁니까.”

“그게 나니까.”

“예, 예. 이해는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너와 있지.”

바트가 껄껄 웃었다.

묘한 기류가 흘렀다.

나는 바트 맥센을 이해한다.

바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 무척 비슷했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꼬여서 이렇게 된 두 사람.

우리는 오늘.

“같이 일하죠.”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한다.

“뭐……?”

“저희 쪽에서 선수를 임대해드리죠. 그쪽에서도 선수 좀 주십시오.”

“아, 아니, 잠깐만.”

“크게 보라고요. 바트. 어차피 거트나 부커나 죄다 커리어 막바지라서 딱히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기다리라고!!”

바트가 소리를 질렀다.

늙어서 흥분하면 몸에 안 좋은데.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지금 로스터가 비지 않았습니까?”

세 명의 하이 카더들이 나가면서.

“그걸 저희가 채워드린단 거죠.”

“임대 계약으로……?”

“예. 어떻습니까.”

“선수를 달라는 건?”

“OVW 소속 선수 중에 드류 맥킨마이어라고 있지 않습니까? 그 친구를 저희 쪽으로 주시죠.”

“임대?”

“아뇨? 이적.”

“왜 그쪽은 임대고 우리는 이적이지? 수지가 안 맞는 장사인데.”

“대신 두 명이잖습니까? 거기다 펑크와 고라면 확실히 연말까지 키워놓을 테니 손해는 아닐 텐데요.”

그 말에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바트 맥센이 전화기를 들었다.

“사모아 고와…….”

“C.M. 펑크.”

“C.M. 펑크의 자료를 가져와.”

“됐습니까?”

“자료를 읽어보고 정하지.”

“그럼 커피라도 한 잔 주시죠.”

“……그런 것도 마시나?”

“아니 뭐, 농담인데.”

그쪽에서 뜸을 들이니 시간이 빌 것 같아서 비아냥거린 소리였다.

하지만 바트는 꿋꿋이 자료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죽이며 기다렸다.

그사이, 우리는 자연스럽게 쏟아지는 햇볕을 맞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방금까지의 신경전이 다 무엇이었냐는 듯이 왠지 좀 평화로웠다.

“……오튼은 요새 어떻습니까?”

“이번에 매상 1위 찍었다.”

“거봐요. 잘 될 거라고 했죠?”

“흥, 네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밀어주려고 했던 녀석이야.”

“허이구, 입에 침이나 바르쇼.”

오튼은 굉장히 특이한 유형의 선수라서 바트가 밀어줬다면 아마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 뻔했다.

그 녀석은 성취감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고 상대방과 유대감을 느낄 때 더 잘할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절대 바트 맥센은 그 부분을 이해할 수도, 충족시켜줄 수도 없는 프로듀서였고.

그렇게 생각하며 웃자니 바트는 또 금방 화제를 전환했다.

“너야말로, 요새 어떻지?”

“뭐, 내부에서 펑크, 고와 대립하면서 천천히 모멘텀 쌓아주고 있죠.”

“시간 낭비군.”

“그게 아니라니까. 이 영감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다 미래를 위한 투자에요. 지금 있는 애들로 언제까지 프로레슬링 쇼를 만들 수 있을 거 같습니까?”

“지금 당장 시청률이 빠져나가는 게 눈에 보이는데 그럼 어쩌란 거냐?”

“키워야죠.”

“못해.”

“길게 봐야 합니다. 바트. 사업가라면 때로는 참고 견딜 줄도 알아야죠.”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그건 네가 그에 관한 압박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바트가 눈썹을 찡그렸다.

“회사 실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주주들이 모여서 시위를 해대는데, 넌 지금 티파니가 옆에서 그걸 죄다 커버를 쳐주고 있으니까 모르는 거지.”

“예? 아뇨, 저희는 회사 되게 잘 운영하고 있어서 그런 일 없는데요.”

“…….”

“아, 티파니가 제가 잘 모르는 일을 커버해준다는 건 맞는 말이긴 한데.”

“재수 없는 자식.”

“멋진 딸을 두셨습니다.”

“딸 아니다. 적이지.”

“또 그러신다니까.”

딸도 되고, 적도 되고.

얼마나 좋은 일인가?

사람이 참 극단적이다.

그래야 바트지만.

피식 웃은 나는 그대로 침묵을 지키며 자료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러자니 곧 비서들이 자료를 들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고마워. 가봐.”

“예, 회장님.”

자료를 읽기 시작하는 바트.

사실, 웃기는 일이다.

WWF라는 회사의 전권을 잡고 휘두르는 인간이 사모와 고와 C.M. 펑크라는 선수들의 이름조차 모르다니.

‘기억을 못하는 거겠지만.’

어쨌거나 바트는 WWF 측에서 가지고 있던 자료들을 읽기 시작했고.

이어 결론을 내렸다.

“킹스 럼블?”

“마음이 통했군요.”

“그럼 임대 계약에 관해서는 천천히 조율을 해나가는 것으로 하고…….”

“드류 이야기를 할까요?”

“아니, 그것도 됐다. 넘겨주지.”

“호오, 뜻밖에 쿨하시네.”

“말했던 대로, 지금은 그런 신인 하나에 집착할 때가 아니니까.”

그 말을 들은 나는 피식 웃었다.

‘운이 좋았군.’

드류 맥킨마이어.

2미터에 달하는 키에 잘생긴 외모로 바트 맥센이 일찍이 회사의 차세대 메인 이벤터로 점찍었던 선수였다.

물론 바트 맥센의 구린 프로듀싱 능력 때문에 그렇게 크게 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선수 자체는 재능이 있고 이후로 꽃을 피우기도 해서, 내가 지금부터 꼭 키워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 더.”

바트가 입을 열었다.

“넌 어쩔 생각이냐?”

“저요? 뭘…….”

“내년 킹스 럼블에 안 나올 거냐?”

“우승시켜주실 겁니까?”

“절대 안 되지.”

“그럼 안 나가요.”

“아쉽게 됐군.”

“이게 맞는 거죠.”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킹스 럼블에서 펑크와 고가 데뷔하면서 주목을 받아야 하는데 거기에서 내가 눈치 없이 어떻게 끼어 드냐.

“그럼 레슬 임페리움은?”

“그건 뭐, 상황 봐서요.”

“네게 구미가 당길 제안을 해줄까?”

“뭡니까?”

그리고 바트의 입에서 나온 한 선수의 이름은 순간 나를 놀라게 했다.

“트리플H.”

“……?”

“그 녀석과 싸워라.”

“하.”

그 말의 의중을 금방 이해한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웃음을 터뜨렸다.

바트가 사납게 날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 승자의 미소가 깃들었다.

“이런, 제기랄…….”

그 의도를 100% 이해하며, 나는 황당한 기분 속에서 대답도 못하고 한동안 가만히 웃기만 했다.

그러자니 다가온 바트 맥센이 내 턱을 사납게 움켜쥐고는 소리쳤다.

“네가 바로 내 ‘현재’야……!!”

당했다.

빌어먹을.

* * *

졌다.

회귀 후로 처음으로 느끼는 패배감.

하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래, 이렇게 나와주셔야지.’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

비즈니스석에 몸을 기댄 나는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걸 느끼며 위스키를 주문해 한 모금 마셨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통증.

뜨거운 황량한 감각.

그래도 가라앉지 않았다.

바트 맥센에게서.

처음으로 느낀 이 ‘패배감’에 순간적으로 너무 기분이 좋아졌다.

얼핏 이상한 말처럼 느껴진다.

패배했는데 기분이 좋다니.

하지만 그건.

바트 맥센 역시도 패배를 감수하고 내게 제안을 해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레슬 임페리움.

트리플H를 상대한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네가 바로 내 ‘현재’야……!!]

그 말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나는 WWF 소속이라는 거다.

WWF의 카드로서 ACW에 대항할 바트의 ‘현재’ 전력감이라는 거겠지.

본인이 인정을 했다.

그게 무척 기분이 좋았다.

‘이게 이렇게 되는군.’

바트에게 인정을 받다니.

이처럼 기분이 좋은 일일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 더.

레슬 임페리움에서 트리플H.

더 게임.

교활한 암살자.

왕 중의 왕.

바바리안 킹 코난 같은 느낌의 복장을 입고, 손에는 슬레지 해머를 들고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나이.

전설 중의 전설.

닉 플레어 이후 최강의 악역.

‘그걸 이긴다고?’

아니, 거기다가.

시기적으로 봤을 때 묘했다.

트리플H는 이후, 캐스켓-테이커와 레슬 임페리움에서 2연전을 가지고는 현역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그를 쓰러뜨리는 현역 선수가 나라는 건.

바트가 날 현재 헌터보다 가치 있는 남자라고 생각한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이걸 받아들이면.

나는 아마 ‘선수’로서 바트에게 소속된다는 뜻일 터였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겠지만.

심리적으로.

‘이를 어쩐다.’

이미 답은 나와 있음에도 나는 한동안 비행기에 앉아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VS 트리플H.

In Wrestle Imperium.

One on One.

최고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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