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38화 (338/634)

338.

12월.

PWA는 출범 첫해를 멋지게 마무리 짓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나갔다.

“그럼 이번 주 경기에서 리키타가 타이틀을 내주는 것으로 하고.”

“‘파이널 아마겟돈’에는 그럼 나탈리 네이드하트가 참가합니까?”

“그렇게 되겠지.”

WWF의 12월 페이퍼뷰인 파이널 아마겟돈에 나탈리가 참가하게 되었다.

사실 리키타보다는 현재 이름값이 상당히 떨어지는 그녀였지만, 여기에서 테크닉을 상당히 발전시켰다.

거기다 내실을 다진 결과를 시험해보기 위해, 우리는 하트 패밀리의 나탈리를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거기에서 또 의견이 나왔다.

“러셀이 도와줄 수는 없나?”

“아니면 그렉이 같이 가서 매니저를 봐주는 건 어떨까요?”

“아뇨, 전부 안 됩니다.”

내가 고개를 내젓자 순간적으로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돌아보았다.

“챔피언은 나탈리입니다. 환호도, 야유도, 무반응도, 전부 다 그녀가 받아야지, 꼼수를 쓸 수는 없죠.”

“네 말이 맞다. 신.”

그렉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하트 패밀리라는 게 나탈리의 이름값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럼 그렇게 가는 걸로 하고.”

“지금 순위표 한번 보여주겠나?”

“예, 바로 띄우겠습니다.”

프로젝터의 화면이 순간 바뀌었다.

그리고 나오는 순위표.

나와 고, 펑크가.

“동률이군요.”

“드라마틱해서 좋네요.”

그 말대로였다.

내가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물리고 물리며 각본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신 VS 사모아 고 VS C.M. 펑크.

3개월간의 긴 대립.

하지만 PWA에서의 대립은 다른 단체와 사뭇 다른 방향성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래 진행할 수 있었다.

승점제 순위 리그전.

그렇기에 평범한 위클리 쇼에서도 얼마든지 드라마를 넣을 수 있었다.

실제로 내가 11월에 고를 쓰러뜨리고 다시 1위를 탈환했을 때라던가.

이후에 펑크가 반칙을 사용해 비겁한 방법으로 승리를 챙겼을 때라던가.

타이틀이 없더라도 승점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모든 경기가 중요해졌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는 정말 중요했다.

아무렴.

한 해의 마지막이니까.

그렇기에 다들 전력을 다해 여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었다.

12월 첫째 주와 둘째 주는 지났고, 2008년이 끝날 때까지 우리가 소화해야만 하는 위클리 쇼는 총 세 번.

12월 16일.

12월 23일.

12월 30일.

개중에서 30일에는 한 해를 되돌아보는 베스트 어워드를 치를 예정이고.

“일단 12월 23일에 끝을 내야죠.”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다음 주 경기에서는 각자 상대를 잡아내서 3점씩을 더 얻는 걸로 하고. 마지막에는 역시 그걸로 가야죠.”

“‘그거’인가.”

“예, ‘그거’죠.”

나는 싱긋 웃었다.

트리플 스렛.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느꼈다.

승점이 동률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는 역시 그걸 마지막에 써먹어야지.

“신, 부탁한다.”

“네 덕에 두 사람 반응이 장난 아니게 올라왔어. 이번에도 잘 부탁한다.”

“계획대로만 하자고.”

앞서 말했다시피 중요한 경기였으므로 다들 한마디씩 말을 덧붙였다.

걱정은 없었다.

왜냐면 두 사람 다 잘 해줬으니까.

나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끄덕인 나는 대답을 기다리듯 보는 팀장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공교롭게도 성탄 전야의 전날이니, 예수님의 생일 선물이라고 생각하죠.”

아버지와 재미있게 보겠지.

에디도 그 옆에 있을 테고.

그리고 내 친구, 윌리도.

* * *

WWF와 임대 계약이 성사되었다.

연봉은 우리 쪽에서 계속 지급하는 대신 나머지, 각종 부대비용과 머천다이즈 제작, 페이퍼뷰 출장비 따위를 전부 그쪽에서 맡아주겠다는 계약.

나쁘지는 않았다.

어차피 우리 쪽 선수니까 연봉을 우리 쪽에서 지불하는 것은 당연했다.

“고생했어.”

[별말씀을. 아, 그리고 아버지가 그러시던데요. 답은 언제 주냐는데요?]

“……그건, 올해가 끝난 뒤로.”

일단 마음은 정했으나.

좀 새침하게 굴어보기로 했다.

아니, 그 영감한테 헥헥거리면서 달라붙는 게 솔직히 조금 창피해서.

어쨌든 그로 인해 드류 맥킨마이어는 곧바로 OVW에서의 계약과 기타 부수적인 걸 정리하고 PWA로 왔다.

공교롭게도 그날이 위클리 쇼 당일이었고, 다들 바빠서 낮에 도착한 녀석을 내가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패했던 유망주이자 미래의 메인 이벤터인 드류 맥킨마이어는.

솔직히 어리버리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큰 소리로 말 안 해도 돼.”

“예! 알겠습니다!!”

“드류라고 불러도 되지?”

“예, 영광입니다! 평소에 선배님 경기 찾아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 그래.”

고개를 끄덕인 나는 일단 주차장에서 드류를 픽업해 경기장 내부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드류 맥킨마이어.

말했듯 원래 역사에서는 2009년쯤에 WWF로 올라갔으나 실패한 유망주가 되어 방출을 당하는 선수였다.

그리고 몇 년 동안 TMA나 각종 단체들을 떠돌아다니면서 성장해 카리스마를 갖추고 WWF로 돌아온다.

그리고 2020년에 대폭발.

시나 이후의 차세대 메인 이벤터로서 확실히 회사에 자기 이름을 새긴다.

하지만 지금은, 영 아니었다.

일단 빼빼 말랐다.

‘제기랄, 죄다 이렇군.’

외모는 탐 크루스처럼 정말 잘생겼고, 키도 197cm로 몹시 큰 편이었지만.

수염을 안 기른 현재의 드류는 어딘가 좀 너무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고.

그래서 팬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마이크워크도 완전 저질이고.

하지만 지금은 녀석이 성공하는 루트를 알고 있는 내가 옆에서 돌봐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저, 선배님 정말 팬입니다!”

“어, 고맙다.”

“테이커의 연승을 끊으셨을 때 정말로 놀랐습니다! 완전 멋지셨어요!”

“…….”

이거 뭔가 묘한 기분이군.

미래에 메인 이벤터가 될 녀석.

거기다 아마 내게 있어서는 처음으로 후배 비슷한 개념의 녀석인데.

“너, 나이가 몇 살이냐?”

“예? 아, 저 스물셋입니다.”

“나보다 어리군.”

“……? 예?”

“아냐. 코리아에서는 중요해서.”

“그, 그렇습니까.”

“일단 나도 미국인이기는 한데.”

그래도 코리아타운 보이 시절에 하도 그쪽 문화에 익숙해져서 말이다.

어쨌거나 고도 동갑이고 펑크는 나보다 한 살 많아 어딘가 미묘한데.

이 녀석은 나보다 어리고, 경력도 확실하게 짧아 진짜 후배 같았다.

뭐, 그에 대한 즐거움을 표하는 건 일단 나중으로 미루어야겠지만.

그렇게 드류를 데리고 내가 향한 곳은 경기장의 가장 앞좌석이었다.

“드류.”

“예! 선배님!”

“여기가 오늘 네 자리다.”

“예?”

“우리가 지금 준비할 게 많아서 네 환영회는 아마 내일이 될 테니까. 여기 앉아서 이따 쇼라도 보라고.”

“예, 옙.”

“물론 혼자 있으면 심심할 테니까 돌아다녀도 되고. 누가 시비 걸면 내 이름 대고 넘어갈 수 있을 거다.”

“옙!”

“좋아, 그럼.”

나는 드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PWA에 온 걸 환영한다. 애송이.”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말이다.

테이커 흉내.

* * *

드류 맥킨마이어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15세에 처음으로 훈련을 시작해 지금껏 많은 단체를 거쳐 왔다.

하지만 이 단체는 뭔가, 지금껏 있어 본 단체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고작 반나절이기는 했지만.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인사를 건넬 때마다 다들 살갑게 받아주어서 뭔가 분위기가 무척 좋은 느낌이 든달까?

누군가 좀 적대적으로 굴어도 ‘신’이라는 이름을 대니 금방 웃어주었다.

지금껏 있었던 프로레슬링 단체들은 죄다 의욕이 떨어지거나 정치 싸움으로 흩어졌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뭔가 느낌이 좋았다.

그런 생각은 시간이 되어 서서히 경기장에 관객들이 들어오고 위클리 쇼가 시작되면서 확신으로 굳어졌다.

OVW에서도 PWA 위클리 쇼는 항상 교과서처럼 챙겨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느꼈다.

PWA는 각자 다양한 능력치를 가진 선수들이 융화되어 언제나 최고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프닝 영상의 퀄리티도 훌륭했다.

밴드 메탈 음악과 함께 선글라스를 쓴 신이 카메라를 움켜쥐고는 그대로 화면이 박살 나며 시작되는 연출.

퍼퍼퍼퍼퍼퍼펑!!

거기다 멋지게 터지는 저 폭죽.

그리고 폭죽 연기도 금방 사라지고.

조명.

추가로 음악.

빠암-!

우-! 어-!! 우-! 어-!!

우-! 어-!! 우-! 어-!!

[Yeeeeeeeeeeeeeeaaaaahhhh!!]

크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마지막으로 각본까지.

드류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사모아 고!’

PWA의 파괴 전차.

목에 타월을 두른 채 입장로 위로 나온 그가 팬들의 챈트에 응답했다.

가만히 서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사실, OVW의 직원들이 아무리 PWA에 대해서 극찬을 해도, 그 사실이 피부까지 와닿지는 않았던 드류였다.

하지만 직접 보니 느껴졌다.

그 박력이.

땡땡땡-!!

이어 나온 선수, 대니얼 라이언과 경기를 펼치기 시작하는 사모아 고.

그 퀄리티도 훌륭했다.

그라운드 테크니션인 대니얼 라이언.

그리고 거기에 맞서는 테크니션 브롤러, 사모아 고.

[Yeeeeeeeeeeeaaaaahhhh!!]

[Booooooooooooooooo-!!]

이곳에서 펼쳐지는 팬들의 야유와 환호는 OVW로서는 절대 꿈꾸지 못할 영역이었다.

경기는 사모아 고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마이크를 쥔 그는 숨을 몰아쉬며 팬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짧지만 강렬했다.

순위표가 변동되며.

고가 1위로 올라섰다.

[Waaaaaaaaaaaaaaagggghhhhh!!]

이어진 다른 경기들도 훌륭했다.

하위권에 있는 선수들도 나름대로 분투를 이어가는 가운데, 쇼의 중반부.

칙-! 칙-!

텔레비전의 노이즈 소리와 함께.

[Booooooooooooooooooo-!!]

야유가 경기장을 뒤덮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Look In My Eyes-!!]

누구의 말도 신경 쓰지 않았다.

Best In The World.

팬들은 그에게 엄청난 야유를 보냈다.

말인즉슨, 그가 가지는 존재감이 정말로 엄청나다는 이야기였다.

C.M. 펑크.

그 상대는 AK 스타일스.

그가 어그로를 끌어준 덕분에 경기장의 분위기는 다시금 크게 치솟았다.

그리고 이어진 경기.

AK 특유의 화려한 기술과 펑크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한데 어우러져서.

경기가 끝날 때쯤에 팬들은 거의 펑크에게 죽어라 야유를 보내고 있었다.

“크으.”

드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랜만에 어렸을 때처럼, 순수한 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펑크 역시도 마이크를 쥐었다.

[좋아! 어디 갈 때까지 가보자고!!]

그 역시 고와 동률을 이루며 다시금 1위로 올라섰고, 자연스럽게 신은 3위로 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경기가 남았다.

메인이벤트.

신 VS 쟈니 에이스의 경기.

그리고 경기장 스크린에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갖겠다는 문구가 나왔다.

이제 다들 로비로 나가서 소다를 충전해오거나 칩스를 좀 더 사오고 화장실을 들렀다오는 게 보편적인데.

다들 그렇게 하지 않았다.

드류는 뭔가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응?”

[SIN! SIN! SIN! SIN! SIN……!]

어디선가 챈트가 시작되었다.

마치 불꽃이 번지듯이.

경기장 한구석에서 당연하다는 듯 시작된 모닥불이 이내 번져나갔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경기장 전체가 한 남자의 이름을 외쳐대기 시작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

드류는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그다지 큰 무대도 아니었다.

하지만 팬들이 보내는 기대감과 성원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거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아이콘.

단체의 수장.

그렇게 모두가 계속해서 그의 이름을 불렀고.

광고가 끝난 뒤 새하얀 조명이 입장로 위를 휘감자, 관객들 사이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Yeeeeeeeeeeeeeeeeeaaaahhh!!]

그리고 음악이 시작되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

심장이 뛰었다.

저 드럼 소리에 맞춰서.

쿵-쿵-쿵-쿵-쿵-쿵-쿵-쿵-쿵-!!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동시에 무언가 굉장한 것이 온다는 듯 머릿속에 알람 소리가 이어졌다.

그 음악은 그런 의도를 담아냈다.

[Waaaaaaaaaaaaaaaaagggghhh!!]

드류는 저도 모르게 외치고 있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리고 그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위협적인 기타 리프와 함께 입장로 위로 힘차게 분사되는 회색빛의 연기.

배드애스한 메탈 연주와 함께 그 남자가 연기를 휘젓고 앞으로 나왔다.

검은색 롱팬츠를 입고.

위에는 가죽 재킷을 걸쳤다.

그 안의 탄탄한 근육은 에너지로 가득 넘치는 투사의 기운을 담아냈다.

마지막으로 선글라스까지.

신이 나타났다.

[Yeeeeeeeeeeeeeeeaaaahhhh!!]

그에게 쏟아지는 환호.

입에 연기를 머금었던 것일까.

고개를 푹 숙인 그가 숨을 내뱉자니 입 주변으로 회색빛 연기가 솟았다.

그리고 고개를 든 신이 외쳤다.

“Let’s Go-!!”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와 팬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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