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
연말이 갖는 의미는 항상 각별했다.
한 해가 끝나가는 것을 기념하며 PWA뿐만 아니라 다른 두 단체 역시 심혈을 기울여 쇼를 진행해나갔다.
WWF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산타 옷을 갖춰 입은 선수들이 세그먼트를 진행하거나 특별 경기를 열었고.
ACW는 성인 지향의 쇼이니만큼 산타 비키니 치어리더들과 nWo가 함께 쇼를 진행하는 구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출이자 일회성일 뿐.
PWA는 확실하게 12월 23일을 노려서 각본을 전개해왔다.
2008년의 마지막 경기.
거기에서 모든 게 정해진다.
신 VS C.M. 펑크 VS 사모아 고.
좋은 놈, 나쁜 놈, 모르겠는 놈.
‘대충 그 정도겠지.’
이 경기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은 상당히 높았고, 그렇기에 우리로서도 무척 심혈을 기울여 준비를 해나갔다.
경기 시간은 총 20분.
그다지 길지는 않았다.
그런 만큼 우리는 경기의 밀도를 최대한도로 높여 기대에 응하고자 했다.
그리고 거기에.
내가 아는 모든 초일류 링 프로듀서들이 참가해 아이디어를 보태주었다.
중요한 경기인 만큼 아이디어는 많은 편이 좋았고 그렇기에 우리는 훈련장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대부분은 각자 취향을 밀어붙여 딱히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베이다가 특히나 그랬다.
“엉? 처음부터 그냥 뺨 싸다구를 이렇게? 어? 베이다 해머! 이렇게!”
쩌억!
쩌억!
“…….”
샌드백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베이다 해머.
팔꿈치 안쪽으로 상대방의 관자놀이나 가슴팍을 후려치는 슈퍼 타격기.
특히나 베이다는 현역 시절 무자비한 폭력성으로 이름이 높았던 선수.
‘내가 저 시대가 아니라 다행이군.’
하지만 고는 흥미를 갖는 듯했다.
“베이다 해머…….”
“오, 역시 이 위력을 알아보는군.”
베이다와 고가 신나서 샌드백에 마구 베이다 해머를 써대기 시작했다.
‘후계자가 나타났군.’
각오를 해두자.
그렇게 생각하자니 내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그렉이 쓰게 웃었다.
“확실히 호쾌하긴 하군.”
“저거 잘못 맞으면 기절하는데요.”
“고라면 잘못 때리진 않을 거다.”
“그렇긴 하겠네요.”
납득이 갔다.
고라면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기술을 실수로 시전할 사람은 아니겠지.
나 역시 ‘아직 젊어서’ 실수로 받을 시기는 아니었으므로 괜찮을 터였다.
“그나저나, 신.”
“예, 그렉.”
“경기에서 GTS를 받을 거냐?”
“그럴 생각인데요.”
GTS.
Go To Sleep의 약자로, 아나콘다 바이스와 함께 펑크의 피니시 무브였다.
“거기에 아이디어가 있다만.”
“뭐죠?”
“어깨에서 떨어져서 안면을 차일 때 한 바퀴 뒤로 회전하는 건 어떠냐?”
“한번 해볼까요?”
우리는 링으로 올라갔다.
GTS는 일단 상대방을 파이어 맨즈 캐리 자세로 어깨에 들쳐 메야 했다.
그렉의 앞에서 오른쪽으로 서고.
그 상태에서 살짝 무릎을 굽히자 그렉이 내 어깨 위에 그대로 엎드렸다.
다리와 뒷목에 손을 대고.
“후우.”
마치 역기를 어깨에 든 것처럼 허리를 쭉 펴고 선 상태가 준비 자세였다.
시나의 AA와 똑같은 포지션.
그 상태에서 시나는 상대방의 다리를 던져서 몸의 왼편으로 내던지지만.
펑크는 머리와 다리를 위로 번쩍 들어 상대의 몸을 앞으로 빼내면서.
쩌억-!!
무릎을 들어 턱을 걷어찼다.
그렇기에 Go To Sleep.
피폭자는 타격 타이밍에 맞춰서 턱을 들며 그대로 뒤로 쓰러지는 게 일반적으로 기술을 접수해주는 방법.
하지만 그렉은 여기서 고안해냈다.
그걸 진화시킨 천재적인 수를.
내가 안면을 걷어차는 순간.
그렉은 내 무릎에 손을 대고는 그대로 힘을 주어 몸을 위로 띄워냈다.
그리고 그 힘을 받아 뒤로 반 바퀴 돌면서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콰앙-!
요란하게 낙법을 치는 소리.
무릎을 든 상태로 잠시 서있던 나는 눈을 반짝이며 그렉의 손을 잡았다.
“와! 슈퍼 멋져요! 하죠!”
“…………진심이냐.”
그렇게 말한 건 바쿠였다.
그리고 옆에 있던 펑크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어서 그렉과 나는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오버 셀링이야.”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그리고 저 그거 못합니다.”
펑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응?”
“아니, 대체 어떻게 한 거야?”
황당하다는 듯 꽂히는 시선.
“나도 전에 누가 그런 식으로 해보자고 해서 했는데, 한쪽 무릎을 들고 버티는 게 불가능했단 말이지.”
설명이 이어졌다.
듣자하니, 코어 근육으로 버텨내면서 미는 방향으로 타이밍에 맞춰 잡아줘야 가능한 셀링 방식이라고 한다.
그마저도 너무 오버해서 접수를 해주는 거라 보기에 영 좋진 않다고.
“실전성이 떨어져 보인단 말이지.”
“음……. 그러려나.”
“아직까지 우리 단체에서 써먹을 수 있는 셀링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 넘어간다. 그리고 신, 그렉.”
“예?”
“다 같이 할 수 있는 걸 생각하자. 너희만 할 수 있는 걸 하지 말고.”
“……옙.”
“아, 알겠습니다.”
바쿠의 날카로운 지적에 나와 그렉은 괜히 머쓱해져 시선을 피했다.
이후로도 아이디어를 내고 채용하거나 기각하며 회의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다른 팀에서도 경기를 위한 준비들을 해나가고 있었다.
시설팀에서 무대 장치와 조명, 폭죽, 파이로, 연기 분사 장치를 체크.
각본팀은 쇼의 진행과 시간 분배를 마지막으로 체크. 보안 팀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 체크까지.
그 외에 트럼프 아레나에서 이루어질 머천다이즈의 판매 계획도.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난 채.
12월 23일이 찾아왔다.
* * *
경기를 앞두고 락커룸에 홀로 있을 때면 묘한 긴장감이 부유하는 듯했다.
모니터링TV로 나오는 영상의 소리가 그 긴장감을 밀어내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내 주변을 잠식하고.
몸이 거기에 깊이 잠겼다.
그걸 이겨내기 위해 선수들은 계속해서 몸을 풀었고, 결국 좀 지친 상태로 링에 나가는 일도 즐비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았다.
몸을 맡기는 거다.
그리고 즐기는 거다.
이 긴장감을.
부유감을.
위클리 쇼는 오늘도 만석으로 시작되었고, 우리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나는 그것을 계속 지켜보며 내 차례를 부유감 속에 앉아 기다렸다.
그리고 메인이벤트 직전.
“신 선수!”
영상팀 막내의 콜.
“후우.”
심호흡을 하며 일어선 나는 그를 따라 고릴라 포지션으로 이동했다.
먼저 도착해있는 고와 펑크.
내 순서는 마지막이었다.
광고가 끝나고 입장이 시작되었다.
[우-어-! 우-어-! 우-어-! 우-어-! 우-어-! 우-어-! 우-어-! 우-어-!]
특유의 전쟁 함성과 함께 고가 커튼을 걷어내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크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그리고 사자의 울음소리와 동시에.
투콰앙-!!
고의 등장을 알리는 폭죽이 터졌다.
[Waaaaaaaaaaaaaggghhhh!!]
[Boooooooooooooooooo-!!]
환호와 야유가 정확히 반반.
그가 보이는 거친 ‘개썅마이웨이’ 캐릭터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었고, 반발 역시 많이 샀다.
하지만 그게 바로 ‘사모아 고’였다.
링으로 오른 그는 근육질의 거대한 상반신을 내보이며 승리를 다짐했다.
그다음 차례는 펑크였다.
[칙-! 치익-!!]
TV 노이즈 소리.
낡은 세태에 야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과도 같은 펑크의 테마곡.
하지만 아직 팬들은 펑크를 인정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야유를 보냈다.
[Booooooooooooooooooooo-!!]
그럼에도 펑크는 개의치 않았으며.
그게 펑크를 펑크로 만들어주었다.
평범한 악역이 아니라, ‘C.M. 펑크’라는 이름을 가진 독창적인 캐릭터로.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힘껏 터지는 폭죽.
그렇게 펑크까지 입장이 끝났고.
내 차례가 찾아왔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
익숙한 테마 음악에 맞춰 입장로 위에 회색의 연기가 진하게 분사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 피어오르는 불꽃.
연기를 꿰뚫고 나가자 팬들이 기다렸다는 듯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Waaaaaaaaaaaaaaagggghhhh!!]
앞선 두 사람과는 달랐다.
그들 역시도 이 단체에서 나름대로 모멘텀을 쌓아오고, 커리어를 이어오면서 현재는 크게 성장한 상태였지만.
나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느꼈다.
몸을 감싸고 감각을 옥죄고 있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것을.
팬들의 환호에 모조리 씻겨나갔다.
“우오오오오오-!!”
환호에 함성으로 응답한 나는 곧바로 입장로를 걸어가 링으로 올라갔다.
펑크와 고의 시선이 날아들었다.
그걸 무시한 채 코너 로프를 타고 올라간 나는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팬들이 보내는 성원에 응답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환호가 한층 더 커졌다.
구도는 대략 이러했다.
고도, 펑크도.
두 사람 모두 나름대로 여기까지 차근차근 모멘텀을 쌓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는 바로 나였다.
내가 그렇게 해왔다.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고 시작되는 경기.
땡땡땡-!!
자, 질리도록 겪은 상황이다.
삼파전.
트리플 스렛.
눈앞의 상대만 보면 되는 게 아니라 한 명 더 있는 상대 역시 신경 쓰며 승리를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경기.
그렇기에 한 명을 넘어뜨리더라도 다른 상대가 있으면 핀 폴을 방해받을 수가 있어서 이기기가 더 어려웠으며.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즉, 약자도 이길 여지가 충분했다.
그리고 보통 그런 전개가 나왔다.
경기가 시작한 직후, 고와 펑크가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오기 시작했다.
목표물은 나.
그게 현명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이미 그걸 예상하고 있던 나는 곧바로 펑크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쩌억-!
반응하기 어렵게 박치기부터 넣고.
휘청거리는 펑크의 팔을 붙잡고 몸을 비틀어 고를 향해서 내던졌다.
“우읏……!”
두 사람이 충돌했다.
펑크가 쓰러졌고, 고는 버텨냈다.
그것을 본 나는 충격에 순간 집중력을 잃은 고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박치기로부터 시작해서.
빠악-!
코를 움켜쥐며 물러나는 고의 가슴에 대고 있는 힘껏 손바닥을 휘둘렀다.
쫘악-!!
찹.
이어서 해머링.
퍼억-!
재빠르게 들어간 삼연타.
그렇게 고를 코너까지 몰아붙인 나는 이어서 뒤쪽의 펑크를 돌아보았다.
고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녀석을 다시금 공격해 잠재워버릴 생각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
뭔가에 걸려 돌아본 나는 고에게 팔이 붙잡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조금 얕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퍼억-!
정신을 차리고 달려온 펑크에게 뒤통수를 맞고 쓰러진 나는 이후로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겼다.
“크윽……!”
고와 펑크가 협력 태세에 들어갔다.
[Boooooooooooooooooo-!!]
쏟아지는 야유.
그 아래에서 주먹질이 이어졌다.
퍼억-! 퍽!!
그뿐이랴.
어떻게든 버티고 일어나려는 내 다리에 펑크가 마구 발길질을 해댔다.
강한 타격에 다시 무릎을 꿇은 내 머리를 고가 로프를 붙잡고 밟아댔다.
쿠웅-! 쿵쿵쿵!!
소리만으로도 무시무시한 박력.
팬들의 탄식이 들려왔다.
트리플 스렛에서는 강자가 초장부터 주도권을 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처럼 다른 두 사람의 집중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초반에는 주로 이런 식으로 경기가 흘러갔다.
강자가 당하며.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는데.
퍼억-!
“……?”
공격을 하는 두 놈 중 더 개자식이 꼭 먼저 배신을 때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는 끄떡도 없었다.
펑크가 뒤통수를 후렸지만, 고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Uooooooooooooooooohhhhh!!]
관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분노해 돌아보는 고.
순간 놀라 뒤로 물러서는 펑크.
하지만 이미 늦었다.
쩌억-!
고가 팔꿈치를 휘둘렀다.
베이다 해머.
아니, 이제는 고 해머다.
[Yeeeeeeeeeeeeeeeeeaaahhh!!]
팬들의 환호 속에서 고는 자신을 먼저 공격한 펑크를 용서하지 않았다.
코너로 몰아붙이며 계속 고 해머.
쩌억-! 쩌억-! 쩌억-!
양쪽 팔꿈치를 모두 사용해 이어지는 연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펑크.
결국 녀석은 코너에 등을 댄 채 미끄러져 바닥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우오오오오오오오!!”
포효하는 고.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그에게 이어지는 챈트.
하지만 내가 일어섰다.
“후우.”
심호흡을 한 나는 그대로 등을 돌린 채 서있는 고를 향해 힘껏 내달렸다.
그대로 러닝 드롭 킥.
퍼억-!!
[Waaaaaaaaaaaaaaaggghhhh!!]
고의 몸이 코너에 정면으로 부딪히고 큰 충격에 휩싸여 옆으로 쓰러졌다.
“좋아! 가보자고!!”
[Yeeeeeeeeeeeeeeaaaahhhh!!]
펑크는 본전도 찾지 못했다.
고를 먼저 공격해 주도권을 찾아오려던 녀석은 나라는 벽에 부딪혔다.
펑크를 일으켜 세운 나는 일단 아까 전에 당했던 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뻐억-!
안면을 맞고 휘청거리는 펑크.
곧바로 뒤로 들어간 나는 아래에서부터 파고들어 허리를 잡고 들어올렸다.
뽑아 올리듯 힘껏 든 상태에서.
투콰앙-!!
백 드롭으로 공격을 이어갔다.
“크으윽……!”
뒷목을 움켜쥔 펑크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나는 에너지가 넘치는 걸 느끼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깨달았다.
충격에서 회복한 고가 로프를 밟고 올라가 턴 버클 위에 앉아있음을.
하지만 내가 조금 더 빨랐다.
곧바로 달려든 나는 로프를 밟고 탑 턴 버클 위로 뛰어 올라 크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고의 앞에 섰다.
“우읏……?!”
[Uoooooooooooooohhhhh?!]
재빠른 동작에 깜짝 놀라는 관객들.
그 상태에서 나는 고의 어깨 위로 뛰어오르며 그 목을 다리로 휘감고 그대로 뒤쪽으로 반 바퀴 회전했다.
동시에 다리를 당겼다.
고의 몸이 거기에 휘말려 날았다.
슈퍼 프랑켄슈타이너.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120kg이 넘는 거구를 다리의 힘만으로 날려버리는 나의 힘.
탑 턴 버클 위에서 번쩍 허공에 떠오른 고가 그대로 링 위에 떨어졌다.
투-콰앙-!
링 바닥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굳어져 있던 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Yeeeeeeeeeeeeeeeeaaaaahhhh!!]
그야말로 완벽한 기술 시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