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43화 (343/634)

343.

회당 500만 달러.

1년에 2,000만 달러를 버는 셈.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액수였다.

다른 스포츠와 비교했을 때 우리 업계의 연봉은 무척 적은 축에 속했다.

물론, 경쟁이 기본인 타 스포츠와 공연 예술의 특성을 지닌 프로레슬링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업계 규모에 빗대어 계산해봤을 때, 연봉이 쥐꼬리만 하다는 것은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높게 불렀다.

내가 기준점을 높여둬야만 업계에서 선수에게 가는 돈이 늘어날 테니까.

실제로 내가 예전에 연봉 천만 달러에 재계약을 하면서 다른 선수들의 연봉이 높아지는 결과가 나왔었다.

WWF와 ACW 간의 영입 경쟁뿐만 아니라 스타 하나가 가지는 힘이 가지는 의미 또한 크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참 웃기단 말이지.’

WWF에서는 얼마 전 연봉을 맞춰주기 힘들다면서 거트 엔젤과 같은 베테랑 선수들을 ACW에게 내주었다.

말인즉슨, 바트가 나에게 그런 것처럼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면 붙잡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이 시사하는 바는 간단했다.

바트는 거트나 부커 같은 베테랑들에게 그 정도로 무리해서 연봉을 맞춰줄 가치가 없다고 판단을 내린 거다.

거기에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까?

예를 들면 바트가 날 배신하고 선수로서의 이미지를 박살을 내버리기 위해서 영입을 선택했다던가 말이다.

말하건데.

절대 그럴 리는 없었다.

절대로. 단연코.

내가 회사를 떠나려고 하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계약을 한 상황에서 이미지를 망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돈을 주고 고용해서 이제 써먹어야만 하는 자기 상품을 왜 부수겠는가?

더군다나 ACW라는 거대 단체의 뒤꽁무니를 바싹 쫓아가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할 리가.

오히려 그를 통해 나는 바트가 날 밀어주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합리적이었다.

‘지금은 다들 모르지만.’

이 순간만 놓고 봤을 때 바트 맥센의 선택은 노인이 드디어 치매가 왔다는 노골적인 평가를 들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전생과 달리 지금은 더 많은 이들로부터 그런 말을 듣겠지.

WWF가 그간 키워온 선수들을 죄다 ACW에 내주고 거기에 들어갔어야 할 돈을 나에게 모조리 투자했으니까.

하지만 좀 다르게 봤을 때는.

바트는 그동안 재능 있는 선수들을 잘 써먹어 온 거고, 이제 그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팔아먹은 것이다.

냉정한 선택은 이해를 받지 못할 테고 분명히 수많은 반발을 살 터였다.

나는 이해했지만.

그렇기에 받아들인 계약이었다.

분명 바트 맥센으로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으니, 앞으로 군말 않고 나를 밀어주겠지.

하지만 여기에서 내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한 가지 벌어졌는데.

바트는 남들이 그 문제를 가지고 공격의 도구로 삼기 전에 먼저 움직였다.

‘이 미친 영감.’

자동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바로 다음 날.

각종 언론을 통해 나와 WWF가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이 퍼져나갔다.

당연히 업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단기 계약이 아니라 장기 계약.

PWA와 WWF를 오가며 활동한다.

그런 식으로 러프한 사항만이 밝혀진 기사.

하지만 대부분의 업계 관계자들은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았다.

나는, 그리고 PWA는, ACW 대신 WWF와 파트너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1강인 ACW를 쫓아가기 위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계약을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당연했다.

WWF도, PWA도.

이런 선택을 할 이유가 없었다.

WWF는 기존의 레전드 선수들을 다 놔주면서 나 하나에 거금을 투자했고.

우리도 굳이 ACW와 WWF 사이에서 계속 줄다리기를 하다가 지는 태양인 WWF와 계약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그건 근시안적인 생각을 가지고 업계를 보는 자들의 생각이었다.

ACW는 몰락한다.

몇 년 내로, 선수들의 이름값으로 틀어막고 있던 문제점이 서서히 터져 나오면서 끝내 1차 몰락을 겪는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했을 때, 지금 WWF와 맺은 계약은 나쁘지 않았다.

입을 벌리고 있는 상어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거지만. 나는 그 안에서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적응했다.

바트 맥센의 ‘친한 척’에.

2009년 1월 중순.

바트가 잠깐 또 본사로 와달라고 해서 간 나는, 나에게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바로 ‘주주 회의’였다.

나와의 계약 이후로 긴급 소집된 주주 회의는, 말하자면 왕인 바트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귀족들의 자리였다.

그곳에 왜 나를 불렀는가.

그렇게 물으니.

“상품이 있어야 근거가 서지.”

……라신다.

덕분에 팔자에도 없던 남의 회사 주주 회의에 참석한 나는 그곳에서 바트 맥센의 솜씨를 구경할 수 있었는데.

가관이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아무리 바트가 WWF란 회사 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들 경우가 달랐다.

지금 바트는 WWF에서 50퍼센트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대주주가 아니라.

일개 경영인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미친 영감님은 이 자리에서도 가감 없이 자기처럼 행동했다.

즉, 아무리 주주들이 대놓고 불만을 표출해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걱정 마시오! 이 개자식에게는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

그리고 그 개자식이 나다.

당연히 주주들은 날 슬쩍 돌아보고는 다들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회장님.”

“근거가 대체 뭡니까?”

“지금까지 회사에 헌신하던 선수들은 죄다 ACW에 넘겨줬으면서…….”

“왜 굳이 신을?”

“돈이 될 선수니까요.”

바트의 말에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깝지만 주주들이 듣고 싶은 대답은 그게 아니라 좀 더 디테일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설득이었다.

프로레슬링 업계의 이야기를 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 말이다.

난 일단 얼굴만 비추기 위해서 온 거라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약간 근질거리기는 했다.

바트도 그 점을 노렸다.

“이 친구가 아주 대단합니다!”

“확실히 숀 시나와 함께 북미 프로레슬링 업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선수이기는 하죠.”

그 정도는 이해하고 있는지 주주 하나가 나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왜 굳이 신을 데려오고 레전드 선수들을 가게 두었냐는 겁니다. 확실히 설명을 해주시죠.”

바트가 날 돌아보았다.

“…….”

그래.

맞춰줄까.

“제가 설명해도 될까요.”

그 말에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여기 계신 주주 분들도 아시겠지만, 프로레슬러는 대략 20년 정도 현역으로 생활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현역은.

“하우스 쇼부터 시작해서 온갖 자잘하고 하드한 스케줄을 모조리 감내할 수 있는 선수를 뜻하는 말이죠.”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올해로 10년차입니다.”

인디 경력까지 합쳐서.

뭐, 실제로는 30년이 넘었지만.

“물론 저는 꽤나 이른 시기에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몸 관리도 철저해서 45세까지는 현역 생활이 가능하죠.”

하지만 과거는 어땠는가.

“태도 불량 시대를 거쳐온 기존의 선수들은 몸을 험하게 굴려서 아마 저처럼 오래 현역으로는 못 있을 겁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그 시기죠.”

“지금 넘어간 선수들이?”

“예, 반면 WWF는 새로운 선수들을 한창 끌어 모으고 있는 시기입니다.”

숀 시나.

러셀 하트.

랜스 오튼.

그리고 나.

거기에 더해.

“사모아 고, C.M. 펑크까지.”

PWA는 되도록 젊은 선수들을 위주로 영입해 계속해서 그들을 키워왔다.

“슬슬 시대가 교체될 때입니다.”

과거의 선수들은 물러나고, 현재의 선수들이 성장해 그들을 대체한다.

업계의 선순환.

“저희가 할 것은, 과거에 못지않게 좋은 쇼를 만드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자연히 팬들은 따라붙겠죠.”

“흐음…….”

“문제는 지금이야. 신.”

주주 중 하나가 말했다.

“모든 지표에서 밀리고 있는데 우리가 왜 자네의 말을 신뢰해야 하지?”

“저는 합리적인 선택을 권유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존 몬태나나 미라클 조던이 처음부터 신神이었습니까?”

미식축구, 그리고 농구계의 거성들.

그들도 결국 기초부터 시작했다.

“저희는 그보다 훨씬 낫죠. 시대로 따지자면 조던의 불스 왕조가 만들어지기 직전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바로 다음 주부터 보여드리죠.”

우리는 분명 ACW를 추격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뛰어넘겠지.

내가 그렇게 판을 짜왔으니까.

***

그렇게 성난 주주들이 돌아간 뒤.

바트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 네 덕에 편하게 넘겼다!”

“……따로 비용 청구하겠습니다.”

“그렇게 쪼잔한 남자였나?”

“합리적이죠.”

프로의 시간은 돈이다.

그 시간을 바트를 위해 들였는데 당연히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 정상이지.

“그럼 나중에 우리 직원한테 말해서 수표라도 한 장 받아가게나.”

“20억 달러 씁니다.”

“……내가 잘못 말했군.”

한숨을 내쉬는 바트..

거기에 피식 웃은 나는 자리에 앉아 바트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 오늘 여기 군말 없이 온 이유는 그와 킹스 럼블의 ‘각본’과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디어는 이미 있었다.

“쇼에 나와주시죠.”

“내가?”

“예, 지금 세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걸 각본으로 이용해보자고요.”

분명 사람들은 현실감을 느낄 거다.

또한 현실의 일이기도 했다.

“제가 회장님의 소개로 WWF에 등장하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반발하는 WWF 선수들이 분명 있겠죠.”

“그게 헌터라는 건가.”

“예. 그리고 저는 이번 레슬 임페리움에서 헌터를 이기게 될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마디 드리자면.”

“음?”

“저희 쪽 두 명과 회장님이 차세대의 기수라고 생각하시는 선수들을 최대한 레전드 선수들과 붙여주십시오.”

“그래서?”

“이기게 하는 겁니다. 아니 뭐, ‘절대 ACW’로 안 넘어갈 인물이라면 굳이 이기게 할 필요는 없지만.”

“그거라면…… 헌터나 테이커를 예시로 들 수 있겠군. 그 둘이라면 절대 이 회사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아, 저는 헌터한테 이겨야 합니다. 그게 약속이었잖아요. 기억하시죠?”

“그랬던가?”

“그렇게 선수 의욕을 죽이니까 ACW 따위한테 지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하! 그럴지도 모르겠군!”

바트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미친 영감.

“그럼 이건 어떤가. 아예 자네가 WWF를 장악해서 내가 자네 엉덩이에 키스를 하는 Kiss My A-s Club을 만들고 악당으로 난리를 피우는 거야.”

“거 존나 구리네요.”

그렇게 하면 내가 악역이 된다.

이 각본의 포인트는 그 누구도 악역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인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헌터도 헌터 나름대로 WWF를 지켜야 할 이유가 있고, 저도 저 나름대로 그와 싸워 이겨야만 하죠.”

“자네 이유는 뭔가?”

“그야 물론, 제가 가지고 있는 상승세를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섭니다.”

거기다 헌터는 얼마 전에 월드 챔피언인 오튼에게 재도전해서 져주었다.

“그런데 제가 그런 헌터에게 지면 그림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회장님께서 원하는 그림도 아니실 텐데요.”

“그래, 확실히 나는 자네가 WWF를 더 끌어 올려주기를 원하고 있네.”

바트가 내게 바싹 다가왔다.

“그러니, 신. 부디 내가 그동안 잘 사용해온 헌터라는 ‘수족’을 끊어낸 보람이 있도록 해주게나.”

“…….”

방금 그 말에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의 본질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나는 분명 거물이 되었다.

바트 맥센이 트리플H라고 하는 전설적인 선수를 두고 날 택할 정도로.

각본 상으로나.

현실로나.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바트는 이제는 노쇠한 그를 대신해서 내가 그 뒤를 이어받기를 원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일에 대해서 트리플H와도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하고 싶은가? 응? 말해보게. 자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트리플H와 어떤 식으로 대립하고 싶지?”

트리플H.

그가 누구인가.

King Of Kings.

The Game.

1992년 데뷔를 했던 그는, 전생에도 2009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풀-타임 레슬러 생활을 유지하는 데는 체력이 달리는 나이가 왔고.

젊은 시절 입은 대퇴사두근 부상으로 인해 경기력도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테이커와 마찬가지로 2020년까지 계속해서 레슬 임페리움 같은 중요 쇼에만 등장하면서 파트-타임 레슬러로서 행보를 이어갔는데.

사실 좋은 건 아니었다.

현역으로서 은퇴한 선수는 깔끔하게 후배에게 져주고 떠나야만 하는 법.

그리고 순환한다.

바로 그것이 내가 언제나 생각하는 ‘이상적인 프로레슬링 업계’였다.

거기에 대해, 태도 불량 시대의 아이콘인 락콜드는 선수는 기계 부품과도 같다며 자조적으로 말했지만.

그건 별수 없는 문제고.

그렇기에 마지막이 중요했다.

누구에게 기수를 넘겨주고.

깔끔하게 떠나느냐.

하지만 태도 불량 시대의 스타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해서,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락콜드는 더 팍에게 주었고.

더 팍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업계를 떠났다.

그나마 그런 와중에 브룩 레스너에게 깃발을 넘겨주었지만, 브룩은 멘탈 문제로 얼마 못 가 회사를 나갔다.

그리고 남은 인원들.

트리플H.

캐스켓-테이커.

레이 미스테리우스.

크리스 젠코.

부커-리.

거트 엔젤.

RVD.

카인.

개중 ‘전생’에 깔끔한 잡을 마치고 선수 생활을 마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개망나니인 JBL뿐이었다.

그가 잡을 해주었기에 숀 시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올라설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는 아니었다.

헌터와 오튼이 좋은 예시였다.

전생의 2009 레슬 임페리움.

헌터는 기어코 마지막 순간에 기세가 올랐던 오튼을 뱀술로 담가 먹으면서 자신의 강력함을 크게 어필했고.

이후 시나가 이끌어줄 때까지 랜스 오튼은 기나긴 침체기를 맞았다.

물론 이제는 아니었다.

헌터를 이긴 오튼의 위상은 전생과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이건 좋은 흐름이었다.

앞으로 10년.

정말로 환상적인 시대를 만들어나갈 기반이 슬슬 갖춰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과거에 대한 존중은 필요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렇기에.

“뭐, 이건 헌터의 의사겠지만.”

“그게 필요한가?”

“물론이죠. 그 양반 역시도 할 마음이 있어야 좋은 경기가 나오니까.”

하지만 이미 생각은 해두었다.

헌터의 본질을 끌어낸다.

그를 위해서는.

‘노 홀즈 바드.’

무규칙 경기가 적절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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