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46화 (346/634)

346.

15만 명의 관객들이 모여있는 경기장은 확실하게 강렬한 모습이었다.

말인즉슨, 적어도 ‘4대 페이퍼뷰’만큼은 위상이 공고하다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ACW에게 밀리고 있다고 해도 ‘킹스 럼블’이라는 페이퍼뷰의 네임밸류가 가지는 힘이 세다는 거지.

물론 반대편에서는 ACW가 킹스 럼블에 맞서서 ‘소울 브레이크’라는 이름의 페이퍼뷰를 동시에 개최했다.

그들 역시도 15만 규모의 경기장을 완전히 매진시켰고, 거기에서 나는 이 시장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다면 이제 증명할 때였다.

즐거움을 기대하고 비싼 표 값을 치러준 팬들에게, 지금 자신들이 정말로 환상적인 순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각본은 어렵지 않게 짜였다.

회사에 돌아오자마자 리드 보이.

거기에 킹스 럼블 우승.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푸시를 받게 된 상황에서, 나는 경기를 준비했다.

그러는 사이 메인이벤트 이전의 경기들이 차례차례 진행되기 시작했다.

내가 떠나기 직전과는 좀 달랐다.

태도 불량 시대를 거쳐온 선수들 위주로 돌아갔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그 이후에 데뷔한 선수들 위주였다.

그들이 성장해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역사를 써나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WWF 월드 챔피언 랜스 오튼.

WWF 유니버스 챔피언 숀 시나.

두 메인 타이틀 홀더들도 훌륭한 경기 끝에 챔피언 자리를 지켜냈고.

내 차례가 찾아왔다.

“후우.”

나는 심호흡을 했다.

광고가 나가는 게 보였다.

이제는 이 방송에 광고를 내보내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했다.

모두 내가 이뤄낸 성과다.

뭐, 다들 잘해주긴 했지만.

‘역시 나지.’

그러므로 이건 당연했다.

나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그걸 증명해보이리라.

……그런 식으로 정신을 가다듬은 나는 이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복도로 나가자 타이틀 매치를 끝마치고 돌아온 오튼과 시나가 서있었다.

격렬한 경기에 지친 오튼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분위기 완전 제대로 띄워놨으니까…… 마지막까지 잘 해보라고.”

“주제에 좀 했나봐?”

“나가서 느껴보라고.”

녀석과 장난스럽게 말을 주고받은 직후, 옆에 서있던 시나가 다가왔다.

“신, 오늘 우승이라면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You Derserve It.”

너에게는 자격이 있다.

그런 격려를 들으며 고릴라 포지션으로 향하니, 알맞게 광고 타임이 끝나고 링 아나운서가 경기를 소개했다.

[다음으로 이어질 경기는 킹스 럼블의 전통인 30인 럼블 매치입니다!]

[Waaaaaaaaaaaaggggghhhhh!!]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이어졌다.

분명히 이번 럼블 매치는 팬들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경기라는 걸 느꼈다.

“신, 준비해주세요.”

음향팀장의 말에 입장로로 이어지는 커튼 앞에 선 나는 경기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럼블 매치.

1번과 2번이 등장해 경기가 시작되고, 이후 1분 30초마다 한 명씩 선수가 등장해 30번까지 링에 오른다.

탑 로프를 넘어가 링 바닥에 양발이 닿게 되면 탈락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선수가 경기의 승자가 된다.

1번으로 경기에 참가해 경기의 우승자가 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물론.

때로는 그런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지는 드라마가, 프로레슬링이었다.

신체적으로 많은 부담이 있겠지만 이런 부킹을 받을 수 있어서 기뻤다.

그렇게 생각한 시점이었다.

링 아나운서가 특유의 멋진 목소리로 럼블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Leeeeeeeeet's……!! Get Ready To Rumbleeeeeeeee-!!]

그리고 음악이 흘러나갔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빠밤-빠밤-빠밤-빠밤-빠밤-빠밤-!!

분사되는 연기.

솟아오르는 불꽃.

그 아래에서 팬들이 반응을 보였다.

[Waaaaaaaaaaaaaaaaaggghhh!!]

[Booooooooooooooooooooo-!!]

야유와 환호가 동시에 이어지며 이 경기장에서 나의 존재감을 알게 했다.

모두가 날 기다리고 있다.

날 싫어했고.

더없이 사랑했다.

정말로 죽여주는 기분이다.

정말로 죽여주는 밤이 될 것이다.

나는 곧바로 커튼을 걷고 나아갔다.

연기가 자욱한 시야 속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자 이어서 거대한 경기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Boooooooooooooooooooooo-!]

힘차게 챈트를 보내는 팬들과 반대로 계속해서 야유를 보내는 안티들.

그들을 앞에 둔 채 씨익 웃은 나는 이어 한국어를 사용해 크게 소리쳤다.

“뭐야……!”

어차피 안 들릴 테니까.

“날 사랑하는 거야! 증오하는 거야! 목소리가 작아서 들리지 않는다고!!”

반응이 더 커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이곳에 모인 팬들과 마음으로 연결된 것을 느꼈다.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SIN’이라는 캐릭터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알아주었다.

오늘 이기는 것은 나다.

그렇게 링으로 올라간 나는 재킷과 선글라스를 벗고 몸을 풀며 다음 선수가 등장하는 것을 기다렸다.

자, 사실 여기에서.

이제 보통 1번과 2번 선수는 일반적으로 회사 내에서 적어도 하이 미드 카더 이상의 선수들이 선발되었다.

3번 선수가 나오는 1분 30초 동안 반응을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최고의 파트너를 골랐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날카로운 기타 리프와 함께.

[Yeeeeeeeeeeeeeeeeeeaaaahhh!!]

‘러셀 하트’가 링으로 나왔다.

킹 오브 하트.

나의 가장 오래된 전우이자 라이벌.

자동으로 웃음이 나왔다.

녀석 역시도 웃고 있었다.

팬들이 녀석에게 환호를 보낸 것도, 커리어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우리의 라이벌리를 알기 때문이었다.

어깨까지 이르는 금발은 하나로 묶었고, 몸은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지금 녀석이 가진 위상을 보여주듯 힘차게 하늘로 폭죽 기둥이 치솟았다.

그와 동시에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던진 러셀이 링을 향해서 달려왔다.

그리고 녀석이 링으로 들어온 순간.

나는 스텝을 밟으며 킥을 날렸다.

슈퍼 킥.

하지만 러셀은 링에 올라옴과 동시에 이어지는 내 킥을 쉽게 잡아냈다.

순간 놀라 바라보자니.

“Welcome Back, SIN.”

씨익 웃은 녀석이 그대로 잡고 있던 내 다리를 힘차게 위로 들어올렸다.

나는 거기에 맞춰서 뒤로 한 바퀴 덤블링을 한 뒤 지면에 착지했다.

쿠웅-!

그리고 고개를 들자.

러셀은 눈앞에 없었다.

[Uoooooooooooooohhhh……?!]

놀란 팬들의 목소리와 동시에 허리를 붙잡힌 내 몸이 그대로 떠올랐다.

나무 밑동을 잡아뽑는 듯한.

저먼 수플렉스.

투콰앙-!

어깨부터 해서 바닥에 떨어진 나는 그대로 뒤로 몇 바퀴를 더 굴렀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생각과 함께 고개를 들자 반대편에서 일어난 러셀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곧바로 달려들었다.

서로 팔을 엮은 상태에서 러셀과 힘겨루기로 이어간 나는 조금 전 받은 저먼 수플렉스를 그대로 돌려주었다.

“윽……?!”

빠르게 돌아가 뒤를 잡고.

이어지는 백 드롭.

콰앙-!!

통쾌하게 복수한 나는 그대로 러셀과 거리를 벌리고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러자니 챈트가 나왔다.

[We Want SIN-SELL!]

짝! 짝! 짝짝짝!

[We Want SIN-SELL!]

짝! 짝! 짝짝짝!

[We Want SIN-SELL!]

짝! 짝! 짝짝짝!

긴장감을 순간 저 멀리 날려버리는 유쾌한 챈트에 피식 웃은 나는 그대로 러셀을 향해서 힘차게 달려들었다.

시간이 빡빡했던 관계로 미리 합을 맞춰보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녀석과 나는 완벽했다.

달려드는 날 본 러셀은 다리를 걸기 위해 곧바로 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나는 녀석을 휙 타고 넘어가 한 바퀴 구르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선 러셀이 내 머리를 붙잡고 반대편으로 내던졌다.

그 힘을 못 이기고 반대편 로프까지 달려간 나는 그대로 엉덩이와 팔을 걸치고 안전하게 로프 반동을 했다.

꾸욱.

몸이 장전되었고.

이내 몸을 튕긴 나는 이쪽을 기다리고 있는 러셀을 향해 재차 달려들었다.

녀석이 백 바디 드롭을 노리면서 내 앞에서 그대로 허리를 앞으로 숙였다.

나는 곧바로 몸을 돌리며 뛰었다.

러셀의 등을 발판으로 삼아 등을 맞대고 옆으로 구르면서 뛰어넘었다.

반 바퀴 구르며 넘어가 다시금 발이 땅에 닿았고 러셀이 날 돌아보았다.

“후우……!”

나는 곧바로 힘껏 도약했다.

퍼억-!

러셀의 머리 높이까지 뛰어올라 그대로 몸을 쭉 뻗으며 드롭킥을 찼다.

러셀이 팔을 들어 방어했지만.

퍼억-!!

체중을 실어 찬 킥의 위력은 방어한 상태의 녀석을 그대로 반대편으로 날려 보냈다.

낙법을 치며 뚝 떨어진 나는 마찬가지로 일어선 러셀과 다시금 맞붙었다.

공방의 스피드는 더 빨라졌다.

럼블 매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방을 링 바깥으로 내보낸다는 규칙은 이미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모두가 우리를 보았다.

[Uooooooooooooohhhhh……!]

수준 높은.

동시에 아슬아슬하게 현실적인 선에 발을 걸치고 있는 프로레슬링의 공방에 눈을 떼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러셀이 다시금 락 업을 시도했다.

이쪽을 붙잡기 위해 뻗어져 오는 팔을 쳐낸 나는 그대로 몸을 크게 젖혔다 러셀의 안면에 박치기를 선사했다.

쩌억-!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러셀.

나는 곧장 그 다리를 잡고 들었다.

쿠웅-!

바닥에 대자로 뻗는 러셀.

그 상황에서 쓸 기술은 하나.

[Waaaaaaaaaaaaagggggghhhh!!]

샤프 슈터밖에 없었다.

우리 두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기술의 등장에 팬들이 환호했다.

그대로 곧장 다리를 얽고 뒤로 돌아서려던 나는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몸을 돌릴 때 쓰는 발목을 잡혔다.

“큭……?!”

어느새 여기까지?

이렇게 되면 다리를 엮어도 몸을 돌릴 수가 없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발을 빼내려고 했으나.

러셀이 고정 축으로 삼는 다리에 얽힌 자신의 발에 힘을 주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뒤로 엎어지고 말았다.

쿠웅-!

그리고 녀석의 차례가 찾아왔다.

자리에 누운 상태에서 반대로 내 다리를 자신의 다리에 얽은 러셀이 그대로 벌떡 일어서며 내 몸을 비틀었다.

하트 슈터.

허리가 기괴한 방향으로 꺾였다.

“끄아아아악-!!”

나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거기에 러셀은 다리를 엮지 않은 발을 들어서는 내 머리를 눌러 아예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을 시켰다.

진짜 아프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물론 이게 효율적인 짓은 아니었다.

럼블 매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을 링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서브미션으로 항복을 받아내는 룰은 없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러셀이 하는 행동은 무의미한 짓이었다.

하지만 러셀과 나에게는 효율 같은 것을 넘어서서 상대방에게 서브미션을 걸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존재했다.

우드드득-!!

그리고 시간이 찾아왔다.

어느덧 1분 30초가 지났고.

팬들이 카운트를 시작했다.

[10……!!]

[9……!!]

[8……!!]

하지만 러셀은 마지막 순간까지 나에게 걸린 서브미션을 풀지 않았다.

[3……!]

[2……!]

[1……!!]

BAAAAAAAAAAAAAAAAAAMMMM!!

다음 선수의 등장을 알리는 버저 사운드가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나온 음악은…….

[우-아-! 우-아-! 우-아-! 우-아-! 우-아-! 우-아-! 우-아-! 우-아-!]

사모아 고였다.

[Uoooooooooooooohhhhhh?!]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럼블의 세 번째 참가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PWA 출신의 사모아 고였다.

그 거체가 링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게 팬들의 반응을 통해 느껴졌다.

지금 TV 앞의 팬들과 경기장의 관객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세 번째 선수가 나와서 액션을 취하면서 자연히 나는 서브미션에서 풀려나고 경기가 계속해서 이어지리라고.

더군다나 나온 선수가 바로 나와 같은 단체 출신의 사모아 고였으니까.

하지만 링 위로 올라온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퍼억-!!

모두가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고의 행동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순간 중심이 무너져 하트 슈터를 푼 러셀도 눈을 동그랗게 뜰 정도.

……하지만 나에게는 안타깝게도.

이게 우리였다.

바닥에 드러누운 내 위에 올라탄 고가 마구잡이로 고 해머를 휘둘러댔다.

퍼억-! 퍽! 퍽! 퍽!!

두툼하게 근육이 잡힌 팔꿈치가 관자놀이에 마구 꽂혔고, 나는 방어 자세를 취한 채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그러자니 뒤에서 다가온 러셀이 고의 뒤통수를 향해 팔꿈치를 휘둘렀다.

쩌억-!

히든 블레이드.

악역이 된 이후로 녀석이 장착한 잔혹하기 그지없는 강력한 타격기.

하지만 고는 쓰러지지 않았다.

[Uoooooooooooooohhhhh……!]

녀석은 분노로 숨을 몰아쉬었다.

전사들의 국가인 사모안 독립국.

그 작은 섬나라는 가장 위험한 전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곳에서도 가장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남자를 지금 러셀이 깨웠다.

그것도 최악의 방식으로.

나를 놔두고 벌떡 일어선 고가 천천히 러셀을 향해서 다가섰다.

러셀 본인도 어떻게든 자신의 주특기인 테크니션 레슬링으로 이끌기 위해 고의 뒤쪽으로 순가 파고들었으나.

고는 들리지 않았다.

나와는 달리.

“큭……?!”

오히려 고가 자신의 등에 매달린 러셀의 머리를 붙잡고는 그대로 넘겼다.

콰앙-!

그러고는 ‘고작 이거야?’라고 말하듯 입술을 비틀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당황해 몸을 일으켜 세우는 러셀을 향해 고가 그대로 돌진해 들이받았다.

투콰앙-!

마치 트럭에 충돌한 것처럼 나가떨어지는 러셀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거지. 이거야.’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다.

내가 키운 개자식이 러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위상을 확립하며, 바로 오늘 아주 멋진 데뷔를 해보였다.

팬들이 그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G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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