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26번 선수인 카인이 나왔다.
투콰앙-!
붉은 조명 위로 치솟는 불길.
테이커와 비슷한 덩치의 빅 맨.
가면을 벗은 이후로 악역으로서 정체성을 더 크게 드러내고 있는 선수.
빅 레드 머신.
험악한 얼굴의 그가 링 위로 올라와서는 위상이 낮은 선수들을 차례차례 정리하며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거기에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Waaaaaaaaaaaaaaggggghhhh!!]
드라마로서의 각본이 딱히 존재하지 않는 럼블 매치인 만큼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팬들에게 환호를 받았다.
물론, 럼블 매치에 참가해 우승하겠다는 각오를 드러낸 나는 드라마가 있기에 야유를 받는 것이었지만.
그리고 또한 그런 이유로 카인이 제거해야 하는 대상 1순위가 되었지만.
어떻게든 버텨냈다.
“끄윽……!!”
링 사이드에 누워 있던 내게 다가온 카인이 그대로 힘차게 목을 붙잡았다.
터억-!
듣기만 해도 아픈 소리.
하지만 실제로는 그만큼 아프진 않았다. 카인이 워낙 베테랑일뿐더러.
“신, 괜찮나?”
친절했기 때문이었다.
카인은 이런 성격이었다.
2미터 거구에 험악한 인상을 자랑했지만, 사람이 너무 좋아서 모두가 믿고 따를 수 있는 프로레슬러였다.
……안타깝게도 캐릭터로서의 설정은 어렸을 적 얼굴에 화상을 입고 괴물이 된 테이커의 남동생이었지만.
뭐, 그건 그거고.
“괜찮, 습니다.”
이건 이거다.
카인이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목을 붙잡은 카인의 손을 잡고서 그대로 들린 나는 그 괴력에 경악했다.
[Uoooooooooooooohhhhh……!]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힘 하나만이라면 테이커보다 위다.
그렇게 생각한 직후 나는 그대로 카인의 팔에 다리를 감고 매달렸다.
순간 당황하는 카인.
그 상태에서 자세를 바꿨다.
팔에서 어깨 위로.
그렇게 카인의 위로 올라탄 나는 그의 안면에 힘껏 펀치를 후려갈겼다.
뻐억-!
“크악?!”
비틀거리는 카인.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파워 밤 포지션.
여기에서 카인이 날 붙잡고 내던지기만 해도 2미터 아래로 추락이었다.
하지만 나는 버텨냈다.
허벅지를 꽉 조이고.
등 근육을 당긴 상태에서 카인의 안면을 연속해서 때리며 그 기세가 줄어들 때까지 공격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때가 찾아왔다.
카인이 눈을 한 번 천천히 깜빡.
나는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다리로 카인의 목을 붙잡은 채.
내 몸이 역방향으로 힘껏 회전하며 그대로 카인의 거구를 뽑아 올렸다.
프랑켄슈타이너.
콰앙-!
그대로 힘껏 떠오른 카인의 몸이 앞으로 한 바퀴 돌아 지면에 추락했다.
나 역시도 함께 떨어졌다.
낙법을 치기는 했지만 체력이 버거운 상황이었던 터라 나는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바닥에 추욱 늘어졌다.
“허억, 헉……!”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내가 체력이 나쁜 편은 아니고, 오히려 꽤나 좋은 편에 속했지만, 이렇게 오래 경기를 뛰어본 적은 없었다.
1시간은 진작에 넘어갔지만.
아직 더 남았다.
27번 롤프 지글러.
28번 산티노 마릴라.
29번 빅 죠까지.
그렇게 마지막 선수들을 남겨둔 상황에서 카인과 빅 죠라는 자이언트가 나와 링을 다시 한 번 정리했다.
일반적인 레벨의 선수로서 저 두 사람에게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두 사람은 언제나 힘을 쓸 일이 필요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함께했고.
펑크나 고는 어떻게든 탈락하지 않고 버텨내고 있었지만 링 위는 완전히 빅 죠와 카인의 지배 아래에 놓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두 사람의 손에 정리를 당했고, 링에 남은 것은 총 다섯 명의 선수들뿐이었다.
나.
C.M. 펑크.
사모아 고.
카인.
그리고 빅 죠까지.
그런 상황에서 시작된 카운트.
[10……!]
[9……!]
빅 죠와 카인은 뜻밖에도 우리 셋을 노리지 않고 카운트를 기다렸다.
[8……!]
[7……!]
덕분에 각각 1번, 3번, 16번으로 나온 우리는 잠시 쉴 수가 있었지만.
[6……!]
[5……!]
[4……!]
뭔가 이상하다.
왜 두 사람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고 누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코너 로프에 가만히 서있는 것일까.
[3……!]
[2……!]
[1……!]
대체 누가 나오는 걸까?
BAAAAAAAAAAAAAAAAMMMMM!!
그 해답은 간단했다.
[Time To Play The Game……!]
왕께서 나오신다.
그것도 운동 한 번 안 해보고 궁궐에서 호의호식하며 자란 왕이 아니라.
이 자리에 올라올 때까지 수많은 적들을 온갖 악랄한 방식으로 쓰러뜨린.
야만전사 왕.
그들 사이의 가장 강한 왕.
King Of Kings.
트리플H.
녹색의 조명이 경기장을 뒤덮으며 트리플H가 천천히 입장로로 나왔다.
[Waaaaaaaaaaaaaaaagggghhh!!]
팬들의 환호에 뒷골이 아파왔다.
검정색 팬티 형태의 경기복에 드넓은 상반신. 근육으로 뒤덮인 그 몸은 도저히 40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가 천천히 걸어오는 동안.
“후우, 후우…….”
나는 숨을 몰아쉬며 침묵했다.
전의를 다졌다.
저 남자를 상대로 이긴다.
모든 것이 트리플H가 정한대로 이루어졌으나, 안타깝게도 어쩌겠는가.
나는 항상 이렇게 싸워왔다.
내 요새의 이름은 고독이며 집에 돌아가면 분노라는 이름의 애인이 있다.
그렇기에 싸워서 이긴다.
……물론, 지금부터는 한동안 죽어라고 얻어터질 테지만 말이다.
각오를 굳혀두자.
그렇게 생각하자니 링 위로 올라온 트리플H가 가신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가신들이라기보다는 목적과 페이가 맞아 고용한 용병에 가까울 테지만.
헌터는 그대로 빅 죠와 카인과 악수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모두 그가 고용한 것이다.
짜둔 시나리오대로다.
그런 비겁한 행동에 쏟아지는 야유.
[Booooooooooooooooooooo-!]
하지만 헌터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고 자기 할 일을 시작했다.
경기라기보다는 폭력에 가까운 일.
초반에 나와서 이미 체력적인 한계를 맞이한 고를 링 중앙으로 끌고나와 그대로 마구잡이로 짓밟기 시작했다.
빅 죠와 카인도 거기에 가세했다.
[Boooooooooooooooooooooo-!!]
경기는 조작되었다.
트리플H에게 온갖 기술을 다 얻어맞은 고가 탈락되었고, 세 사람은 의기양양한 채 펑크를 향해 움직였다.
‘완전히 깡패들이군.’
나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힘을 모으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추욱 늘어져서 부족한 산소와 혈액이 전신에 빠르게 공급되는 것을 기다렸다.
그사이 펑크는 호되게 당했다.
어떻게든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용했으나, 세 사람은 월드 챔피언을 적어도 1회씩은 지내본 강자들이었다.
거기에 다들 덩치가 커서 펑크를 박살 내는 그림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커헉!”
복부를 힘껏 걷어차인 펑크는 그대로 페디그리의 재물이 되고 말았다.
투콰앙-!
그리고 이어 카인이 그를 일으켜 세워서는 로프 밖으로 던져버렸다.
순식간에 두 명이 탈락.
그로써 파이널 포가 되었다.
나.
빅 죠.
카인.
트리플H.
이중에 우승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물론, 30번인 트리플H였다.
그는 체력적으로 완벽했고, 솔직히 다른 선수들을 모조리 탈락시켜도 이상하지 않을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가능성이 낮은 건.
물론 나였다.
1번으로 나와서
경기 시간 1시간 23분째.
몸은 만신창이였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셋이 다 적이다.
“후우, 후우…….”
호흡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트리플H가 천천히 내게 다가와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제야 좀 현실이 보이시나?”
“…….”
“여기서 우승할 수 있겠어?”
“어, 그런데.”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코너 주변으로 뻗은 로프를 붙잡고 일어섰다.
“내가 탈락하면 너희는 어쩌게?”
“응?”
“너희 셋 말이야. 누가 우승하지?”
“…….”
“…….”
말로 균열을 일으켰다.
아니, 시간을 벌었다는 쪽에 가까웠다.
“나를 넘기려고 할 때 누가 뒤에서 같이 넘겨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팬들의 환성이 경기장을 뒤덮고 있는 가운데였으므로, 나는 일부러 손가락질까지 해가며 그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순간 붙어 서있던 카인과 빅 죠가 떨어지면서 지금의 상황이 어떤지 판토마임의 형태로 보여주었다.
또한 거기에 더해, 텔레비전 방송으로는 해설자들이 한창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있겠지.
죠와 카인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 둘을 돌아본 트리플H가 황당해하며 날 떨어뜨리자고 재촉을 했다.
“뭐하는 거야!”
“아, 아니. 하지만…….”
“일단 저 자식부터 떨어뜨리고 생각하자고! 죠! 정신 차려!”
“아, 내가 떨어지면 우승할 확률이 제일 높은 건 트리플H지?”
“넌 닥쳐!!”
헌터가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그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져 서있는 죠의 뺨을 힘차게 후려쳤다.
그 스스로는 자신이 더 위라고 생각해서 죠의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한 행동이었겠지만.
죠 역시도 난폭한 사나이였고.
보통 사내가 뺨을 맞았다는 말은 곧바로 반격이 이어진다는 이야기였다.
퍼억-!!
[Uoooooooooooooooohhhhhh!!]
죠가 헌터를 밀쳐냈다.
링을 한 바퀴 뒤로 구르며 나가떨어지는 헌터. 팬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자, 현실이 깨졌다.
그리고 더 큰 현실이 찾아왔다.
내 세 치 혀로 인해 세 사람의 사이에 불신이 피어올랐고 벌떡 일어선 헌터가 그대로 빅 죠를 공격했다.
빅 죠 역시 지지 않고 반격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싸움이 시작된 가운데, 카인이 나를 향해서 다가왔다.
그가 험악한 얼굴로 물었다.
“신, 괜찮나?”
“……선배.”
“응?”
“연기합시다. 연기. 몰입이 깨져요.”
나는 싱긋 웃으며 이야기했다.
거기에 따라서 웃는 카인.
이어서 펀치가 날아왔다.
퍼억-!!
기분이 좋아지는 통증이었다.
2미터 13센티미터의 거구가 날리는 펀치는 그야말로 화끈함 그 자체였다.
나는 곧바로 반격에 들어갔다.
로프에 몸을 걸친 상태에서 몸을 날리며 카인에게 곧장 헤드벗을 날렸고.
[Yeeeeeeeeeeeeeeeaaaahhhhh!!]
“덕분에 쉬는 시간 좀 벌었다!”
나는 마지막 불꽃을 태워나갔다.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카인의 안면에 펀치를 날리고 계속해서 쫓아갔다.
물론 카인 역시도 호구는 아니라 순순히 당해주지는 않았고, 이내 내 목을 움켜쥐며 제압을 하려고 들었다.
그리고 이어 초크 슬램.
카인의 괴력에 들려 번쩍 떠오른 나는 그가 내치기 전에 목에 휘감긴 손가락을 풀며 뒤쪽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카인을 로프 쪽으로 밀었다.
카인 역시 로프를 붙잡고 버텨냈지만 나는 정말로 온 힘을 짜내 그를 완전히 링 밖으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Waaaaaaaaaaaaaaggggghhhh!!]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이로서 파이널 쓰리.
뒤를 돌아본 나는 죠와 헌터가 순간적으로 싸움을 멈춘 걸 알아차렸다.
두 사람이 다시금 공동전선을 구축하고는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죠가 내 몸을 번쩍 들어올렸다.
“큭?!”
어떻게든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거구에서 나오는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한쪽 어깨 위에 날 들쳐 멘 죠가 그대로 로프 밖으로 넘기려고 했고.
나는 로프를 잡고 버텼다.
[Uooooooooooooooohhhhh……!!]
정말로 위험한 순간이었다.
팔에 점점 힘이 빠진다.
그걸 느끼고 있을 무렵.
“억?!”
돌연 죠의 몸이 로프를 넘어갔다.
뒤쪽의 트리플H가 끝끝내 빅 죠를 먼저 제거하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치졸하고 더러운 배신.
하지만 그게 트리플H였다.
나를 탈락시키는데 집중했던 죠였기에 헌터가 손쉽게 넘길 수 있었다.
로프를 붙잡고 있던 나는 죠와 함께 몸이 넘어갔지만 어떻게든 버텨냈고.
그렇게 다시 링으로.
이로서 파이널 투.
경기의 마지막 순간.
“후우…….”
그 위용을 뽐내며 서있는 트리플H.
그리고 반대편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나.
30번과 1번.
누가 보더라도 헌터가 유리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마지막 순간까지 승리라는 해답을 찾는 것이 바로 내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일단 일어섰다.
몸이 꺾이면 정신이 꺾이니까.
나는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고 반대편의 헌터는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공격이 들어왔다.
힘껏 달려들어서 니 리프트.
휙 뛰어오른 헌터의 무릎에 안면을 직격당한 나는 로프에 기대어 섰다.
그리고 달려온 헌터가 클로스라인을 사용해 나를 바로 밀어내려고 했다.
목에 휘감기는 헌터의 팔뚝.
그걸 어떻게든 피해내기 위해 무릎을 꿇었던 나는 그대로 헌터의 다리를 잡아서 번쩍 들어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헌터는 그대로 내 머리통을 붙잡고 자신의 다리 사이에 끼웠다.
페디그리의 준비 자세.
[Uoooooooooooooohhhhhh!!]
이걸 맞으면 끝장이다.
그걸 아는 팬들이 경악에 찬 탄성을 내뱉는 가운데 나는 그대로 허리에 힘을 주어 헌터의 몸을 들어올렸다.
마치 소가 사람을 내던지듯이.
헌터의 몸이 떠올라 뒤로 넘어갔다.
쿠웅-!
그리고 나는 로프에 몸을 기댔다.
아, 진짜 죽겠다.
이건 정말로 힘들다.
시야가 흐렸고 솔직히 말해 이제는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그리고 헌터는 잔뜩 열이 받았다.
“이 자식이……!”
녀석에게 복부를 걷어차였다.
힘이 빠져 자동으로 허리가 숙여졌고 헌터는 우악스러운 손놀림으로 내 머리를 자신의 다리 사이에 넣은 뒤.
팔을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한 상태에서 힘껏 위로 뛰어올랐다.
그와 함께 같이 떠오른 내 전반신이 그대로 힘차게 바닥과 충돌했다.
투-콰앙-!!
페디그리.
제왕의 혈통을 드러내는 트리플H의 피니시 무브.
순간 몸에 전기가 오른 것처럼 통증이 짜릿하게 스쳐지나갔다.
팬들은 이제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길 수 없다.
트리플H는 모든 걸 준비해왔다.
그렇기에 난 지금껏 잘 싸워왔지만 분명히 여기에서 지고 말 것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리고 그걸 뒤집는 게.
드라마다.
가보자.
역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