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50화 (350/634)

350.

그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목소리가 희미했다.

통증의 끝에서 쾌감이 찾아왔고, 그 부유감이 내 정신을 일그러뜨렸다.

이대로 몸을 맡겨도 되지 않을까.

일어서지 않은 채, 이 쾌락에 원하는 만큼 몸을 맡기고 있어도 되지 않을까.

아니다.

나는 그런 남자가 아니다.

나는 지금 일어서야만 한다.

일어서서 끝장을 보아야만 했다.

그게 현실이니까.

‘그나저나.’

역시 트리플H는 멋진 레슬러였다.

그는 악역으로서 최고였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자신의 제왕적인 면모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왕을 싫어한다.

왜냐면, 개 같잖아?

태어났을 때부터 자신이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놈을 누가 좋아하겠어?

그렇기에 트리플H는 야유를 받았고.

그에 맞서 일어선 나는.

[Yeeeeeeeeeeeeeeaaaaahhhh!!]

거대한 환호를 받았다.

그것이 등을 받쳐주었다.

끝나지 않은 소년들의 꿈이.

내가 이기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헌터의 펀치가 날아들었다.

퍼억-!!

하지만 나는 쓰러지지 않는다.

1번이다. 1번.

하지만 여기에서 내가 쓰러지면 그 1번은 아무런 가치도 없게 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만 그 1번이 비로소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거기에 헌터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연이어 펀치를 날리던 녀석이 이어 내 등과 다리를 잡고 번쩍 들어올렸다.

스파인 버스터.

투콰앙-!!

등짝부터 화려하게 땅에 메쳐진 나는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허억, 허억……!”

“적당히 하고 끝내자고!”

“내가, 내가 말이야.”

나는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뭐?”

“영화…… 보면서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었던 대사가 하나 있거든?”

“무슨 소리야?”

“근데 좀 오그라들기는 해. 하지만 지금 솔직히 슈퍼 그럴 만한 때라고 생각하니까. 한 번쯤 해주겠어.”

나는 무릎을 잡고 일어섰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물이 정말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할 말이 있다.

영화에서 본 멋진 대사.

프로레슬링의 링 위가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서 이런 말을 해보겠는가?

“I Can Do This All Day.”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어.

슈퍼 히어로 무비의 슈퍼 히어로.

난 그게 아니지만.

그래도 해봤다.

“끄윽…….”

분노한 헌터가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는 스텝을 밟으며 동시에 녀석의 안면에 슈퍼 킥을 찔러 넣었다.

쫘악-!

쓰러지는 헌터.

그 위로 겹쳐 쓰러진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다시 시간을 벌었다.

아, 정정한다.

솔직히 하루 종일까지는 못한다.

그래도 내 아래에 깔린 이 개자식이 먼저 쓰러질 때까지는 해야겠지만.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계속되는 챈트 속에서.

먼저 일어선 것은 헌터였다.

슈퍼 킥의 충격이 강했는지 비틀거리며 로프에 기대어선 녀석이 이윽고 내게 다가와 머리채를 붙잡았다.

그를 따라 일어서자니 헌터는 그대로 내 안면에 펀치를 후려갈겼다.

퍼억-! 퍽! 퍽!!

연이은 펀치에 내가 다시 무릎을 꿇었고, 관객들은 야유를 보냈다.

[Boooooooooooooooooooo-!!]

그러거나 말거나.

헌터는 나를 어깨 위에 들쳐 메고는 그대로 로프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경기의 마지막 순간.

팬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헌터가 나를 로프 밖으로 던지려고 했다.

그 로프를 힘껏 붙잡은 나는 그대로 헌터와 힘을 겨루며 팬들이 좀 더 이 순간에 집중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헌터가 소리쳤다.

“Go.”

거기에 맞춰 로프를 붙잡고 있던 팔에 힘을 준 나는 몸을 반대편으로 회전시키며 헌터의 목을 붙잡았다.

그 상태에서 링 바깥으로 몸을 빼내면서 헌터를 그대로 집어던졌다.

[Uoooooooooooooooohhhhh?!]

모든 건 찰나의 순간이 이루어졌다.

내 헤드 시저스 휩에 휘말려 링 바깥으로 떨어지는 헌터. 그리고 로프를 붙잡고 마지막까지 버텨낸 나.

그리고 팬들의 환호.

[Yeeeeeeeeeeeeeaaaaaaaahhh!!]

땡땡땡-!!

내 승리를 알리는 요란한 링 벨 소리와 함께 준비되었던 내 테마 음악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거기에 팬들의 환성이 하모니가 되어서 섞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꼼짝도.

링 위의 유일한 생존자로 숨을 몰아쉬고 있던 나는 씨익 웃었다.

해냈다.

1번 우승자.

가장 존경하는 레슬러, 존 마이클스나 해냈던 일을 지금 내가 해냈다.

이 환호도.

이후의 반응도.

그리고 미래도.

눈물이 날 것 같군.

나는 울지 않지만.

“신, 괜찮나?”

그러자니 링 아래에서 다가온 심판이 가까이 다가와 내 상태를 물었다.

“아주 좋아…….”

“세리모니는?”

“해야지.”

완전히 지쳐서 대답한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미들 로프를 밟고 올라섰다.

눈에서 땀이 흐르는군.

“하아, 하아…….”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이게 끝이 아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링 위에서 최고임을 인정받자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2009 킹스 럼블은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되면서 마무리되었다.

* * *

신이 럼블 매치의 우승자가 되었다.

그 사실은 업계 전체를 강타했다.

럼블 매치의 우승자는 돌아오는 레슬 임페리움의 주인공이 되기 마련.

그렇기에 WWF가 PWA의 스타인 신을 밀어준 것은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었다.

파격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소식을 전해 듣거나 직접 본 각지의 관계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나 직접 럼블 매치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데이브 렐처와 같은 레슬링 전문지 기자들은 이렇게 평했다.

“정말로, 전혀 예상 못했군.”

[솔직하게 말하지. 나는 이번에 테이커가 우승하지 않을까 싶었어. 도박사들도 그쪽에 다들 많이 걸었지.]

“이번 럼블이 참 재미있단 말이야. 스포일러도 나오지 않았는데 우승도 가장 파격적인 선수가 해버렸지.”

그만큼 보안에 힘을 기울였다는 뜻이었다.

내부 정보를 아는 도박 중개소에서 인터넷이나 전화로 돈을 모아 마지막에 확률이 바뀌는 건 종종 있는 일.

그렇기에 이번 럼블에서도 경기 직전까지는 러셀 하트가 가장 우승에 가까울 거라고 점쳐지고 있었으나.

시작 후에는 테이커가 가장 위로 올라갔다. 말인즉슨 ‘테이커의 우승’이 내부 정보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렐처는 그런 정보를 알고 있었음에도 희미하게 이게 가짜 정보는 아닐까 의심을 하고 있었다.

왜냐면 각본의 흐름으로 봤을 때.

“하지만 이상하진 않아. 일단 지금 WWF에서 밀고 있는 건 젊은 선수들이잖아? 시나, 오튼, 러셀처럼 젊은 친구들. 신 역시도 WWF 시절에는 거기에 분명하게 포함되는 선수였고.”

[그리고 말하자면, 명백히 그 네 사람의 중심에 서있는 선수였지. 하지만 지금은 PWA 선수고. 이게 사소해 보이지만 무척 중요한 사실이야.]

“그래, 맞아.”

렐처도 동의를 했다.

사실 WWF가 PWA에 소속된 신을 밀어줄 이유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회사의 선수를 밀어줘봤자 PWA나 ACW처럼 남 좋은 일만 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충격적인 결과였다.

더군다나.

“왜 신을 밀어주는 거지?

[응?]

“아니, WWF에 있었을 때도 언제나 교묘하게 타이틀 샷과는 거리를 두는 부킹을 받던 신이었는데 말이야.”

[그 부분이 팬들을 자극했지. 신을 좀 더 응원하고 싶게 만들었고.]

“물론 신이 회사로부터 영 버림을 받았단 이야기는 안 하겠어. 사실 테이커의 연승을 끊은 건 이 업계에서 단 한 명만 받을 수 있는 푸시니까.”

[타이틀보다 가치가 있지.]

“하지만 결국 타이틀이 없었단 말이야. 신은 언제나 월드 타이틀과는 영 인연이 없는 커리어를 보내왔다고.”

그런데 왜?

회사를 나간 상황에서 메인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는 킹스 럼블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그에게 안겨준 걸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다.

여기서부터, 렐처는 딱히 라디오 방송에서 언급을 하지 않고 생각했다.

오랜 옛날의 인터뷰에서, 바트는 월드 타이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브랜드의 얼굴이요.’

그 순간, 그 타이틀을 걸고 있는 선수를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데이브 렐처는 그 늙은이가 어째서 신에게 메인타이틀을 주지 않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신의 존재가 애초부터 이 프로레슬링 업계에 반대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동양인에, 온갖 파격을 저지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그 악마를 바트 맥센은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겠지.

그걸 인정하면 전부 무너지니까.

자신이 쌓아온 이 업계가.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모두 그것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이 프로레슬링이라는 콘텐츠를 계속해서 지켜봐온 시청자라면 아마도.

그렇기에 아마.

‘굉장한 수를 생각해냈군. 바트.’

사람들은 분명 흥미를 가질 터였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파격이 지금 벌어지고 말았으니.

이제 남은 건 신에게 달렸다.

그는 앞으로 어떤 각본을 보여주고 어떤 식으로 누구에게 도전할 것인가.

하지만 렐처는 딱히 거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다름 아닌 신이니까.

오히려.

‘바트가 걱정이지.’

이전부터 몇 번이고 신과 함께 일을 해봤었던 렐처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신은 절대로 자신이 손해를 보는 장사를 하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 * *

물론, ACW 측에서도 신이 이번 킹스 럼블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곧바로 파악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치부하면서 그냥 넘겼다.

매주 월요일 치러지는 정기 임원 회의에서 분명히 신의 우승 사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부사장인 데릭 비숍과, 어느 순간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임원 회의에 참가하는 할리우드 로건은 그 의제를 듣고는 껄껄거리며 여유롭게 웃었다.

거기에 벙찐 임원들을 앞에 두고 로건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럴 가치가 있는 놈이지.”

“뭔가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겠나?”

“예?”

“그쪽에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2위 단체의 몸부림에 우리 같은 거대 회사가 뭔가를 하는 것도 이상하겠지.”

“음…….”

“시청률도 그쪽이 600만을 아슬아슬하게 마크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900만을 넘기고 있지. 그야말로 미국인 전체가 ‘나로 인해서’ 프로레슬링과 다시금 사랑에 빠지게 된 거야.”

“푸하하! 맞는 말이군요! 로건!”

옆에서 비숍이 거들었다.

아무리 로건이 한때 프로레슬링 그 자체와도 같은 존재였다고 하더라도.

선수 하나가 업계 전체의 파이를 이 정도로 크게 키워낸다니.

허황된 이야기였고, 검증조차 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권력을 양분하고 있는 로건과 비숍이 그렇게 말한다면 임원들이 토를 달 수 있는 건 없었다.

로건의 엉덩이를 아주 똥에 환장한 똥개 마냥 핥아대던 비숍이 이어 뭔가를 떠올린 듯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우리는 새 프로그램 런칭하는 거나 좀 잘해봅시다. 금요일 시청률도 우리가 먹어야지 않겠어?”

“아, 예. 그건.”

“‘금요일 밤의 썬더’도 나이트로만큼이나 키워보자고요. 이번에 WWF에서 데려온 선수들도 정착했으니까.”

그건 거짓말이었다.

WWF에서 ACW로 이적한 선수들의 대부분은 ‘이쪽이 더 낫다.’는 프로파간다의 희생양이 될 뿐이었다.

nWo 멤버들을 중심으로 WWF 출신들을 짓밟는 그 행동은 이후를 생각했을 때는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여기에는 로건의 입김이 작용했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이 더 돈을 받고, 더 강해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WWF 출신의 선수들을 희생시켰다.

그렇기에 사실 ACW는 화려한 겉과 달리 속이 썩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당장 썬더를 런칭한다고 하더라도 시청률을 끌어줄 슈퍼스타가 없었다.

nWo가 있지 않느냐고?

그들은 ACW가 WWF를 역전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맡은 이후로 이미 계약서를 새로 작성해둔 상태였다.

거기에는 물론 출연 일자 같은 근로와 연관된 부분도 있기 마련이었고.

결과만 말하자면 현재 ACW의 시청률을 책임지는 선수들은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나머지 썬더에 출연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인 와중에 랙다운에 대항하는 위클리 쇼인 썬더를 런칭하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딱히 그것을 지적하지는 않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차피 회사 돈인데.’

‘책임은 윗선에서 지겠지.’

‘잘리면 갈 데 많아.’

다들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있는 회사인 WWF에서는 회사를 되살리기 위한 바트 맥센의 선택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 * *

킹스 럼블이 끝난 뒤의 버닝콩.

그 오프닝이 나간 뒤, 카메라가 경기장을 비추면서 링 위에는 현재 두 명의 선수가 서있는 상태였다.

한 명은 WWF 유니버스 챔피언.

숀 시나.

다른 한 명은 WWF 월드 챔피언.

랜스 오튼.

두 명의 메인 챔피언.

ACW의 출범 이후로 각 브랜드 간의 분리가 거의 사라진 여파도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두 메인 챔피언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유가 있었다.

어제의 럼블 매치.

그 우승자가 이제 곧 링 위로 나와서 두 챔피언과 대면하게 될 것이다.

물론.

WWF 측에서는 그보다 더 감정적이고 강한 대립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이 그 이름을 목 높여 불렀고.

이어서 그 음악이 시작되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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