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55화 (355/634)

355.

메인이벤트가 끝난 뒤.

나는 곧장 의무실로 실려 갔다.

입술이 찢어지고 뺨이 부어올랐다.

거기다 손목도 수갑 때문에 살이 붉게 달아오르다 못해 피부가 찢어졌고.

마지막으로 온몸에 멍까지.

“으윽……!”

그런 상태에서 입술에 소독약이 툭, 하고 닿자 자동으로 신음이 나왔다.

“참아요. 참아.”

하지만 닥터는 냉정했다.

“진짜 싸워도 이렇게 안 되겠는데.”

“……일방적으로 맞았으니까요.”

“그래요. 이제 조용히.”

제기랄.

좀 떠들어서 입술에 소독약이 발리는 이 통증을 좀 견디려고 했는데.

“끄흡……!”

“참으라니까.”

툭툭.

거기에 연고까지 바르고.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자니 그런 나를 지켜보던 헌터가 껄껄 웃어 보였다.

그리고 날 인정하듯 바라보았다.

“오늘, 멋졌다.”

“애드리브가 통했네요.”

“그러게 말이다. 좀 놀랐지만.”

“링 위에서 감정적으로 몰입하면 그렇게 더 나은 장면이 나오는 거죠.”

“문제는…….”

헌터가 슬쩍 먼 곳을 돌아보았다.

“바트가 화났다는 거지만.”

“아,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결과를 먼저 말하면 우리는 방송 시간을 넘겨서까지 세그먼트를 진행했다.

헌터가 링 위로 다시 올라와 내게 페디그리를 사용하는 시점에서 방송이 끝났고, 이후 내 목을 조르며 욕설을 내뱉는 부분은 편집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실제 상황 같잖습니까.”

“그렇지.”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혹시 이거 진짜 상황인가?’라고 생각할 터였다.

그게 프로레슬링의 묘미였다.

킹스 럼블에 우승한 뒤의 세그먼트에서 오튼과 시나, 그리고 내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을 때.

그 미소는 진짜였다.

놈들과 내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로서 공유하고 있는 선수로서의 감정이 진짜로 링에서 드러난 거다.

팬들도 알아차리고 좋아했겠지.

그런 식으로 가짜 사이에 섞인 진짜를 찾는 것 또한 프로레슬링의 묘미였고 몰입을 도와주는 장치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애드리브였을 뿐.

헌터와 내가 마지막에 추가적인 액션을 취한 건 100% 각본이었지만.

그런 연출이 가미된다는 점에서 이미 우리는 성공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가는 참혹했지만.

상처 자체는 버틸 만했다.

하지만 헌터가 아까 내 얼굴에 뱉어 손바닥으로 비빈 침 냄새가 하여간에.

“헌터.”

“응?”

“칫솔 하나 선물해드릴까요? 큰 동물들 쓰는 게 요새 잘 나오던데.”

“……원래 감정적으로 몰입하면 그렇게 되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가래 완전 제대로 충전하시던데.”

크어억! 하고 말이다.

그렇게 계속 핀잔을 주자 눈치 빠른 헌터는 그대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냐?”

“아뇨, 별건 아니고.”

나는 아까 전에 얻어맞은 콧잔등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다음 주, 잘 부탁한다고요.”

거기에 헌터는 쓰게 웃었다.

* * *

바트 맥센은 일주일에 세 번 각본을 확인하는 스케줄을 오래 유지해왔다.

각 브랜드마다 세 번으로 따졌으므로 총 여섯 번을 확인하는 셈이었다.

일단 버닝콩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월요일 쇼가 끝나고.

화요일 아침에 한 번.

오전 시간대에 피드백을 넘기고.

목요일 날 수정해서 올라온 피드백을 확인하고 다시 보낸다.

마지막으로 토요일에 최종 체크.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각본이 ‘무난하게 흘러갔을 때’를 상정한 것이었다.

보통은 일주일에 최소 5회, 최대 13회까지 수정을 요구하는 게 그였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렇게 해서 나온 각본의 퀄리티가 순전히 노인네인 바트의 입맛대로라는 절망적인 부분과.

그로 인해 철야를 하는 각본가들의 야근비는 정산이 안 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신과 헌터가 각본진과 회의 끝에 짜온 각본을 받아본 바트는 당혹스러운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신 VS 트리플H.

그 3주차의 각본.

4주차에는 경기 계약식을 열기로 이미 정해두었으므로 당연히 3주차의 세그먼트가 마지막이 될 터였다.

그리고 그 세그먼트는 미리 촬영할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부터 시작해서 링 세그먼트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는데.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는 미리 영상을 촬영해두어야 했으므로 그 규모에 따라 빠르게 허가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건.

“헌터.”

바트 맥센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촬영할 수는 있겠냐?”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

“예, 괜찮습니다.”

“스턴트맨은 어쩌려고. 지금 스케줄 바로 되는 놈 찾기가 어려울 텐데.”

“신이 직접 할 겁니다.”

“……허가 못 내줘.”

“바트.”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레슬 임페리움 티켓 판매는 어떻게 하고?”

“저희를 믿어주십시오.”

“너 요새 사람이 변한 것 같구나.”

바트는 그렇게 말을 돌렸다.

“네가 누군가를 밀어주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열심히 대립을 할 줄이야.”

“요새 무릎이 시큰거리거든요.”

“뭐……?”

“저도 이제 늙었다는 말입니다.”

신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비슷한 부류에게 느끼는 혐오감 때문일까. 인정까지는 했지만 그 이상으로 특별한 감정을 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시 녀석밖에는 없었다.

서로를 정말로 증오해서 싸우며 최고의 경기.

그것을 보여줄 만한 신세대는.

그런 일련의 이야기를 다 들은 바트 맥센은 흥미로운 듯 입을 열었다.

“왜 그 녀석밖에 없는 거지? 시나나 러셀, 오튼도 있지 않나?”

“일단 오튼은 이런 대립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본인 성격도 그렇고, 요즘 캐릭터도 좀 밝은 쪽이라서.”

질척한 이야기에는 섞일 수 없었다.

오히려 오튼은 어딘가 만화적인 기믹을 하고 있는 시나와 잘 어울렸다.

선에 맞서는 악당이거나.

아니면 지금처럼 유쾌한 악동 캐릭터를 맡아서 밝은 대립을 이어가거나.

그런 의미에서 시나도 탈락.

러셀도 생각났지만 결국 헌터가 신을 고를 수밖에 없던 이유가 존재했다.

“녀석이 먼저 제안했거든요.”

“이런 각본을?”

“예, 그래서 잘 이해하고 있죠.”

트리플H라는 남자의 커리어를.

이해해주고 있었다.

그가 뭘 남기고 싶어 하는가를.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가장 많이 배운 닉 플레어나 가까이에서 지내온 선수들도 자신과 대립을 한다면 이렇게 가지는 않을 텐데.

오히려 싫어하는 쪽이라고 할 수 있는 신이 헌터의 속마음을 그 누구보다 깊게 이해하고 있다니 말이다.

“조금 전에 말씀하셨죠. 보스. 제가 남을 띄워주다니 좀 변한 것 같다고.”

“그랬지. 그리고 넌 노인인 내 앞에서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말했고.”

“거기에 이유 하나가 더 있습니다.”

“……뭐냐?”

이 대립 자체가 재밌기 때문이었다.

헌터는 이기지 못하더라도 이 대립을 통해서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보여주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느꼈다.

그는 이렇게 기억되기를 원했다.

신은 악마 같은 놈이었다.

이렇게 매혹적인 제안을 해오다니.

“그러니 허락해주시죠.”

“세그먼트 말이냐.”

“거기에 경기도.”

“……빌어먹을.”

바트는 욕지기를 내뱉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분명히 이 대립이 더해져 레슬 임페리움은 멋진 판매량을 올릴 테지만.

왠지 모르게.

신에게 이용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 대립의 끝이 보고 싶다고 생각한 시점에서 끝이었다.

바트 맥센은 호기심이 있으면 반드시 해결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사인을 했다.

리무진.

그리고 픽업트럭.

소품용으로 WWF에서 보관하고 있는 장비들에 대한 대여 요청서에.

* * *

촬영은 목요일에 이루어졌다.

다음 주 월요일 버닝콩이 개최될 도시인 플로리다 경기장에서 말이다.

화요일, 수요일을 내내 집에서 끙끙 앓으며 몸을 회복한 나는 촬영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만족감을 느꼈다.

‘여기라면 딱 좋군.’

촬영 장소는 관계자용 실내 주차장이었는데, 운이 따라주는 부분이었다.

일단 가장 큰 게, 여기는 선수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기웃거리는 코어 팬들이 들어오지도 않을 테고.

방음도 잘 돼서 확실하게 팬들을 놀라게 할 세그먼트를 만들 수 있을 터.

그런 상황에서 미소를 지은 나는 촬영을 함께할 팀원들을 만나보았다.

일단 영상팀장부터.

“아, 신. 왔군.”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 이제부터 네가 하게 될 게 고생이고. 우리 쪽에서도 최대한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도록 할 테니까.”

“예, 잘 부탁드립니다.”

“원 테이크에 끝내자고. 안 그러면 애꿎은 차만 두 대 써야 하니까.”

“…….”

내 몸은 한 개인데.

게다가 픽업트럭보다 비싸고.

순간 그런 생각을 했던 나였지만, 이내 속속 모여드는 팀원들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말의 의도를 깨달았다.

이 자리에 모여 있는 팀원들은 애초부터 날 다치게 할 마음이 없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응급팀과 시설팀에서 트럭에다 추가 장비를 설치해서 최대한 충격을 줄이려 했고.

나 자신도 보호 장비를 차서 ‘카 크러시’의 충격에 대비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준비가 끝났고.

보안 요원들이 흩어져서 혹시 모를 사람의 침입을 경계하고 있는 사이 나와 헌터는 마지막으로 각본 팀장과 함께 자리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각본의 내용은 간단했다.

“리무진이 주차장 밖에서 들어올 거야. 그리고 헌터가 내린 다음에…….”

“제가 차를 타고 들어오는 거죠?”

“그래, 위치는 어딘지 알지?”

“예, 리무진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위치에 차를 멈춰둔 다음에 내려서 노려보다가 헌터를 쫓아가는 거죠.”

그리고 붙잡아서 두들겨 패고.

“리무진이 최대한 잘 나오게 찍을 거니까 그 점을 생각해서 움직여줘. 트렁크에 그거 있으니까 참고하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헌터를 두들겨 패고 난 다음에 트럭으로 돌진해서 박아버리는 거야. 여기서는 물론 장비를 착용해야 하니까 한 테이크 끊어서 갈 거고.”

지시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각본팀장과 촬영팀장이 모여 카메라 워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나는 헌터와 대화를 나누었다.

“헌터.”

“……또 일하기 전에 서로 잘해보자고 인사라도 나누고 싶은 거냐?”

헌터가 눈썹을 찡그린 채 날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피식 웃었다.

“아니면 서로에 대한 증오를 한번 불태울 만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아뇨, 오늘 정장 멋지다고요.”

“……빌어먹을 자식이.”

헌터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신뢰의 표시 같아서 마음이 편해진 나는 집중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스태프들이 차를 바깥으로 빼두는 동선 그대로 들어오면 그만이었다.

‘좋아.’

그리고 헌터와 내가 각각의 차에 탑승하면서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일종의 대비였다.

리무진을 탄 헌터는 악역.

트럭을 탄 나는 선역.

정말로 부자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시청자들이 트럭을 탔기에 정해지는 자연스러운 역할 구분.

그렇기에 부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리무진을 트럭으로 들이받는 스팟은 분명히 호응을 얻을 터였다.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끼기긱-!

일부러 요란한 사운드를 내며 리무진이 주차장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신호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후, 대충 조수석에 놔둔 조수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SIN, Go.]

그 지시에 따라 나는 주차 브레이크를 풀고 힘차게 액셀을 밟았다.

끼기긱-!

묵직한 픽업트럭을 몰고 아래로 내려간 나는 수많은 카메라, 스태프들과 함께 차에서 내린 헌터를 발견했다.

그에게 보란 듯이 차를 크게 돌리면서 그대로 리무진의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차 브레이크를 세운 뒤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차에서 내렸다.

헌터는 시끄러운 픽업트럭의 모습을 보고는 한마디를 해주려는 듯 허리에 손을 올리고 서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안면에 밴드를 붙인 내가 차에서 내리자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그대로 도망치는 헌터.

전속력으로 달려간 나는 그대로 건물 안으로 도망치려는 녀석을 붙잡아 다시금 리무진 앞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호쾌하게 두들겨 팼다.

“크억?!”

퍼억-!!

안면을 흠씬 두들겨 패고.

리무진의 앞뒤를 오가면서 비싼 차량에 헌터를 집어던지고 메치면서 나는 전 주에 대한 복수를 해나갔다.

헌터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내게 당했고, 리무진에 이내 몸을 기대며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숨을 몰아쉰 나는 입고 있던 가죽 재킷을 벗어던지며 곧바로 리무진의 뒤쪽으로 가 트렁크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걸 꺼냈다.

슬레지 해머.

이걸로 헌터의 자동차 트렁크에서 슬레지 해머를 가져왔다는 예전의 복선은 회수한 셈이었다.

씨익 웃으며 잡고는 그대로 스윙.

콰앙-!!

하얀 리무진이 그대로 구겨졌다.

나는 길쭉한 차량을 옆으로 돌며 창문을 향해 다시금 해머를 휘둘렀다.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튀는 파편.

하지만 ‘파괴용’으로 특수 제작된 리무진이었기에 위험성은 무척 적었다.

“헌터! 내가 날 죽이라고 말했지?!”

흥분해 소리친 나는 리무진을 완전히 개박살 내면서 헌터를 위협했다.

힘이 넘치는 걸 느꼈다.

지금 이 순간이, 남자로서 자신의 폭력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 포인트가 잔혹함이라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윽고 바닥에 쓰러진 헌터가 비틀거리며 일어서 다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앞으로 다가간 나는 헌터의 배에 그대로 슬레지 해머를 찔렀다.

뻐억-!

“어어어억……!!”

배를 부여잡고 쓰러지는 헌터.

“후우, 후우.”

거칠게 숨을 몰아쉰 나는 그대로 헌터의 머리를 붙잡고 뒷좌석에 넣었다.

그 상태에서 슬레지 해머를 들고 다시 차로 돌아가, 분노와 쾌감으로 미친 연기를 하며 라이트를 켰다.

차가 움직인다.

그걸 보여주기 위한 액션.

정면에는 리무진.

끼기기기긱-!!

검은색 픽업트럭이 마치 싸움소처럼 미친 듯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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