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57화 (357/634)

357.

레슬 임페리움.

WWF에서 제공하는 그 스포츠 이벤트가 갖는 파급력은 전 세계를 통틀어도 손가락 안에 꼽아질 정도였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레슬 임페리움과 비슷한 크기의 쇼를 만들어낸 ACW가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그만한 쇼를 개최해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PWA의 컨설팅을 받고, 온갖 고생에 방송사고까지 많이 나왔지만.

그래도 이제는 안정화가 되어 단독으로도 괜찮은 쇼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가 기점이었다.

올해의 스타게이트를 통해서 ACW는 위클리 쇼 시청률을 비롯한 각종 지표에서 그랬듯, 레슬 임페리움을 완전히 재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페이퍼뷰 판매량은 거의 동률.

오히려 미묘하게 레슬 임페리움이 앞섰다.

티켓 판매량도 앞섰고 암표 값까지도 WWF가 조금 더 앞선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렇게 두 이벤트가 개최되었다.

초대형 이벤트의 정면 격돌.

미국의 스포츠 역사에 남을 법한 순간 속에 유타 주의 한 대가족이 모여서 두 개의 쇼를 동시에 즐겼다.

스미스 가족.

사실 이게 보편적인 방식이었다.

가족들이 한 집에 모여서 두 페이퍼뷰를 동시에 결제한 뒤, 텔레비전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시청하는 것.

가족적인 문화를 중시하는 미국 시골은 이런 식으로 스포츠 이벤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다.

할아버지인 ‘파파 스미스’의 대저택 응접실에 모인 그들은 제각각 맥주나 콜라를 들고 화려한 쇼를 시청했다.

이들을 시청자층으로 구분하자면 크게 네 종류로 나눌 수가 있었는데.

일단 노인층.

이들은 주로 아는 선수들이 많은 ACW의 스타게이트 쪽에 눈을 주었다.

[아! 부커! 비겁한 수단으로 내시를 공격하지만 가볍게 제압을 당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장년층.

그들 역시도 시청 등급이 전체이용가인 레슬 임페리움보다는 자극적이고 섹시한 여자들이 많이 나오는 스타게이트에 좀 더 눈길을 주었다.

여성층.

이들은 젊고 잘생긴 선수들이 나오는 레슬 임페리움을 주로 선호했다.

레슬링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잘생기고 젊은 이성에게 눈길이 가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현상이었으니까.

어린이층.

이들은 영웅인 숀 시나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며 자신들이 계속해서 봐오던 레슬 임페리움을 주로 시청했다.

그렇게 쇼의 오프닝부터 해서.

두 초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각 선수들의 분투에 따라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계속 이어졌다.

스타게이트의 메인이벤트는 할리우드 호건과 랭 새비지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싱글 매치.

레슬 임페리움의 메인이벤트는 숀 시나 vs 러셀 하트 vs 빅 죠의 트리플 스렛 월드 챔피언십 매치.

그 두 경기가 향방을 가르기에 앞서서 세미 메인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케빈 대시와 스카티 홀이 팬들의 환호 속에 거만하게 링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반대에서.

업계 내부의 사정으로 메인이벤트에서 세미 메인이벤트로 강등된 경기가 하나 시작되었다.

강등된 이유는 간단했다.

내용이 너무 잔혹하다.

이런 걸 현재 전체이용가를 표방하고 있는 WWF에서 내보낼 수 없다.

그런 바트 맥센의 선택.

하지만 거기에서 또한 더 복잡하게.

바트 맥센은 사실 이 경기라면 팬들의 시선을 반드시 스타게이트에서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세미 메인이벤트로 편성시킨 것이다.

1년에 두어 번쯤 돌아오는 사업가로서의 괴물 같은 감각이 다시 한 번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이 맞았다.

팬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천천히 하나의 음악이 시작되었고.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스미스 대가족의 시선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WWF로 돌아갔다.

트리플H와의 감정적인 대립은 업계 내외적으로 큰 화제가 된 상태였고.

20만 명이 운집한 초대형 스타디움에 설치된 압도적인 규모의 세트장.

신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수천만 명의 실시간 시청자들이 그 모습에 빠져들었다.

검은 머리를 가진 한 남자에게.

* * *

링에 나서기 직전.

[Yeeeeeeeeeeeeeeaaaaaahhhh!!]

20만 명이나 되는 관객들의 환호성이 순간 내 심장을 힘껏 후려쳤다.

두근, 두근.

두근두근두근.

점점 크게 뛰기 시작한다.

이제 눈앞의 얇은 커튼 하나를 걷고 나가면 다른 세계가 펼쳐질 터였다.

현실이 아닌 프로레슬링의 세계.

그곳을 찾아와준 관객들.

함께 호흡하고 있는 동료들.

‘좋아.’

나는 심호흡을 했다.

이제 SIN이 될 때였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일반적인 상황과는 달리 더 깊고 넓게 울리는 듯한 내 테마곡의 인트로.

실제로 레슬 임페리움이 열리는 경기장은 메가급 규모였기에 여러 대의 스피커를 써서 그런 식으로 들렸다.

나는 커튼을 걷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어 눈앞에 보이는 짧은 계타고 천천히 올라가자,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로 많은 사람과 거대한 경기장이 그 멋진 위용을 드러냈다.

빠밤-빠밤-빠밤-!

빠밤-빠밤-빠밤-!

[Waaaaaaaaaaaaaaaggggghhhh!!]

레슬 임페리움.

프로레슬링 역사를 통틀어 가장 거대한 장소.

그 큰 경기에 나오는 선수들은 특별한 연출을 하기도 했다.

일명 Special Entrance.

나 역시도 많이 했는데.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평소에 사용하던 파이로와 연기의 분사도 빼고 아주 담백하게 나타났다.

대비를 위해서였다.

내 뒤를 따라 등장할 트리플H는 언제나 ‘왕’다운 위용 있고 성대한 연출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 반대에 서있는 내가 아무런 연출 없이 등장하는 모습이 시사하는 바는, 간단했지만 강한 파괴력을 가졌다.

대립자는 왕.

나는 평민.

하지만 이기는 건 나다.

나는 팬들의 성대한 환호 속에 아무런 연출도 없이 링을 향해 걸어갔다.

이후 로프를 밟고 올라가서는 팬들을 향해서 힘차게 팔을 치켜들었다.

[Waaaaaaaaaaaaaaaagggghhh!!]

모두가 손꼽아 기다린 경기.

그 첫 선수의 입장이 끝났다.

재킷을 벗은 나는 근육으로 덮인 몸을 드러내며 입장로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묘한 연출이 시작되었다.

조명이 꺼졌다.

[Uooooooooooooooohhhhh……!]

팬들이 멋진 연출을 기대하며 탄성을 내질렀고,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오늘 가장 공을 들인 트리플H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입장로 뒤로 설치된 초대형 스크린에 거대한 산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혹독한 추위와 배척의 땅.

그곳을 지배하는 왕.

트리플H가 모습을 드러내려고 했다.

두둥-두둥-두둥-두둥-두둥-두둥-!

특별한 인트로 음악까지 더해서.

조명을 받치기 위해 세워둔 철골 구조물과 입장로 좌우에 설치된 조명 장치에서 불꽃 이펙트가 넘실거렸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 나온 건.

방패였다.

정확히는, 방패를 든 야만전사들.

몸을 전부 가릴 정도로 거대한 카이트 실드를 든 그들의 수는 정확히 열셋.

그들이 입장로 앞에 대형을 갖췄다.

[Uooooooooooooooohhhhhh-!]

비명을 지르는 팬들.

전쟁 군가 같은 음악과 함께 장정들이 무언가를 보호하듯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은 정말로 위용이 넘쳤다.

이어서 조명이 한곳을 비췄다.

방패의 뒤쪽.

그와 함께 전사들이 서서히 앞으로 움직이며 간격을 벌렸고, 붉은색의 망토를 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망토 위에 특유의 스컬 크라운(Skull Crown)을 쓴, 앞선 전사들과 비교했을 때 두 배는 더 덩치가 거대한 남자.

야만전사들의 왕.

왕 중의 왕.

트리플H.

경기장이 다시 어둠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녹색의 조명이 순간 켜지며 트리플H의 테마곡이 경기장을 뒤덮었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Time To Play The Game……!]

어둠을 틈타 망토와 스컬 크라운을 벗은 그는 검정색 삼각 브리프 형태의 링 기어만을 걸치고 있는 상태였다.

잠시 숨을 몰아쉬던 그가 긴 머리를 미친 듯이 흩날리며 앞으로 나왔다.

손에는 물병을 하나 든 상태.

헌터는 입에 그 물을 머금고 뿜어내며 미친 듯이 포효했고, 그 카리스마 앞에서 선과 악은 의미가 없었다.

[Waaaaaaaaaaaaaaaggggghhhh!!]

팬들이 미친 듯이 환호를 보냈다.

링 위에 서있던 나는 숨을 삼켰다.

‘좋아, 좋아.’

의지가 들끓었다.

The Game.

이 링 위에서, 프로레슬링 역사를 통틀어 그 누구보다도 잔혹했던 폭군.

그가 링을 향해서 다가왔다.

서로를 증오하는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고, 헌터는 이내 시선을 돌리며 자신의 입장 씬을 마무리 지었다.

음악에 맞춰 링 사이드로 올라온 그는 로프를 넘지 않고 그 앞에 등을 기대고 서서 관객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하늘을 향해 뿜어내며 자신을 과시했다.

근육질의 몸에 비추는 밝은 조명.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그림자의 대비가 이곳에서 이 남자를 완성시켰다.

트리플H.

로프를 넘어 링으로 들어온 그와 나는 각자 코너에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팬들의 챈트가 시작되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목소리의 크기는 명백하게 내 쪽이 위였지만.

악역으로서 계속 야유를 쌓아왔던 헌터가 이런 식으로 단숨에 반응을 뒤집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침착했다.

미리 계획을 해온 대로.

그렇게만 하면 된다.

나는 나 자신을 믿었다.

그리고 헌터와 지금 경기에 도움을 준, 그리고 주고 있는 모두를 믿었다.

땡땡땡-!

링 벨과 함께 시작된 경기.

일단 트리플H와 나는 서로 거리를 벌린 채 링을 돌며 탐색전에 들어갔다.

상대방에게 달려들어 주먹 난타전으로 시작할 수 있는 감정인데도 굳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는 상대가 강하단 걸 알았다.

따라서 냉정하게 상대방을 제압해, 마음껏 해할 수 있는 상황을 원했다.

그렇기에 경기 초반은 얼핏 보기에 이 둘이 정말로 서로를 증오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느긋하게 이루어졌다.

더군다나 헌터의 경기 스타일은 올드 스쿨. 그러니 이런 식으로 시작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탐색전을 마친 헌터와 나는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어 붙기 시작했다.

락 업.

[Waaaaaaaaaaaaaaggggghhhh!!]

서로 힘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전통적인 스타트. 나는 헌터에 맞서 지지 않고 힘을 주며 그대로 밀어냈다.

“끄윽……!”

헌터도 버텨보려고 했지만.

젊음이 앞섰다.

헌터를 코너까지 밀어붙인 나는 그대로 목에 감긴 팔을 힘차게 쳐냈다.

가슴이 열렸다.

쫘악-!

당연하다는 듯 이어지는 찹.

[Wooooooooo-!!]

팬들이 신이 나 소리쳤고, 헌터는 고통스러운 듯 옆으로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녀석의 머리채를 붙잡고 이번에는 해머링을 날렸다.

퍼억!

크게 흔들리는 헌터의 몸.

초장부터 기세를 잡은 나는 그대로 몇 번이고 해머링을 날리며 헌터에게 그간 참아두었던 분노를 풀어냈다.

“크헉?!”

버티지 못하고 점점 무너지는 헌터.

하지만 다음 순간.

“윽……?!”

헌터는 내 눈을 힘껏 긁어냈다.

순간 통증에 물러서자 앞으로 나선 헌터가 그대로 내게 해머링을 날렸다.

[Boooooooooooooooooooo-!]

그대로 넘어간 주도권.

평범한 경기였다면 즉시 반칙패였지만 이 경기에는 그런 룰이 없었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이걸로 실명을 당한다거나 시력에 손상을 입더라도 트리플H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경기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세게 긁었잖아!’

나는 눈물이 찔끔 나는 것을 느끼며 헌터의 공격에 계속해서 당해주었다.

코너까지 날 몰아붙인 헌터는 그대로 팔을 잡고 반대편으로 쭉 당겼다.

거기에 말려들어 내던져진 나는 반대편 로프에 몸을 걸치고 되돌아왔다.

그러자니 재빠르게 링 중앙으로 나와 있던 헌터가 내 한쪽 팔을 자신의 팔에 엮고는 그대로 옆으로 돌았다.

암 드래그.

콰앙-!

낙법을 치며 떨어진 나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느끼며 일어섰다.

그러자니 다시 암 드래그가.

콰앙-!

반대편으로 나가떨어진 나는 그대로 계속해서 트리플H의 공격에 당했다.

날카롭게 메치는 보디 슬램.

콰앙-!

그 뒤를 이어 트리플H는 내 다리를 붙잡고 누워서 서브미션을 걸었다.

인디언 데스 록.

상대방과 수직으로 누워서는 그 양쪽 다리를 자신의 다리에 엮은 뒤.

“크아아아악-!!”

반대쪽 다리로 밀어내며 무릎에 충격을 주는 지긋지긋한 서브미션.

상대방의 기동력부터 먼저 봉인하겠다는 트리플H 특유의 경기 방식.

보기에는 지루하지만 선역을 괴롭히는 탑 독 악역으로서는 훌륭했다.

하지만 아직은 경기의 초반.

암 드래그로 인해 순간적으로 정신이 빠져서 서브미션에 걸린 나였지만.

빠져나오는 방법은 잘 알고 있었다.

눈을 찌르는 거다.

아주 세게.

“크하악?!”

몸을 튕겨 더 큰 충격을 주기 위해 허리를 든 상태였던 헌터는 충격에 빠져 기술을 풀며 그대로 나뒹굴었다.

“끄흐으으으윽……!”

“후우.”

[Waaaaaaaaaaaaaaagggghhhhh!!]

팬들의 반응도 아주 좋았다.

말했듯 나는 반칙을 쓰는 악역에 맞서서 지지 않고 돌려주는 선수였다.

아니, 거기에 더한 짓도 했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 링 아래로 내려간 나는 미리 준비되어 있던 각종 ‘도구’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일단은, 사다리부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