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사용되는 사다리는 여러 가지 사이즈가 존재하는데.
그 가장 기본이 되는 사이즈는 대략 3.5미터 정도로 그 꼭대기는 링의 탑 턴버클 위보다 훨씬 더 높았다.
그러니 내가 사다리를 꺼내자 팬들은 자연스럽게 한 가지 기대를 했다.
저 위에서 낙하하며 트리플H를 공격하는 내 모습이 보고 싶다고.
아찔한 스턴트.
그 또한 프로레슬링의 묘미.
나는 무게가 꽤 나가는 사다리를 링 위로 올리고 그대로 따라서 올라갔다.
눈을 찔린 것을 회복하고 있던 헌터가 비틀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날아드는 주먹.
“……!”
가볍게 상반신을 낮춰 피해낸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도는 헌터의 등 뒤에 바싹 다가섰다.
허리를 어깨에 걸치고.
팔로 다리를 잡은 상태에서 든다!
[Uoooooooooooooohhhhhh……!]
놀라는 팬들.
110kg이 넘는 헤비급 사이즈의 몸을 번쩍 들어 올린 나는 곧장 뒤로 드러누우며 헌터를 등부터 떨어뜨렸다.
정석적인 백 드롭.
쩌억-!!
헌터는 사다리 위로 떨어졌다.
“끄허어억……!!”
비명을 지르며 나뒹구는 그.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접힌 사다리를 번쩍 들어 코너에 세웠다.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헌터를 일으켜 세워 그곳으로 힘껏 던져 넣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달려간 헌터는 코너에 세워둔 사다리에 부딪혔다.
쩌억!!
타격감이 찰지군.
경기용으로 만들어진 사다리는 나무 재질 위에 금속을 덧댄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강하게 부딪히면 그 나무와 금속의 틈이 조여들면서 멋진 소리가 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헌터는 죽을 맛이겠지만.
아무리 소품용으로 만들어도, 아픈 건 변함없이 그대로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봐주지 않았다.
물러서는 헌터를 다시 뒤에서 들어 올린 나는 한 번 더 기술을 사용했다.
콰앙-!
호쾌한 백 드롭.
그러자 헌터가 부딪힌 충격으로 흔들거리던 사다리가 앞으로 떨어졌다.
뻐억-!
“그헉?!”
헌터가 거기에 깔렸다.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이 기막힌 우연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행동을 취한 것이다.
헌터가 부딪혀서 사다리가 흔들거리는 사이 빠르게 들어 백드롭을 날리고.
거기에 일부러 헌터가 쓰러진 사다리에 맞도록 코너에서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위치에 떨어뜨렸다.
‘모두 계산된 결과지.’
그러므로 나는 사다리가 기우는 시점에서 보지도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 내가 생각한 대로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탑 턴 버클 위로.
헌터로부터 돌아선 상태.
20만 명의 팬들이 날 보고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후우, 후우…….”
나는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턴 버클 위에 서서 잠시 동안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뛰었다.
옆으로 돌아.
앞으로 회전하며.
영상으로도 보고.
수많은 주변인들의 조언과 몸이 느끼는 감각을 기억해내며 나는 그대로 헌터를 향해 힘껏 떨어져 내렸다.
피닉스 스플래시.
투콰앙-!!
몸을 달리는 격통.
사다리를 사이에 둔 채 헌터와 정면으로 충돌한 내 몸이 튕겨져 올랐다.
“끄흑-?!”
그대로 링 반대편으로 나가떨어진 나는 배를 움켜쥔 채 바닥을 굴렀다.
내장이 박살 난 듯한 통증이었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내장 파열을 겪은 적이 있는 만큼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래도 역시.
“끄으윽……!”
이 아픔은 이기기 힘들었지만.
일단,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동시에 일어섰다.
머릿속을 짜릿하게 태우고, 남은 수명을 줄이는 듯한 통증을 견뎌내며.
나는 헌터를 향해 다가갔다.
내가 어찌나 세게 떨어졌는지 사다리는 먼 곳으로 이동해있는 상태였다.
헌터는 나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옆으로 물러나 로프를 붙잡고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힘이 빠져서 로프를 놓치고 만 그가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치려고 들었다.
추한 모습이었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정의가 실현되고 있었다.
그렇게밖에 볼 수 없었다.
팬들도 그렇기에 환호를 보냈다.
그동안 ‘권력’으로 보호받는 헌터를 링 위로 불러낸 내가 박살 내고 있다.
그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두 가지 감정을 느꼈다.
하나는 감사였다.
링에서 이 정도로 내게 철저하게 당해준 레슬러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정확히 말해서, 당해주는 연기를.
헌터의 추레한 모습은 반대로 나를 크게 띄워주는 만큼 거기에 대해서 다른 감정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편한 감정 역시 함께했다.
링 위에서 야수와 싸우고 있는 입장에서,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거였나.’
나는 헌터가 한 말을 기억해냈다.
내게 가르침을 주겠다고 했지.
그게 이런 의미였나?
맞았다.
내가 천천히 그 앞에 다가서자 헌터는 도주를 포기하고 내게 매달렸다.
“허억, 허억…….”
숨을 몰아쉬며.
반쯤 맛이 간 얼굴로 내 바지를 붙잡고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어서 해라.”
“…….”
“빨리. 큰 걸 먹여. 네 스타일대로 팬들을 더 즐겁게 해주란 말이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
헌터는 순간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고 일어선 녀석은 내 목을 양손으로 움켜쥐고는 이빨이 빠진 사자처럼 악을 써대기 시작했다.
[Waaaaaaaaaaaaaaggggghhhhh!!]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환호에 묻힌 대화.
그건 다음과 같았다.
“네 시대다. 애송이.”
“…….”
“받아라. 그리고 갈고 닦아. 넘겨라. 그게 너 같은 개자식이란 게 안타깝지만. 그렇기에 너밖에 없는 것이다!”
개자식이기에.
헌터는 그렇게 말했다.
이기적으로 굴어라.
스타가 되는 건 하나 뿐이다.
시나도.
너도.
그리고 나도.
결국에는 시대의 아이콘이 되고 싶어서 수많은 선수들을 희생시켜왔다.
그 과정에서 욕도 많이 먹었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난 후회하지 않는다.”
헌터는 그렇게 말했다.
철저하게 때려눕혔다.
상대가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자신의 영혼을 담아서, 이 트리플H라는 사내의 위상이 절대적인 것으로 남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왔다.
“너는 너무 물러. 신.”
헌터는 그렇게 말했다.
내 경기 스타일은 언제나 그랬다고.
그 어떤 선수와 맞붙어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함께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태양은 함께 빛나지 않는다.”
“그걸, 가르쳐주려고?”
“그래.”
“미안하지만, 학부가 다르군.”
나는 씨익 웃었다.
헌터가 비틀거리며 물러났고.
나는 녀석에게 이야기를 해나갔다.
“프로레슬러는 약해지지 않아.”
그게 이 드라마의 멋진 점이었다.
그렇게 포장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만 했기 때문에 이 회사가 점점 새로운 스타를 키워내지 못하고 몰락해간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트리플H를 설득했고 내게 넘기고 물러나라고 종용했었다.
그게 통했고.
하지만 그 말이.
“내게 발려달란 말은 아니지.”
내가 싸우고 싶은 건.
가장 강력한 야수였다.
확실히 태양은 하나다.
하지만 나는 태양이 되기 위해 이 링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태양이 아니다.
태양을 쓰러뜨리는 자였다.
그렇기에.
트리플H는 태양으로 있어줘야 한다.
그래야만 이 업계에 영혼을 걸어온 내 인생이 훼손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는 헌터.
“크윽?!”
나는 연기를 시작했다.
헌터와 서로 목을 맞잡고 있는 상태에서 점차 뒤로 물러나면서 그 역시 강하다는 사실을 어필했다.
[Booooooooooooooooo-!!]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거기에 순간 어안이 벙벙한 채 서있던 헌터가 이어 내게 다가와 목을 쥔 손을 놓고 팔을 휘둘렀다.
퍼억-!
복부를 때리는 정타.
거기에 무너진 나를 헌터는 얼굴이 빨개진 채 그대로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 감정을 이해했다.
나 같은 남자에게 인정을 받으니.
기쁠 수밖에 없는 거겠지.
바닥에 누운 나는 팬들이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미묘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헌터가 움직였다.
내 앞에 무릎을 꿇은 녀석이 머리채를 움켜쥐고는 그대로 일으켜 세웠다.
이어지는 해머링의 연격.
퍼억! 퍽! 퍽! 퍽!!
잔혹한 행동에 팬들의 야유가 이어졌고, 헌터는 완전히 눈빛이 달라졌다.
녀석은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공격을 시작했다.
예정이 변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여기에서 우리는 사다리를 이용해 위험천만한 스턴트를 수행해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트리플H의 마음을 알게 된 내가 내용을 뒤바꾸면서 한참이나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몇 번이고 이어지는 공격.
올드 스쿨 특유의 서브 미션 공격으로 방향을 전환한 헌터는 내 안면에 팔을 휘감은 채로 귓속말을 해왔다.
“……어떻게 할 거냐?”
“슬레지해머를 쓰죠.”
우리는 즉석에서 경기를 꾸몄다.
새로운 스팟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트리플H의 야수성과 승리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콘셉트가 확실했기 때문에.
우리는 어렵지 않게 팬들의 몰입을 계속 유지한 채로 경기를 이어갔다.
헌터는 날 로프 쪽으로 던졌다.
그리고 로프 반동을 하고 돌아오는 내 안면을 향해 힘껏 뛰어올랐다.
그 무릎이 내 안면에 직격했다.
옆으로 빠지면서 스치듯이 넣는 니 리프트에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콰앙-!
바닥에 쓰러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헌터가 코너를 향해서 끌고 갔다.
바닥에 눕혀진 상태에서 잔혹한 스톰프가 이어졌고 팬들의 야유는 더 심해지다 못해 완전 극악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링 아래로 내려간 헌터는 생각도 못 한 도구를 내게 사용했다.
바로 수갑이었다.
철컥!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내 오른팔에 수갑이 채워졌다. 그리고 헌터는 반대편 수갑을 1단 로프에 걸어버렸다.
왜 3단이 아니고 1단이냐.
일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큭?!”
그렇게 움직임을 봉쇄당한 나를 헌터는 링 아래에서 철저하게 농락했다.
그야말로 반칙의 향연이었다.
헌터는 내 다리 사이에 코너의 철제 기둥을 걸고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그대로 몸이 쑥 빠지며 사타구니가 그대로 코너 기둥에 세차게 부딪혔다.
콰앙-!!
[Uooooooooooooooooohhhhh!!]
최악의 로 블로였다.
‘제기랄!’
고통에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 걸 느끼자니 헌터가 나를 링 아래로 당겼다.
콰앙!
철제 계단에 몸을 부딪치게 하고.
부러뜨리려는 듯 수갑이 채워진 팔을 위험한 각도로 꺾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을 계속 견뎌내며 반격할 틈을 찾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역시.
“되도 않는 짓을.”
녀석은 철저했다.
투콰앙-!
헌터는 철제 계단에 내 얼굴을 힘껏 부딪히게 했다. 그리고 나는 전과 다른 따끔한 충격을 잠시 느꼈다.
이마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떨어지며 쓸렸기 때문이었다.
‘이거 혼나겠는데.’
[Uoooooooooohhhhhh……!]
팬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자니 헌터는 나를 다시 링 위로 올려보내고 무언가를 가지고 들어왔다.
슬레지해머.
녀석이 내 앞에 섰다.
조금 전과 반대의 상황이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헌터를 보았다.
피 때문에 시야가 희미했다.
그런 상태에서 헌터는 ‘양손’으로 슬레지해머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사실 후반부에 준비했던 스팟이다.
하지만 지금 쓰게 되었다.
무척이나 위험했지만 따라서 헌터의 강함을 어필하는 데 이만한 건 없다.
놈은 슬레지해머를 휘둘렀다.
마치 땅에 꽂힌 거대한 쐐기를 뽑는 것처럼 등을 사용해 있는 힘껏.
아래에서 위로.
쩌억-!!!
거기에 맞은 내 턱이 위로 들렸다.
‘이런.’
제대로 맞았군.
그렇게 생각하며 한순간 허리와 턱을 크게 들어 올렸던 나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후우, 후우.”
숨을 몰아쉰 헌터는 이로써 날 완전히 제압했다는 듯 핀에 들어갔다.
심판이 카운트를 셌다.
1……!
팬들은 잔혹한 광경에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20만 명이 운집한 경기장이 한순간 파리 날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2……!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힘껏 팔을 치켜들자.
[Yeeeeeeeeeeeeaaaaaaahhhhh!!!!]
팬들은 미친 듯이 환호를 내질렀다.
헌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날 바라보며 뒤로 물러섰다.
실제로 놀란 거기도 했다.
내가 하자는 대로 그가 최악의 태양이 되었더니 환호가 더 터졌으니까.
하지만 이게 맞았다.
이게 내가 바라는 레슬링이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일어났다.
그러다가 로프에 팔이 당겨져 버티지 못하고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마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턱을 맞는 척하며 막아냈던 오른손 손바닥에는 엄청나게 피멍이 들었다.
감각도 없었다.
‘그 기술, 쓸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나는 이내 피식 웃으며 헌터를 바라보았다.
쓰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지.
감각이 점점 돌아오기 시작하며 심상치 않은 통증이 느껴졌고, 나는 가벼운 농담을 하나 생각해냈다.
트리플H는 말했었다.
태양은 하나뿐이라고.
나는 놈이 태양이라고 말했다.
거기에서 순간.
마벨 영화가 떠올랐다.
그 영화에는 통제가 불가능하고 엄청나게 강한 녹색 괴물이 등장하는데.
그 괴물을 진정시키기 위해 친구들은 이런 식의 코드를 정하고 말했다.
‘Hey, Big Guy. Sun’s Getting Real Low.’
그걸 좀 비틀어서.
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Hey, Big Guy.
It’s High noon.
난 그걸 원하고 있다.
우리 모두 그걸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