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
이건 각본을 벗어난 테러였다.
텔레비전으로 쇼를 보고 있던 나와 바트는 곧바로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부자연스러움이 바로 느껴졌다.
미식축구 셔츠를 입은 남자는 뒤쪽에서 대니얼을 덮치고는 그대로 마구잡이로 주먹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 직후, 달려온 심판과 보안요원들이 달려들어서 남자를 떼어놓았다.
[Boooooooooooooooooooo-!!]
야유를 보내는 관객들.
해설자들이 수습을 했다.
[화면상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 경기를 곧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문제가 발생한 점 사죄드립니다.]
“뭐야.”
바트가 없다는 듯 웃었다.
“너희 단체는 겁쟁이들만 모였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관객 난입.
프로레슬링에서 정말 가끔 한 번씩 일어나는 일로 선수들 대부분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하고 지나갔다.
그래서 이해는 했다.
다들 당황했겠지.
느닷없이 예정에도 없던 남자가 나오니까 덩치도 커서 저거 혹시 각본인가? 하고 의아해할 여지는 있지.
하지만 그건 그거고.
구린 건 구린 거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당한 데다, 선역이라 관객을 때리기 힘든 대니얼은 그렇다 쳐도.
그 상대였던 신인은 나서서 대니얼을 보호해줬어야 하는 게 맞았다.
거기에 뒤에 있었던 보안요원들과 심판의 움직임도 느렸다.
바트는 그걸 지적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저럴 때 베스트 해결책은 그거다.
난입한 관객을 박살 내는 거다.
그걸 카메라에 담지는 못하겠지만.
거기 온 관객들이 찍은 영상이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관객 난입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줘야 하는데.
신인이 순간 얼을 탔다.
잘못했다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문제가 될 터였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간에 링 위의 선수가 드라마 밖으로 나온 순간 연약한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선 커버를 쳐줘야겠지.
“뭐가 겁쟁이라는 겁니까?”
“저런 놈이 올라왔으면 당장 벌떡 일어나서 코를 부러뜨려놔야지.”
“그건 옛날 생각이고요.”
상대가 나이프나 총을 들고 있으면 어쩌려고 바로 달려든다는 말인가?
몸이 재산인 선수는 당연히 회피해서 상황을 지켜보는 게 맞는 선택.
……이기는 한데.
저럴 때 멋지게 달려들어 난입한 관객을 박살 내며 팬들의 리스펙트를 얻은 선수가 이후로 뜨기는 했지.
트리플H라던가.
에디 비테레로라던가.
그런 식이었다.
결국 강함을 연출하는 우리인 만큼,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강한 모습을 보여주면 다들 환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흥, 말은 그렇게 해도 다 안다.”
이어진 바트의 비웃음에 슬슬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오른손은 이제 반깁스로 전환해 슬슬 뼈가 붙으려고 하는 시점이었다.
‘가야 하나.’
어쨌든 우리 팀에서 사고가 발생했는데 딱히 손 놓고 있기도 좀 그랬고.
이를 어쩐다.
* * *
일단 가보기로 했다.
위클리 쇼가 끝난 뒤, 관객 난입의 뒤처리로 바쁜 PWA 측에 이야기를 전해둔 나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곧바로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 건 바쿠였다.
잠을 못 잤는지 특유의 펑키 아프로펌이 어딘가 푸석푸석한 모습이었다.
그가 크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잘 쉬었냐. 캡틴.”
“쉬는 것도 일이더군요.”
“거 참 부러운 이야기로구나.”
“하하, 좀 어땠어요?”
“말도 마라. 그 개자식…….”
바쿠는 이를 빠득 갈았다.
이야기는 가면서 듣게 되었다.
일단 어제 난입한 친구의 이름은.
“콜비 로메즈.”
“흔하네요.”
“그렇지 흔하디흔한 이름이야. 그래서 그냥 경찰에 넘기면 적당히 벌금 물리고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지.”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보통 관객 난입은 업무 방해죄 쪽으로 단체에서 고발해 경기장 영구 출입 금지와 벌금 처분으로 끝이 났다.
벌금은 대략 2,000달러 정도.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상대가 묘한 짓을 해왔단다.
“‘자기’ 변호사를 불러달라더라고.”
“재미있는 개소리를 하네요.”
“그렇지? ‘자기’ 변호사라니. 빌어먹을 새끼. 나는 변호사와는 말도 섞고 싶지 않은데.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일반인은 아닌 것 같은데. 한 번 뒷조사를 진행해보면 어떨까요?”
“안 그래도 이야기 듣자마자 아가씨가 뭔가 이상하다며 조사 들어갔지.”
티파니가?
‘일 처리가 빨라서 좋군.’
오늘 저녁쯤 나오려나?
얼른 보고 싶어졌다.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었으니까.
관객 난입은 보통 충동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렇기에 쇼가 끝나고 현실의 벽이 돌아오면 대부분 후회했다.
대부분 꼬리를 말고 얌전히 벌금 처분과 출입 금지 처분을 받아들이지.
그런데 변호사를 찾아?
그것도 ‘자기’ 변호사?
뭐 하는 놈이지 그거.
“얼굴 보니 대충 감은 오던데.”
“응?”
“너도 보면 느낄 거다.”
그게 무슨 말이람.
그런 의아함은 경찰서에 도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해결되었다.
경찰서 안의 피의자 대면실.
어제 우리 쇼에 난입한 피의자를 만난 나는 어이가 없어져 웃고 말았다.
‘이거 원.’
바쿠의 말마따나 정말 감이 왔다.
우리 쪽 사람이라고.
20대 초반의 젊은 백인 청년.
키는 185 정도로 보이고.
난입 때는 겉옷을 입어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마른 체격이었음에도 근육을 기른 체격이 딱 이쪽 사람 같았다.
‘그래서 조사를 보낸 거군.’
하지만 나는 그와는 좀 다른 이유로 그가 우리 쪽 사람이라는 걸 확신했다.
‘아는 얼굴’이었다.
전생에 만난 적이 있는.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자 이 일의 진상이 어떤 건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미리 말씀을 드리지만.”
콜비가 입을 열었다.
“저는 말씀드린 변호사 불러주실 때까지 아무 말도 안 할 겁니다.”
“아…… 그러지 마시고.”
경찰이 한숨을 내쉬었다.
듣자 하니 쉽게 끝날 일인 것을 콜비가 어렵게 끌고 가서 퇴근도 하지 못하고 붙잡혀 있다는 모양이다.
“제 얼굴 보이시죠?”
콜비는 눈가를 가리켰다.
“어제 맞은 겁니다. 제 일은 제 일이고. 여기에 관해서는 저도 분명 보상을 받아야겠습니다. 그 선수 이름이 분명 대니얼 라이언이었죠?”
이야기도 대충 들었다.
대니얼 라이언은 작은 체구에 반해 불같은 성질머리로 유명해서 백스테이지로 돌아오자마자 놈에게 거나하게 한 방을 날려줬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콜비가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왜 제압당한 민간인을 때리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뭐.
이걸 민간인이라고 할 수 있나?
“그쪽에서 도발을 했잖나?”
“그건 그거고 때린 건 맞잖습니까.”
“아니, 자네가 거기에서 그렇게 욕을 하는데 선수가 안 열 받고 배겨?”
“그럼 법대로 하시던가요.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할 테니 말이죠.”
콜비가 입을 다물었다.
바쿠는 한숨을 내쉬었다.
분위기가 좀 이상해졌다.
경찰 쪽도 원만한 합의로 일을 끝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까부터 미친 사람처럼 볼펜을 계속 딸칵거리는 게 무척 퇴근이 마려운 모습이었다.
그럼 퇴근을 시켜줄까.
“대니얼이 잘했군.”
“시, 신.”
“뭐요? 스포츠 선수라는 인간이 사람을 폭행해놓고 그게 할 소립니까?”
“넌 운이 좋았어.”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정말이야. 내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으면 네 눈깔을 뽑아버렸을 테니까. 그리고 목걸이를 두 개 만들었겠지.”
“…….”
“어, 일단 말씀드리는데. 지금 대화 내용은 전부 녹음되고 있습니다.”
“예, 알아요.”
경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구태여 한 번 더 말하죠. 콜비라고 했나? 내 앞에서 내 가족을 팼으면 진짜 살아서 여기 못 있어.”
“아, 아니 이 사람이 정말!!”
“닥쳐. 내가 말하는 중이니까.”
나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흥분해 벌떡 일어섰던 콜비가 잠시 버티다 이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나는.
파악한 진상을 이야기했다.
“너 ACW에서 보냈지?“
“그게 무슨……!”
“다 알고 하는 말이야.”
나는 카드를 내밀었다.
블러핑이라는 이름의 카드를.
자, 사실.
프로레슬링 업계는 거칠고 험난한 곳이다. 특히나 단체가 여럿 있을 경우에는 그런 경향이 더 강해졌다.
상대 단체를 조지기 위해서 첩자를 보내는 일도 많았고, 그로 인해 전생의 WWF도 꽤 많이 봉변을 당했었다.
그중 하나가 이거다.
자기들과 연관이 없는 인디 선수를 하나 섭외해 ACW 입사를 도와주겠다면서 이와 같은 임무를 맡기는 거지.
그렇게 해서 상대 쇼와 선수에 대한 이미지를 망치고 법적 공방으로 어떻게든 고춧가루를 뿌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웃기는 게 몇 개 있는데.
일단 그런 임무를 맡은 친구들은 예외 없이 ACW로부터 버림받았으며.
그로 인해 악에 받쳐 단련한 이 눈앞의 콜비 선생은, 놀랍게도 2010년 이후 WWF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세스 롤링스’라는 이름으로.
“우리 쇼에 난입해서 사고를 좀 쳐주면 ACW에서 고용해주겠다……. 뭐 그런 거래를 한 거 아니겠어?”
“즈, 증거는?”
“네가 데려올 변호사를 캐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이어지겠지. 우리 정보망을 무시하면 곤란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문제는 그거야. 콜비.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연결이 되는 순간 ACW로서는 크나큰 손실이 되거든.”
나는 냉혹하게 현실을 말했다.
“그리고 변호사는 네 낡은 아파트에 다시는 안 오겠지. 완전히 너 혼자서 모든 문제를 뒤집어쓰게 될 거야.”
“끄윽…….”
콜비의 안색이 순간 창백해졌다.
이해는 한다.
‘인디’ 출신의 선수가 대형 회사에서 스타가 되는 길을 정말 어려웠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서든 연줄을 잡고 위로 올라가야만 하는데, 그렇기에 콜비는 이런 선택을 한 거겠지.
하지만 잘못 짚었다.
내가 상대니까.
“거래를 하지 않겠나?”
“…….”
“이쪽으로 와라. 말하자면 옛날 007 무비처럼 이중 첩자가 되란 거지.”
콜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콜비에게 좀 생각할 시간을 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싫으면 우리가 물고 늘어지고 ACW에 버림받은 다음에 선수 생활도 못하고 계속 소송으로 돈 뺏기던가.”
“……내가.”
“응?”
“내가 어떻게 너희를 믿지?”
“아니지. 믿으란 게 아니야. 너에게 그럴 권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는 싱긋 웃었다.
“넌 현명한 선택을 하면 돼.”
콜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만 봐도 녀석이 결국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짐작이 갔다.
그렇게, 이야기를 끝마치고 대면실에서 나온 나를 바쿠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따라 나왔다.
“뭐, 뭐야. 이게 무슨 소리냐?”
“들으신 대로에요.”
콜비는 ACW에서 보낸 자객이다.
우리 쪽 이미지를 망치고 시청률을 하락시키기 위해서 난입시킨 거지.
“그걸 어떤 식으로……?”
“일단 선수가 일반인에게 얻어맞는 광경이 텔레비전으로 나갔으니 그쪽으로 이미지 타격을 입을 겁니다.”
그리고 그걸 ACW에서 조롱하겠지.
“로건이 난입한 관객을 두들겨 패는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도 있고요.”
그리고 콜비가 대니얼을 도발해 얼굴을 얻어맞은 걸 뉴스 기사로 내보내 단체의 이미지에도 타격을 주겠지.
“현실과 각본, 양쪽 모두에서 타격을 주려는 겁니다. 참 영리하군요.”
“아니, 그런데 그 증거는…….”
“곧 털어놓을 겁니다.”
“그게 아니라, 대채 어떻게 안 거냐? 아무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ACW와 연결점을 밝혀내?”
“뻔하지 않습니까? 딱 레슬런데.”
“그래도 그냥 ‘PWA에 입사하고 싶어서 어그로를 끈 정도’로 치부했지. 뭘 근거로 ACW까지 연결한 거냐?”
글쎄다.
전생의 기억?
하지만 그걸 그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던 나는 잠시 대답을 미뤘다.
그러자니,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답이 나왔다.
“아, 계셨군요!”
자판기 앞에 서있던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경관. 그 얼굴이 밝아진 걸로 봐서 대충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로메즈가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느냐고 요청을 해왔는데요.”
“그렇군요. 이거 원, 번거롭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경관님.”
“아뇨, 저도 이 일만 끝나면 퇴근해서 쉴 수 있으니…….”
“바로 가겠습니다.”
“예, 데리고 나오죠.”
웃으며 돌아서는 경관.
뒤뚱거리며 달려가는 그 모습을 보던 나는 바쿠에게 부탁을 하나 했다.
“바쿠, 도넛 좀 사다줄래요?”
“뭐?”
“나중에 회사 경비로 청구하고, 여기 있는 경관들 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괜히 번거롭게 했으니 이 정도 서비스는 해야겠다 싶어서 나온 말이었다.
경찰, 소방 공무원 및 군인에게는 언제나 예우를 갖춘다. 그것은 모든 미국인들의 사명과 같은 것이었다.
“아, 그래. 그게 좋겠군.”
“여기 서는 앞으로도 종종 이용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그전에 하나만 괜찮겠냐?”
“뭐죠?”
“어떻게 할 셈이냐? 빌어먹을, 다 떼놓고 솔직히 궁금해서 못 참겠다.”
“……그쪽에서 공격하는 게 ‘각본’과 ‘현실’ 양쪽에서니 저희도 그 양쪽에서 대응책을 펼쳐야겠죠.”
일단은 현실 쪽.
“콜비가 그대로 변호사를 선임해서 저희를 고소하게 할 겁니다.”
“어째서?”
“그래야 변호사를 타고 올라가서 이 일이 ACW와 연관이 되어있다는 증거를 확실하게 엮어내죠.”
“으, 으음.”
“그리고 각본에서는. 아마 다음 주쯤에 또 관객 난입이 있을 겁니다.”
“뭐? 그럼 보안을…….”
“그건 좋은 해결책이 아니죠.”
“그럼 어쩔 셈이냐?”
“개미지옥으로 끌어들여야죠.”
그쪽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ACW의 의뢰를 받은 인디 플레이어라면 어떤 때에 어떤 식으로 PWA 위클리 쇼에 난입을 할까?
“당연히 가장 주목 받는 순간이죠.”
ACW에서도 그걸 요구했을 터.
그러므로 우리가 할 건 간단했다.
가장 주목을 받게 될 순간을 알기 쉽게 정리해 습격자에게 알려줘야지.
“다음 주 메인이벤트에서 복귀하겠습니다. 홍보 한번 쫙 돌려서 사람들의 이목을 제대로 끌어보죠.”
“너 손은 괜찮냐?”
바쿠의 물음에 난 말없이 웃었다.
아직 다 낫지는 않았지만.
뭐, 딱히 상관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