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63화 (363/634)

363.

그리고 일주일.

정확히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그날 저녁부터 몇몇 뉴스에서 관객 난입 사건에 대해서 다루기 시작했다.

화두가 된 건 크게 두 가지였다.

관객 난입이 어떻게 되어가는가.

그리고 관객 난입 때 얼이 탔던 선수가 멍청하게 보였다는 이야기까지.

[그런데 백스테이지에 가서는 대니얼 라이언이 분을 참지 못하고 붙잡은 그 관객을 두들겨 팼다고 하던데요.]

[그로 인해 경찰서에 붙잡힌 그 친구가 변호사를 부르라느니 뭐니 소란을 부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역시 다 짜고 치는 거라 그런지 실제 일이 벌어지면 대처가 순간적으로 미흡해지는 부분이 있나 봅니다.]

[어쩔 수 없죠. 프로레슬러는 어디까지나 연출가지 격투가가 아니니까요.]

그런 식이었다.

녀석들은 프로레슬러를 폄하하고 우리들이 했던 대응을 깎아내리면서 교묘하게 팬들이 실망감을 품도록 했다.

‘다 사주를 받은 거겠지.’

ACW로부터 말이다.

결국 콜비가 다 털어놓았다.

내 예상이 맞았다.

ACW 측에서는 난입 관객을 고용해 우리 쪽의 이미지를 깎으려 들었다.

일부러 그걸 알리는 감도 있었다.

인디 쪽 레슬러들을 고용한 부분 같은 게 말이다. 하지만 정황 증거만 있어서 우리도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도리어 그쪽에서 오리발 내미는 식으로 나오면 더 피곤해지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ACW에서는 노골적으로 PWA를 폄하하고 놀려대기 시작했다.

5월 1주차의 나이트로.

nWo 멤버들이 링에 올라가 마이크워크를 이어가고 있던 와중, 갑작스레 관객 하나가 링으로 난입했다.

[Uooooooooooooohhhhhh……!]

놀라는 ACW 팬들.

그 순간, 마이크를 쥐고 있던 스카티 홀이 관객의 안면을 후려쳤다.

그리고 케빈 대시까지 끼어들어 관객을 아주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팼다.

그런 장면을 모조리 다 찍은 주제에 ACW는 황급히 화면을 전환하는 척 했고, 동시에 해설자들이 말했다.

[방송 중 잠시 사고가 있었습니다.]

[저렇게 링으로 들어오시면 안 되죠. 저희는 그냥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백스테이지에서 패지도 않고요.]

[그, 그건 그냥 넘어가죠.]

한 명이 당황하면서.

어떻게든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연출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재미있구먼.’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느끼면서도 웃었다.

뭐, 즐기게 두자.

수요일부터는 반격이 시작될 테니.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대니얼 라이언은 이 일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책임감을 느끼는 듯했다.

수요일 아침.

일찍 경기장에 도착한 나는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대니얼과 마주쳤다.

귀를 살짝 덮는 연갈색 머리칼.

평소 자기가 좋아하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그는 ‘염소’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자기는 그걸 싫어했지만.

“신.”

“아, 대니얼.”

“잠깐 괜찮을까?”

“당연하지. 무슨 일인데?”

“이번 일,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해서. 다들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괜찮아, 괜찮아.”

“경기가 망쳐져 있는데 그 개자식이 겁쟁이라고 시비를 걸어오니까 제정신이 아니었어. 정말 미안해.”

“괜찮다니까.”

“…….”

“대니얼.”

나는 대니얼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알아. 네 마음.”

키 170cm.

그 단점 하나로 인해서 항상 엄청난 폄하를 당해온 대니얼. 하지만 레슬링에 대한 열정은 진짜였다.

그렇기에 결국 WWF의 메인 이벤터까지 올라간 악바리 중의 악바리.

따라서 난입 관객으로 인해 경기가 망쳐져서 엄청나게 화가 났을 테고, 도발까지 들으니 참기 힘들었겠지.

물론, 최선은 안 때리고 그냥 놀리는 거지만 대니얼은 나와 성격이 전혀 다르니 뭐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가족.

감싸주는 게 옳았다.

스스로 미안해하기도 하고.

“오히려 잘했어. 그런 놈은 맞아야지. 다음에는 링 위에서 패버리라고.”

“회사가 곤란해지지 않겠어?”

“괜찮아. 그러라고 있는 회사니까.”

나는 딱 잘라 이야기했다.

대니얼은 조금 안심한 듯했다.

이럴 때 회사가 선수를 지켜주고 스크럼을 짜서 대항해야하는 법이었다.

ACW 측에서 졸렬한 수단으로 공격을 해오더라도 맞설 수 있게.

그렇게 대니얼을 위로한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티파니와 폴 헤이건이 있었다.

오늘 저녁 쇼를 기점으로 우리는 본격적으로 반격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 준비 태세를 확인하는 자리.

일단 티파니가 인사를 해왔다.

“잘 잤어요?”

“응, 잘 다녀왔어?”

“죽는 줄 알았죠.”

잠도 못 잤는지 눈 밑이 검었다.

원래는 콜비 로메즈의 정보를 찾으려 그 거주지에 갔던 티파니는 내가 바로 자백을 따내자 예정을 틀었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콜비가 선임한 변호사의 뒤를 추적해 결과를 따냈다.

티파니는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안을 확인하자 USB 하나와 체계적으로 작성된 추적 기록이 나왔다.

“그래도, 확실하게 따왔어요.”

“어떻게 알아냈어?”

“쉬웠죠. 그쪽 로펌 변호사 하나 섭외해서 내부 정보를 좀 빼달라고 했지. 착수금을 아주 두둑하게 받았던데?”

“잘도 응했군.”

“실적 싸움을 하는 사이라던데요.”

티파니가 사악하게 웃었다.

무섭군.

“어쨌든. 요약하면 로건이 알고 지내는 스포츠 브랜드 사업가로부터 소개를 받아 일을 진행한 모양이에요.”

그렇게 티파니는 그쪽 회사의 비서진을 매수해 로건, 사업가, 변호사까지 엮인 증거를 완벽히 확보해왔다.

“이걸로 준비는 끝났어요.”

“고생했어. 좀 쉬어둬.”

“그래야겠어요.”

의자에 등을 기대는 티파니.

그쪽은 맡겨두면 알아서 잘 하겠지.

싱긋 웃은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던 헤이건을 돌아보았다.

“폴, 어때요?”

“우리도 확보해뒀다.”

헤이건이 사진을 하나 내밀었다.

이번에는 모르는 얼굴이었다.

“존 카펜터. 티켓 예약할 때 작성한 신용 카드 정보를 뒤져서 찾아냈지.”

“선수인가요?”

“그래, 얼마 전까지 GOW라는 단체이 있다가 나온 모양이고. 그 친구가 구매한 자리가…… 바로 여기다.”

헤이건이 자신의 앞에 있던 트럼프 아레나의 구조도를 내게 내밀었다.

“B-18석. 거기에서 가장 가까운 통로에서 링으로 나오면 이쪽이군.”

“예, 조심할게요.”

“일부러 그쪽 경계를 느슨하게 해서 길을 유도하는 거지. 좋다고 나왔는데 그 앞이 개미지옥의 입구인 거고.”

“좋군요.”

“그런데, 하나 의문이 있는데.”

“뭐죠?”

“왜 하필 우리일까?”

헤이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ACW에서 우리 쪽을 아니꼽게 여겨서 관객 난입으로 재를 뿌리고 싶었다면 WWF를 공격하는 게 맞았다.

그쪽이 파급력이 크니까.

하지만 어째선지 ACW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 단체에 시비를 걸어왔고.

거기에 대해서는 반쯤 잠이 들어 있던 티파니가 대답을 해주었다.

“……그쪽 사업가가 원래 WWF를 통해 회사를 키워온 사람이거든요.”

“그래?”

“예, 티셔츠 만들어서 팔고. 그러면서 확장하다가 지금에 이른 거라서. 감히 WWF를 건드릴 순 없었겠죠.”

“흥미로운 사실이군.”

“문제는 그게, 반대로 그 사업가를 옭아매는 족쇄가 된다는 거지만요.”

뭔가 생각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믿고 맡겨두면 되겠군.

* * *

존 카펜터.

이름처럼 시골의 목수 집안에서 자라온 그는 그런 환경이 싫어 프로레슬러가 되기를 택한 인물이었다.

딱히 흥미가 있던 건 아니고.

부와 명예를 손에 넣을 수 있을 만한 직업 중에서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였기에 택한 길이었다.

그렇기에 경력도 짧았고, 단체 내에서도 반쯤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이 일을 훌륭하게 수행해내면 프로레슬러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ACW와 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물론 지난 주 쇼를 보았던 카펜터는 그런 기회를 얻은 게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연스레 자기 자신이 가장 눈에 띄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위클리 쇼가 열리는 트럼프 아레나에 도착하자마자 생각을 굳혔다.

노리는 건 하나.

바로 신이었다.

부상으로 아직까지 깁스를 하고 있다고 하니 공격하기 더 쉬울 터였다.

문제는 어떻게 링에 올라가는가.

첫 번째 녀석이 먼저 난입하면서 보안 요원들의 경계가 더 강해졌을 터.

카펜터는 높은 곳에 자리를 잡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경기장 전체에 서있는 보안 요원들을 각각 확인했다.

심장이 계속 뛰었다.

[Waaaaaaaaaaaaaagggggghhhh!!]

현장 분위기는 완전 죽여줬다.

카펜터가 선수로 링에 나올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관객들이 이 PWA라는 쇼를 사랑하고 즐기는 게 느껴졌다.

이걸 망치는 거다.

그리고 현 세대에 가장 뜨거운 선수 중 하나를 박살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생각하자 미소가 나왔다.

어차피 뒤처리는 ACW가 다 해준다고 했다. 이것저것 재지 말고 멋지게 저질러버리면 그만이었다.

“후우.”

가볍게 심호흡.

앞선 녀석보다 늦기는 했지만 가장 큰 놈을 공격하면 오히려 ACW에서는 자신을 영웅 취급 해주겠지.

지금 ACW가 가장 눈엣가시로 여기는 선수가 바로 신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카펜터는 보안 요원들의 경계를 확인하며 계속 쇼를 보았다.

각 경기들이 이어졌고 눈이 아찔해지는 스팟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아마도 다른 목적이 없었더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이 쇼를 즐겼을 터였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 즐겁기 때문에.

여기에 끼어들어 모든 걸 망쳐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메인이벤트 직전.

[잠시 관객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PWA 위클리 쇼는 방송 광고로 인해 5분 정도 휴식을 취할 예정입니다.]

슬슬 나설 차례가 다가왔다.

[그리고 광고가 끝난 뒤에는 오늘 쇼의 메인이벤트가 이어집니다!!]

서커스의 공연 소개자처럼 이야기한 링 아나운서가 팔을 입장로 위에 매달린 초대형 스크린을 향해 펼쳤다.

그러자 스크린에 신의 얼굴과 함께 내내 광고를 내보냈던 화면이 나왔다.

[SIN IS BACK!!]

[Yeeeeeeeeeeeeaaaaaahhhhhh!!]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

카펜터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 이름을 외치는 팬들의 반응 앞에서 카펜터는 마치 자신이 신이 된 것 같은 기묘한 고양감을 느꼈다.

동시에 그는 흔히 바보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자신이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느꼈다.

다들 그렇게 좋아해라.

어차피 신이 펼치게 되는 메인이벤트는 나로 인해서 망쳐지니까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한 카펜터는 기세등등한 채 계속해서 경기장을 지켜보았다.

광고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조명이 꺼졌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어둠 속에서 더 커지는 환호.

그리고 초대형 스크린에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검은 바탕에 흰색 로고가 떠올랐다.

미국 프로레슬링의 현재를 논할 때 절대로 빼먹을 수가 없는 그 이름.

S I N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Waaaaaaaaaaaaaaaaggggghhhh!]

팬들의 압도적인 환호를 받으며 깁스를 한 동양인 남자가 링으로 나왔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인생에서 몇 번 본 적도 없는 동양인인데 다들 그에게 열광하고 있다.

이제는 백인처럼 느껴질 정도?

카펜터는 혼자만의 생각을 하며 링으로 올라온 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었다.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미국인.

검은 재킷.

큰 키.

딱 벌어진 어깨에 근육질의 체격.

검은 팬츠에 선글라스까지.

‘매드 맥’ 같은 느낌으로 딱 어디 로드 무비에 나오는 캐릭터 같았다.

저러니 사람들이 좋아하지.

카펜터는 마이크를 쥐고 있는 신의 모습을 눈을 반짝거리며 바라보았다.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좋아, 아직 반응이 죽지 않았군.]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솔직히 좀 창피해서 못 나왔어. 거의 질 뻔했거든. 트리플H는 그 정도로 강력하고 위대한 남자였지. 대체 왜 정장 같은 걸 입고 다니나 몰라.]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Triple H!]

[그래도 이긴 건 나지! 정말로 멋진 밤이었어!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Yeeeeeeeeeeeeeeeaaaaahhhh!!]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라?”

카펜터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좌석 바로 옆의 계단에서 링으로 이어지는 긴 통로. 보안요원 하나가 어느 샌가 자리를 비운 것이 보였다.

지금이 기회다.

하늘이 준 기회다.

그렇게 생각한 카펜터는 곧바로 허리를 숙이고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가 링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카펜터는 정말로 자신이 이 쇼의 일원이 된 것 같은 느낌에 휩싸였다.

그것도 주인공이다!

단숨에 바리게이트를 넘었다.

[그래서 말인데……!]

신은 이쪽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계속해서 세그먼트를 이어가고 있었다.

신을 택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지금 신이 손바닥에 부상을 당해 깁스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그가 강해도 프로레슬러.

평소 힘에 자신이 있었던 카펜터는 부상자 한 명쯤은 가볍게 제압해 굴욕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링으로 올라갔다.

[Uooooooooooooooooohhhhhh?!]

오늘의 주인공을 보고 놀라는 팬들!

좋아! 이제 영화의 가장 나쁜 악당처럼 나서서 주인공을 제압……!

빠악-!!

그렇게 생각한 카펜터의 턱에 순간적으로 깁스를 한 팔이 후려쳐졌다.

능숙한 백 스핀 블로우.

어찌나 세게 후려쳤는지 석고가 부서질 정도였고 붕대가 풀어졌다.

하지만 신은 쓰러지려는 카펜터의 목을 붙잡고 그대로 로프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Gotcha Bitch.”

후두둑 바닥에 떨어진 석고 아래로 한 달 동안 휴식을 취한 손바닥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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