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64화 (364/634)

364.

사실 굳이 이럴 필요는 없었다.

되도록 안전하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조금 더 안전하게 가는 것이 좋았을 터였다.

예를 들자면, 링 위에 올라오는 동시에 난입자를 밑에서 붙잡아서 내가 좀 더 안전하게 두들겨 패준다던가.

아니면 잡혀가는 걸 내가 열이 받아서 따라가 패는 식으로 연출하던가.

하지만 어느 쪽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열이 받아있는 상태였다.

이딴 식으로 동네 양아치 새끼들도 안 할 구더기 같은 짓으로 나와 내 가족들을 건드리는 ACW의 행위와.

거기에 또 속아 넘어가 잘못된 판단을 하는 멍청이들로 인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저쪽이 무슨 짓을 해오더라도 면상을 박살 내버릴 생각이었다.

나는 감정을 숨기며 기다렸다.

팬들의 반응과 링 아래에 있는 직원들의 신호, 마지막으로 링의 진동까지 더해 난입자의 등장을 읽어냈다.

이후는 간단했다.

뒤쪽으로 돌며 백스핀 블로우.

쩌억-!

일부러 석고 깁스를 하고 있던 손으로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후려쳤다.

[Uooooooooooooooohhhhh……!]

경악하는 관객들.

부서진 석고가 흩날렸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봐주지 않고 쓰러지려는 난입자의 목을 붙잡았다.

“거흑?!”

“Gotcha Bitch.”

씨익 웃었다.

그대로 숨을 쉬지 못하게 목울대를 붙잡은 상태에서 로프까지 밀어붙였다.

누가 보면 과잉 대응이라고 하겠지.

그럴 법도 했다.

상대의 턱을 쳐서 기절시킨 상태에서 흥분해 목까지 졸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놈들에게는 정말로 위험한 짓을 했다는 자각이 필요했고.

그것을 위해선 일단 압도적이고 확실한 폭력으로 굴복을 시켜야만 했다.

나는 손에 힘을 주었다.

“게헥……?!”

턱을 제대로 맞아 이미 반쯤 정신을 잃은 녀석은 제대로 서있지도 못했다.

그대로 무너지는 사내의 머리를 바닥에 대서 제압한 나는 보안 요원들을 불러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게 했다.

그리고 일어섰다.

어깨를 툭툭 털며.

별거 아니었다는 듯이.

관객들은 얼어붙은 채였다.

내가 사내를 후려 팰 때만 해도 놀라서 탄성을 내뱉었으나, 지금쯤 머릿속으로 다들 고민하고 있는 거겠지.

2주 연속 관객 난입.

솔직히 말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인 만큼 다들 의아한 것이었다.

이게 각본인지 진짜인지.

나는 거기에 답을 주었다.

“적당히 좀 하란 말이지. 지난주도 그렇고 갑자기 미친놈들이 늘었어.”

나는 가감 없이 짜증을 냈다.

“분명히 회사에서 뭐라고 하겠지만. 이참에 확실히 말해두겠어. 지난주 방송을 보고 솔직히 열이 받았거든. 그리고 방금 그 짓으로 터져버렸지.”

나는 로프에 팔을 기대고 이걸 지켜보고 있는 이들에게 경고를 날렸다.

“링에는 절대로 올라오지 마. 방금 그 미친 개자식처럼 턱뼈 부러진 상태에서 실려 나가고 싶지 않으면.”

그제야 모두가 깨달았다.

이것은 현실이다.

“그렇잖아? 서로 지킬 건 지키면서 쇼를 만들어가자고. 그렇다고 내가 링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사인이라면 끝나고 해줄 테니까.”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이 내 말에 응답을 해주었다.

거기에서 나는 아까와는 반대의 의미로 속이 후련해져 씨익 웃었다.

“좋아! 다시 내가 헌터를 흠씬 두들겨 팼던 그 이야기로 돌아가볼까!”

[Yeeeeeeeeeeeeeeeeaaaahhhh!!]

그렇게 ‘현실’에서 짧은 경고를 끝마친 나는 다시금 쇼를 이어나갔다.

짧지만 강렬한 반격.

이걸 지켜보고 있는 팬들에게 분명 통쾌하고 멋진 한 방이 됐을 터였다.

격투기를 연출하는 선수로서 실제로 어느 정도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확실한 경고를 날렸으니까.

그리고 아마 지금쯤.

티파니도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 * *

어려울 건 없었다.

그렇기에 티파니 맥센은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상대를 만나러 갔다.

글로리 스포츠.

말했듯, WWF와의 계약을 통해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회사였다.

절대로 과장이 아니었다.

글로리 스포츠가 계약한 80년대의 WWF는 ‘황금시대’로서 그야말로 막대한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파이가 적은 외부 머천다이즈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작은 기업을 시장에 안착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거기에서 천천히 성장해, 지금은 야구 장비를 비롯하여 각종 스포츠 용품까지도 제작하고 있기는 했지만.

ACW의 출범 이후에는 그쪽과도 계약을 맺으며 중심이 되는 사업은 어디까지나 레슬링 티셔츠들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걸 계속 바랄 테지.’

지금 이 경쟁 구도가 계속 되기를.

두 회사가 부딪히면서 나오는 달달한 부산물이 더 많이 떨어지기를.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장인 파블로스 글로리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걸 알지도 못했다.

텍사스의 글로리 스포츠 본사.

어둠과 희미한 조명을 사이에 두고 파블로스와 마주본 티파니는 일단 가져온 티켓을 모두 꺼내둔 상태였다.

ACW의 할리우드 로건.

글로리 스포츠의 파블로스.

릭&루서 로펌의 변호사까지.

세 사람 사이에 유착 관계가 있다는 ‘증거’를 모조리 제시한 상태에서.

“미스 맥센.”

시가의 연기가 부유하는 가운데, 파블로스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억측이고, 조작된 증거로군요.”

그렇게 나오시겠다.

당연한 행동이었지만 김이 빠졌다.

“지금 이 변호사 분이 글로리 스포츠와 함께 진행한 소송 건수가 이렇게 많은데도…… 전혀 연관이 없군요?”

“예, 전혀 없습니다.”

“글로리 스포츠가 이번에 ACW 측과 재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던데.”

“그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허황된 이야기를 좋아하시는군요.”

파블로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 변호사가 저희와 일을 했고, 이번에 뭔 듣도 보도 못한 난입 관객의 변호를 맡았다고 해서…….”

“여기 증거가 있잖아요?”

“조작된 거라니까요. 어디서 구하신 건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이런 이상한 종이에 사인한 적 없습니다.”

파블로스는 껄껄 웃었다.

그리고 훈계를 시작했다.

자기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맥센 양. ‘사업’이란 게 원래 그렇습니다. 이것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러는 경우는 정말로 거의 없어요.”

그리고 티파니를 비웃었다.

“아무래도 영화 같은 곳에서 나오는 걸 보고 이걸 믿으시는 모양인데.”

여유를 부리는 것과는 달리, 파블로스의 눈은 서슬 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이 자료를 외부로 빼돌린 인원을 찾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은 벌어졌다.

글로리 스포츠는 직원 대우도 열악하고, 일처리도 주먹구구식이어서 증거를 확보하는 건 무척이나 쉬웠다.

그런 문제를 되새길 생각도 않은 채 그저 짜증만 내려고 하는 사장이라니.

‘이렇게 쉽게 당할 수밖에.’

지금은 어떻게든 조작과 억측을 운운하며 빠져나갈 시간을 벌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티파니는 그걸 순순히 보내줄 정도로 사람이 좋지 못했다.

애초에, 이렇게 직접 담판을 짓기 위해서 여기에 온 이유가 존재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걸 알리는 방식.

어떻게 하면 눈앞의 시대에 뒤쳐진 사장은 상황을 깨달을 수 있을까.

지금 자신이 코너에 몰린 새앙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침 그 도구가 있다.

침묵을 지키던 티파니는 담배를 하나 빼물고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리모컨을 들어 TV를 틀었다.

“……?”

그대로 조작.

[그래도 이긴 건 나지! 정말로 멋진 밤이었어!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거대한 텔레비전 화면으로 링 위에 오른 신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수요일 밤의 PWA.

Pirates.

“지금 무슨…….”

“제가 마술을 부려볼까요?”

“예?”

“곧 링 위로 관객 하나가 난입하고 신이 단숨에 때려눕힐 거예요.”

파블로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퐁.

라이터까지 꺼내서 불을 붙인 티파니는 길게 뻗어나가는 연기 사이로 계속 이어지는 방송을 지켜보았다.

아니, 보여주었다.

[Uooooooooooooooooohhhhh!!]

링 위로 올라온 난입자와.

그걸 박살 내는 신의 모습을.

일부러 석고를 감은 손을 사용하는 게 그답다면 그다운 모습이었지만.

괜찮을까. 약간의 걱정은 하며.

[자, 잠시 방송 상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사죄드리겠습니다.]

“어때요?”

“……참, 신기하군요.”

“아시는 일 아니었어요?”

“전혀 모르겠는데요. 아니, 애초에 저것도 각본의 하나 아닙니까?”

“그쪽이 만든 각본이죠.”

“아니, 그러니까.”

“슬슬 제대로 이야기를 해볼까요?”

티파니는 그 말을 끊어냈다.

“만약 로건이 WWF 쪽에다가 이런 식으로 관객을 난입시키는 걸 도우라 요구했다면…… 하셨을까요?”

파블로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슬슬 깨달은 모양이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걸.

“안 하셨겠죠. 왜냐. WWF도 사장님의 좋은 거래 상대기 때문이죠. 그 심기를 거스르는 건 힘들겠지.”

다 알고 있다.

당신들이 짠 각본은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완벽히 대응하고 있다.

신과 티파니는 그걸 보여주었다.

각본과 현실, 양쪽에서.

“딱히 법적으로 갈 마음은 없어요. 솔직히 쪽팔리잖아요? ACW 같은 큰 회사가 이런 찌꺼기 같은 짓을 저지르다니 업계 평판에 영향이 가겠죠.”

“…….”

“문제는 그거죠. 사장님께서 끝까지 이 일을 인정하지 않으신다면, 저희는 WWF 쪽과 이야기를 할 거예요.”

그쪽에서 어떻게 나올까?

당장 글로리 스포츠와의 거래를 해지하고 이 법정 전쟁에 참여할 터.

“그렇게 가고 싶으신가요?”

긴 침묵이 이어졌다.

기가 죽었다.

표정은 애써 유지했지만 파블로스는 이미 티파니의 발언에 말려들어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나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바트 맥센은 글로리 스포츠와 ACW의 머천다이즈 사업 계약을 고깝게 여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문제를 처리하기 전에 ACW와 사이를 돈독하게 해보려고 한 짓인데.

이 증거가 진짜로 여겨지던, 그와 별개로 가짜로 여겨지던 간에, 바트가 알면 큰 문제로 번질 터였다.

그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

“……협박이군요.”

“고소하세요.”

“…….”

“아니면 저희 쪽에 오시던가.”

티파니는 손을 내밀었다.

난입 관객.

글로리 스포츠.

그리고 ACW.

셋 중 연약한 둘을 옭아맨 상태에서 확실하게 거대한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완벽한 자료를 확보해낸다.

바로 그게 티파니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이었다.

“지금 그쪽에게 붙으라고?”

“안 그러셔도 되고요. 전 지금 ‘협박에 의한 피해자’로 빠질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해드리는 거예요.”

티파니는 빙긋 웃었다.

“그런데 만약 ACW 쪽에 붙으신다면…… 앞으로 그 회사 외에 다른 일을 맡기는 힘드실 것 같지만요.”

결국 아까 파블로스가 한 말은 모조리 자기 목을 옥죄는 꼴이 되었다.

억측도, 조작도 아니고.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역겨운 짓을 저지르는 이들은 분명 존재했다.

그리고 분명 티파니 맥센은 호락호락한 사업가가 아니었다.

* * *

생각을 좀 해보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파블로스는 이미 반쯤 이쪽에 굴복한 표정이었다.

그렇기에 가뿐한 표정으로 그 자리를 나온 티파니는 차를 타고 공항으로 돌아가며 곧장 전화를 걸었다.

신에게.

상대는 곧장 응답했다.

[어땠어?]

“괜찮게 처리했어요. 아마 내일쯤이면 우리한테 연락 주지 않을까요?”

[우리도 멋졌어.]

“참 잘했어요. ……근데 굳이 다 낫지도 않은 손으로 때릴 필요가?”

[그 편이 멋지잖아.]

“…….”

확실히 동의하는 부분이었지만.

혹시 그랬다가 더 다쳤으면 어쩌랴 싶어서 바로 동의해줄 수는 없었다.

티파니는 말하자면, 현재 신의 브레이크 역할을 맡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그가 자신의 상상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선까지는 응원해주었지만 그 이상은 단호히 끊었다.

그게 그를 상품으로써 관리하고 있는 기업가로서 티파니의 입장이었다.

“전화 끊고 바로 병원 가요.”

[어? 아냐, 괜찮은데.]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요. 당신이 복귀해줘야 시청률이 다시 오르죠.”

이건 바쿠에게 말해둬야겠군.

[아무튼, 거의 다 처리했네.]

“아니죠. 이제 시작이에요.”

[어떤 거?]

“ACW를 고소하고, 글로리 스포츠도 고소할 거예요. 그리고 이 업계에 다시는 발 못 붙이게 까발려야지.”

[……가기 전에 분명히 업계 전체가 쪽팔린 짓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예, 하지만 저희는 아니잖아요?”

정확히 말해서.

이 일로 인해서 업계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 이상으로 ACW는 엄청난 굴욕과 피해를 맛보게 될 터였다.

완전히 동네 양아치나 마피아들이나 저지를 법한 행동을 했으니까.

그러므로 한다.

이 업계의 1위 단체가 얼마나 졸렬한 짓을 저질렀는지 모조리 까발린다.

고소부터 시작해서 아무리 긴 싸움이 된다고 한들 이쪽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모조리 할 생각이었다.

그게 지금 공격을 받은 PWA 측에서 마땅히 취해야 할 행동일 터였다.

그리고 그건.

반대편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 신 역시도 똑같이 하고 있던 생각이었다.

‘멋지군.’

그 단호함이 마음에 들었다.

티파니는 딱히 말하지 않아도 이제는 완벽하게 제 할 일을 해주고 있어, 솔직히 말하자면 큰 도움이 됐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바로 그게 더러운 짓을 저지른 상대방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일 터였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더.

“티파니.”

[예, 신.]

“‘이쪽’에서도 반격을 하자고.”

[응? 아, ‘그쪽’이요?]

“그래.”

이해가 빨라서 좋았다.

지금 신은 ‘현실’뿐만 아니라 각본에서도 대응하자고 이야기했다.

물론 지금 적인 ACW와 직접적으로 연관을 맺게 되지는 않을 터였다.

‘지금 이 화제성.’

관객 난입을 계속 당하면서 PWA가 바보 취급을 당하고 있는 이 화제성을 그대로 각본으로 써먹는다.

분명 멋질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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