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얼핏 납득이 안 가는 이야기였다.
ACW 정도로 거대한 회사에서 이처럼 졸렬한 행동을 저지르다니.
하지만 그 전말을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충분히 그럴 법도 한 일이었다.
일단 이 일은, 분명히 로건과 데릭 비숍이 단독으로 저지른 일일 터였다.
개중에서도 로건의 지분이 크겠지.
그는 옛날 사람이었으니까.
놀랍게도 우리가 고소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게 대체 무슨 짓이냐면서 되려 배짱을 부릴 인간이었다.
옛날에는 그게 흔한 방식이었거든.
다른 단체에 쳐들어가서 깽판을 치고 떡대들을 고용해 다 같이 싸우고.
맥주 캔이 날아다니고 누군가 한 명쯤 죽어야 경찰이 오는, 그런 시대.
데릭 비숍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일이 벌어진 걸 보면 로건의 파워가 그만큼 막강하다는 뜻이겠지.
문제는 바로 그거였다.
WWF를 제치고 북미 1위의 자리를 탈환한 ACW. 그 중심에는 분명 로건을 중심으로 한 nWo가 존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존재가 도리어 ACW의 몰락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로건과 그 동료들을 중심으로 한 선수들의 권력이 너무 강해지면서, 각본마저 좌지우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벨트를 돌려먹고 nWo와 연관된 각본을 계속 전개하면서 결국 팬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중간에 크로우 같은 선수들이 떠오르며 새로운 시대를 열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그러지는 못했다.
제일 윗선의 체드 터너는 바트 맥센에게 이기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프로레슬링 문외한이었고.
그를 막아야 할 데릭 비숍은 반대로 로건의 딸랑이가 되어버린 대참사.
이런 이야기를 보면 권력이 강한 아이콘의 탄생을 억제하려고 하는 바트의 생각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양반은 너무 심하지만.’
시나를 사지로 내몰았으니까.
시나였기에 버티고 성장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 관뒀을 거다.
2006년을 기점으로 역반응이 터져 나왔던 시나도 시간이 지나 이제는 조금씩 팬들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거기에는 악역으로서 상대가 되어준 러셀의 존재와 이번에 펼쳐졌던 레슬 임페리움의 경기가 결정적이었다.
거기에서 시나는 200kg에 달하는 빅 죠와 100kg이 넘는 러셀을 동시에 들어 올리는 슈퍼 파워를 과시하며 팬들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다.
파워하우스.
프로레슬링의 주인공.
그 정석.
내 개인적인 의견이었지만, 그쯤 해서 시나는 자신을 부정하는 팬들마저 서서히 포용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진정한 아이콘이 되었지.
따라서.
나는 WWF와 협력해 ACW에 대항하기로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어쨌든 일어나야 할 일이었다.
그렇다면 WWF에서 내 이득을 챙기면서 자연스레 그 일이 일어나도록 이어질 흐름을 조절하는 편이 좋겠지.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ACW 역시 그들 나름대로 가진 액션을 취했다.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는 이 일에 대한 대응책을 준비해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취했던 링 위에서의 ‘액션’에 대해서는 반응이 양분되었다.
친 ACW 성향을 보이는 언론에서는 나를 거의 업계에서 당장 퇴출당하여야 할 정도의 개자식으로 평가했다.
[물론 그날 링에 난입한 관객이 잘못된 행동을 한 건 맞아.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정도라는 게 있잖아?]
[그래, 석고로 후려치다니. 뭐 그런 놈이 다 있나 싶더군. 턱이 돌아가서 쓰러지는 게 너무 잔혹했어.]
[PWA에서 신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니 이 일로 징계를 받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신은 바트 맥센의 마이너 카피에 불과하다고.]
물론 뉴스레터를 비롯한 ‘정상적인’ 언론들에서는 나를 옹호해주었다.
[그 관객이 총이라도 들고 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래? 신이 죽고 나서도 똑같은 소리를 할 수 있나 보자고.]
[맞아. 정당방위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엄청나게 속이 시원했다고.]
[그러니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말씀드리는데 신이 있는 링에는 절대 올라가지 마세요.]
[본전도 못 찾으니 말이죠.]
대충 그런 식이었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첨예하게 갈려, 이 과정 속에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다수 생길 터였다.
하지만 말했듯.
난 사람들이 날 싫어하는 게 좋다.
“회장님도 그래서 절 싫어하시죠.”
“아니지. 반대로 나는 네가 눈앞에 없으면 불안해 죽겠는데 말이다.”
“……?”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를까 싶어서.”
“뭔지는 몰라도 역겹네요.”
“나도 그렇다. 신.”
바트가 미소를 지었다.
“파블로스는 내 좋은 개였어. 그런 녀석이 배신한 증거를 가져오다니.”
“정확히 말하면 ‘그쪽’을 배신한 게 아니라 ‘저희’를 배신한 거지만요.”
“그렇다면 분명히 근시일 내로 이쪽의 뒤통수를 칠지도 모르는 일이지.”
냉정한 판단.
“그래서, 이와 관련된 일을 대체 언제까지 비밀로 해달라고?”
“저희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네요.”
“그때까지, ACW 그 개자식들의 행동은 바다에 가라앉혀두란 거냐?”
“아뇨.”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확실하게 보여줘야죠. 그런 개수작은 아무런 소용도 없고 오히려 저희를 도와주는 일이라는 걸 말입니다.”
“어떻게?”
“각본으로 쓰는 겁니다.”
“각본?”
“예, 지금 일을.”
“……말해봐라.”
바트가 가까이 다가왔다.
일단 지금 상황을 요약해보자.
나는 문제적 인물이 되었다.
링에 난입한 관객을 제대로 패버리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있게 되었지.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
“ACW 팬들을 우리 쪽으로 당겨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겁니다.”
“왜 그렇게 되지?”
“궁금해할 테니까요.”
그리고 욕하고 싶을 테니까.
“그러므로 금요일 밤의 랙다운부터 시작해서, 이 과잉 방어 논란과 관련된 각본을 전개하는 겁니다.”
현실을 각본으로 끌어간다.
내가 항상 사용해온 방식이었다.
“흥미로운 이야기군. 금요일에는 그쪽 시청자들도 우리 랙다운을 자주 시청하니 근거도 있는 소리긴 한데.”
“이제 곧 ‘썬더’가 출범하죠?”
“……그건 분명 대외비였을 텐데.”
“영감님이 아시면 저도 알죠.”
물론 나는 ‘전생의 기억’이라는 정보망을 통해 파악해둔 것이었지만.
“그 전주에 딱 맞춰서 시작하죠. 썬더를 완전히 뭉개버립시다.”
“그렇다면 7월 1주차로군.”
“그 정도라면 저희가 맺은 계약에도 딱 맞고……. 좋지 않습니까?”
“그래, 그러면 여기서 하나만.”
바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악당이 될 셈이냐?”
“전 언제나 그랬죠.”
단지 팬들을 설득했을 뿐.
난 대부분의 동화에서 나쁜 존재로 묘사되는 ‘욕망에 충실한 악당’이었다.
영어로는 배드애스라고 하지.
그리고 이번에는 그런 논리조차 갖추지 않으며 ACW 팬들이 WWF를 ‘마음 편히’ 볼 수 있게 할 생각이고.
그러므로 최종 목표는.
“섬머 수플렉스에서 최대한 많은 ACW 팬들을 이쪽으로 끌어들이는 것.”
그걸 위해 필요한 게 존재했다.
“호기심을 자극해야 합니다.”
“어떤 식으로?”
“일단 대립 상대가 중요하죠. 내용이 뻔하게 보이는 선과 악의 대립이면 흥미가 전혀 안 생길 테니까요.”
“아, 그래. 그걸 안 물어봤군.”
바트도 흥미로운 듯했다.
“누구와 대립하고 싶으냐?”
“당신입니다.”
“…………뭐?”
순간 얼이 빠진 얼굴.
거기에 다시 한 번 말했다.
정확하게.
“돌아오는 섬머 수플렉스에서, 저는 회장님과 경기를 갖고 싶습니다.”
WWF의 역사를 통틀어 최강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악역과의 대립.
말할 것도 없었다.
분명 대박일 터였다.
* * *
그 후로 남은 2주 동안.
나는 일부러 지금 이 논란이 조용해질 때까지 자숙하겠다는 듯 PWA 쇼에도 출연하지 않고 집에서 쉬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가만히 있는 동안, ACW 측에서 내 존재감이 사라지지 않도록 계속 일을 해주었다.
내가 석고 팔로 후려쳐서 턱이 부러진 난입 관객이 날 고소한 것이다.
그에 대한 기사가 퍼지면서 점점 더 여론은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완전히 손 안 대고 코 푸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놈들은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 건 꿈에도 모른 채 신나할 터였다.
‘다 예상한 대로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여름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미는 걸 기다렸다.
그리고 그날이 찾아왔다.
2009년 7월 3일, 금요일.
바트와 각본진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 짠 멋진 공연 예술을 선보이는 날.
링에 먼저 오른 건 바트였다.
[No Chance In Hell-!!]
특유의 사악하고 악독한 테마 음악과 함께 오랜만에 링으로 돌아온 그.
관객들은 그 노래를 따라서 부르며 바트가 돌아온 것을 크게 환영했다.
말했듯, 바트 맥센은 ‘현실’에서 프로레슬링을 세계적인 콘텐츠로 만들었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가끔 출연할 때는 언제나 큰 환호를 받았다.
[No Chance In Hell-!!]
노래하는 팬들.
거기에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듯 우스꽝스러운 팔 동작을 하는 바트.
기분이 좋은 건지 링 위로 올라가시다 말고 팬들을 돌아보기까지 하셨다.
‘영감쟁이.’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하지만 그 존재감은 확실히 지금까지의 다른 대립 상대들과 비교했을 때 전혀 부족한 점이 없었다.
오히려 최고였다.
왜냐하면, 바트는 다른 선수들이 가지지 못한 걸 가졌기 때문이었다.
트리플H로부터 잠시 빼앗겼던.
‘권력’.
그걸 사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그 옆에 함께하는 선수들 모두의 위상을 최대한도로 띄워줄 수 있는 남자.
그게 바트였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리처럼 전문적으로 링 위의 연기를 배운 게 아닌, 단순히 경험에 의거한 과장된 연기 톤.
하지만 그게 도리어 매력.
[일단 환영해줘서 고맙군.]
[Yeeeeeeeeeeeeeeeaaaaaahhhh!!]
[공식적으로 복귀를 선언하지. 내부 정리는 다 끝났고, 나는 다시금 이 빌어먹을 회사의 수장이 되었다고!]
[Welcome Back! Welcome Back! Welcome Back! Welcome Back!]
[좋아! 이제 남은 건 하나로군.]
바트가 링 위를 크게 돌았다.
순간 긴장감이 흘렀다.
팬들은 누구를 생각할까.
나도 궁금하던 참이었다.
[SIN……!]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그걸 시작으로 해서 팬들 모두가 내 이름을 우렁차게 외쳐대기 시작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바트가 흡족한 듯 웃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나와야지.’
내부 정리는 회사 안의 사람들.
트리플H는 부상으로 빠졌다.
그러니까 나밖에 없지.
[그 말이 맞소! 나는 그 빌어처먹을……! 개자식! 쓰레기 자식을!!]
저건 진심이군.
[링으로 나와라! 신!]
“갑니다!”
타이밍에 딱 맞춰 음향 팀장이 소리쳤고, 나 역시도 나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음악이 울려 퍼졌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Let’s Go!”
나는 커튼을 걷고 밖으로 나갔다.
[Waaaaaaaaaaaaaaaaagggghhh!!]
우렁찬 팬들의 외침 속.
나는 씨익 웃으며 입장로 위에서 여유를 부린 뒤 곧장 링으로 올라갔다.
마이크를 쥐고 바트와 대치했다.
이걸로 두 번째.
거리를 벌린 바트 맥센은 품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슬쩍 꺼내들었다.
테이저 건.
방아쇠를 당기면 수 미터 내의 상대방에게 두 개의 전극침이 날아가 꽂히며 전기 충격을 주는 비살상 무기.
[Uoooooooooooooooohhhhhh-!]
확실한 경계의 표시.
팬들이 크게 소리를 질렀고,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웃었다.
그러자 바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뭐야. 난 훔친 거 없는데.”
“일단, 내가 이곳으로 널 불러낸 이유는 확실히 이야기해두기 위함이다.”
바트가 눈썹을 찡그렸다.
“넌 해고다. 신.”
“……?”
“너 같은 놈을 떠안을 수는 없다. 이건 미국 전체에 프로레슬링이라는 미디어를 전하는 나의 사명이지.”
“아, 그래. 여기 ‘전체이용가’지.”
평소에는 언급되지 않는 시청 등급을 이야기하며 나는 일부러 이 일이 좀 더 현실에 가까움을 주지시켰다.
그리고 하나 더 이야기했다.
“그래 뭐, 올바른 정의의 청년 숀 시나가 이끌어가는 WWF. 멋진 곳이지. 트리플H와 나처럼 잔혹한 시합을 벌이는 놈들이 있을 곳은 아니군.”
“그게 아니다.”
“그럼 뭔데?”
“너는 필요 이상으로 관객을 폭행하고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어.”
“…….”
[Uoooooooooooohhhhh!!]
[Booooooooooooooooo-!!]
경악과 야유가 동시에 나왔다.
지금 WWF 팬들은 말하자면 내가 했던 행동을 ‘옹호’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난 이걸 야유로 바꾼다.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다짜고짜 욕을 내뱉었다.
“MotherFu-king 사과는 당신 궁둥짝이 해야만 하는 거고. 바트 맥센.”
순간 다시 경악의 목소리가 나왔다.
‘전체이용가’에서 해서 안 되는 욕설이 순간 팬들을 확 몰입시켰다.
뭐지? 이거 실제 상황인가?
아니겠지?
하지만 그게 조금 섞여 있다.
그런 의문과 흥미가 팬들을 조금 더 나와 바트의 이야기로 끌어당겼다.
“자, 잠깐.”
“어라, 그러고 보니…….”
나는 씨익 웃었다.
“지금 당신도 충분한 위협인데.”
이게 바로 공감 받지 못하는 논리.
내가 눈앞의 남자를 난입한 관객과 같다고 치부하면서 폭행하면 그 순간 내게서 논리는 사라지게 된다.
내가 더 가까이 다가서자, 바트가 요란하게 팔을 흔들며 테이저 건의 방아쇠를 당기는 액션을 취했다.
하지만 총은 나가지 않았다.
불발.
의아해 바라보는 바트.
그 안면에 내 주먹이 꽂혔다.
쩌억-!!
일부러 봐주지 않고 때렸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바로 바트의 고집 때문.
바트는 언제 어디서나 자기 자신에게 되는 한 있는 힘껏 기술을 시전할 것을 요구하는 성격으로 악명이 높았다.
다른 하나는 지금 시작되는 각본이 현실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내 생각대로 되었다.
힘껏 꽂히는 주먹과 함께 바트의 코가 부러지는 감각이 손에 감겼다.
터져 오르는 피는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