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
허공으로 튀어 오른 피가 하얀색 커버를 씌워둔 링 바닥에 투둑 떨어졌다.
“……!!”
코를 움켜쥐며 쓰러진 바트는 그대로 고개를 처박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최대한 피를 덜 보여주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나 역시도 거기에 맞췄다.
테이저 건을 링 바닥에 새겨진 핏방울 위로 슬쩍 걷어차 흔적을 덮었다.
그리고 입고 있던 재킷으로 바트 맥센의 머리를 덮어서 피를 감춰주었다.
……말하자면 방송 심의를 어떻게든 준수하기 위한 행동에 가까웠지만.
오히려 연출로서는 좋았다.
바트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링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고 그 머리를 내 재킷이 뒤덮어서 그림이 더 그로테스크해졌다.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쨌든 60대 노인의 안면을 전력으로 후려친 것이었다. 당연히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면 놀랄 수밖에 없지.
그러거나 말거나.
아직 할 말이 남았던 나는 링 아래에서 철제 의자를 들고 다시 올라왔다.
그러면서 팬들의 반응을 살폈는데.
딱 예상한 대로였다.
다들 큰 충격에 빠진 얼굴이었다.
지난번과는 같은 상황.
하지만 지금 내 행동은 그때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었다.
‘현실’이 덧붙여지면서였다.
나는 난입 관객을 과도하게 폭행했다는 실제 논란에 휩싸인 상태였고, 그렇기에 팬들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바트 맥센을 공격해 코뼈를 부러뜨리며 이건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바트의 앞에 의자를 두고 앉은 나는 내 행동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거 원,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그냥 구실이 필요했던 것뿐이잖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나를 해고할 구실 말이야. 당신은 내가 두려운 거고……. 그건 지금 여기 모여 있는 관객들도 마찬가지군.”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서, 링을 바라보고 있는 팬들을 다시 확인했다.
다들 충격에 빠진 얼굴이었다.
하지만 SIN은 이렇게 해야만 했다.
현실의 문제를 가지고 팬들이 논란을 재기할 때,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부추겨야만 했다.
SIN은 실패한 삶을 한 번 거쳐 돌아온 나 자신의 성향이 투영된 캐릭터.
그 길에 타협은 없었다.
누군가 물어보겠지.
‘왜 그렇게 심하게 폭행한 거냐?’
거기에 나는 대답한다.
‘그놈이 잘못이다.’
불만이면 덤비던가.
지금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다들 놀랐어?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이게 바로 Reality야. 너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쓰디쓴 현실이지.”
[Boooooooooooo……!]
슬쩍 야유를 보내는 팬들.
거기에 속으로만 살짝 웃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 어그로를 끌었다.
“정말이지 실망을 감출 수 없군.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내가 정말로 과잉 대응을 했다고 생각해?”
[Boooooooooooooo-!]
야유가 좀 더 커졌다.
“그 자식이 뭘 들고 있을 줄 알고 그래? 여기 쓰러진 이 영감처럼 위험한 무기를 들고 있다면 어쩌려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후려갈길 수밖에 없단 말이지.”
누군가는 이 일로 인해 업계 전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왜 그걸 나한테 떠넘겨? 논란이 될 일조차 아닌데 논란을 만들고 있는 머저리들을 욕하란 말이야!!”
[Booooooooooooooooooooo-!!]
야유가 확실해졌다.
거기에서 나는 아예 사인을 했다.
“주둥아리 닥쳐들! 이 꼴 나기 싫으면 내가 가는 길을 막지 말라고!”
[You S-ck! You S-ck! You S-ck! You S-ck! You S-ck! You S-ck!]
팬들이 마음을 모아 소리쳤다.
거기에서 잔혹하게 웃은 나는 그대로 철제 의자를 접어서 손에 쥐었다.
그리고 가죽 재킷으로 덮여 있는 바트 맥센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Uooooooooooooohhhhh……!!]
경악을 금치 못하는 팬들.
쩌엉-!!
그 소리는 어떤 때보다 강렬했다.
다리를 바들바들 떠는 바트.
그 앞에서 나는 옆으로 옮겨가며 계속해서 WWF의 회장을 공격했다
쩌억!
쩌억!
퍼억!!
의자가 내리쳐질 때마다 머리를 밟힌 쥐새끼처럼 몸을 떨던 바트는 이내 추욱 늘어져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물러났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한 음악.
[Here Come’s The Money-!!]
[Yeeeeeeeeeeeeeaaaaahhhhh!!]
팬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나는 놀라 입장로 쪽을 돌아보았다.
랙다운의 총괄 프로듀서이자 바트의 아들인 케인 맥센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아버지가 공격을 당했으므로 그 등장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곧바로 링에서 빠져나온 나는 그대로 관객석을 통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 박자 늦게 올라온 케인은 분한 듯 나를 노려보고는 뒤를 이어 꽤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바트의 머리를 가죽 재킷으로 감싼 상태에서 품에 안아 확인하고는, 그대로 비통한 표정과 함께 덮어버렸다.
그로 인해 팬들은 가죽 재킷 안의 바트가 심한 꼴이 됐다고 생각하겠지.
비통한 듯 아버지를 품에 안은 케인을 노려보던 나는 그대로 퇴장했다.
* * *
[미쳤군.]
[그래, 미쳤어.]
[지금 완전히 난리라고. 난리야. 어떻게 이런 걸 각본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면서 다들 불을 피우고 있지.]
[뭐, 그런 놈들은 대부분 이전에도 신의 ‘과잉 대응’ 문제를 재기했던 놈들이잖아?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멋진 반격이었다 이거지.]
[어떤 의미에서?]
[그 문제를 사용해서 멋진 드라마를 보여주었잖아. 신은 그걸 빌미로 자신을 해고하려는 바트를 또 공격했어.]
[그리고 케인이 나왔지. 대립은 케인하고 진행하게 되는 건가 싶더군.]
[내가 좀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바트와 악역 대 악역으로서 대립을 진행하게 될 것 같아.]
[그럼 경기도 바트하고?]
[아마도? 그건 잘 모르겠네.]
[아니 근데, 바트하고 악역 대 악역으로서 대립한다고? 지금껏 그런 선수가 있었나? 그게 가능한 일이야?]
[일단 신이 악역 포지션을 취했다는 건 알겠어. 필요 이상으로 잔혹한 행동을 보이고 관객들을 부정했지.]
[굳이 거기에서 자기에게 옹호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WWF 팬들마저 저버릴 필요가 있었나 싶기는 한데.]
[오히려 그게 멋있잖아?]
[그래?]
[난 열 받았다. 남들 눈치 안 본다. 이런 자기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지금 완전히 제 멋대로 나가고 있잖아.]
그게 기대가 된다.
렐처는 그런 평가를 내렸다.
대부분의 팬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동시에 양분되었다.
WWF의 기존 팬들이 내게 느낀 분노는 어디까지나 각본 상의 야유였다.
그렇기에 케인을 피해서 안전하게 관객석 쪽으로 나갈 수 있었던 거지.
그들의 분노가 진짜였다면 나는 거기서 무사히 빠져나가지 못했겠지.
팝콘과 콜라를 맞았을 터였다.
“그러므로, 사실 기존의 WWF 팬들은 제 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제 이 야유에 합류하기 위해 표를 구매하는 ACW 팬들은 모두 다 나를 진심으로 싫어하는 이들일 터였다.
그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턴 힐.
바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를 선택했군.”
“‘메인 챔피언 경력’이 있다는 점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습니까?”
“……그렇군.”
바트는 쓰게 웃었다.
계약 조건대로 메인 챔피언을 지내본 적이 있는 선수(?)와의 대립이었다.
물론 난입으로 따낸 거였고, 바트는 진짜 프로레슬러가 아니었으므로 곧바로 다음 주에 타이틀을 반납했지만.
어쨌든, 타이틀 기록에는 남았다.
바트는 그런 캐릭터였다.
WWF의 ‘조커’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
선수도 아니고 경기도 뛰지 않는데, 그 존재감은 항상 대단했다.
사실상 WWF의 끝판왕.
그와의 대립은 차기 메인 이벤터로서 푸시를 보장받았다는 말과 같았다.
‘나는 그거와는 좀 다르지만.’
보통 상황에서, 바트 맥센은 특유의 악역 회장 역할을 맡아 강력한 선수들을 수하로 부리며 선역을 압박했다.
그러면 선역은 각자 가진 매력을 보여주면서 자연히 상승하는 식인데.
나는 ‘악역’ 대 ‘악역’을 선택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날 시험하려고 하지 마라. 신.”
바트가 코웃음을 쳤다.
……저래도 되는 걸까.
나는 앞에 앉은 바트의 얼굴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았다.
코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금이 가서 치료를 위한 장치를 단 상태였다.
그게 웃기기도 하면서 짠했다.
대체 어디 기업 회장이 사원의 펀치에 맞아서 코에 금이 간단 말인가.
다 대립을 위해서였지만.
“ACW 팬들을 잡아두기 위해서지.”
바트가 답을 내놓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입니다.”
우리를 보기 위해 랙다운을 트는 ACW 시청자들은 분명 호의적이지 않을 테고, 누가 나와도 야유를 보낼 터다.
그렇기에 애초부터 마음 편히 보시라고 바트도 악역으로 나오는 거지.
물론, 지금 상황만 보면 바트는 다음 주에 분명 환호를 받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괜찮았다.
“어차피 썬더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래, 또 그 지긋지긋한 놈들이 우리를 카피해서 쇼를 만드는 거지.”
“그러니까 시청자를 빼앗아오죠.”
“어떻게?”
“일단, 분명 구린 쇼일 테니까요.”
이쪽의 각본만 좋다면 ACW 팬들을 대거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였다.
바트는 ACW에 대항하기 위해 버닝콩을 위주로 해서 쇼를 편성했지만.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랙다운.
금요일 밤의 유일한 프로레슬링 쇼가 그들을 쫓아가는 가솔린이 된다.
“잠깐만, 신.”
바트가 나를 제지했다.
“썬더가 왜 구릴 거라는 말이냐?”
“홍보용 광고만 봐도 감이 오죠.”
“어떻게?”
“일단, 그쪽에서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nWo 멤버들은 다 빠져 있습니다. 근속 일수 계약 문제 때문이죠.”
현재 ACW 나이트로에서 온갖 강해 보이는 부킹은 죄다 받았던 그들이 정작 썬더에는 출연하지 않는다면?
남은 선수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시청자들은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랙다운은 훨씬 나았다.
바트가 영리하게 선수들을 컨트롤해서 두 쇼 모두에 출연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첫 주는 분명 밀리겠죠.”
“……그럴 테지.”
혹시 모를 기대감.
거기에 속은 관객들이 썬더를 보는 동안 우리는 크게 사고를 치는 거다.
그들이 썬더를 봐서 아쉬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사고를 말이다.
“그렇게 되면 재방송 시청률이 늘 테고, ACW 팬들이 점점 우리 쪽으로 유입되는 효과가 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바로 맞추셨다.
“그러면 신…….”
바트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그냥 내게 물어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 거냐?”
“30분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꽤나 길구나.”
“경기도 해야 할 테니까요.”
“경기?”
“예, 대략적인 구성은…….”
백스테이지 세그먼트 5분.
그리고 경기 20분.
경기 후 5분.
“역시 긴 것 같은데.”
“아뇨. 이것도 짧은 겁니다.”
나는 그 경기를 통해서 확실하게 ACW 팬들에게 알려줄 생각이었다.
전체이용가라도 멋진 경기를 뽑아낼 수 있으며, 늙다리들만 그득한 그쪽과 달리 우리가 훨씬 더 낫다고.
* * *
2009년 7월 10일, 금요일.
미국 코네티컷 주에 사는 빌리는 오늘따라 크게 우쭐해있는 상태였다.
드디어.
WWF를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 ACW에서 새 위클리 쇼를 런칭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름도 죽여줬다.
썬더.
ACW와 WWF의 Monday Night War는 현재 학교에서 가장 핫한 화제였다.
각자 팬들이 나뉘어 자기가 좋아하는 쇼를 시청하고 다음 날 토론을 나누는 게 일상처럼 되었을 정도.
그런 와중 빌리는 한 가지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고 있었다.
바로 가장 친한 친구인 옆집의 수지가 WWF의 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놈들이 뭐가 좋다고.’
시나, 러셀, 오튼, 그리고 신까지.
젊고 잘생긴 선수들이 나온다는 이유로 WWF를 좋아하는 소녀의 심리를 빌리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거기에 사춘기 소년 특유의 질투가 한몫을 한 것도 당연한 이유였다.
그렇기에 빌리는 ACW를 대리만족의 대상으로 삼아, 그들이 수지를 빼앗아간 WWF를 부숴주기를 원했다.
[ACW-!! Friday Night Thunder!!]
쇼가 시작되었다.
“좋았어…….”
어두운 방 안.
감자칩과 부모님 몰래 가져온 맥주를 홀짝이면서 10대 청소년은 이 약간의 비행을 즐기고 있었다.
썬더는 nWo만큼이나 화끈한 쇼일 테고, 그러므로 분명 재밌을 터였다.
하지만.
“……?”
[아, 부커-리가 승리를 거뒀습니다. 상대방을 아주 실신을 시켜놨군요!]
이상하게도 흥이 나지 않았다.
본 적 없던 선수들이 나오지를 않나, 거기에 왠지 관객들의 반응도 영 미적지근한 게 재밌지가 않…….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아직 nWo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쇼에 나와서 화끈하게 시청률을 캐리해줄 것이다.
‘어, 근데.’
광고에서 보지 못했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콩콩.
창문 쪽에서 나는 소리에 돌아본 빌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 수지?!”
달려가 창문을 열자 나무를 타고 올라온 수지가 안으로 들어왔다.
“뭐 봐?”
“아, 아니…….”
“또 ACW야? 썬더였나? 내가 너 그럴 줄 알고 같이 봐주러 오셨다.”
“뭐, 뭐를?”
“근데 너, 맥주 마셨어?”
“아니…….”
“에이, 먹었네, 뭘! 나도 줘봐.”
수지가 맥주를 가져갔다.
그 입술이 캔의 입구에 닿자 빌리는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사실, 수지로서도 용기를 냈다.
어렸을 때부터 가까이 지내며 언젠가는 막연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서로 그런 생각을 하던 사이였지만.
ACW와 WWF의 대립 이후로 별거 아닌데 멀어져버린 두 사람이었다.
그걸 수지 쪽에서 먼저 기회다 싶어 떨쳐내고자 이곳에 온 것이었다.
미묘한 10대 커플(예정)의 기류 속.
“푸하아!”
맥주를 잔뜩 마신 수지는 뺨이 붉어져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 용기가 뭔고 하니.
“야, 나 믿고 WWF 하루만 볼래?”
“뭐, 뭐?”
“재미없으면 내가 책임질게.”
“어, 어떻게 지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채널은 이미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봐서 재미가 없다면 당장 자신을 책임지라고 말할 생각이었던 빌리는.
결국 고백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번화가에 나가서 신의 티셔츠를 종류별로 다 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