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
마지막 광고가 끝난 뒤, 암전된 화면이 밝아지며 20년간 이어져온 먼데이 나이트 랙다운이 시작되었다.
날카로운 메탈 음악의 전주.
[Whoa~~ I'll Never Give In~!]
그 처음을 장식한 건 나였다.
[Boooooooooooooooooooo-!!]
관객들의 야유가 뒤섞였다.
백스테이지를 걸어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내 모습을 잠시 보여준 뒤, 그대로 화면은 오프닝으로 전환되었다.
붉은색 빛이 화면을 관통하며 랙다운의 로고가 번쩍거리며 나타났다.
그 테마는 도시였다.
도심을 관통하는 붉은빛.
[Whoa~~ I'll Never Give In~!]
신나는 메탈 음악.
빌딩 숲 사이로 선 초대형 스크린에서 선수들의 멋진 모습이 나타났다.
숀 시나.
러셀 하트.
랜스 오튼.
세 메인 이벤터를 중심으로.
크리스 젠코.
레이 미스테리우스
카인.
베테랑과.
코피 퀸스턴.
사모아 고.
산티노 마릴라.
신인들.
베시 피닉스.
미셀 맥킬.
마리나.
여성 선수진까지.
‘멋진데.’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가장 멋진 건.
마지막에 나온 나였다.
사실, 넣을 자리가 없어서 마지막에 랙다운 로고가 나오는 타임을 1초 정도 줄이고 어떻게든 우겨넣은 건데.
그 덕에 내게는 이득이었다.
마지막에 나온다는 건 그만큼 팬들의 뇌리에 오래 각인된다는 거니까.
그렇게 오프닝이 끝났고.
화면이 자연스럽게 입장로와 그 위의 초대형 스크린을 비추며 이어서 힘차게 폭죽이 터져 올랐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그와 함께 이어지는 환호성.
[Waaaaaaaaaaaaaaaagggghhh!!]
[먼데이 나이트 랙다운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중계를 맡은 마이클 몰!]
[제리 룰러입니다!]
[방금 오프닝에서 신의 모습이 나왔죠! 그가 도대체 이곳에 무슨 낯짝으로 기어들어왔는지 모르겠군요!]
[아무래도 신은 자기가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맥센 회장은 그의 공격으로 인해서 완벽하게 코가 박살이 났죠!]
[오늘 쇼에 나왔다고 했는데 또 어떤 충돌이 벌어질지 모르겠어요!]
[아, 일단 영상이 나오는군요!]
[보시죠!]
그러자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
백스테이지.
또 어딘가를 위협하듯 어슬렁거리고 있는 내 모습이 나타나자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야유가 이어졌다.
[Boooooooooooooooooooo-!!]
그런 가운데.
[네가 왜 여기 있냐……?]
황당하다는 듯 이어지는 목소리.
내 시선과 함께 옆으로 돌아선 카메라가 케인 맥센의 모습을 비추었다.
바트 맥센의 아들.
지난주, 나에게 공격을 당한 아버지를 구하고자 링에 나왔던 그가 황당하다는 듯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말은 더 필요 없었다.
그가 곧바로 내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휙 피해낸 나는 그대로 케인의 엉덩이를 툭 걷어찼다.
비틀거리며 밀려난 케인이 이내 나를 이성을 잃은 눈으로 돌아보았다.
[이 새끼가……!]
[뭐야? 왜 이렇게 흥분했어?]
[낯짝 한번 두껍구나!]
[세수라도 하고 올 걸 그랬나?]
[닥쳐!]
가벼운 비아냥을 참지 못한 케인이 다시금 나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케인!!]
노도와 같은 불호령.
케인이 움찔 멈춰 섰고 이번에는 카메라가 그 시선을 따라서 돌아갔다.
그리고 바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페라의 유령’에 등장하는 유령마냥 얼굴에 플라스틱 가면을 쓴 채로.
코에 금이 가서 당분간 착용하게 된 보조 장치였는데, 그로 인해서 바트가 가진 독기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화면 속의 내가 씨익 웃었다.
[어, 영감. 언제 마벨 슈퍼 히어로가 되기로 결심한 거야?]
[닥쳐라. 신.]
[아, 아버지……!]
[너도, 가만히 있어라. 케인.]
바트가 내게 다가왔다.
[신, 좋아. 출근했군.]
[사원증은 없어서 안 찍었지만요.]
[그래, 그래. 좋은 소리를 해주는구먼. 좋아. 그래야 이 코의 빚을 갚지.]
바트가 내게 다가왔다.
[내 해고 발언은 철회함세. 앞으로 자네는 매주 경기를 갖게 될 거야.]
[…….]
[그리고 첫 상대는 바로 여기에 있지.]
바트가 옆에서 분노를 참아내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케인을 가리켰다.
그 뜻을 이해한 케인이 활짝 웃었다.
[Uooooooooooooooohhhhh……!]
헬 인 어 셀 이후 갖는 첫 경기.
페이퍼뷰에서 성사되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엄청난 대진을 바트 맥센은 아무렇지도 않게 성사시켰다.
오늘의 메인이벤트.
[케인과 신! 신과 케인! 오늘 두 사람이 하드코어 매치로 맞붙는다!!]
[Waaaaaaaaaaaaaaaaggggghhh!!]
그가 가진 권력을 보여주는 부킹에 팬들은 어마어마한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백스테이지 세그먼트가 끝나고, 쇼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락커룸에서 그걸 지켜보던 나는 피식 웃으며 옆의 케인을 돌아보았다.
“괜찮은데요?”
“멋진 반응이야.”
이제 남은 건 경기뿐이었다.
케인과 함께 전의를 다진 나는 그대로 메인이벤트가 오기를 기다렸다.
지금쯤 썬더가 방영을 시작하고, 구린 경기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 수많은 선수들이 고군분투를 하고 있겠지.
하지만 nWo를 위주로 성장해온 단체의 새 위클리 쇼에 그들이 등장하지 않는 건 정말로 치명적인 일이었다.
팬들은 지루해할 테고.
개중 몇몇은 바로 채널을 돌리고 충성심 높은 팬들도 시험을 당하겠지.
왜냐면 케인과 나는 오늘 경기장을 찾아온 관객들에게 20분간의 스릴 라이드를 보여줄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 * *
그렇게 쇼가 진행된 끝에.
메인이벤트가 찾아왔다.
[다음으로 오늘의 메인이벤트! 하드코어 매치가 이어집니다!!]
[Waaaaaaaaaaaaaaagggghhhhh!!]
링 아나운서의 소개에 팬들이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환호를 보냈다.
나와 케인은 고릴라 포지션에서 심호흡을 하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나간 건 케인이었다.
[Here Come’s The Money-!]
[Yeeeeeeeeeeeeeaaaaaaahhhh!!]
환호를 보내는 팬들.
케인은 곧바로 링으로 다가가.
바닥 아래를 가리는 짧은 커튼을 걷고 온갖 도구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Uoooooooooohhhhh……!]
팬들이 놀라 소리쳤다.
철제 의자나 테이블은 기본이고.
케인 맥센이 이런 경기에서 자주 사용하는 양철 쓰레기통까지도 나왔다.
아버지를 폭행한 나에 대해 가진 분노를 마음껏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물론.
나 역시도 준비를 해왔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신호에 맞춰 음악이 울려 퍼졌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나는 바닥에 대고 있던 슬레지 해머를 들어 어깨에 얹고 앞으로 나섰다.
커튼 밖은 완벽하게 다른 세계였다.
[Boooooooooooooooooooo-!!]
[Uoooooooooooooohhhhh……!]
야유를 보내는 팬들과 슬레지 해머를 보고 놀란 팬들의 목소리가 뒤엉켰다.
트리플H에게서 이어받은 무기.
그것을 어깨에 짊어진 채 나는 그대로 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팬들의 기대감에 몸을 맡겼다.
그 야유와 환호 비슷한 무언가가 내 테마에 섞여들어 몸을 뜨겁게 했다.
그리고 나는.
[Uoooooooooooohhhhh……!]
케인과 서로 마주보고 섰다.
땡땡땡-!
경기는 곧바로 시작되었다.
지근거리.
나는 다짜고짜 헤드벗부터 날렸다.
빠악-!
허리를 크게 젖혔다 튕기며 이마로 다짜고짜 안면을 후려갈기는 공격.
케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를 통해서 거리가 잠시 벌어졌고, 나는 그대로 해머 끝을 감싸 쥐었다.
뻐억-!
“크헉?!”
복부를 맞은 케인이 무너졌다.
하지만 직후.
바닥에 엎드리는가 싶던 녀석이 이윽고 다리에 테이크다운을 걸어왔다.
“윽?!”
그대로 덮쳐진 나는 위에 올라탄 케인을 바라보며 슬레지 해머를 들었다.
하지만 녀석이 더 재빨랐다.
뻐억-!
둔탁한 통증.
케인의 주먹에 힘껏 턱을 얻어맞은 나는 해머를 놓고서 방어에 집중했다.
팔을 굽힌 상태에서 연이어 날아드는 주먹을 막아내고 있자니 케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신호를 보냈다.
거기에 맞춰 허리를 튕겨 올린 나는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크게 돌았다.
마치 길거리 싸움처럼.
우리들은 단어 그대로 ‘하드코어’한 경기에 대한 빌드를 착착 밟아갔다.
이번에는 내가 위에 올라타 케인의 안면을 후려갈기며 흐름을 잡아갔다.
그게 다시 뒤집히고.
뒤집으며.
서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은 채 이어지는 싸움에 팬들이 집중을 했다.
그리고 이내 우리는 떨어졌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른 수단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반대편으로 움직인 케인을 보고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슬레지 해머를 잡기 위해서 몸을 던졌다.
하지만 상대가 더 빨랐다.
케인이 이미 바닥에 있던 양철 쓰레기통 뚜껑을 쥔 채 다가오고 있었다.
계획을 바꾼다.
몸을 비틀며 누운 나는 그대로 케인의 복부를 발로 밀어내며 일어섰다.
[Uoooooooooooooohhhhhh……!]
잠깐 주춤했던 녀석은 이내 머리 위로 쓰레기통 뚜껑을 힘껏 치켜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격.
콰직-!
나는 쓰레기통 뚜껑이 그대로 찌그러지는 걸 보며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끄응…….”
아프긴 아프군.
그래도 이 정도면 견딜 만하다.
그 다음이 문제였지만.
내게 다가온 케인은 충분히 원한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몇 번이고 양철로 된 쓰레기통 뚜껑을 내리쳤다.
퍼억-!
퍽! 퍽! 퍼억!!
찌그러져서 오히려 더 아팠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팔뚝으로 막고 버텨내며 나는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케인이 몇 번이고 휘두른 끝에 양철 쓰레기통은 완전히 걸레짝이 되었다.
“허억, 헉…….”
그렇게 만든 녀석도 힘이 빠져서 잠시 숨을 몰아쉬었고,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케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녀석이 입고 있던 야구 셔츠를 쥐고 당겨 그대로 안면에 펀치를 날렸다.
실전에 가까운 파이트.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동작.
깃 초크로 연결.
“끄극……!”
케인의 안색이 순간 창백해졌다.
나는 팔에 힘을 꽉 주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케인이 손에 쥐고 있던 양철 쓰레기통 뚜껑을 내 머리에 힘껏 내리쳤다.
빠악-!!
자연스럽게 손이 풀렸다.
케인이 뒤로 넘어갔고.
나 역시도 움직이지 못했다.
[Waaaaaaaaaaaaaagggggghhh!!]
이전까지 숨을 참고 있던 관객들이 지금이 기회라는 듯이 크게 환호했다.
나와 케인은 움직이지 못했다.
초반부터 서로 치고받고 이어진 싸움은 서로에게 진한 상처를 남겼다.
“끄응…….”
솔직히 아프다.
하지만 이렇게 팬들이 보내는 환호를 듣자니 통증이 서서히 희미해졌다.
그럼에도.
먼저 일어선 것은 케인이었다.
나를 노려보며 서있던 녀석이 이내 뒤쪽으로 움직여 양철 쓰레기통의 본체 부분을 손에 쥐고는 다가왔다.
[Uoooooooooooooohhhhh……!]
팬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트리플H의 슬레지 해머처럼 일반적인 시합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케인의 진짜 피니시 무브라고 여겨지는 기술.
리프 오브 페이스.
그 준비 동작.
“허억, 허억…….”
케인은 바닥에 쓰러진 나를 질질 끌고 가서는 코너 앞의 1단 로프에 뒤통수를 걸치고 반쯤 눕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 얼굴 바로 앞의 로프 사이에 양철 쓰레기통을 끼우고는 링 반대편을 향해서 천천히 걸어갔다.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팬들이 그 이름을 외쳤다.
케인이 3단 로프 위로 올라갔다.
리프 오브 페이스.
각 코너를 왼쪽 위, 오른쪽 위, 왼쪽 아래, 오른쪽 아래로 가정했을 때.
상대를 왼쪽 위에 세팅해두고.
그대로 오른쪽 위 코너의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가서는 옆의 로프를 밟고 상대를 향해서 힘껏 도약한다.
그와 함께 발을 쭉 내밀면서 프론트 드롭 킥으로 안면을 걷어차는 기술.
케인이 가진 운동신경과 화려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피니시 무브.
그게 막 시전되려고 했다.
케인이 날 노려보았다.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설자는 미친 듯이 ‘리프 오브 페이스’를 외치면서 케인이 얼마나 대단한 점프력을 가졌는지 말하겠지.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케인이 내게 한 방 먹일 거라는 기대감을 깨뜨리는 이 순간이, 악역으로서 가장 행동하기 좋은 때였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Uoooooooooohhhh……?!]
아까와 다른 의미로 놀라는 관객들.
케인이 양철 쓰레기통을 들었을 때의 소리가 기대감에 의한 것이었다면.
지금 나를 보고 놀라는 소리는 단순히 깜짝 놀랐다는 쪽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법했다.
왜냐면 시체처럼 추욱 늘어져 있던 내가 케인이 로프 위로 올라간 걸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으니까.
쿠당탕-!
팔로 힘껏 쳐낸 양철 쓰레기통이 바닥을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게 느려졌다.
오감이 생생하게 작동하며.
나는 치타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뻗으며 케인을 향해 달려 나갔다.
프로레슬러로서 100kg이 넘는 체중을 가진 나는, 그 힘을 완벽하게 제어하기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아드레날린을 받은 체내에 힘껏 혈액이 흐르며 근육들을 크게 부풀렸다.
그렇게 힘을 쥐어짜내며, 앞으로 달려가는 뇌의 지시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그로서 내가 케인 맥센에게 도착한 것은, 정말로 ‘눈 한 번 깜빡할 순간’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2단, 3단, 탑 턴버클.
순차적으로 밟아 케인의 바로 앞까지 빠르게 뛰어 올라간 나는 찰나의 순간 녀석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웃음이 나왔다.
분명, 이 범프를 하자고 했을 때 케인은 내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었다.
‘할 수 있겠어? 어려울 텐데.’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다고 했다.
연습했기 때문에.
할 수 있을 때까지.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자신 있게 동작을 수행한 나는 몸에 지시를 내려 그 동작의 마지막 부분을 실행케 했다.
간단했다.
몸을 웅크리며 뛰어.
“……?!”
놀라는 케인의 목을 다리로 감싼 상태에서 곧장 뒤쪽으로 몸을 젖혔다.
거기에 딸려와 내던져진 케인의 몸이 링 위를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투-콰앙-!!
슈퍼 프랑켄슈타이너.
그야말로 ‘슈퍼’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