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
[SIN! SIN! SIN! SIN! SIN……!]
몇몇 팬들이 그렇게 목소리를 냈다.
각본과는 아무 상관없이 멋진 범프를 선보인 내게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확실히 분위기가 끓어오르고 있다.
다들 내가 의도하는 대로 이 경기를 따라와 주면서 호응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누군가는 여기에서 ‘악역인데 화려한 무브를 사용하다니, 역할에 맞지 않는 행동이다.’라고 말하겠지.
프로레슬링은 피카레스크가 아니다.
결국, 영웅을 만들고 그 영웅을 통해 팬들의 호응을 얻는 드라마였다.
그렇기에 악역은 경기에서 이기더라도 지리멸렬한 운영을 하고 선역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해줘야 했다.
선역이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반응을 얻어가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어서 말할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나는 앞으로도 화려한 무브를 거리낌 없이 펼칠 생각이었다.
하나는 내가 악역임에도 바트 맥센이라는 악역에 맞서기 위해서 위상을 더 높여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하나는 ‘선역’ 케인 맥센이 현역이 아니라 띄울 이유가 없어서였다.
그래서 나는 조금 전의 슈퍼 프랑켄 슈타이너를 아주 멋지게 성공시켰고.
반응은 완벽했다.
[Waaaaaaaaaaaaaggggghhhhh!!]
[Boooooooooooooooooooooo-!]
환호와 야유가 뒤섞여 혼란이 빚어졌다. 팬들은 반대되는 의견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 더 큰 목소리를 냈다.
탑 턴버클 위에서 링 위로 내동댕이쳐진 케인은 축 늘어진 상태였다.
“후우, 후우…….”
환호로 인해 조금 시간이 벌렸고 나는 로프에 기대어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이내.
팬들이 다시 우리를 기대하며 바라보는 순간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인도 내가 일부러 크게 발소리를 내는 걸 듣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곁으로 천천히 다가간 나는 환호성 속에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아요?”
“아직 할 수 있어.”
“힘들면 말해요.”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케인이 씨익 웃었다.
거기에 놀라 바라보자니.
반격이 들어왔다.
뻐억-!
날카로운 펀치.
비틀거리며 내가 밀려나자 팬들이 케인을 보고 다시 환호를 시작했다.
물론 나 역시 그에 뒤지지 않았다.
빠악-!
헤드벗.
쏟아지는 야유.
그런 가운데.
“크하악!!”
악에 가까운 기합을 내지른 케인이 내게 돌진해 클로스라인을 날렸다.
퍼억-!
목을 밀어내듯 얻어맞은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 짧은 틈을 타서 케인은 바로 옆에 놓여있던 철제 의자를 손에 쥐었다.
그게 내 등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바로 옆으로 굴러 피했다.
그 직후, 지면을 박차며 일어난 나는 그대로 수직으로 번쩍 뛰어올랐다.
이어 케인이 들고 있는 철제 의자를 향해서 싱글 레그 드롭킥을 날렸다.
쩌억!
내가 걷어찬 의자가 튕기며 뒤쪽에 있던 케인의 안면에 그대로 부딪혔다.
[Uooooooooooooooohhhhh……!]
팬들의 놀란 목소리와 함께 케인이 그대로 몸의 중심을 잃고 고꾸라졌다.
핀 폴.
1, 2……!
빠져나왔다.
케인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이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놈을 향해 펀치를 날렸다.
퍼억-!
케인이 다시 쓰러졌다.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군.’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팬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지만.
헬 인 어 셀을 겪어본 우리였다.
서로가 이 정도에서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쓰러지는 걸 팬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30분 이상의 긴 난투극이나 위험한 범프들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나는 일어섰다.
맥거핀처럼 아까 케인이 입장할 때 올려두었던 테이블을 펼쳐서 세웠다.
윗면이 목재로 된 긴 테이블은 각각을 지탱하는 철제 다리가 얇아 중앙에 힘을 주면 쉽게 무너지는 구조였다.
선수들은 이런 테이블을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해서 상대를 공격했는데.
그 중 제일 보편적인 게.
‘이거지.’
코너 앞에 테이블을 가로로 세워둔 나는 그대로 뒤로 돌아서서 쓰러져 있던 케인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Boooooooooooooooooooo-!!]
야유를 보내는 팬들.
가볍게 무시한 나는 그대로 정신을 못 차리는 케인을 테이블 위에 눕혔다.
그리고 로프를 타고 올라갔다.
시야가 높아진다.
탑 턴버클 위에 쪼그리고 앉아 케인을 돌아본 나는 뛸 준비를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
녀석이 움직였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나서 달려온 녀석이 로프 위로 올라와 그대로 나를 꽉 붙잡았다.
서로 배가 맞닿은 상태에서 케인이 뒤로 넘어가며 나를 힘껏 내던졌다.
벨리 투 벨리 수플렉스.
오버 더 탑 로프.
투 더 테이블.
투-콰앙-!!
[Uoooooooooooooohhhhhhh!!]
정신이 아찔해지는 충격과 함께 나는 테이블에 등부터 처박히고 말았다.
와지끈! 하고 부러진 테이블은, 오히려 충격을 덜어주는 역할을 했지만.
그래도 아픈 건 사실이었다.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내 앞으로 떨어진 케인 역시도 바닥을 나뒹굴며 고통 속에서 춤을 췄다.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Kane O’mac!]
맹렬한 챈트가 이어졌다.
다들 아찔한 범프를 선보인 케인을 응원했다. 그리고 거기에 정신을 차린 녀석이 나를 향해서 기어왔다.
내 가슴에 케인의 팔이 얹어졌다.
그대로 카운트.
1, 2……!!
나는 팔을 들어 벗어났다.
[Uooooooohhhhh!!]
[Boooooooooooo-!]
아슬아슬하게 카운트를 빠져나온 내게 팬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내주었다.
하지만 반응할 수가 없었다.
진득한 통증과 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한 단어를 떠오르게 했다.
조금만 더 쉬자.
한 호흡만 더 하자.
경기도 슬슬 중반부를 넘어가고,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힌 나는 그런 생각만이 머릿속을 떠도는 걸 느꼈다.
그러는 사이 의식은 몽롱해지고.
이 달콤함에 몸을 맡길까 했지만.
“신.”
“…….”
“역시 너는, 최고다.”
케인의 그 속삭임이.
내가 누군지 깨닫게 했다.
호흡을 잠시 멈췄다.
터질 듯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킨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9……!!]
어느덧 텐 카운트의 끝자락.
케인 역시 이쪽의 타이밍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로프에 기대어선 채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리고 까딱거렸다.
덤벼.
그런 사인을 보내자 반대편 로프에 기대어 서있던 케인이 피식 웃었다.
[Boooooooooooooooooooo-!]
팬들도 야유를 보냈다.
그리고 케인이 바닥에 놓여 있던 양철 쓰레기통을 집어 들자 그런 야유가 순간 환호로 뒤바뀌었다.
[Yeeeeeeeeeeeaaaaahhhhh!!]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등 뒤로 슬쩍 슬레지 해머를 감추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케인이 달려들었다.
녀석이 머리 위로 번쩍 든 양철 쓰레기통을 내리치는 타이밍에 맞춰 그대로 슬레지 해머를 크게 휘둘렀다.
아래에서 위로.
마치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듯.
쩌엉-!
내가 양철 쓰레기통을 힘껏 후려친 순간, 케인이 그것을 손에서 놓았다.
쿠당탕!
공중으로 부웅 떠올랐다 떨어진 쓰레기통이 요란한 소리를 냈고 나는 곧바로 케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뻐억-!
슬레지 해머로 복부를 후려치고.
“크윽……!”
케인이 아까 같은 방식으로 태클을 걸고자 내게 달려든 순간이었다.
이쪽이 먼저 뛰었다.
그리고 케인이 내게 몸을 날리는 타이밍에 맞춰 힘껏 무릎을 들어올렸다.
스팅거.
쩌억-!!
케인의 안면에 무릎이 꽂혔다.
[Uooooooooooooooooohhhhh!!]
반격형 피니시에 놀라는 관객들.
내 무릎에 달려와 안면은 처박은 꼴이 된 케인이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나는 곧바로 커버로 이어갔다.
[1……!]
[2……!]
[3……!]
땡땡땡!!
그렇게 경기가 종료되었다.
[Boooooooooooooooooooo-!!]
내 테마가 나오는 것과 동시에 폭발적인 야유가 링 전체를 뒤덮었다.
케인의 위에 드러누워 있던 나는 씨익 웃으며 격한 반응에 몸을 맡겼다.
‘이런 마무리도 좋지.’
각본의 끝인 페이퍼뷰도 아니고.
딱 이 정도가 되어야.
[No Chance-!]
팬들이 바트에게 환호를 보내겠지.
예상한 대로였다.
바트 맥센이 그 테마와 함께 입장로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WWF를 지지하는 팬들이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Yeeeeeeeeeeeeeaaaahhhh!!]
악역과 악역의 대립에서는 보통 ‘반격’을 가하는 쪽에 환호가 가기 마련.
상대방이 얻어터지는 모습을 보면서 팬들이 통쾌함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포지션 자체가 바트가 선역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악역을 자처하지만, WWF 팬들에게만큼은 선역.
그게 사실 내가 바트 맥센에게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은 포인트였다.
이제부터 재밌어질 거다.
나는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평소 입던 정장 재킷을 벗고 팔을 걷어 부친 채 나온 바트가 철제 의자를 들고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쩌억-!!
전혀 봐주지 않고 등을 후려치는 의자에 나는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Waaaaaaaaaaaaggggghhhh!!]
팬들의 환호는 더 커졌다.
* * *
회사를 더 키우기 위해 악역 회장 캐릭터로서 링에 오른 지 약 15년째.
바트 맥센은 지금껏 느껴본 적이 없던 황당한 감정에 휩싸여야만 했다.
바로 의문이었다.
[Yeeeeeeeeeeeeeeaaaaahhhh!!]
왜 자신에게 환호가 나오는 걸까.
악당 기업주.
WWF의 슈퍼 갑.
최고 권력자.
그렇기에 수많은 우민들로부터 증오를 받고, 자신과 반대되는 위치의 스타를 내세워 억만금을 벌어들인 이 바트를.
환호를 받게 할 수 있다고?
물론 각본을 벗어난 상태의 바트는 항상 팬들로부터 리스펙트를 받아왔다.
그렇기에 평소에는 큰 환호를 받다가 각본에 참석해 악역 수행을 할 때만 야유를 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야유를 받아야 하는 순간.
정확히는.
환호를 받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야유로 전환을 시켜야만 이야기가 원래 예정되었던 대로 진행이 되었다.
분명 신은 야유를 받는 두 사람의 대립이기에 ACW 팬들이 몰입을 하고 볼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Yeeeeeeeeeeeeeeaaaaaahhhh!!]
계속 큰 환호가 나왔다.
경기장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신의 등을 의자로 몇 번이고 후려치던 바트는 묘한 공포감에 휩싸였다.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하며 이 업계에서 특별한 존재로 환호를 받던 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야유를 받고.
그 환호가 자신에게 왔다.
아니, 그 일 자체는 일단 개연성이 충분했으므로 있을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건 이상했다.
환호가 나왔다.
그것도 압도적인 수준의.
그걸 지워내기 위해 신을 잔혹할 정도로 두들겨 패던 바트는 이내 쓰러져 있던 아들, 케인을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
“아, 아버지?”
“아나운서 테이블을 쓴다.”
“예?”
“놈을 박살 내야 해!”
각본을 벗어난 내용이었다.
원래 각본 내용대로라면 여기에서 신을 실컷 두들겨 팬 뒤, 바트는 마이크를 들고 조롱까지 할 예정이었다.
그로서 마지막에 야유를 받기로.
하지만 그걸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퍼뜩 그런 생각이 든 바트는 케인을 곧바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두 부자(父子)는 신을 좀 더 잔혹한 방법으로 요리하기 시작했다.
짜악-!!
케인이 신을 뒤에서 붙잡자 바트는 손바닥을 들어 그 뺨을 힘껏 후려쳤다.
그리고 소리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
[Waaaaaaaaaaaaaaaggggghhhh!]
환호에 목소리가 묻혔다.
그렇기에 바트는 좀 더 편하게.
다시 말해.
현실의 바트 맥센으로서.
신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
쫘악!
“날 속였던 거냐!”
“아, 아버지?”
케인이 당황해 소리쳤다.
너무 세게 때렸다.
그것으로 인해 방금까지 링을 안전하게 보호해주던 각본의 벽이 무너지면서 현실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쇼에 현실감이 더해지며 몰입은 증대되었지만 캐릭터는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걸 알지 못했다.
케인도, 관객들도.
바트 맥센만이 어렴풋이 신이 뭔가를 계획했다는 걸 짐작할 뿐이었다.
그리고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이 달아올라 서있던 바트는 이내 케인에게 다음 명령을 내렸다.
“가자, 케인.”
“아니, 잠…….”
“빨리!!”
불호령에 따르는 케인.
링 바깥으로 신을 데려간 바트는 특유의 과장된 워킹을 선보이려고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캐릭터가 먹히지 않는다.
관객들의 환호가 무섭게 꽂혔다.
바트는 신을 아나운서 테이블 위에 눕힌 뒤 그대로 케인을 링으로 올라가게 해 탑 턴버클 위에 서게 했다.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과연 괜찮은 걸까, 그렇게 의심하면서도 케인은 그대로 힘껏 몸을 던졌다.
탑 로프 엘보우 드롭.
투 더 아나운서 테이블.
공중을 번쩍 날아오른 케인의 몸이 팔을 휘두르는 특유의 동작과 함께 쓰러져 있는 신을 향해 떨어졌다.
투-콰앙-!!
붕괴하는 아나운서 테이블.
그러자 놀랍게도.
환호가 나왔다.
[Waaaaaaaaaaaaaaaagggghhh!]
빌어먹을.
된통 속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있었던 신은 몰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