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
모든 쇼가 끝난 뒤.
바트 맥센은 신을 사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문을 잠근 뒤, 듣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는 다짜고짜 물었다.
“날 속인 거냐?”
“예?”
“시치미 뗄 생각은 마라.”
바트가 으르렁거렸다.
“우리의 계획은 이랬다. 내가 마지막에 야유를 받으면서 이게 악역과 악역의 대립임을 확실히 하는 거였지.”
그로서 ACW 팬들도 보기 편하도록.
그들이 싫어하는 바트와 신이 모두 야유를 받으면 그들 역시 편하게 야유를 보내며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그들이 채널을 돌리게 만들어서, 최종적으로는 ACW를 보던 시청자층을 끌어오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네가 다 계획한 거냐?”
“제가 무슨 마법사입니까? 헤르미온느 뭐시기도 아니고 어떻게 팬들이 당신에게 보내는 반응을 조작합니까?”
신은 황당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아니, 저에게 물으셔도.”
재촉에 한숨을 내쉬는 신.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전에 없이 진지한 얼굴로 바트 맥센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제게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보스. 잠깐 생각 좀 해봐도 될까요?”
“……………….”
거기서 뭐라 대답할 수 있겠는가?
“해봐라.”
그렇게 이야기한 뒤.
바트도 고민에 빠졌다.
일단 근본적인 것부터.
왜 환호에 불안해지는가?
신이 악역이 된다면 자신이 환호를 받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나?
‘그건 그렇지.’
천천히 생각해보자.
난입 관객에 대해 ‘과잉대응’을 했다는 현실의 이슈로부터 시작된 대립.
바트는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서 문제가 되는 인물인 신을 쳐내려 들었고, 신은 거기에 폭력으로 응수했다.
그리고 도가 지나친 행동에 관객들이 야유를 보내자 그것을 조롱했다.
그로써 악역이 되었다.
그러므로 괜찮지 않은가.
WWF 팬들은 자신들마저 조롱하는 신의 ‘캐릭터’를 향해 야유를 보내고.
ACW 팬들은 반대로 진심으로 신을 증오해 야유하기 위해 찾아올 터였다.
그러므로 반대편에 있는 자신이 환호를 받는다고 한들, 신이 야유를 받는 이상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각본의 중심은 신이니까.
그게 바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신은 고개를 내저었다.
“회장님이 환호를 받는 건 장기적으로 좋은 그림이 아닐 것 같습니다.”
“반반이라면?”
환호와 야유가 각각 반반씩.
만약 플랜을 조금 바꿔 ACW 팬들이 몰입하지 못하더라도 바트 맥센을 선역으로 부킹한다고 생각해보자.
양쪽 팬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경기장을 찾으면서 조금 더 시청률을 뽑아올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잘 모르겠군요.”
“그럼 일단 확인부터 하지. 오늘 내가 왜 환호를 받았다고 생각하나?”
“음, 각본 상의 제가 생각보다 더 구린 짓을 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뭐?”
“요새 회장님, 저한테 깨진 다음에 헌터한테 권력 빼앗기고 줄곧 약자 포지션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오랜만에 갑질하니까 다들 좋아한 거겠죠.”
바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 다르지 않나!”
신은 분명히 오늘 각본을 통해 두 사람이 악역인 걸 보여주자고 했었다.
“제가 신데렐라한테 호박 마차라도 만들어줄 사람처럼 보입니까?”
신이 입술을 샐쭉 내밀었다.
“어쩔 수 없죠. 팬들이 제가 당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그럼 내가 선역으로 가란 건가?”
“아뇨, 이후 각본을 생각하면 회장님께도 결국 야유가 나올 겁니다.”
당장은 환호를 받더라도 결국 바트가 자신의 ‘권력’을 계속해서 보여준다면 야유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트 맥센이었다.
비겁하고 치졸한 수단과 목적을 위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사용하는.
프로레슬링 월드 최고의 쓰레기.
“……뭔가 기분이 나쁜데.”
“칭찬입니다. 회장님이 욕 한 번 먹으려고 한다면 누구도 못 따라가죠.”
신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스스로 악역으로서 행동하고자 한다면 바트 맥센은 분명히 팬들로부터 야유를 뽑아낼 수 있는 캐릭터였다.
그래 분명, 원하는 대로 될 터였다.
신이 ‘잘 몰랐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라고 말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사실, 정말로 신이 마음대로 반응을 조절할 수 있을 리도 없는 노릇이고.
바트는 지금 느끼는 희미한 불안감은 애써 무시하고자 노력했다.
“그럼 씻으러 가보겠습니다.”
“그래. 오늘 수고했네.”
“옙.”
적당히 주고받는 인사.
땀이 식은 것을 느끼며 사무실을 나온 신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 한마디가 가장 적절했다.
모두 계획대로.
* * *
7월 3주차.
2주차에 된통 당했던 신은 랙다운에 출연하지 않았고, 대신 바트 맥센이 링에 나와서 세그먼트를 진행했다.
[W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은 그 등장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고, 바트도 일단 그것을 즐겼다.
이게 당연하다는 듯이.
그래야만 반발이 일어날 테니까.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준다고 거만하게 구는 걸 누가 계속 좋아해줄까.
그렇기에 링에 올라 마이크를 쥔 바트는 기분 나쁠 정도로 졸렬하게 자신의 행동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이 업계에는 룰이 있소. 다들 알겠지만, 팬을 폭행하는 건 프로로서 절대는 해선 안 될 행동 중 하나지.”
그 팬이 먼저 난입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일부러 쏙 빼놓고 이야기했다.
[Yeeeeeeeeeeeeeaaaaaahhhhh!!]
“신이 자기 행동이 심했다는 걸 인정하고 물러났다면, 나는 일이 잠잠해졌을 때 놈을 다시 고용했을 거요!”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트 맥센의 코를 박살 내고, 자기 자신이 옳다면서 이 WWF 유니버스를 비롯한 모든 것들을 조롱했다.
“그러니 나도 같은 수로 돌려줄 수밖에 없지! 신! 잘 들어라! 네놈이 몸을 회복하고 나온다면 가지게 될 경기를 지금 당장 가르쳐주도록 하지!!”
바트가 스크린을 가리켰다.
그리고 두 사내가 나타났다.
두 사람 다 2미터 이상의 몬스터.
“빅 죠! 그리고 카인!!”
[Waaaaaaaaaaaagggggghhhh!!]
“너는 이 두 사람을 상대한다!!”
세그먼트는 그렇게 끝났다.
신을 조롱한 바트는 WWF 팬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아직까지는 그들이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바트 맥센의 생각대로지만.’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 생각대로는 되고 있다.
바트 맥센을 속일 이유가 있었기에 일부러 이처럼 복잡한 행동을 했다.
그리고 그건 아주 잘 맞아떨어져 팬들의 반응은 예상대로 나와주었다.
WWF 팬들은 내게 야유했고.
반대로 바트에게는 그가 ‘어떤 헛소리’를 하더라도 큰 환호를 보내주었다.
현실과 각본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그로써 각본의 몰입감은 배가 되었다.
WWF 팬들은 그걸 즐길 터였다.
내가 뻔뻔하게 나오는 모습을 보고 마구 욕을 해댈 테고 그것은 반대편에 있는 팬들에게 큰 자극을 주겠지.
그게 누구냐고?
ACW 팬들이었다.
아마 기점은 8월 중순.
‘그때 반응을 터뜨린다면.’
섬머 수플렉스에서 나는 분명,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갈 수 있을 터였다.
* * *
7월 4주차의 랙다운.
나는 바트 맥센이 계획한 대로 빅죠와 카인, 두 남자를 상대하게 되었다.
빅죠와 카인.
도합 340kg.
키 2미터 이상의 슈퍼 몬스터들.
오랜 활동에 현역으로서는 슬슬 끝물인 두 사람이었지만, 사이즈가 압도적이라 지금도 강자로 분류되었다.
아무리 위상이 높은 선수라고 해도 혼자서는 대적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러므로 바트의 편에 서서 악의 하수인으로 나를 박살 내는 역할에 딱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 있었다.
오늘 나는 두 사람에게 철저하게 당하면서 바트의 조롱을 받고, 언더 독 스타일의 부킹을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물론 경기가 그렇게 일방적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8분 30초, 경기의 종반부.
초장부터 내내 두 사람에게 얻어터지던 난 겨우 한 번의 기회를 잡았다.
쩌억-!!
빅죠의 안면에 꽂히는 반격 스팅거.
그 거구가 뒤로 넘어갔다.
[Boooooooooooooooooo-!!]
그와 함께 쏟아지는 팬들의 야유.
나 역시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큭…….”
경기에서 처음 나온 야유였다.
초장부터 빅죠와 카인에게는 환호가 나왔고 얼핏 보기에 그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처럼 느껴졌다.
핸디캡 매치에서 한 사람을 상대하는 두 사람이 환호를 받다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나는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가 빅죠의 위에 누웠다.
카운트.
1, 2……!
그 순간.
“크아아아악!!”
언제 나타난 건지, 카인이 고함과 함께 내 목을 잡고 그대로 뽑아들었다.
[Yeeeeeeeeeeeeeeeeaaaahhhh!]
힘 하나만큼은 WWF 최강이라는 사내의 팔에 이끌려 올라간 내 몸이 그대로 그 머리 위까지 힘껏 들렸고.
그대로 지면에 내동댕이쳐졌다.
투-콰앙-!
초크 슬램.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의 충격 속에 나가떨어진 나를 케인이 바로 핀했다.
1, 2, 3……!
땡땡땡!!
[Waaaaaaaaaaaaaaaagggghhhh!!]
팬들이 환호를 보냈다.
그런 상황에서 링으로 들어온 바트 맥센은 생난리를 피워대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쥐고서, 어떻게든 팬들의 야유를 받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좋아! 좋아! 아주 잘했네!!”
[Waaaaaaaaaaaaagggghhhhh!!]
“빅죠! 그리고 카인! 이 두 몬스터들 앞에서는 너도 어쩔 수 없겠지! 신! 이 빌어먹을 사기꾼 Bastard!!”
[Booooooooooooooooooooo-!!]
날 내려다보던 바트는 순간 팬들의 야유를 듣고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자신에게 보내는 야유인가?
아니었다.
내게 보내는 야유였다.
순간 그 표정이 굳어졌다.
왜 이런 반응이 나오지?
비겁하게 핸디캡 매치를 하고 온갖 반응을 다 보여줬는데 대체 어째서?
그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프로페셔널.
“다음 주에도! 그리고 그다음 주에도! 매 쇼마다 너는 그 누구도 겪어본 적이 없는 경기를 갖게 될 거다!!”
호쾌하게 웃는 바트.
그런 그에게 환호가 쏟아졌다.
난 웃음이 나오는 걸 애써 참았다.
* * *
바트 맥센이 환호를 받다니.
그것도 악독한 행동을 하는데!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전 세계의 그 누구도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눈초리였다.
나를 제외하고 말이다.
현상의 관측과 미래에 대한 예지는, 어디까지나 다양한 원인을 여러 각도에서 측정해보고 이루어져야만 했다.
미래에는 흔한 일이 될 테지만, 지금 당장은 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마치 미래에는 스마트폰이라는 문물이 당연한 것이 되지만, 과거에는 그 존재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트가 왜 환호를 받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난.
이 상황을 이용해 움직인다.
진짜 목적을 위해서.
수요일 밤의 PWA.
나는 우리의 위클리 쇼에서 팬들을 설득하고 다시 선역이 될 생각이었다.
거기에 다들 의문을 표했다.
입으로 꺼낸 건 티파니였고.
“선역이요……?”
“벌써?”
“가능하겠냐?”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거기에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악역이 된다고 했었지만…… 사실 딱히 변한 건 없잖습니까?”
“그, 래?”
“예. 저는 저였죠.”
물론 야유를 받기 위해 팬들을 모욕했지만, 나에게는 명분이 존재했다.
“그리고 바트에게는 명분이 없죠.”
“그런데 왜 환호를 받은 거지?”
“악역이라고 야유를 받아야 합니까?”
“뭐?”
“그건…….”
“굳이 악역이라고 해서 야유만 받을 이유는 없죠. 물론 그런 식으로 부킹을 하는 게 올바른 방향성이긴 하지만.”
꼭 그렇게 되진 않는다.
“중요한 건 ‘일관성’입니다.”
링 퍼포머가 악독한 행동을 한다고 야유를 보내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프로레슬링은 드라마고.
다스 베이다 같은 악당이 인기를 얻듯이, 중요한 건 카리스마와 일관성.
현실의 모습.
상대하는 선수.
단순한 드라마를 벗어나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게 바로 현 시대의, 그리고 앞으로의 프로레슬링이었다.
“일단 상대가 악당인 저였죠.”
먼저 바트를 공격했던.
그리고 이전까지 쭈구리처럼 당하던 바트는 예전과 같은 기력을 되찾고 내게 마구잡이로 갑질을 해대고 있다.
그런 드라마 속의 바트를 보고, WWF 팬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ACW에 대항해 전력으로 우리의 WWF를 지키고 있는 단체의 수장. 그런 이미지를 떠올렸겠죠.”
거기다 요새는 WWF가 재밌으니 유능함의 이미지도 붙었다.
랜스 오튼, 러셀 하트와 같은 메인 이벤터들이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러면…… 빅죠와 카인에 대한 반응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그들은 오퍼가 왔는데도 안 넘어간 ‘충신’의 이미지가 있죠. 그리고 굉장히 오랜만에 출연했고. 아마 링 위에서 거시기를 흔들어도 환호를 받았을걸요.”
“…….”
“허어.”
다들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지금 상황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내가 일부러 이렇게 끌고 왔다.
WWF를 밀어주면서, 동시에 나 자신이 얻어가는 이득 역시 있도록.
“일단, 이해는 했어요.”
티파니가 물었다.
“납득은 잘 안 가지만. ……요새 인터넷 상에서 아버지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나쁜 것만은 아니니까요.”
최근 들어 일어난 현상이었다.
ACW에게 밀린 뒤로, 1위 단체의 아성을 내주고 퇴물 소리를 듣던 WWF.
하지만 최근 들어 랜스 오튼과 나, 러셀 하트 같은 신예들이 떠오르며 전문가와 팬들이 WWF에도 나름대로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게 되었다.
ACW와는 다른 길을 가는 단체.
그런 식으로 말이다.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들은 WWF의 미래가 더 밝다고 평가를 내릴 정도.
그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바트 맥센은 ACW의 자본력에 밀리면서도 어떻게든 좋은 선수들을 발굴해서 부킹하는 유능한 사업가로서의 이미지가 쌓이게 되었고.
그로 인해 WWF 팬들의 충성심은 높아졌다.
그렇기에 나오는 환호였다.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그조차 일부지.”
하지만 이 흐름의 줄기를 파악한 것만으로도 티파니는 유능한 인재였다.
자, 그럼.
여기에서 슬슬 목적을 밝힐 때였다.
이처럼 바트 맥센이 환호를 받게 되면 그로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나.
“간단해.”
ACW 팬들의 반발이 생긴다.
현실에 의거한 내 각본에 흥미를 느기고 TV를 틀었던 ACW 팬들은 바트의 행동과 반응을 프로파간다로 느낀다.
그로써.
“내 ‘개인’의 팬이 되는 거지.”
WWF 팬이 아니라.
내 팬.
“…….”
“…….”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할리가 기가 차다는 듯 날 보았다.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는 거냐.”
거기에 나는 피식 웃었다.
자꾸 숨기려고 해도 들키는군.
내가 마법사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