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371화 (371/634)

371.

이거 완전 된통 당했군.

‘난 놈은 난 놈이야.’

로건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았고 세그먼트를 보자 오히려 좀 감탄을 할 정도.

그 뻔뻔함이 마음에 들었다.

업계의 규율인 ‘케이페이브’를 지키기 위해서 일부러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 포지셔닝을 통해 신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참고 우직하게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갔다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거짓말이라는 게 뻔히 보였지만 우매한 대중들은 분명 여기 현혹되겠지.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만큼 멋진 일이니까.

그러니 눈앞의 데릭 비숍이 분을 못 참고 길길이 날뛰고 있는 게 아닐까.

“좀 생각해보라고!!”

그는 마구 윽박을 내질렀다.

“대응책을 생각해! 연봉을 그렇게 받고서 아무도 아이디어가 없는 건가?!”

“…….”

침묵하는 임원들.

회의실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그럴 법도 한데.

이번 일은 누구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철저하게 비밀로 진행이 되었다.

ACW 내부에서 이 일을 알고 있던 건 로건과 비숍뿐. 그렇기에 대부분의 팀장들은 제대로 이해조차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데릭 비숍이 소리를 지르면서 악을 쓰는 모습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로건은 언터처블이었다.

이 회사에서 가장 큰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인물로서, 이런 일을 벌여도 그 행동에 문제가 생길 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비숍은 어떻게든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오는 상황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악을 쓰는 것이었다.

“제기랄! 쓸모 있는 놈이 하나도 없군! 지금 PWA와 WWF 놈들이 의기양양해하면서 날뛰고 있는데!!”

이쯤에서 슬슬 나설까.

“비숍.”

“저걸 그대로 둘 거야?! 완전히 우리를 엿 먹이고 지금……!”

콰앙-!!

날카로운 소리가 이어졌다.

비숍이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고, 그 머리 위를 스쳐지나가 벽에 부딪힌 머그잔이 그대로 파편으로 흩어졌다.

“후우.”

로건은 쓰고 있던 두건을 긁적였다.

다들 놀라 돌아보는 가운데, 데릭 비숍이 절절 매며 곧바로 납작 엎드렸다.

“로, 로건! 죄송합니다!”

“아닐세. 나도 좀 흥분한 모양이군.”

“아닙니다! 하, 저는 그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어떻게 좀 좋은 해결 방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어차피 여기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방책이 나오겠나? 괜한 사람들 괴롭히지 말고 결론을 내리지.”

“예, 예?”

“어쩔 수 없지. 그쪽에서 그런 식으로 치졸하게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그, 그렇군요.”

“별일 아니야. 우리도 오히려 뻔뻔하게 가자고. 우리가 하는 대로만 계속한다면 앞으로 문제는 없을 거야.”

로건의 결론은 그러했다.

이번 사건은 분명히 ACW라는 회사의 이미지에 큰 손상이 초래할 터였다.

본전도 못 찾았다.

완전히 그쪽만 이득을…… 아니.

‘신’만 이득을 본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딱히 걱정은 들지 않았다.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봤자 ACW가 가지고 있는 북미 1위 단체로서의 위상은 계속해서 굳건할 테니까.

그러므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우리 할 일만 잘하면 된다.’

로건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7월 4주차의 랙다운.

PWA에서 신이 보낸 메시지에 응답하기 위해 바트 맥센은 링에 올랐다.

그리고 불현듯.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Booooooooooooooooooooooo-!!]

그토록 원하던 야유였건만.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반응이 바뀌자 솔직히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바트는 분명 이게 신이 계획한 대로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쇼가 펼쳐지는 장소가 조지아 주의 애틀랜타라는 점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상황은 여러모로 신에게 웃어주었다.

ACW 팬들의 집결지인 미국 남부.

그렇기에 WWF에는 불리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선수들은 언제나 도를 지나칠 정도의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신은 달랐다.

그에게 이곳은 제2의 고향.

동시에 여러 가지 폭로가 이어진 상황에서 그는 큰 지지를 얻고 있었다.

팬들은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할 터였다.

누구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신념을 관철한 영웅으로.

순간 할 말을 잊어버렸다.

“어…….”

[You Su-ck! You Su-ck! You Su-ck! You Su-ck! You Su-ck!]

“확실히 해두겠소. 일단 이번 사건의 진실은, 우리로서도 절대 알 수…….”

[Boooooooooooooooooooooo-!!]

팬들은 계속해서 야유를 보냈다.

현실의 일이 뒤섞인 각본에 쏟아지는 팬들의 야유는 상상을 초월했다.

바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다들 쉽게 잊는 사실이었지만, 그는 엄청난 프로레슬링 팬이었고 동시에 그것을 만드는 사업가의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 기회를 잡는 수밖에.

신을 영웅으로 만들어주는 수밖에.

“닥쳐어어어어어어!!”

그로울링을 하듯이 이어지는 욕설.

순간적으로 그런 바트 맥센에게 압도당한 관객들이 입을 다물었다.

“누가 남부 돼지 새끼들 아니랄까봐 긴 이야기는 듣지도 못하는 모양이군!”

그는 마구 어그로를 끌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다.

여기에서는 확실하게 악역으로 행동하면서 신을 띄워줄 수밖에 없었다.

이걸 놓치면 오히려 팬들은 그 일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더 욕을 할 테니까.

“난 몰랐다고! 오히려 그런 사건을 숨긴 신이 멍청한 짓을 한 거지! 그거 하나 지킨다고 누가 알아주겠나?!”

[Boooooooooooooooooooooo-!!]

“나는 오히려 피해자야!”

바트는 악역답게 자기 자신을 변호하며 착실하게 팬들의 분노를 쌓았다.

야유는 점점 커졌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아마 여기가 프로레슬링의 링이 아니었다면 누군가 돌을 던졌을 정도로.

하지만 그랬다.

어디까지나 이건 쇼.

아무리 관객들이 분노를 느껴도.

그 위에 올라설 자격이 있는 자만이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법이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Yeeeeeeeeeeeeeeeeeaaaahhhh!!]

팬들의 우렁찬 함성.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남부의 레드넥들이 한 사내의 등장에 이처럼 큰 환호를 보내는 경우는 둘 중 하나였다.

그 남자가 공화당이거나.

아니면 남자로서 슈퍼 멋지거나.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바트는 약간의 역겨움과, 아주 약간의 기쁨을 느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키 188cm.

체중 100kg.

멋진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며 동양인 청년 하나가 입장로에 나타났다.

* * *

예상대로 멋진 반응이었다.

조지아는 이렇게 해줄 것 같았다.

비록 내가 이제는 PWA로 넘어갔지만, 그들은 나와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환영을 해주었다.

동시에.

나는 지역을 옮긴 뒤에도 조지아라는 주에 대한 리스펙트를 매번 빼놓지 않고 해왔다.

이런 식으로.

“보고 싶었다! 조지아!!”

[Yeeeeeeeeeeeeeeeeeaaaaahhhh!]

“너희의 아들이 돌아왔다고! 그런데 고작 이 정도 환호밖에 안 나와?!”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팬들의 환호는 엄청났다.

현실.

각본.

그리고 기존의 감정.

세 개가 뒤엉켜, 마치 폭발하는 멘토스와 쿠카콜라처럼 협음을 일으켰다.

전류가 터지며 경기장 안의 흐름이 내게 넘어왔다. 팬들 모두는 나를 만나고 완전히 미쳐서 날뛰고 있었다.

그저 나는.

커튼을 걷고 나와 입장로를 걸어오며 손을 뻗어오는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해준 뒤, 링에 올랐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 반응이었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테마를.

[Uh-Oh-! Oh-Oh-Oh-! Oh-Oh-!!]

어깨동무를 하고 티셔츠를 벗어 휘두르며 잔뜩 술에 취한 레드넥들이 그렇게 나에게 멋진 반응을 보내주었다.

이제야 좀 속이 상쾌했다.

할리우드 로건과 ACW 측에서 보내온 폭탄 소포에 이런 식으로 멋진 답장을 할 수 있다니, 정말 죽여주는군.

바로 그때였다.

“신…….”

바트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순간 이어지는 야유.

[Boooooooooooooooooooooo-!!]

팬들이 말도 못하게 막았다.

황당하다는 듯 양팔을 들어 올린 바트가 내게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떻게 좀 해봐라!”

“제가 어떻게 해요?”

“빌어먹을! 시간 밀린다고!”

아, 그랬지.

바트 맥센과 내 세그먼트는 대략 10분. 그중 3분을 바트가 썼고 1분 정도 내가 입장에 사용했으니 남은 건.

6분이군.

좋아.

슬슬 해볼까.

헛기침을 한 나는 팬들을 진정시킬 요량으로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싹 조용해졌다.

다들 입을 다물고서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펼칠지 기대하며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바트 맥센을 돕기 위해서 마이크를 든 것이었다.

그러므로 입을 좀 털어주자.

“사실, 난 좀 고약한 취미가 있어.”

내 식대로.

“걱정 마. 딱히 변태적인 취미는 아니니까. 단지, 난 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즐겁단 말이야.”

나는 바트를 가리켰다.

“과연 무슨 헛소리를 할까?”

그 얼굴이 굳어졌다.

아마 진짜로 그렇겠지.

“난 변하지 않았어. 난 똑같이 그 일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당신은 여론이 좀 변했다고 해서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변호하려 하겠지.”

나는 마이크를 내밀었다.

“어디 해봐. 들어줄 테니까.”

그리고 쏟아지는 건.

[Waaaaaaaaaaaaaaaagggghhhh!!]

환호였다.

그 말이 맞았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

관객 난입이 ACW 측에서 저지른 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이나 후나 똑같이,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트는 어떤가?

여론이 내게 우호적으로 돌아서자 어떻게든 비난을 피하려고 필사적이지.

나는 그 변명이 듣고 싶었다.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

바트는 얼굴이 벌게진 채 대답했다.

“내가 자기변호에 급급하다고? 아니, 변한 건 아무것도 없어! 확실하게 말해주마! 신! 가감 없이! 확실하게!”

바트가 악을 쓰며 다가왔다.

그리고 소리쳤다.

“너는 쓰레기야! 이 업계에 절대로 있어선 안 되는 오물 같은 놈이라고!”

[Booooooooooooooooooo-!!]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하지만 나는 바트가 하는 이야기에 흥미로움을 느끼며 듣고 있었다.

“이놈들은 죄다 속고 있는 거야! 아니, 지금 당장의 열기에 휩쓸려서, 네놈을 지지하는 척하고 있을 뿐이지!!”

바트의 진심이 거기에 묻어나왔다.

멋지군.

대립이 깊이를 더해갔다.

“그리고 우습게도, 넌 멍청이들을 속이는 재주를 타고 나서 여기까지 올라왔지! 어디 내 앞에서 개소리를 하고 있어?!”

하지만 과연.

신이 최고의 자리에 올라갔을 때도 과연 팬들이 그를 끝까지 지지해줄까?

“아니! 역사가 그걸 증명해왔다!”

존 마이클스.

텍사스 출신의 촌놈.

키 185에 체중 90kg의 말라깽이.

당시 락커룸에 놈의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마이클스는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계속 성장했다.

그리고 소년은 꿈을 이뤘다.

“아직도 그 순간이 기억나는군! 1996년 레슬 임페리움! 그곳에서 그는 그렉 하트를 쓰러뜨리고 자신의 삼십 년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밤을 얻었지!”

하지만 이후로 어땠을까.

“팬들은 놈을 믿지 않았어. 자신들과 달리 특별한 존재가 된 존을 질투하기 시작했지. 더러운 쓰레기 자식들…….”

존은 어두워졌다.

만월이 태양에 가려지듯.

그리고 다시 팬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무리하다가 결국 부서지고 말았다.

소년은 추락했다.

“아니지.”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당신이 존 마이클스라는 남자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야. 바트 맥센.”

“내가?”

“그래. 그는 소년이 아니야.”

내가 아는.

누구보다 가장 화려하고 멋진 남자.

Show Stopper.

Heart Break Boy.

“그리고 나는 그를 믿었지. 그도 나를 믿었고. 그렇기에. 존 마이클스는 추락하지 않았어. 나와 함께, 지금 이 자리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

팬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바트 맥센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는 내 어린 시절의 우상이었던 마이클스를 팬들에 의해 날개 찢긴 아동 포르노의 피해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남자를 부순 건 과도한 스케줄과 심적인 부담, 그리고 그를 믿어주지 않는 보스의 과도한 개입 때문이었다.

“신기하지 않나? 데자뷔야. 뷔가 발음하는 게 좀 어렵군. 요는, 지금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지.”

바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마이크를 밑으로 내린 그가 내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No.

그건 말하지 마라.

그런 뜻이 담긴 제스처.

하지만 뭐 어때.

말한다.

“숀 시나.”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가 이야기했다.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머리끝까지 피가 몰린 나는 그대로 바트가 싫어할 이야기들을 해나갔다.

“너는 그 개자식을 믿지 못했지. 하지만 시나는 널 믿고 있어. 그래서 온갖 역겨운 부킹도 해내고 있잖아?”

“신, 잠…….”

“닥쳐. 내가 말하고 있으니까.”

나는 바트를 밀어붙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을 할 때였다.

바트는 아이콘을 믿지 못한다.

그가 떠오를 수 있을까. 동시에, 너무 과도하게 떠오르지는 않을까.

온갖 개입을 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종한다.

수많은 선수들이 거기에 속고 갑질을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과거와 미래의 지식.

이 업계에 대해 각자 다른 이유를 가지고 투신한 수많은 선수들과 함께해오며.

배웠다.

열망을.

그렇기에 쓰러뜨린다.

이 모든 걸 초래한 남자를.

바트 맥센을.

“얼마든지, 당신이 아는 그 어떤 악독한 수를 모두 써보라고. 회장님.”

왜냐면 나는.

“당신 말을 듣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그 시체 더미 위에서 일어선…… 당신 모가지를 따버릴 개자식이니까.”

그제야 좀 속이 풀렸다.

그리고 나는.

내 이름을 외치는 수많은 팬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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